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2.日. 바람은 선선하고 햇살은 가을 같은 봄날
04월02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언젠가 어떤 모임에서 어느 분이 나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습니까? 내가 그 질문을 듣고 그 사람을 쳐다보았습니다. 물론 그 사람은 그 모임을 통해서 각별各別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근래 우리 천장암의 새 식구가 된 행자님이 얼마 전에 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밸라거사님, 윤회輪廻가 정말 있습니까? 유명한 법륜스님은 윤회를 믿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럼 윤회가 없습니까? 내가 그 질문을 듣고 머리를 윤이 나게 깎은 데다 짙은 밤색 동방에 단정하게 행전을 치고 있어서 깎아 만든 죽비 같은 행자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만약 윤회가 있다고 하면 법륜스님이 윤회가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윤회는 있을 겁니다. 만약 윤회가 없다고 하면 마찬가지로 누가 뭐라고 하든 윤회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의 진리체계와 개별적인 종교의 믿음은 표현방식이 약간 다를 수가 있습니다만 윤회가 없다고 하면 불교 진리체계가 어떤 부분에서 연결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것을 스스로 파악하고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공부를 하려고 행자님이 절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모임의 어느 분께도 대답을 했습니다. “그 글이 기행문이나 여행기라면 쓰고 싶은 욕망이 솟구칠 때 욕망을 누르고 잠시 생각을 골라 감정을 숙성시킨 후에 써야 되겠지요. 그런데 소설이나 산문이라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감정의 폭발과 여운을 즐기면서 써내려가야겠지요. 때로는 감정이나 느낌이 이론이나 형식에 앞서니까요. 물론 그 이전에 모든 것에 대해서 집요한 관심과 선명한 관찰을 통해 보고 듣고 느끼면서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충분히 즐겨야합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누구에게나 똑같을 수가 없기 때문에 어느 높이에서 얼마만큼의 대답을 해야 할지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질문에 다른 대답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이란 모르는 것을 새롭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잊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상기想起를 돕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집에 도착을 하니 밤11시50분이 되었습니다. 밤9시가 되어서 성우당 2층 대중방에서 도반님들과 함께 일어났는데 서해안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로도 아직 서해안 고속도로 지체상황이 풀리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차를 몰아 올라가던 길에 잠시 행담도 휴게소로 들어가 우동도 한 그릇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쉬었습니다. 그리고 서울보살과 운전을 교대했습니다. 아침에 시골까지 내려가면서 6시간가량, 성묘를 마치고 절까지 3시간가량 운전을 해서 피곤할 거라며 서울보살이 운전교대를 요구를 해서였으나 사실 그렇게 피곤하지는 않았습니다. 새벽에 일찍 길을 나서서 고향 선산에 들려 성묘를 하고, 시골 큰집에 들렸다가 사촌 동생 별장으로 찾아가 이야기를 하고, 다시 서해안 고속도로 상행선을 타고 천장암에 도착해서 연등 만들기에 동참을 하여 도반님들과 즐거운 대화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늦은 밤을 타고 서울 집까지 올라왔으니 조금은 부산한 하루였습니다. 몸을 씻고 나서 글을 좀 쓸까하다가 컴퓨터를 켜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벽에 등을 기대고 요즘 틈나는 대로 읽고 있는 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다 깜박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꿈에서 하얀 구름 아래로 푸른 벌판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양손에 번쩍이는 쌍도끼를 들고 하얀 콧김을 뿜어대는 용맹한 치우천황蚩尤天皇이 쿵쾅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는 넓고 어슴한 대청마루에 서있기도 했습니다.
오후3시가 되자 사촌동생 별장에서 출발하여 차를 몰면서 좀 과하다싶을 만큼 액셀레이터를 밟아 속도를 올렸습니다. 예기치 않게 서해안 고속도로 서김제에서부터 차량 지체가 시작되어 30분가량이나 늦어진 시간을 보충하고도 싶었고 이왕이면 빨리 절에 도착을 하고 싶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해가 등을 보이면서 성큼성큼 서편 하늘가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오후6시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돌계단 아래 주차장에 도착하자 묘광명보살님과 김화백님 차가 보였습니다. 차를 주차시키고 부랴부랴 성우당 대중방으로 향했습니다. 올라가는 길에 법당 앞과 길옆에 화단을 만들고 있는 정덕거사님과 행자님을 만났습니다. 이리저리 둘러보았더니 주지스님 거처 옆에도 화단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심어놓은 수선화가 하얀 꽃을 활짝 피우고 밝은 기운을 도량 안에 풀풀~ 뿌려대고 있었습니다. 