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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단상(斷想) [경전 이야기] ♡ 인색했던 장자의 믿음 옛날 어떤 인색하고 탐욕 많은 장자가 있었다. 부처님께서 그를 제도하시려고 먼저 사리불(舍利弗)을 보 내어 보시의 복과 갖가지 공덕을 그에게 설명하였다. 장자는 인색하고 탐욕이 많아 전연 보시할 뜻이 없었다. 그래서 점심 때가 되었을 때 사리불에게 말하였 다. "너는 왜 가지 않는가? 내게는 너에게 줄 밥이 없다." 사리불은 그를 교화하지 못할 줄 알고,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부처님께서 다시 목련(目連)을 보내어 신통 변화로써 그에게 설법하게 하셨다. 그는 다시 목련에게 말하 였다. "너는 나에게 물건을 얻고자 하여 일부러 그런 요술을 부리는 것이다." 목련도 그를 교화하지 못할 줄 알고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이에 부처님께서 기어코 그의 인색과 탐욕을 깨뜨려 주시려고 몸소 그 집으로 가셨다. 장자는 부처님이 몸소 오시는 것을 보고, 부처님께 예배하고 자리에 들어갔다.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 방편으로써 말씀하시고 계속 말씀하셨다. "그대는 다섯 가지 보시를 실천할 수 있겠는가?" "저는 조그마한 보시도 하지 않은 것이 온데, 하물며 큰 보시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하온데 다섯 가지 큰 보시란 어떤 것이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보시란, 첫째가 살생하지 않는 것이니, 너는 할 수 있겠는가?" 장자는 '살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선 나의 재물을 쓰지 않으니 손해가 없을 것이라'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차례로 말씀하시어 술을 마시지 않는 것에 이르러서도, 그는 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 그 장자를 위하여 5계의 이치를 갖가지로 설법하신 뒤, '만일 이 5계를 능히 가지면, 그 것이 바로 다섯 가지 큰 보시를 모두 행한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는 매우 기뻐하여, 허름한 담요 한 장을 부처님께 보시하려고 창고에 들어가 골라 보았으나 허름한 것 이 없었다. 그 가운데 한 장을 골라 부처님께 드리려고 가지고 나오자 창고 안에 있는 모든 다른 담요들 이 줄줄이 부처님 앞으로 따라 나왔다. 부처님께서 그 장자의 보시하는 마음이 결정되지 않은 줄을 아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제석천왕이 아수라와 싸울 때 그 마음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 번이나 패하였다가, 뒤에 그 마음을 결정하였으므로 아수라 군사를 크게 부수었느니라." 장자는 이 말씀을 듣고 부처님은 큰 성인으로서 사람의 마음을 밝게 아시는 줄을 알고, 곧 믿는 마음이 청 정하여졌다.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설법하시니 그는 곧 수다원(須陀洹)의 도(道)를 얻었다. 이튿날 마(魔)가 그 장자의 마음을 알고, 그것을 부수려고 부처님으로 변화하여 장자의 집으로 갔다. 장 자는 아직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마인 줄은 알지 못하고 기쁘게 맞이하 면서 받들어 자리에 들어갔다. "잘 오셨습니다." 부처님 형상을 한 마는 장자에게 말하였다. "내가 어제 너에게 한 말은 모두 나의 진실한 말이 아니다. 너는 빨리 그것을 잊어버려라." 장자는 이 말을 들고 못내 이상히 여겼다. '형상은 부처님인데 그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니, 마치 사자 가죽을 나귀가 쓴 것처럼, 형상은 사자 같지 마는 마음은 나귀다' 생각하고, 장자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마는 장자의 마음을 알고 곧 제 몸으로 돌아가 장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일부러 와서 당신을 시험해 보았지마는 당신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경전에 말씀하셨다. "도를 본 사람은 부처님의 말도 믿지 않거늘(見諦之人 尙不信佛語), 하물며 다른 도를 믿는 사람이겠는가 (何況餘道)" 장자는 그 이치를 깊이 살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처님 제자는 반드시 깊은 이치를 이해하여 마의 말 과 부처님의 말씀을 모두 자세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치는 배우지 않아서는 안 되고, 보시는 행하 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중경찬잡비유경(衆經撰雜譬喩經)》 上 ------------------------------------------------------------------------------------------------------------------- 이 이야기는 '보시'와 '계율', 그리고 무엇보다 바른 이치를 분별하는 지혜를 함께 보여 주는 매우 의미 깊 은 비유입니다. 