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따뜻해진 3월말 봄날. 화개장터와 쌍계사 ‘십리벚꽃길’은 화려한 벚꽃의 향연이 열린다. 길가의 벚나무는 솜털 같은 꽃송이를 달고 사람 곁으로 달려든다. 벚꽃터널은 꽃이 ‘핀다’라기 보다 ‘흐드러진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만개한 벚꽃나무 밑을 지난다. 40∼50년 된 벚나무들이 길가에 빽빽이 서 있다. 새하얀 꽃송이들이 겹겹이 포개지고 얽혀 두덩을 이룬다. 옆집 창가에도, 골목길 담 언저리에도, 산비탈에도, 화개천 계곡에도 벚꽃은 고개를 내민다. 슬쩍 하얀 소복자락 스치는 소리에 돌아보면 아무 것도 없다. 눈에 들어오는 것 모두가 분홍빛 꽃물이 든 것 같다. 봄의 살비듬 콧잔등에 내려앉아 속살로 다시 스며든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바람에 날리는 꽃 이파리를 보며 어찌 인생을, 사랑을, 노래하지 않고 견디겠는가”라고 했다. 소설가 박완서는 벚꽃이 피는 모습을 “봄의 정령이 돌파구를 만나 아우성을 치며 분출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표현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가는 국도는 어질어질하다. 전국에서도 알아준다는 벚꽃 군락지. 가지와 가지가 맞닿은 벚나무 터널은 멀리서도 단박에 눈에 띈다. 초입에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라는 간판이 서 있다. 그 아래에 들어서면 분홍빛 빛깔에 눈을 베일 것 같아 걷는 것조차도 힘들다. 큰아기 속살같이 희뿌연 벚꽃이 피어나 있다. 고개를 위로 쭉 뻗어 걷다보면 똑바로 걷지 못한다. 자꾸만 갈지자걸음을 한다.
천(川) 이쪽과 저쪽, 산자락 강 언덕, 지천에 벚꽃이다. 환장하게 흐드러지게 피었다. 화개 십리벚꽃길은 흔히 ‘혼례길’이라고 부른다. 벚꽃이 화사하게 피는 봄날, 남녀가 꽃비를 맞으며 이 길을 함께 걸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만큼 이 꽃길은 낭만적이고 인상적이어서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다. 이 환장한 봄날의 벚꽃, 바람이라도 불어 보라지. 바람에 날리는 분홍꽃 이파리를 보며 어찌 환장하지 않겠는가. 어찌 저 꽃을 보고 견딘단 말인가. 분홍빛 벚꽃이 마음까지도 분홍색으로 물들인다.
하얀 꽃잎은 꽃비가 연지 곤지가 된다
화개천을 따라 꽈리를 뜬 뱀처럼 이어진 길은 이맘때쯤 상춘객으로 몸살을 앓는다. (하동군청 제공)
바람에 날리는 분홍 꽃 이파리들. 봄바람이 꽃가지를 흔들고 흙바람이 일어 가슴의 큰 슬픔도 꽃잎처럼 바람에 묻힌다. 저리고 앞섶을 풀어 제친 처녀의 화들짝 놀란 가슴처럼. 하얗고 분홍빛의 봄비는 온 몸으로 춤추는 봄바람의 뺨을 때린다. 소리 없는 바람의 일렁임에 따라 허공에서 춤추듯 길가로 고요히 내려앉는 꽃비들.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장관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 어떤 화가가 그린 그림보다 아름답고 화려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처연하다. 마지막 생을 앞 다퉈 지는 꽃잎들. 10일 동안 하얀 물감을 뿌린 벚꽃은 사방으로 색(色)을 흩뿌리며 사그라진다. 포장도로를 따라 선들선들 밟고 오는 봄바람 속에 잊혀진 봄 슬픔이 되살아난다. 바지게 가득 떨어진 꽃잎 위로 봄은 쉬엄쉬엄 다음 계절에 그 자리를 내어준다.
