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s '경전의 숲을 거닐다(82)'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정준영 교수 /bbs]
▒ 맛지마니까야 '지바까의 경' (Jivaka sutta)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 있는 지바까 꼬마라밧짜의 암바숲에 계셨다.
그때 지바까 꼬마라밧짜가 세존을 찾아가 절을 올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세존이시여,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사문 고따마에게 공양올리기 위해 산목숨을 해치는 이들이 있는데
사문 고따마는 알면서도 그 고기를 먹는다'라고.
세존이시여, 이 말이 사실입니까?
사람들이 거짓으로 세존을 헐뜯는 것이 아닌지요?"
"지바까여, 그대의 말이 맞습니다. 그 말은 거짓입니다.
나는 세 가지 경우에 육식을 해서는 안된다고 설합니다.
보았을 경우, 들었을 경우, 의심스러울 경우입니다.
지바까여, 수행자는 한 마을에 의존하여 지냅니다.
그는 동, 서, 남, 북, 위, 아래, 옆, 모든 곳을 빠짐없이 원한이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의 마음으로 연민의 마음으로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으로 평정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며 머뭅니다.
그리고 이런 수행자에게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공양을 청하면 수행자는 그가 원한다면 동의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의복을 갖추고 공양을 청한 집으로 가 음식을 받습니다.
이 때 수행자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이들이 앞으로도 나에게 훌륭한 음식을 대접하길 바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음식에 탐착하거나 매혹되지 않고 위험을 보고 여읨을
알아차리면서 음식을 먹습니다.
지바까여, 이때 수행자가 자기를 해칠 생각을 하거나
남을 해칠 생각을 하거나 둘 다를 해칠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그 수행자는 비난받을 일 없는 허물없는 음식을 먹은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예부터 천신과 인간의 참된 스승은
자애와 연민과 기쁨과 평정을 가지고 세상에 머문다고 들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이 말에 대한 살아계신 증인이십니다.
참으로 자애와 연민과 기쁨과 평정으로 이 땅에 머무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루 한 끼밖에 안 드시는 존경하는 부처님께 신선하고 영양가 있는 고기를 올리려고.. (마치 사위에게 씨암닭 잡아주듯 ^^)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그러지 말라고 하신다. 추측이라도 된다면 먹으면 안 된다.
▶자애경: '생명에 대해 존중해야 한다. 생명을 해져서는 안된다.
움직이는 것이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나 생명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동물뿐 아니라 식물도 생명을 가지고 있다. 그 생명도 존중해줘야 한다.
마치 어미가 새끼를 보호하듯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 라고 설법하신다.
그런 수행자들이 어찌 생명을 해친 음식을 먹을 수 있겠느냐?
탁발할 때, '이것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 구분하지 않는다.
하루에 한 번, 수행하기 위해서,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드시는 것이기 때문에
음식에 대해 탐욕이나, 더 원함이나 그런 걸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것이 고기라 할지라도 거기에 살생의 의도가 담겨있지 않다면 받아서 먹어도 무방하다.
그와 더불어, 재가자들에게도, 살생을 멀리 하라고 여러차례 강조하신다.
심지어 음식을 만들 때도 살아있는 것을 잡지 말고 죽어있는 고기로는 음식을 해도 좋다..
단순하게 '육식을 하면 살생의 원인이 된다' 하는 것보다는
그 마음상태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육식 여부 그 자체보다도,
생명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보고 있느냐.. 그걸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요즘은 2600년과 또 다르게 오직 잡아먹기 위해 생명을 사육하고 하는 사회상..
부처님이 오시면 더 심하게 육식을 금하지 않으실까..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제를 지내 - 바라는 일이 안되면, 비가 오지 않으면
수백마리의 소, 염소, 양들을 죽여 제사를 지냈다 - 희생제를 금지하신 분이 부처님
'아무리 희생제를 많이 지내는 것보다 스스로 수행하는 것이 귀한 것이다'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살생을 하지 말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하시는 부처님이 어찌 살생해서 공양 올리는 것을 드실 수 있겠나.