1. 이 이야기의 요지 이 이야기의 주인공 장자는 인색과 탐욕에 마음이 굳게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 부처님께서는 으뜸 가는 제자 사리불존자와 목련존자를 보내 교화하라고 보내셨습니다. 사리불존자는 먼저 보시의 공덕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장자의 마음에는 보시할 틈이 없었습니다. 목련존자는 신통력을 보이며 교화하려 했지만 장자는 오히려 "나에게서 무엇인가 얻으려고 저런 요술을 부리는구나."라고 의심했습니다. 두 제자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부처님께서 친히 교화시키고자 가셨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전혀 다 른 방법을 쓰셨습니다. "그대는 다섯 가지 보시를 실천할 수 있겠는가?" 하시니 작은 보시도 못하는데 그런 큰 보시를 어떻게 하 느냐고 말하자, 부처님께서 오계를 하나하나 제시하시니 재물이 안 드는 것이라 하겠다고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작은 틈 하나를 열어 주었더니 그 틈으로 법이 들어온 것입니다. 마침내 장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마음이 청정해져 수다원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2. 그렇다면 사리불과 목련은 실패한 것인가요? 이것이 이 비유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리불존자는 지혜 제일이고 목련존자는 신통 제일입니다. 그런 분들이 장자를 교화하지 못했다는 것은 두 존자의 지혜나 능력이 부족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이야기는 중생의 근기에 맞는 방편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사리불존자는 보시의 공덕을 설했습니다. 그런데 장자는 '보시'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목련존자는 신통으로 감화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장자는 그것마저 자신의 탐욕이라는 안경을 쓰고 바라 보았습니다. 즉, 좋은 법문이라고 해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약도 환자의 병에 따라 처방 이 달라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장자의 마음을 살피시고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작은 문부터 여신 것입니다. 3. "다섯 가지 큰 보시"라는 가르침 여기서 아주 깊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장자는 "내 재물을 내놓는 것"만 보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보시를 요구하면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오히려 "살생하지 않는 것도 보시다."라고 가르치십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살생하지 않으면 다른 생명은 나로부터 죽임을 당할 두려움에서 벗어납니다. 내가 도둑질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재산을 빼앗길 두려움에서 벗어납니다. 내가 거짓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속임을 당할 두려움에서 벗어납니다. 그러므로 계율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나는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행위가 아니라, "나는 다 른 존재에게 두려움과 고통을 주지 않겠다."라는 적극적인 보시가 됩니다. 두려움과 고통을 주지 않는 보시를 일러 무외시(無畏施)라 합니다. 이는 아주 큰 보시라 하겠습니다. 재물을 주는 보시는 재시(財施)이고, 법을 가르치는 것은 법시(法施)이며, 다른 생명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 평안을 주는 것은 두려움을 없애 주는 무외시(無畏施)입니다. 장자에게는 이것이 참으로 적절한 문이었던 것입니다. 4. 담요들이 따라 나온 장면 저는 이 대목이 이 이야기의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장자는 처음에는 '허름한 담요 한 장쯤이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창고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막상 찾아보니 허름한 것이 없습니다. 결국 담요 한 장을 가지고 나오자 다른 담요들까지 줄줄이 따라 나옵니다. 이는 단순히 기이한 사건을 말하려는 것이라기보다, 인색한 마음이 한번 열리기 시작하면 보시의 마음도 점점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탐욕도 습관이고 보시도 습관입니다. 처음에는 손가락 하나 펴기가 어렵지만, 한번 놓기 시작하면 다음에 는 조금 더 쉽게 놓을 수 있습니다. "놓는 연습"이 곧 보시의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5. 