*2024.1.10.수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신 8:11~14
*제목;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2) 광야보다 더 힘든 가나안의 삶?
“11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신 8:11~14)
1.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1) 항상 하나님만 바라보라!
가나안은 좋은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정하신 땅입니다.
애굽보다 어쩌면 광야보다도 더 좋지 않은 조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애굽에서의 부르짖음과 광야에서의 “하나님만 바라봄”이 더 할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삶은 그래서 더 힘들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의 고통과 광야에서의 황망함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 바라보는 것이 더 힘들어 질 수 있습니다. 알지만 자꾸 세상을 기웃대고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고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은 더욱 믿음이 요구되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사는 이곳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런 가나안입니다.
2.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생은 정상(성공)으로 올라가는 여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공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인생은 “광야를 지나는 삶”입니다.
광야에 서 보셨습니까? 주위를 둘러봐도 막막한 어려움으로 가득한 곳,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곳, 그곳이 광야입니다.
그러나 광야를 경험하고 계신 분들은 이 삶이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생은 광야를 경험하도록 하나님께서 프로그래밍 해놓으셨습니다. 이 광야가 구원에 이르는 여정(중간 단계)이요 필수코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삶이 힘들기에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익히게 하시려고 그래서 믿음의 바른 모습을 가지게 하시려고 광야를 우리 인생 가운데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광야는 도움의 손길이 와야 탈출할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의 태도를 가질 수 있어야 지나갈 수 있는 곳입니다.
광야는 매일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곳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야의 삶이 오히려 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살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삶을 꾸려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의 진짜 어려움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12~14절’을 봅시다.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신 8:12~14)
광야가 아니기에 가나안은 스스로 살아가야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기에 풍요를 경험하게 됩니다. 살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 모세의 걱정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에게 이끌리까봐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이곳의 풍요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아도, 하나님 없어도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착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삶의 직접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가나안은 이런 무서운 영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광야의 고통은 견디면 되지만, 가나안의 위험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결국 모세의 걱정대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 우상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가나안 족속들에게 농사를 배우면서, 그들이 섬기는 농사의 신인 ‘바알’을 같이 섬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도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풍요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농사의 신 바알을 섬기는 것처럼, 우리도 삶의 풍요로 인해 ‘현대의 가장 큰 신’인 ‘돈(맘몬)’을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도 돈의 명령을 이기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영적 광야로 쫓겨났듯이(바벨론포로), 우리도 광야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힘들었던 시기가 계셨지요? 그때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았습니까? 그 간절한 기도가 기억나시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마음과 기도가 있습니까? 당신은 지금 가나안의 위기에 놓여진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보다 가나안의 삶이 더 위험한 것입니다.
3. 광야에서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라!
광야에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른 믿음을 세워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힘이 듭니다. 그러니 바른 믿음을 세워가기가 광야보다 더욱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가나안에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광야에서는 생존을 위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지만, 가나안에서는 믿음을 위해, 그리고 지정하신 땅의 사명을 위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광야에서보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못하다면, 다시 광야학교에 들어갈 수밖에 없게 하실 것입니다.
태국 선교사님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그들이 태국으로 온지 700일이 되었는데, 있던 한국보다도 더 상황과 형편이 나쁜 것은 사실이라고 합니다. 선교사 부부는 부부대로 사역의 어려움 속에 놓여지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교 적응의 문제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가나안” 즉, 하나님이 지정하신 곳, 사명의 땅임을 모든 가족들이 분명히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하나님 바라보는 것을 멈출 수 없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풍성히 경험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와 가나안에서의 하나님의 경험(하나님의 역사)는 다릅니다. 그러나 분명하고 동일한 것은 그곳이 어디든지 “하나님 바라보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 바라보는 것으로 “가나안”이 축복의 땅, 은혜의 땅이 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그래서 여러분의 사명을 날마다 이루어가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광야에서와 가나안에서의 하나님의 경험(하나님의 역사)는 다릅니다. 그러나 분명하고 동일한 것은 그곳이 어디든지 “하나님 바라보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 바라보는 것으로 “가나안”이 축복의 땅, 은혜의 땅이 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그래서 여러분의 사명을 날마다 이루어가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