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
텃밭 옆에 도랑이 흐른다. 너비는 양팔 길이이고 깊이는 1미터 남짓 얕다. 작년 여름 장마 때 많은 비로 넘쳐 채소가 잠긴 적이 있다. 그 바람에 그릇들이 다 떠내려 어디로 가고 없다. 찾아 나섰는데 동서 저쪽 이쪽 끝을 샅샅이 뒤져도 감감하다. 그때 알았는데 동쪽은 낙동강 하류에 이르고 서쪽은 바다에 닿았다.
강물이 넘치면 민물이 되고 바닷물이 사리로 차오르면 숭어 떼가 나타난다. 맹물일 때보다 염수 날이 많다. 보면 고기 천지다. 커다란 것은 심이 들어서인가 동쪽 다리 아래 컴컴한 굴속에서 우르르 몰려다닌다. 한번은 비스듬한 둑에 겨우 앉아 낚시질하는 사람이 있어서 뭘 낚습니까. 하니 담근 그물을 들어 보이며 떡붕어 대여섯 마리를 보여줬다.
대개는 숭어 떼가 다닌다. 붕어는 어쩌다 나타난다. 그러다 어느 날은 모두 떠다니면서 뻐끔뻐끔 숨 쉬더니 일시에 배를 내놓고 둥둥 떠 있다. 큰 굵은 숭어 어미가 먼저 죽고 어린 것들은 뒤에 마지못해 하얗게 떠올랐다. 무슨 약속이나 한 듯이 한꺼번에 쓰러지나. 전염병이라도 돌았을까. 카미카제 특공대들인가. 얼마나 많은지 온통 하얗다.
아직 빌빌하는 게 있어서 떠올려 먹을 수 있지 안을까 했는데 아내가 고개를 저어서 그만뒀다. 더운 날 이내 썩은 냄새가 날 텐데 그러면 어쩌나 했다. 모두 가라앉아 이번엔 바닥이 하얗다. 큰비로 넘칠 때만 단물이고 나머진 해수인데 고여서 흐르지 않다 보니 산소가 부족한 것으로 느껴진다. 며칠 뒤에 오니 깨끗하다.
아니 그 시궁창일 텐데 고약한 냄새는 다 어디 가고 맑은 물이 감돈다. 이내 썩어서 감쪽같이 희석됐다. 자정 능력일까. 언제 그랬느냐이듯 갈대가 산들산들 춤춘다. 얼마 뒤 서쪽 밭 참나물을 거둬 오는데 숲에서 ’삐악삐악‘ 소리가 난다. ’나좀 살려 줘요.‘ 하는 말로 들린다. 아들이 손바닥에 건져 올렸다.
노란 털이 송송 손아귀에 쏙 들어오는 아주 귀여운 병아리 같은 물새 새끼다. 물에 다시 넣어줬다. 왔다 갔다 일하는데 이번엔 따라오면서 건져달라고 야단이다. 그러다 둑 위를 언제 냉큼 올라왔는지 쫄쫄 따라다닌다. 고거 참 이상한 놈이다. 어미 품에 돌아가라고 버려둔 채 둑 위로 올라왔다.
그런데 왜 이리 깊게 구덩이를 파 물이 고이는가. 해수가 들어왔다간 담수가 들어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비가 많이 오면 강 하류에는 넘쳐 수해를 입을 수 있단다. 그래서 좌우에 수로를 만들어 분산하는 거란다. 평소 짠물일 때는 낙동강 물을 밀어내면서 뒤섞여 소금물이 3%에서 1%쯤 된다.
이때 이런 섞인 물을 좋아하는 숭어가 몰려온다. 물이 고여 오래 있으면 빛깔도 검어지면서 고기 떼가 죽는가 보다. 그럼 서둘러 바다로 나가지 않고 미적거렸을까. 여러 해 봤지만 이런 건 처음이다. 강물인가 싶어 채소에 줬다가 잎이 마르면서 시들시들해지는 걸 봤다. 안 되겠다 싶어서 우물을 팠는데 게가 구멍을 숭숭 뚫어 담수를 흐리게 한다.
