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재(主一齋) 예서 잠문 8폭 병풍
1.병풍 글의 구성
크게 세부분으로 구분된다.
처음 1~4폭 A.정부자 시청언동 사잠서(程夫子視聽言動四箴書).
다음 5폭 ~7폭 2열 5자까지가 B.돈복재명(敦復齋銘).
마지막 7폭 2열 6자부터 8폭 끝까지는 C.주일재명(主一齋銘).
程夫子視聽言動四箴書은 남송의 정이에 의해 저술된, 흔히 四勿箴 불리는 유명한 잠서.
敦復齋銘의 돈복재(敦復齋)는 남송의 문인 진희안(陳希顔)의 서재의 명칭.
주역 '復'괘의 효사 '敦復'을 차용한 것으로 돈독하게 마음의 근본(선한 본성)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마지막 主一齋銘은 성리학을 체계화한 남송의 주자가 敬을 정의하면서 '主一無適' 즉 마음을 하나로 집중하여(主一) 다른 데로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無適)이라 한 것에서 인용한 문구. 저자 미상의 글이지만, 主一齋란 호나 당호를 지은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그리고 '主一'이란 말 속에는 앞의 사물잠과 돈복제의 사상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지막 주일재명은 이 병풍을 대표하는 문구로 이해된다. 필자가 이 병풍을 주일재 예서 잠문 병풍으로 호칭하는 이유이다.
A.
視箴曰心兮本虛,應物無迹;操之有要,視為之則。蔽交於前,其中則遷。制之於外,以安其內;克己復禮,久而誠矣。
聽箴曰人有秉彝,本乎天性,知誘物化,遂亡其正。卓彼先覺,知止有定,閑邪存誠,非禮勿聽。
言箴曰人心之動,因言以宣;發禁躁妄,內斯靜專。矧是樞機,興戎出好,吉凶榮辱,惟其所召。傷易則誕,傷煩則支。己肆物忤,出悖來違。非法不道,欽哉訓辭!
動箴曰哲人知幾,誠之於思,志士勵行,守之於為。順理則裕,從欲惟危。造次克念,戰兢自持,習與性成,聖賢同歸。
右程夫子視聽言動四箴書
B.
惟聖作《易》研幾極深,惟卦有復,於昭天心。六爻之義各隨所乘。其在於五,孰復是明。其敦如何,篤志允蹈。順𠈃其中而以自考。
我觀爻義,厥有戒辭。君子体之,敬戒是资。人欲易萌,天理难存。毫厘之间,消长所分。凡百君子,奈何不敬。祇于夙宵,以若天命。
維積維久 非俟于外 敢曰無悔 庶幾寡悔
右敦復齋銘
C.
人之心一何危。紛百慮走千歧。惟君子克自持。正衣冠攝威儀。澹以整儼若思。主于一復何之。事物來審其幾。應以專。匪可移。理在我寧彼隨。積之久昭厥微。靜不偏動靡違。 嗟勉哉
右主一齋銘
2.조선의 '主一齋'는 누구일까.
이 병풍이 주일재란 호를 가진 조선 문인을 위해 제작되었다고 하는 것은 개연성이 높은 합리적 추론이다.
그리고 조선이 성리학 외골수의 나라였던 만큼, 主一齋란 호를 사용한 문인은 여럿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필자는 조선 중기 윤승임에 주목한다. 이것은 이 병풍이 전해내려운 지역과 시대성, 그리고 병풍의 글을 지은 사람은 성리학에 대한 학문적 조예가 대단히 깊은 사람일 것임을 고려한 또 다른 추론에 불과하다.
주일재(主一齋)윤승임(尹昇任, 1583~1688)은 조선의 학자로, 충청북도 청주시 미원면 옥화리에 신도비와 그를 배향하는 사당인 숭현사가 있다.
원래 이곳에는 주일재 이름의 건물도 있었으나 소실되고, 현재 남아있는 주일재 중건기(主一齋重建記)가 병풍과 관련되었을 수도 있는 정보를 전하고 있다. 해당문구를 인용한다.
청주 상당 동쪽에 옥화승구가 있다. 西溪이득윤(李得胤)이 그곳이 그윽하고 깊고 조용하고 확터인 것을 좋아하여, 그 가운데 터를 잡고 도를 강론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 문인인 윤승임(尹承任)이 그 곁인 만경대에 집을 짓고, 주일재(主一齋)의 편액을 걸었다. 그는 이곳을 배회하며 시가를 읊조리곤 하었는데, 즐겁게 유유자적하는 취향이 있었다. 더불어 노닐며 학문을 강습하고 수련하는 친구 선비들 또한 많았다.
만경대는 (화양서원이 소재한) 화양계곡과 거리가 가까워, 큰 아들을 보내 저의 선조인 문정공(송시열)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게 했다. 문정공은 때로 이곳을 방문해서 곡진한 정을 표하셨다. 일찌기 편액을 써 주었고, 마침내 재잠(齋箴)을 지어 정자와 주자를 통해 전수되던 심법(洛閩相傳之心法)을 서술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뜻이 본받을 만함을 자랑하고, 조금이라도 경지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하셨다. 윤공은 대현에게 추앙받고 인정됨이 이와 같았다.
上黨之東。有玉華勝區。李西溪先生愛其幽邃窈廓。考槃其中。講道以沒世。
其門人尹公諱承任築室於其傍萬景臺。扁以主一齋。徜徉吟哦。逌然有自適之趣。士友之從遊講劘者亦衆。
臺之距華陽莽蒼而近。遣其胤子受學於我先祖文正公之門。文正公有時歷臨。致意繾綣。嘗書齋扁以與之。遂作齋箴以叙洛閩相傳之心法。而詡以其志可則。勖以分寸躋攀。公之爲大賢所推許。有如是焉.
1800년(정조 24년) 宋煥箕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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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은 윤승임을 위해 주일재 잠문을 지어주었고, 그 내용은 낙민상전지심법(洛閩相傳之心法) 즉 정자와 주자가 전수한 심법이라 밝히고 있다. 위 병풍의 정자의 사물잠은 물론 돈복재명과 주일재명 또한 주자 심학의 요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중건기의 서술과 일치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요컨대, 이 병풍은 심학으로서 조선 성리학을 집대성한 송시열에 의해 문장이 작성되고, 어느 서예가에 의해 예서체 병풍으로 제작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추정이다.
3.병풍의 의의
심학의 핵심을 짚고 있는 이런 글이 민간 속에서 병풍으로 제작되어 향유되었다는 것은 당시 조선 성리학의 높은 이론적 수준과 성리학적 이념이 사회저변으로 깊히 내면화된 정도를 시사하는 사건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예서의 아름다운 서체는 한문이 조선의 문자로 토착화된 정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조선 서예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작품으로 간주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