햇살 받아 고요하게 빛나는 물길
쌍계사를 기점으로 다시 거슬러 화개장터로 나오면 섬진강과 만난다. 뉘엿거리며 땅거미가 주위를 조용히 에워싸기 시작한다. 벚꽃도 점차 빛을 잃어간다. 미처 눈에 다 담기도 전에 지고 만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벚꽃은 잠깐 사이로 떨어져 짧은 봄날에 하얀 마침표를 찍는다. 그 흔들리는 듯한 땅거미 속에서 모든 것이 멀어져 간다. 바람은 휘청거리는 다리를 모아 허둥지둥 둥지로 숨어든다.
해질 무렵의 섬진강. 봄 언저리에 강은 자꾸만 밑으로만 흘려 간다. 뭍에는 이미 어둠이 내려 깔렸는데도 수면에는 으스레하게 석양이 남아 있다. 바람에 따라 정처 없이 일렁이는 은빛 물결은 연신 숨 가쁜 토악질을 한다. 꺼져가는 생의 마지막을 잡으려는 안간힘처럼 느껴진다. 드문드문 드러나는 모래톱과 고요하게 느리게 흘러가는 강물 속에 점점의 섬처럼 사람들이 서 있다.
가는 길 서울에서 하동까지는 직행버스가 하루에 6번 왕복운행 한다.(4시간30분 소요) 하동에서 쌍계사까지는 1시간 간격으로 대략 40분 걸린다. 열차는 서울에서 하동까지 하루에 2번 있으며 소요시간은 6시간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에서 서울-사천 사이를 각각 하루에 2번 운행한다. 자가용은 남해고속도로 하동IC나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에서 빠지면 이정표가 나온다.
대지를 뒤덮은 벚꽃군무 꽃샘추위가 끝나고 4월로 접어들 때쯤이면 화개에는 벚꽃이 화사하게 봄을 재촉한다. 화개의 꽃길은 이미 십리벚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벚꽃길은 일제강점기인 1931년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지역 유지들이 벚나무 1200그루를 심어 조성했다. (하동군청 제공)
장엄하고 화려한 벚꽃터널 왕복 2차선 꽃길은 가지와 가지가 서로 맞닿아 꽃 터널을 이룬다. 해마다 4월초가 절정기. 멀리서도 꽃은 단박에 눈에 띈다. 아침 햇살이 쏟아지면 환하다 못해 눈부시다. 검은 빛을 띠는 나무 기둥과 연분홍빛이 살짝 비치는 꽃송이가 대조를 이뤄 아름다움을 더한다. (정지윤 기자)
사랑을 맺어주는 벚꽃길 화개 십리벚꽃길은 흔히 ‘혼례길’이라고 부른다. 서로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두 손을 잡고 걸으면 백년해로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어떤 장소나 사람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것은 그곳의 경치가 빼어난 탓도 있겠지만 동행했던 사람의 기억 때문에 그러기도 하다. (우철훈 기자)
복슬복슬해진 꽃송이 벚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달린 봄날. 꽃을 마음에 담아 가고, 마음에다 그려 간다. 터진 입으로 보기엔 그 화려함에 눈이 멀 지경이다. 이 좋은 봄날에 피고 지는 꽃 한 송이 없다면 이 봄이 어찌 봄이고, 이 생이 어찌 생이겠는가. (우철훈 기자)
벚꽃길은 선계(仙界)를 품고 제주 한라산의 왕벚나무가 신작로 양옆을 따라 흠씬 피어있는 벚꽃길. 그 길옆으론 잔돌평전과 토끼봉에서 쏟아져 내린 옥수가 돌 틈 사이로 흐르는 화개천이 있다. 굽이굽이 흐르는 천(川)은 강을 만나고, 이내 바다와 조우한다. (하동군청 제공)
절정의 순간 마지막을 준비 만개한 벚꽃도 아름답지만 한꺼번에 비 내리듯 떨어지는 벚꽃도 아름답다. 김영남 시인은 “쥐어뜯어 꽃잎처럼 바람에 흩뿌리겠네. 뿌리다가 창가에 보내겠네. 저 벚꽃처럼”이라며 벚꽃의 그리움을 노래했다. (하동군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