- 세 가지 청정육이 있다
▶지와까? 지바까?
va - 초성으로 나올 땐 주로 ㅇ소리(위빠사나) / 중간에 나올 땐 ㅇ 또는 ㅂ소리(지와까, 지바까 두가지로 발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지바까여, 누군가가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위해 살아있는 생명을 해친다면 그는 많은 악행을 낳습니다.
'가서 그 생명을 데려오라'고 말할 때 첫 번째 악행을 낳고
그 생명이 밧줄에 묶여 끌려가며 괴로움과 고통을 경험할 때 두 번째 악행을 낳습니다.
'가서 이 생명을 죽이라'고 말할 때 세 번째 악행을
그 생명이 목숨을 잃으며 괴로움과 고통을 경험할 때 네 번째 악행을 낳습니다.
여래나 여래의 제자에게 허용되지 않는 음식을 제공할 때 다섯 번째 악행을 낳습니다.
지바까여, 누군가가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위해 살아있는 생명을 해친다면
이러한 다섯 가지로 많은 악행을 낳는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을 마치시자 지바까가 세존께 아뢰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승가의 수행자들은 참으로 허용된 음식만을 드십니다.
참으로 비난받을 일 없는 허물없는 음식만을 드십니다.
누군가가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위해 생명을 해친다면 그는 다섯 가지로 많은 악행을 낳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시듯
방황하는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목숨 바쳐 세존께 귀의하고
세존의 가르침과 세존의 승가에 귀의하겠나이다."
동물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지만 그 말을 느낌으로 안다고 한다.
동물을 죽이면서 식재료라는 생각만 하지, 그 동물이 나랑 똑같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생명체라는 생각을 못 하는 것.
살생이라는 것이 그 행위뿐 아니라 행위 이전에 그 살생의 의도 또한 넓은 의미의 살생 범주 안에 포함된다.
그 생명체가 두려워하고 괴로워할 것인데 그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수행처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만약 어린 아이가, 줄지어 기어가는 개미들을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재미삼아서 그 개미들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죽인다면 살생의 업이 될 것인가 아닌 것인가?
큰스님의 답변 - 살생의 업이 된다.
그 어린애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개미를 죽인다고 하지만
그 아이 역시 누군가가 때리거나 꼬집으면 울음을 터뜨리면서 자기를 보호하려고 할 것이다.
만약 그 정도의 수준이 되는 아이라면 자기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지만
마음 깊숙히 살생의 의도를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행위뿐 아니라 의도도 중요하다.
(이미령 선생님: 제주도 여행을 가서 꺼멍돼지를 보는데
초등학교 1,2학년 아이가 '야 저거 맛있겠다'라고 하는 거예요.
웃고 말았지만 '저 아이 눈에는 저게 뭘로 보인다는 말일까?'
부모도 '맞아 맞아' 하면서 아이하고 재밌게 말을 주고 받더라.
이건 좀 심각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의 주인이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살아있는 생명체에 대해서, 인간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집에서 기르던 개나 고양이가 태어나면 분양을 하는데 한편 생각해보면
어떻게 주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의로 분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마도 부처님께선 살아있는 동물을 거래하는 일을 좋지않은 생계수단이라고 하신듯 하다.
(이미령 선생님: 일본책에서 보았는데, 아이들한테 닭을 그리라고 했더니
벼슬이 있고 그런 닭을 그리지 못하고 슈퍼마켓에 랩으로 싸여있는 닭고기를 그렸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무조건 육식을 금한다 차원이 아니라 그것이 살아있는 생명체였다는 것을 아이나 어른이나 인지해야 한다)
※빨리어 '고기' - 망사(mamsa)
☞ 스님이라도 고기를 먹을 수는 있다 <법륜스님> http://cafe.daum.net/santam/IQ3h/6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