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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 여행] 민통선 지역 내에 있는 미수 허목 과 독대...........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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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眉叟 許穆[미수 허목], #연천여행, #민통선, #領經筵事[영경연사], #남인의 영수 허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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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 여행] 민통선 지역 내에 있는 미수 허목과 독대...........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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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하지 않고도 정승 반열에 올라 정일품으로 경연의 으뜸 벼슬이었던 우의정 겸 領經筵事[영경연사]
에 올랐던 인물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왕의 심기를 건드려 과거를 볼 수 없었던 인물! 물론 기본적인 학력과 인격만 갖추
면 현대 사회에서도 立身揚名[입신양명] 가능한 세상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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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조선시대 당파싸움의 절정기였던 시절, 예송논쟁 기간 중 송시열의 사형을 주장하였고, 송시열에 대한 온건 처벌론
을 주장하였던 남인의 영수였던 眉叟[미수] 許穆[허목:1595~1682년, 88세 졸] 이 잠들어 있는 최전방 민간 통제선 구역
안에 있는 그의 묘를 유랑자가 찾아 나선 길이었다. 허목은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이나 유학자, 역사가이자 교육자 겸 정치
인이며, 화가, 작가, 서예가, 사상가 등 많은 別稱[별칭]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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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磁(허자)와 許穆(허목)의 신도비; 다리 입구에서 100여m쯤 좌측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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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磁(허자):소윤에 가담, 을사사화를 일으켜 대윤 일파를 제거했다. 저서로 〈동애유고〉가 있다. 1549년 이조판서가
되었으나 이듬해 대윤 일파의 신원을 주장하다가 홍원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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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은 과거에 급제하지 않고도 정승 반열에 올라 의정 부 우의정 겸 영경연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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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에 가면 미수와 사돈지간인 효령대군의 후예 취우옹 이진무와 미수 허목의 묘가 있다. 물론 의령 嵋淵 書院[미연 서
원] 에 가면 미수 허목을 기리는 숭정사라는 곳이 있다. 숭정사는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미수 허목의 묘[경기도 기념물
제184호] 만 돌아보고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웠던 鄭撥[정발]장군 묘까지 돌아볼 차례다. 하여 시간 관계상 아침부터 서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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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의 묘는 민간인통제선 구역 내에 있는지라 필수적으로 군의 허락을 받아 감시? 병사와 동행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다. 유랑자는 입구에 도착하고 신분증을 제시하고 그 외 간단한 방문 동기 및 목적, 연락처 등등을 거쳐 출입 허가는
받았다. 그런데 혼자서는 안되고 관할 부대 병사와 동행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조건부이다. 다만 문제는 그 병사까지
도 허목의 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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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眉叟) 허목(許穆) 묘 아래에 양천허씨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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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가 내비게이션을 찍었으니 따라가면 된다고 하자 병사가 내 차에 탑승하고 골짜기를 달려갔건만 어라! 내비게이션
의 위치상 근처에 있긴 한데 어디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어 다시 차를 돌려 나오다가 첫 번째 다리[안월천 강서5교] 에서
차를 세우고 이정표를 다시 보았더니만 다리 건너 바로 좌회전하자마자 15m쯤에서 철망을 끼고 곧바로 농로 길로 우회전
하여 북쪽으로 약 300여m쯤 직진하면 주차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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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가기에 앞서 입구 100여m쯤 좌측으로 보면 산자락 끝에 허자와 허목의 신도비 2개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을 보고 다시 직진 주차장에 주차하고 나면 전방 100여m쯤 언덕 위에 허목의 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유랑자는 함께한 병사보고는 주차장에 있으라 하고 혼자 가는데 그 병사는 한사코 따라나선다. 유랑자로서는 말동무가 생
