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을 향해 웅크리다] 키스가 끊이지 않는 곳-조엔 바에즈와 수정 눈물의 감성(3)
어떻게 보면 아이라 샌드펄을 빼고 조앤 바에즈에 대해 말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토지계획위원회에서 어떤 남자가 그러더라고요. 제가 광적인 비주류한테 이끌려 환락과 죄악의 길을 걷고 있다고요.” 미스 바에즈는 킬킬 웃는다. “아이라 아저씨가 그 남자한테 미친놈은 당신이고 그 수염이 비주류라고 했죠.” 아이라 샌드펄은 마흔두 살의 세인트루이스 토박이로, 턱수염, 삭발한 머리, 큼지막한 핵 군축 엠블럼을 붙인 코듀로이 재킷, 사명감에 빛나는 눈빛, 높고 갈라진 웃음소리, 그리고 전반적으로,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조금이지만 치명적으로 비뚤어진 무지개를 평생 쫓아다닌 남자의 모습이었다. 샌프란시스코, 버클리, 팰로앨토 근방을 돌며 평화주의 운동에 젭법 오랜 시간을 바쳤고, 미스 바에즈와 함께 연구소의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는 팰로앨토의 어느 서점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아이라 샌드펄이 열여섯 살의 조앤 바에즈를 처음 만난 건 미스 바에즈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팰로앨토의 퀘이커교도 회합을 찾았을 때다. “심지어 그 무렵에도 조앤은 어딘가 마술 같은, 비범한 분위기를 풍겼죠.” 아이라 샌드펄은 회상한다. “제가 설교한 집회에서 조앤이 노래했던 때가 기억납니다. 그날 밤 청중의 반응이 대단해서 제가 말했죠. ‘얘야, 네가 어른이 되면 우리 한 팀으로 전도 사업을 하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활짝 벌린다.
두 사람이 친해진 계기는, 아이라 샌드펄에 따르면, 미스 바에즈의 아버지가 유네스코 자문으로 파리에 체재한 일이 라고 한다. “제가 가장 오랜 친구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조앤이 의지하게 되었죠.” 그는 1964년 가을 버클리 시위 당시 그녀와 함께 있었다. “우리가 바로 그 말 많고 탈 많은 외부 선동자들이었지요. 기본적으로 우리는 치열함이 없는 운동을 비폭력운동으로 바꾸기를 원했습니다. 조앤은 슬럼프에 빠진 운동을 끌어낸느 데 ‘엄청나’게 큰 역할을 해냈지요. 비록 남자들은 지금 와서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겠지만요.”
버클리 시위에 참석하고 한두 달 후에 조앤 바에즈는 아이라 샌드펄에게 일 년간 개인 교습을 받을 수 있는지 가능성을 타진했다. “조앤은 정치적인 식견이 높은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지요. 느끼는 ‘감정’은 강렬했지만, 조앤은 비폭력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역사적 조건을 전혀 몰랐습니다.”
“전부 막연했어요.” 초조하게 머리카락을 뒤로 벗어 넘기던 그녀가 말허리를 끝는다. “좀 덜 막연하면 좋겠어요.”
그들은 일 년의 개인 교습에 그치지 않고 정해진 기한이 없는 학교를 짓기로 했다. 1965년 늦여름에 첫 학생들이 등록했다. 연구소는 어떤 운동과도 노선을 같이하지 않으며(“우리들 또 다른, 길고 격렬하고 크나큰 난장판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애들이 있어요”라고 미스 바에즈는 말한다) 사실상 활동 조직 대다수에 대해서는 두드러진 불신이 팽배하다. 예를 들어 아이라 샌드펄은 비폭력을 제한된 전략으로만 간주하고 인습적 권력 집단을 용인하며 심지어 지도자를 국회의원 경선에 내보낸 VDC가 쓸데없는 단체라 생각한다. 샌드펄은 국회라면 치를 떠는 사람이다. “자, 이렇게 말하면 어떨가요. 지금 인권 문제로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한다면 누구를 증인으로 부를까요? 애덤 파월(침례교 목사이자 인권 노동자로, 미국 의회에 진출한 최초의 아프리카께 미국인)? 아니지요. (베이어드) 러스틴, (제임스) 파머, (마틴 루터) 킹을 부릅니다. 기존 권력 구조 안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그는 미스 바에즈와 함께 폭력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안에 서명할 때 증인으로 소환되는 날을 그려보듯 잠시 말을 멈춘다. “낙관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희망적이지요. 차이가 있지요. 나는 희망을 품고 있어요.”
가스 난방기가 간간이 피식피식 들어왔다가 조용해지고 미스 바에즈는 그걸 지켜본다. 더플코트를 어깨에 두른 채로, “다들 제가 정치적으로 나이브하다고 말하고, 실제로도 그래요.” 한참 후에 그녀가 말한다. 그녀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한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아니면 우리가 전쟁에 말려들 리가 없잖아요.”
문이 열리고 수제 샌들을 신은 키 작은 중년남가자 걸어들어온다. 미스 바에즈의 매니저 마누엘 그린힐이다. 5년째 매니저를 맡고 있는데도, 아이라 샌드펄과는 만난 적이 없다.
“드디어!” 아이라 샌드펄이 벌떡 일어나며 외친다. “전화기 속의 육체 없는 목소리가 드디어 여기 계시네! 매니 그린힐이라는 사람이 정말 있군요! 아이라 샌드펄도 정말 있습니다! 여기 이렇게요! 이 사람이 그 악당입니다!”
