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6월 7일 수요일 비
고맙게도 비가 밤새 내려줬다.
엇저녁 빗소리를 들으며 행복하게 잠이 들었고, 오늘 아침 빗소리가 들리는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잠이 깼다.
‘실비라 할지라도 밤새 내렸으니 매실에 물을 주지 않아도 되겠지. ’ 그 거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만족할 일인가. 대 만족이지. 이불을 걷어치우고 창밖을 내다본다. 땅바닥이 젖어있다. 그것만으로는 안 되지. 밖으로 나가 땅 바닥을 헤쳐 본다. 한 치 정도는 흠씬 젖어있다.
장모님도 얼굴이 활짝 피었다. “밭 해갈은 되었어. 한 줄금 더 쏟아지면 좋을 텐디....” 매실 잎도 활기가 넘치고 손을 대면 녹색 물이 들 것 같다.
모처럼 활기찬 아침을 맞는다.
오늘은 아산에 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비오는 날 할 일도 마땅치 않은데 잘 된 일이다.
소변 검사 끝에 “염증이 작대기 세 개에서 한 개로 줄었어요. 오늘 주사 맞으시고, 일주일 약을 드시면 됩니다.” 기쁜 소식이지.
다음 주에 다시 소변검사를 해야 겠다. 어머님은 당뇨가 있으셔서 끝까지 염증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다음은 아버지 병원이다. “항생제 투여로 열이 잡히고, 안정기에 접어 들었습니다. 일반 병실로 가시고 싶으면 간병인을 구하시면 되고, 지금 쓰는 항생제를 처치해 줄 수 있는 요양병원을 찾으시면 요양병원으로 가셔도 됩니다”
“그럼 앞으로 아버님의 치유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
“경색이 워낙 심하셔서 의식 회복은 불가능 합니다.” 가슴이 내려 앉는다.
“지금 저 상태보다 나아지실 수 없다는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병원에서는 포기했나 보다. 이 걸 어쩌나 ?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저렇게라면 살아계신다 해도 무슨 의미가 있나 ?
조금만이라도 나아지실 수 있다는 기대라도 있다면 중환자실에서 계속 최선의 치료를 받게 해드리고 싶은데, 나가줬으면 하는 눈치 아닌가.
면회 시간에 맞춰 중환자실에 들러 아버지를 뵌다. 여전히 그릉그릉 소리를 내시며 잠만 주무신다. “아버지 눈 좀 떠 보세요” “손을 잡아 보세요” 반응이 없으시다. 눈까풀을 들어 올려보니 눈동자에 촛점이 없으시다.
이제 점점 이 세상과 멀어지시나 보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오나 보다. 일반 병실로 옮기셨을 때의 비용 문제, 간병인 구하는 일, 요양병원에서 처치할 항생제 이름 등을 자세히 알아 보고 형제들에게 전달 한 후 각자의 의사를 물었다.
어차피 회복이 불가능하시다면 요양병원으로 모시자는 의견일치를 보았다.
경숙이 조카가 간호사로 근무하는 ‘아산참요양병원’을 들렀다.
자기들이 항생제 겐타마이신과 하나마이신을 투약할 수 있단다. 의사 소견서와 처치 기록들을 가져오면 아버지를 입원시킬 수 있단다.
다시 충무병원으로 가서 담당 의사님을 만나 퇴원 의사를 밝혔다.
의사선생님이 소견서와 처치 기록을 준비하시기로 하고, 내과 의사의 항생제 처치 소견서도 받아 주시기로 했다.
어머니는 집으로 모시자고 하시지만 아버지 간호와 돌봄은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하실 일이 아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린 후, 나머지 일은 경숙이에게 일임하고 정산으로 떠났다. ‘우리 엄마 얼마나 마음이 짠하실까 ?’ 하룻밤 엄마 옆에서 위로해 드리고 싶지만 밀린 일이 눈에 밟혀 떠나야 한다. 자꾸 뒤돌아 본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니 운전 중에 자꾸 졸립다.
참지 못해 길 옆에 차를 대고 잠이 들었다. 한 시간쯤 잤을까 ? 늦었다.
저무는 해를 바라보니 마음이 급해진다.
고구마 밭에 가 보니 이제 겨우 뿌리 잡고 내미는 손톱만한 새싹을 고라니가 벌써 입을 댔다. 이제 맛까지 봤으니 얼마나 가겠는가 ? 급하다.
말뚝을 모아들고 밭 둑에 주욱 박기 시작했다.
어두워진 후 철물점에 들러 보호망을 사들고 왔다. 내일에는 꼭 둘러 쳐야지.
“고라니 이놈들아 올해는 어림없다”
‘아버지 이대로 떠나실 건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