겨서 좋기는 했지만 가면서 허목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지만, 병사 왈 모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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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수(眉叟) 허목(許穆) 묘. 허목과 부인 전주이씨 합묘(우의정, 정경부인) 그리고 장명등등 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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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은 그가 생전에 스스로 지은 자비명(自碑銘)을 새긴 표석(表石)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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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MZ 세대는 역사에 관심이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유랑자는 허목의 묘로 보이는 정면 언덕 위로 돌계단을 따라
묘지만 보고 올라갔다. 거기가 바로 오늘 유랑자가 찾던 허목의 묘지였다. 아무튼 병사는 유랑자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군 보안상 지형 사진은 안된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했지만, 전방 지형 사진은 나오지 않도록 최소로 해서 찍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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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돌아본다. 전체 묘 여섯 封墳[봉분]이 상하 일자로 놓여 있었는데 그중 맨 밑 아래쪽이 眉叟 許穆[미수 허목]의 묘
였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선생의 비 역시도 6·25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해서 가지는 못한 것 같았다. 총탄 자국으로 얼룩
져 있는 것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후손들의 불장난속에 요단강 건너서 까지 총탄을 피할 수 없었던 선생의 묘! 과연 永眠
[영면]은 하고 계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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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표에 여기저기 남아 있는 6·25동란의 상흔은 민족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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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전주이씨묘(정경부인, 허목의 증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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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허원 묘(증 이조판서, 허목의 고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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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허목의 아버지인 허교는 아들에게 그의 아집과 강단이 그를 망칠 거라 생각해서 그리고 작금의 정치 형태가 붕당 정
치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 집안의 안녕을 위해 관직에 나가지 말라고 권고하였으나 후일 효종의 거듭된 부름과 가르침을 청
하니, 결국 아버지의 유언을 뿌리치고 어머니 임 씨에게 허락을 받고 관직에 나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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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호를 스스로 눈썹 眉[미]자, 늙은이 叟[수]자를 써, 眉叟[미수]라고 지었는데' 이는 눈썹이 길어 눈을 덮은 老人[노인]'
즉 늙은이가 흰 눈썹을 휘날린다'라는 뜻으로 풀이되어 별호를 眉叟[미수]라 정했다고' 한다. 본시 허목의 인품은 재물 욕
심이 없어 생활은 가난하였으나 그의 아내[오리 이원익의 손녀] 는 불평 한번 하지 않았다, 이는 허목 선생의 학문 활동에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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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선산김씨 묘{증 정경부인 허목의 고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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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허강 묘(증 좌찬성, 허목의 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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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의 특이한 일화는 많다, 허목이 관직에 나가지 못하게 된 사연은 儒生[유생] 시절 과거 공부를 하던 중 왕[광해]의 심기
를 거슬러 나라에선 그에게 평생 과거를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스스로 산림에 묻혀 글만 읽다가 효종 때에 56세
나이로 말단 벼슬인 능참봉이 내려졌고 그 후 80세에는 정승 반열에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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眉叟[미수] 許穆[허목]은 이황-정구-문위로 이어지는 嶺南 學統[영남 학통]을 이었으며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전국의 명
소와 산천을 주유하면서 견문을 넓히며 浩然之氣[호연지기]를 길렀으며, 지방의 사림들과 많이 만나 從遊[종유]했다. 특
히 허목의 전서체는 동방 제일이라 할 정도로 칭송이 자자했으며 추사체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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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崇禄大夫議政府左贊成行典(증숭록대부의정부좌찬성행전, 艦可別提宣教郎許公橿之墓)'(함가별제선교랑허공강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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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진주강씨 묘(증 정경부인, 허목의 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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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는 多方面[다방면]에서 博學多識[박학다식]했고 또한 88세까지 천수를 누렸다.