제석천왕의 이야기가 결정적인 이유 부처님께서는 장자의 마음이 아직 완전히 결정되지 않았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제석천왕이 아수라와 싸울 때 마음이 결정되지 않아 세 번 패했지만, 마음을 굳게 결정한 뒤 승리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십니 다. 장자는 그 순간 깨닫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나의 겉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의 망설임까지 아시는구나.' 바로 여기에서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이 장자의 변화는 단순히 "부처님이 신통력으로 장자를 굴복시 켰다"가 아닙니다. 방편 → 계율 → 보시 → 신심 → 정견 → 수다원이라는 변화의 과정입니다. 6. 마지막 마(魔)의 시험 장자가 수다원도(須陀洹道)를 얻은 뒤 마(魔)가 부처님으로 변장하여 나타납니다. 그리고 "어제 내가 한 말은 진실이 아니니 모두 잊어버려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장자는 이상함을 알아차립니다. '형상은 부처님인데 말은 부처님의 법과 맞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법을 기준으로 삼는 지혜입니다. 무조건 "부처님처럼 생겼으니 믿는다"가 아닙니다. 형상 보다 법을 보고, 말보다 이치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의 "견제지인상불신불어(見諦之人 尙不信佛語 何況餘道)" "진리를 본 사람은 부처님의 말씀조차 이치에 맞지 않으면 그대로 믿지 않는데, 하물며 다른 가르침이겠 는가?"라는 구절이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부처님을 믿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법에 비추어 살피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종합하여 이 이야기의 교훈을 정리해 봅니다. 보시는 재물에서 시작하지만 마음의 인색함을 놓는 데서 완성되고, 믿음은 사람을 믿는 데서 끝나지 않고 법을 바르게 분별하는 지혜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사리불존자와 목련존자의 경우도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사리불 존자와 목련 존자는 지혜와 신통이 있었지만 장자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두드리다 갔을 뿐입니 다. 부처님께서는 장자에게 열릴 수 있는 다른 문을 찾아 주신 것입니다. 그만큼 부처님의 지혜 방편은 무궁무진함을 보여준 사례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근기(根機)에 맞는 방편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깁니다. 법을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내 마음의 탐욕 · 집착 · 의심이 일어나는 순간 그것을 알아차리고, 실제 행동에서 하나씩 놓아 가는 것이 법을 체득하는 길이겠습니다. 🌿 남의 마음 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 탓 하지 말고 마음 근기 잘 살피어 그에게 두려움 없도록 안심하게 해야 하리. 마음 열면 신심 일고 신심 일어 신행할 때 형상을 좇지 말고 진실한 법 따라야 하리. 방편에 머물지 말고 진리를 향할지라. 남의 마음을 얻으려면 상대방의 마음과 근기를 파악해서 방편을 잘 써야 함을 배웁니다. 그 지혜를 부처 님의 방편 지혜를 통해 배웁니다. 그리고 겉 형상보다는 내용이 진실에 부합한 지를 늘 살펴야 거짓에 휘둘리지 않음을 또한 배웁니다. 불교의 믿음은 맹신(盲信)이 아니라 신해(信解)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믿되 살피고, 배우되 분별하고, 깨달은 바를 다시 자신의 삶에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또한 방편 지혜도 단순히 상대에게 맞춰 주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의 근기를 살피고, 그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문을 찾아 진리로 인도하는 지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새벽에 비가 그런대로 많이 내려 급한 갈증은 풀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해갈되었다고 보기는 어 렵습니다. 앞으로도 단비가 좀 더 내렸으면 바람을 가져봅니다. 오늘도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 속에 심신의 안정과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며, 자애와 연민, 복과 지혜를 닦아 통찰지를 갖추고 정리를 따라 정심정행하며, 법의 기쁨이 가득한 맑고 향기로운 만행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

첫댓글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