대중방에는 백운스님과 도반님들이 연등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었고, 김화백님과 태평거사님은 장엄등 양쪽 귀면鬼面에 오방색五方色으로 색칠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르고 붉고 푸른 색칠에 더 용맹하고 친근해 보이는 귀면을 보면서 아마 저 모습의 원형은 동이족東夷族이 세운 고조선의 통치자였던 치우천황蚩尤天皇일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비구니스님보다 손이 더 고운 백운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맵시 고운 보살님들이 금세 익힌 솜씨로 오방실 팔찌를 만들어 옆 자리의 보살님과 거사님들에게 선물을 했습니다. 묘길수보살님과 묘광명보살님과 평택보살님이 잘못 만들어진 등에서 꽃잎을 떼어내고 새 꽃잎을 다시 붙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완성된 연등에 붙은 꽃잎의 비벼진 위치에 따라 등의 색깔이 더 선명하기도 하고 흐리기도 했습니다. 처음 꽃잎을 비빌 때 색이 진한 쪽을 비벼서 색이 연한 아래쪽에 풀을 묻혀 등에 붙여야 색깔이 선명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매년 초파일이면 법당에 걸어놓은 연등을 쳐다본 지가 40년이 훨씬 넘었는데 직접 연등을 만들어보면서 이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불교에 관련된 속담이 우리말에는 많이 남아있지만 다음에 소개하는 속담만큼 불교의 진리를 잘 표현하고 있는 말도 드물 거라고 생각합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因緣이다.” 그렇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가슴을 쿵~ 하고 부딪치거나 얼굴을 쪽~ 마주대면 그것은 분명 더 깊은 인연因緣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속담에서 말하는 옷깃은 옷소매가 아니라 옷깃이라는 사실입니다. ‘옷깃은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목에 둘러대어 앞에서 여밀 수 있도록 된 부분, 위의 가장자리는 동정으로 싼다.’ 라고 국어사전에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옷깃을 스치려면 서로 깊숙한 포옹을 하거나 가슴끼리 정면으로 강한 충돌이 있어야합니다. 낯모르는 길거리를 지나치면서 겨우 옷소매를 흔드는 정도로는 인연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옷깃이 스칠 만큼 심장이 쿵쿵 울리고 서로의 체취기 느껴지는 그런 상황이 발생해야 인연이라는 것입니다. 이래저래 40년 동안을 구경만 하던 나와 연등은 아직 인연이 아니었는데 연등을 처음으로 직접 만들다보니 연등의 옳고 그른 얼굴이 하나하나 제대로 보이면서 나와 연등의 옷깃이 스치는 인연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100년을 한 지붕아래 살아도 서로 간절하게 옷깃을 스치지 않은 다음에야 인연이 아닌 경우가 있고, 먼발치로 그 이름만 들었을지라도 가슴을 두드리는 인연일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쿵쿵 뛰고 가슴이 울려서 내 옷깃을 거세게 흔들고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인연일 테니까요. 성우당 대중방에 놓여있는 수백 개의 연등 하나하나의 얼굴이 제각각 표정과 느낌이 있다는 사실에 나도 깜짝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연등과 내가 서로 옷깃을 스친 것입니다.
“아 그렁께 형님 말이요. 집에 들려서 점심 잡수시고 곧바로 여그 내 별장으로 오시란 말이요, 잉. 거그서 외곽도로 타믄 40분이면 딱 떨어진단 말이요, 잉. 주소 찍어서 보낼 텡께 꼭 나한테 들렸다가 올라가시란 말이요, 잉. 글고 제초제는 아무렇게나 뿌려불믄 다른 나무까지 죽어부니께로 집 한쪽에다 놔두시고 산소 주변정리는 내가 알아서 할랑께 걱정을 마시란 말이요, 시쳇말로 따지믄 내가 농학박사란 말이요오, 잉. 형님. 하여튼 싸게 식사하시고 이리로 얼능 오시란 말이요오, 잉.”
선산에서 멀지 않은 큰댁에 들렸는데 집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람이 있는 흔적은 있는데 어디로 일을 나갔나 하고는 사촌동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동생은 별장에 있다고 하고 제수씨는 밭에 나가셨다고 했습니다. 마침 성묘를 하면서 보았더니 산소 주변에 찔레나무가 여기저기 뿌리를 내려 순이 올라오고 있어서 근처 농약사로 가서 물어보았더니 제초제를 뿌리면 다 소멸시킬 수가 있다고 해서 제초제 몇 병을 사들고 사촌동생에게 사용법을 물어볼 겸 전화를 한 것입니다. 잠시 기다려보아도 제수씨가 금방 들어올 것 같지는 않아서 동생이 찍어준 주소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벌써 시간은 정오를 지나 오후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부리나케 달려가는데 가르쳐주는 길이 좀 이상했습니다. 같은 곳을 두 번이나 맴돌고 나서는 잠시 서서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아마도 새로 뚫린 외곽도로를 내비게이션이 인식을 못해 발생하는 오류인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소지 쪽으로 일단 달려가다 보니 어느 대목부터 내비게이션이 정상적으로 작동을 시작했습니다. 작년에 구청에서 정년퇴임을 한 사촌동생은 시에서 운영하는 자연체험학습장의 책임자이자 관리인이 되어있었습니다. 일요일인 오늘도 가족단위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십여 평씩 구획 지어진 밭에다 물을 주고 뭔가를 심고 있었습니다. 내 눈에는 그저 자연체험학습장일 뿐이었으나 타고난 농부인 사촌동생에게는 별장이자 천국으로 보이는 듯 했습니다. 그게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체험학습장 뒤편으로는 산기슭이 있고, 저 앞으로는 시원스레 뚫린 외곽도로가 펼쳐져있고, 하늘은 맑고, 구름은 하얗습니다. 누구에게 간섭받을 일도 없고 지시받을 일도 없고 보고할 일도 없습니다. 내가 보아도 말끔한 공무원보다는 밀짚모자에 장화를 신고 삽 한 자루를 끼고 돌아다니는 동생의 모습이 훨씬 멋있어 보였습니다. 동생의 숙소이자 사무실로 들어가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동생이 전화를 통해 별장이라고 말했던 곳이 바로 숙소이자 사무실인 이곳을 가리켰던 것 같습니다. 내게는 소파와 냉장고 하나 놓여있는 썰렁한 방일 뿐이지만 동생에게는 진짜 별장으로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