그의 대표적인 행적을 보면 강원도 삼척에 있는 ‘척주동해비’가 대표적인데 해일 피해가 극심했던 삼척에 부사로 부임한
허목이 바다를 잠재우기 위해 유랑자 동해 여행기에 나왔던 ‘동해송’이란 시를 짓고 이를 비석으로 만들어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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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허목은 옛 전서체를 깊이 연구하고 그에 바탕을 둔 미수의 전서체는 독특한 형상과 변화가 크고 날카로운 필치로
예술성이 높은 미수 체를 만들게 된다. 또한 그는 일찍이 한강 정구[1543-1620]를 사사해 퇴계 이황[1501-0570]의 학문
을 계승하고 영남의 성리학을 근기로 가져와 실학의 문호를 열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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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眉叟) 허목(許穆) 묘 아래에 있는 합천 공의 이장 시 나온 석관에 대한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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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에는 사대부 가옥인 은거 당 터와 황족의 고택인 염근당이 남아 있다. 恩居堂[은거 당]은 미수 허목이 말년에 저술
활동을 하던 곳으로, 84세가 되던 해인 1678년(숙종 4) 국가에 공이 많은 신하를 예우하기 위하여 왕명으로 건립된 7칸
규모의 가옥이었으나 6. 25 전쟁통에 소실되어 빈터에 유지비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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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近畿學派[근기 학파]를 형성해 성호 이익[1681-1763]에게 전해주는 가교 구실도 했다. 당시 조선을 떠들썩하게 했
던 우암 송시열[1607-1689]과의 예송논쟁으로 유명하며 이조판서와 우의정을 거쳐 경연의 으뜸 벼슬인 領經筵事[영경연
사]까지 역임했다. 미수 허목 묘역은 동남향으로 나지막한 구릉상에 있으며 밑으로는 기름진 옥토가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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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물로는 봉분 전면에 묘비, 상석, 향로석, 장명등이 있고 양쪽에 문인석과 망주석이 1기씩 있으며 제 수석이 마련되어 있다.
묘비는 전, 후 양면에 비문이 있으며, 비문의 후면에 있는 許眉叟自銘[허미수자명]이란 기록으로 보아 생전에 自銘自撰
[자명 자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연천에 허목의 묘가 있을까? 의아해할 것이다. 사실 연천은 허목 선대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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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 출신 효봉 허소(1882년~1942년)가 쓴 허목의 전서체(도대체 이거야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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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 허목은 저서 전체 서문에 직접 기록하였는데 穆篤好古書 老而不怠(목독 호고서 로이불태):이는 목(穆)은 독실하
게 옛글을 좋아하여 늙어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라는 첫 글귀가 그의 평생을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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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박물관에 보관 중인 미수 허목의 초상화 : 허목은 청수한 모습에 홀쭉한 몸, 우묵한 이마에 긴 눈썹 등 염 담당
하면서도 광대하다, 여윈 얼굴 긴 눈썹에다 늘씬하고 출중하여 보기에 신선 같았고, 대하면 강직하고 시원스러운 운치가
있었다고 하며 옛날 사람의 풍모와 흰 털이 섞인 눈썹으로 학과 같은 자태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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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목:마가목은 예로부터 민간요법에서 기관지나 기침 완화에 사용되며, 건강에 좋은 열매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항염증, 항산화 작용을 비롯해 폐 건강 및 면역 증진에 도움이 되는 식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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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전란으로 인해 이리저리 피해 다니다가 다시 연천으로 돌아와 저술 활동을 하여 喪禮 篇[상례 편]
을 완성한다. 허목의 본관은 양천이고 1615년[광해군 7] 정언웅에게 글을 배우고, 1617년 부친이 거창 현감으로 임명되
자 부친을 따라가서 文緯[문위]를 찾아가 스승으로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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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4년[인조 2] 광주의 牛川[우천]에 살면서 독서와 글씨에 전념하여 古篆八分體)[고전팔분체]를 완성하였는데 이는 독
특한 전서체로 서예사상 혁명적인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허목은 1674년[현종 15] 서인이 실각하고 남인이 집권하자 이
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승진되어 과거를 거치지 않고 三公[삼 공]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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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은 은거 당이 완성된 후 당호를 ‘壽考恩居[수고은거]’라 하고 괴석원, 십청원 등의 정원을 손수 가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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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목은 특히 비타민C와 안토시아닌, 사포닌, 폴리페놀류, 플라보노이드 등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며, 미네랄로는 칼
륨, 칼슘, 마그네슘이 포함되어 있으며 마가목은 기침, 간 건강, 고혈압, 항산화 등에 좋은 기능성 성분을 다양하게 포함하
고 있어 건강기능식품 원료로 연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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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목의 부작용: 마가목은 대부분의 경우 안전한 편이나 과량 섭취 시 위장 장애, 설사, 복통 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임산부나 알레르기 체질인 경우 복용 전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약용으로 사용할 경우 정확한
용량 조절이 필요하다.