조엔 바에즈는 만나기 어렵다. 적어도 저항운동의 지하조직과 동조된 사람이 아니라면. 그녀의 음반 녹음을 맡은 뉴욕의 회사 뱅가드에서는 보스턴에 있는 매니 그린힐의 전화번호만 줄 것이다. “지역코드 415, 앞 번호 DA4, 번호는 4321입니다.” 매니 그린힐의 쉰 목소리가 말할 것이다. 지역 코드 415, DA4-4321은 펠로앨토에 있는 케플러 서점으로 연결될 텐데, 그곳은 아이라 샌드펄의 전 직장이다. 서점의 누군가가 전화번호를 받아 적을 테고, 전화를 건 사람과 연락할 의향이 있는지 캐멀에 확인한 후 다시 전화해 캐멀의 번호를 알려준다. 캐멀의 번호는, 이제 다들 짐작하겠지만, 미스 바에즈의 전화가 아니고 자동응답 서비스다. 자동응답 서비스에 번호를 남기면, 며칠 혹은 몇 주 후에 미스 바에즈의 비서 주디 플린이 전화를 걸어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미스 플린은 미스 바에즈와 “연락해보겠다”고 말한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요.” 틀린 번호와 불통의 전화와 답이 없는 전화가 희한하게 주먹구구식으로 엮여 있는 이 그물망의 핵심에 있는 장본인이 말한다. “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오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찾아오더라고요. 내가 어디 사는지 누군가 말을 해주나 봐요.”
그녀는 조용하게 산다. 책을 읽고, 그녀가 어디 사는지 듣고 오는 사람들과 대활르 하고, 가끔은 아이라 샌드펄과 샌트란시스코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 평화운동 이야기를 나눈다. 두 자매를 만나고 아이라 샌드펄을 만난다. 그녀는 연구소에서 아이라 샌드펄의 말을 경청하고 대화하며 살아가는 나날이 이제까지 했던 어떤 일보다도 만족스럽다고 한다. “노래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좋아요. 예전에는 무대에 서서 수천 달러씩 벌어들이고 있는 돈이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하곤 했거든요.” 그녀는 수입에 대해 수세적인 태도를 보이고 (“야, 어디서 들어오는 돈이 좀 있지요”) 계획을 물으면 막연하게 답한다. “하고 싶은 일들이 몇 가지 있어요. 로큰롤도 좀하고 싶고 클래식도 좀 하고 싶어요. 하지만 차트 순위와 판매량을 미리 걱정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면 내 입장이 어떻게 되겠어요?”
정확히 그녀가 서고 싶은 자리가 어디인지는 열린 질문으로 보인다. 자기 자신에게도 답이 아리송하고 매니저한테는 더 아리송한 질문 말이다. 가장 유명한 고객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를 물으면 매니 그린힐은 “아주 많은 계획”이라든가 “다른 영역”이라든가 “조앤 자신의 선택” 같은 말을 한다. 그러다 마침내 생각이 났다는 듯 말한다. “있잖아요. 바로 얼마 전에 캐나다 텔레비전 방송에서 다큐멘터리를 하나 찍었는데 <버라이어티>에서 아주 호평을 받았어요. 제가 읽어드릴게요.”
매니 그린힐은 리뷰를 읽는다. “어디 보자. 여기 <버라이어티>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원래는 20분짜리 인터뷰만 하기로 계획했지만 토론토의 CBC 간부들이 필립을 보고 나서 특집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더니 자기가 자기 말을 끊는다. “바로 여기가 제법 뉴스거리가 될 만한 대목입니다. 어디 봅시다. 여기서 조앤의 평화론을 인용하고 있어요. …..그건 이미 아시죠……여기 조앤이 ‘할리우드에 갈 때마다 토할 것 같아요’…..아니, 이 얘기는 그만하고요. ……여기요, ‘링고 스타와 소지 해리슨의 성대모사는 정곡을 찔렀다.’ 이거 보세요. 이 부분은 좋네요.”
매니 그린힐은 미스 바에즈가 책을 쓰고 영화에 출연하고 로큰롤 곡들을 녹음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녀의 수입은 거론하지 않을 테지만, 쾌활하면서도 쓸쓸한 어투로 “올해는 별로 많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미스 바에즈는 1966년에 콘서트 스케줄은 단 한 번만 허락하고(일 년에 30회에서 줄어든 것이다) 가수 경력을 통틀어 클럽 공연을 단 한 번 수락했으며, 사실상 텔레비전에도 출연한 적이 없다. “조앤이 앤디 윌리엄스 쇼에 나가서 뭘 하겠어요?” 매니 그린힐은 어깨를 으쓱한다. “언제나 같이 팻 분 모래를 부른 적은 있지요. 분위기 맞춰 어울릴 줄은 안다는 증거지만 그래도요. 조앤 뒤에 백댄서들이 나와서 춤을 추는 건 원치 않아요.” 그린힐은 그녀가 참여하는 정치 행사를 주시하며 그녀의 이름을 유용하지 못하게 막으려 한다. “조앤 이름을 걸면 콘서트가 된다는 거죠. 요점은, 조앤 이름을 내걸지만 않음녀 상황이 안 좋을 때 조앤이 빠져나올 수 있어요.” 학교 일로 스케줄에 지장이 생기는 문제에는 체념한 눈치다. “들어보세요. 조앤한테 정치에 나서라고 항상 독려한 게 나예요. 나야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관심은 있다고 합시다.” 실눈을 뜨고 해를 쳐다본다. “아마 나는 그냥 너무 늙어서 그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