하는 수 없이 염도계를 사서 쟀다. 샘 둑을 두껍게 하고 꽉꽉 밟아 단단하게 했다. 자그만 게가 다니면서 말썽을 일으킨다. 어떤 건 크다. 불그스레한 게 손바닥만 하다. 땅속에서 우러난 샘물이라고 별난 게 아니다. 도랑물 높이만큼 고이는데 담수처럼 맑지 않고 약간 간간하다. 그래도 그냥 사용하니 별 탈이 없다.
집에 반말들이 물통으로 서너 개 퍼담아 주려니 힘들다. 무거워 뒤뚱거린다. 그래도 충분히 줄 수 없다. 가물 땐 퍼 줘도 이내 파삭파삭한다. 속까지 스며들지도 않는다. 이 구덩이를 파 스며 나온 물이 흥건하게 많다. 편리한 게 이제 수월해졌다. 앞 바닷가로 큰 도로가 나고 갓길엔 가로수와 개울둑으로 숲이 울창하다. 또 산딸기가 키 크게 자라 앉아있으면 밀림 속이다.
거기다 물 옆 그늘 뽕나무와 소사나무 높은 그늘이 멋지다. 더운 여름날 모기 등쌀로 얼굴만 내밀고 칭칭 감았다. 더위를 모르고 지난다. 나무숲과 물이 시원함을 준다. 무엇이 어슬렁거리기에 돌아보니 잠수함만 한 것이 지나간다. 뱀인가 싶어 바짝 긴장해 다시 보았다. 잉어이다. 놀라니 커 보이고 두려우니 뱀인가 했다. 숭어가 뻔질나게 다녔지. 이 물고기는 처음이다. 장마 때 어쩌다 붕어가 잡히는 걸 봤다.
가만있자 이걸 어떻게 잡지. 생각이 들었다. 붙들면 한아름 돼 보인다. 복숭아 따던 단단한 손잡이 그물로 뜨면 될 것 같다. 아니면 뱀 잡으려 들고 다니는 몽둥이로 등허리를 내리치면 제 놈이 뒤집혀야지 살겠다고 도망가겠나. 또 두 가닥 쇠스랑으로 내리찍으면 끌려 올라오리라 여겨진다.
저걸 큰 솥에 고면 맛난 살코기와 뿌연 국물에 밥을 말면 실컷 먹겠구나 싶다. 너무 커 보여 아내가 건들지 말고 가만히 두라 한다. 빨리 내빼지 않고 실실 등을 수면에 닿아 겁도 없이 산책을 즐긴다. 너 갈 데로 가라며 버려뒀다. 다음날 또 나타나 저들 집 마당처럼 다니기에 쾅 발을 디뎌 놀라게 했다.
좀 깊이 들어가더니 슬며시 속도를 내 흙탕 속으로 사라졌다. 장마철이어서 자주 비 내리니 먹을 게 있는가. 매일 나타난다. 눈이 사람 눈처럼 보이고 수염이 꼭 늙은이 같다. 할아버지만 같아서 잡을 생각이 사라졌다. 동쪽 서쪽 고추밭과 참나물 밭으로 지나면서 본척만척했다. 그냥 휘젓고 아무렇게나 둥둥 떠다닌다.
오늘은 여러 마리가 떼 지어 왔다. 다녀 보니 괜찮더라 저들끼리 연락된 것인가 보다. 저리 큰 건 낙동강 바닥에나 살 텐데 이 얕은 곳을 무슨 먹이가 있다고 찾아오나. 팔팔 끓여 곰 해 먹을 생각일랑은 버렸다. 곧 장마 끝나면 소금물이 들어올 것이다. 어디 맘껏 다니다 강으로 올라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