*마가목의 적정 하루 섭취량 :마가목은 일반적으로 차나 즙 형태로 하루 2잔~3잔 정도 섭취하는 적이 적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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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8년 판중추부사로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인 연천으로 돌아와 저술 활동과 후진양성에 전념 하였다. 남명 조
식[경상우도 학파] 의 제자인 한강 정구[무흘구곡]를 스승으로 삼아 예학과 고학에 일가견을 이루었고 그림, 글씨, 문장에
모두 능했으며 특히 전서에 능하여 동방 제1인자라는 찬사를 받았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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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의 일화는 많지만, 그 중하나마 소개해 본다. 이원익은 손녀 사윗감인 그의 관상을 보고 후일 재상이 될 재목이라고 평
하였다. 당시 다른 사람들은 이원익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다. 시간이 지나 어느덧 혼례를 치르게 되었다. 하인이 신
랑이 있는 방으로 음식상을 가지고 들어가자, 신랑은 벌떡 일어나더니 밥상을 두 손으로 받기에 하도 이상하여 하인이 “어
찌하여 상을 직접 받으십니까?”라며 그 연유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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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 돼지의 갈비 부근에 붙은 돼지 뱃살 부위를 지칭한다. 세겹살이라고도 한다. 비계가 세 겹으로 겹쳐 보이기 때문
에 삼겹살로 불린다. 삼겹살은 1950년대 대한민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했고 20세기 말 보편적이게 되었으나 2020년대 들
어 중국이 본인들의 음식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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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는 1970년대 이전까지 돼지고기가 그다지 인기가 없었고 하물며 구워먹는 형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1978년에 고기 가격 안정을 위해 박정희 정부가 돼지고기의 수출을 불허하며 질 좋은 수출용 돼지고기가 시중에 풀리게
되고 프로판 가스와 육절기의 보급, 한우의 가격 인상으로 인해 대중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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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8월 25일 동아일보에 "우후죽순처럼 주점가에 늘어가던 삼겹살 집"이라는 언급이 나오는 것을 보면 70년대 말
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삼겹살 소비 문화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고, 삼겹살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 가스렌지의 확산 시기와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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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은 “여보게 음식은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거늘 어찌 앉아서 받을 수 있단 말인가”하고 대답하였다.
하인은 그렇겠다고 고개를 끄떡였다. 신랑은 바로 허목이었다.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신랑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이원익
정승만은 그렇지 않았다. 하루는 이원익이 허목을 불러 여행하면서 학문을 닦으면 어떠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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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허목은 여행을 떠났다. 약 석 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오리 정승은 “잘 다녀왔느냐? 그래 어느 곳에서 누구를 만
났느냐?”라고 물었다. 허목은 “예, 장여헌 선생이라는 훌륭한 선비를 만나 학문을 배우고 책을 얻어 왔습니다.” 하자 오리
정승은 매우 만족해했다. 마침내 허목은 정승이 본대로 우의정이란 높은 벼슬까지 오르게 되었다.'라는 것이다.
