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2편 강해 / 이레교회 새벽기도회 20170329 水曜日 정인준 목사]
사도신경 찬송가 374(423)장 ‘나의 믿음 약할 때 주가 붙드네 마귀 나를 꾀일 때…’
통성 기도(3분) 말씀 봉독(시편 142:1-7), 설교(15분),
◈ 시편 142편은 그 시작하는 분위기가 시편 57편과 많이 비슷합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사울을 피해서 도망 다니던 시절에
다윗이 느끼던 절박함과 외로움이 녹아 있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57편의 표제에는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라 되어 있죠.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을, ‘누가 보호하시는가?’라고 붙일 수 있습니다.
다윗이 도피 생활을 하면서 동굴에 숨어 지낸 기록이 두 차례 있습니다.
하나는 아둘람 굴로서, 사무엘상 22장 1-2절과 사무엘하 23장 13-14절에 나오고, 다른 하나는 사무엘상 24장에 소개되는 엔게디 굴인데 그곳에서 사울의 목숨을 죽일 수 있었지만 다윗이 아낀 적이 있습니다.
아둘람 굴은 다윗이 피난처로 삼았던 큰 굴이었는데 반해,
엔게디 굴은 잠시 쉬었던 일시적 거처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시는 아둘람 굴을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봅니다.
◈ 1-4절 말씀을 다 같이 읽습니다.
“1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2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3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4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지금 현재 다윗이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가 알 수 있습니다.
이새의 여덟 아들 가운데 막내로 자라던 시절, 비록 목자 노릇을 했었어도
그 때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노래할 만큼 편안함과 풍성함을 누렸던 다윗입니다.
그리고 한 때 골리앗을 물리친 영웅으로서 사울 왕의 사위가 되어 왕실 생활을 맛보았던 왕족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동굴에서의 피난 생활이 현실입니다.
그래도 그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봅니다.
◈ 아둘람 굴 이야기가 나오는 사무엘상 22장 1-2절은 이런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또, 사무엘하 23장 13절은 다윗 주변의 용사들을 소개하면서 아둘람 굴을 소개합니다.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불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다윗이 아둘람 동굴에서 지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동굴로 모여들었는데 4백 명 정도나 되었고
그 중에는 세 사람의 용사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본문 4절에서,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만이 자기 보호자가 되신다는 고백입니다.
이사야 2장 22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였던 다윗을 본받읍시다.
◈ 5-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5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6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7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7절에 보면 아둘람 굴은 다윗에게 감옥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도하는 동안에 감사의 조건이 넘치게 되고,
하나님이 ‘갚아주심’으로 의인들이 그의 주변에 가득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늘 소망과 구원의 감격을 누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