그는 사후 文正[문정]이란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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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 홍어 삼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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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 허목 묘역 찾아가기
*소 재 지 : 경기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 산90-3
종 목: 경기도 기념물 제184호[지정일: 200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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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관광 정보는 이곳에서 :
https://www.yeoncheon.go.kr/tour/index.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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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연천군청 관광과 (031)-839-2061
◼ 문의 대표전화 : (031) 839 - 2114(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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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 4일 연천에서 실속 힐링하는 체험 A코스(동선 최소)
►*첫째 날(09시 시작)
*전곡선사박물관/선사유적지→초성김치마을에서 김치체험→ 점심식사→ 임진강 주상절리→ 당포성→ 숭의전지→백학
자유 리조트(숙소:저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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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아침식사→두지리 황포돛배(농촌체험)→ 호르고루성→고랑포 역사공원→ 경순왕릉→ 점심식사→ 태풍전망대방문
(25/12말까지 보수중)→ 연강 갤러리→ 허브빌리지→ 귀가(숙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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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 4일 연천에서 실속 힐링하는 체험 코스(동선 최소)
►*세째 날
*댑싸리공원→ 미라클 타운(커피)→ 그리팅맨→ 연천 급수탑(점심식사)→ 연천승마공원에서 승마체험→ 애심목장 치즈
낙농체험(2시간30분소요)→ (숙소)에서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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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째 날
*아침식사→ 5사단 열쇠전망대 방문(화:휴무)→ 신탄리역(구 경원선 철도중단점)방문→ 차탄천 주상절리→ 점심식사→
조선왕가(한옥 호텔/글램핑/카바나)→ 종자와 시인 박물관→ 한탄강 물문화관→ 제인폭포→ 귀가(연천 여행 끝)→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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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안내
‣방문지 사전 예약 안내
*열쇠전망대: 사전예약 필요없씀. 당일입장 가능함(단 매주 화요일 휴무)
*태풍전망대: 25인 이상 단체 방문 시, 출입 7일전 사전 출입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
*출입 신청서, 서약서, 출입자 명단 신청(연천군청 관광과 [팩스] 031-839-2480)
*출입 시간: 09:00~16:00 [열쇠전망대, 태풍전망대]
*열쇠전망대, 태풍전망대 출입시 모두 신분증을 지참하셔야 합니다. (출입자 명단 지참을 요함, 신분증이 없으신 분은 출
입 불가)
*해설사 상주 상시 해설(경순왕릉, 숭의전, 전곡선사박물관, 연천 전곡리 유적)
*허브빌리지는 사전에 별도의 예약이 되어야 해설 안내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체험시설은 별도의 입장료 또는 체험비가 소요됩니다.
*숙소 또는 체험시설 이용 방법은 홈페이지의 체험 안내를 확인 및 사전 예약 후 이용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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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관광지 관리사무소(예약 안내): 031-830-0030
*조선 왕가: 031-834-8383(한옥호텔/글램핑/카바나)
*애심 목장: 031-834-3601(010-3724-9241, 010-8711-3601):치즈 낙농체험(2시간30분소요)
*연천 승마공원: 010-3187-0488(010-8775-1936)
*초성 김치마을: 031-835-0381(농촌체험)김치체험
*허브 빌리지: 031-833-5100.(010-4784-5105)
*나룻배 마을: 031-833-5005(농촌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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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안내
*입장료 안내 - 전곡선사박물관(일반/청소년/단체 및 비고),
*(요금): 전곡선사박물관/ 연천 전곡리유적=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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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빌리지 입장료(호텔,펜션)
*허브빌리지 예약 : 031-833-5100(010-4784-5105)
*입장료: 일반(중학생 이상):5.000원
*36개월 이상~초등학생:3.000원
*단 체 20~99명: 4.000원(100명 이상 3.000원)
*문 의:~연천군청 관광과 031)839-2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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