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24.月. 흐림
비룡반점飛龍飯店의 홍굴이와 반점에서의 대화對話.
경보스님께서 생일날에는 짜장면을 꼭 먹어야 한다며 씩씩하게 앞장을 섰다. 이유인 즉 그래야 생일상을 받는 본인이 짜장면 면발처럼 오래오래 장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지만 이 지역 상황을 구석구석 환하게 알고 있는 경보스님의 주장이라면 무언가 근거가 있을 듯했다. 그래서 아마도 짜장면을 맛있게 하는 중국집이 근처에 있나보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마침 일요일 오후라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경보스님 차에 몸을 싣고 가보았더니 문은 열었으나 영업이 조금 전에 끝나버렸다고 해서 그 부근에 있는 비룡반점飛龍飯店이라는 영업 중인 중국집으로 우리들은 몰려 들어갔다. 중국이나 대만에서는 반점飯店이나 대주점大酒店이라고 하면 호텔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중국음식점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상호도 비룡반점, 북경반점, 홍콩반점, 호화반점, 금룡반점 등 어딘지 모르게 서로 DNA가 닮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 고장을 가보아도 미국반점, 프랑스반점, 차이콥스키반점 이라는 상호는 절대 보이지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중국음식점에도 운치 있는 상호商號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중소도시의 시내 중심부에 가면 꼭 보이는 아서원雅敍園이라는 중국집이 그랬다. 그리고 아서원의 음식이나 요리는 대체로 맛도 있었다. 그래서 낯선 지방도시에서 아서원에 들어가면 짜장면보다는 울면이나 기스면을 시켜먹었다. 혹시 당신께서는 울면이나 기스면을 아시우?
예전에는 중국음식점에 들어가면 꼭 짜장면을 먹었는데 나이가 든 뒤로는 짬뽕을 더 찾는 편이다. 그 이유라면 그렇지, 모름지기 따뜻한 국물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비룡반점에 들어가서도 벽에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안내문을 보고 나는 홍합굴짬뽕을 시켰다. 이곳에서는 음식 명칭을 줄여 그것을 홍굴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홍굴이를 네 명분, 짜장면을 여섯 명분, 그리고 볶음밥을 한 명분 주문을 했다. 아내는 배가 고프지 않다며 식사를 시키지 않았다. 잠시 후에 주문했던 음식이 모락모락 김을 허공으로 풀어 올리면서 나왔다. 홍합굴짬뽕은 특별히 맛나지도, 그렇다고 해서 별 볼일 없을 만큼 맛이 없지도 않았다. 그저 낯선 식당에 들어가서 한 끼를 먹고나와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먹어도 좋을 만큼의 흔한 짬뽕 맛을 수붐하게 선사膳賜해주고 있었다. 혀와 가슴과의 거리가 너무 가깝지도 지나치게 멀지도 않게 그저 지나쳐가는 길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인사만을 갖추고 있어서 감정이 절제된 음식이었다. 우리들은 식사를 하면서 식탁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제 하안거夏安居가 끝나는 해제解制도 얼마 남지 않아서였던지 선방禪房에 관한 이야기가 주로 나왔다. 우리와 함께, 우리들 속에서,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방식대로 생활을 만들어가며 수행과 정진을 하고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선방禪房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스님들이 적게는 몇 명, 또는 많게는 몇십 명이 모여 삼 개월 동안 함께 생활을 한다는 사실은 군대에서 군인들이 외지로 파견을 나가 한 분대나 한 소대 단위로 생활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樣相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모여 공동생활을 하는 기본적인 공중도덕과 규칙위에다 선방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껴안을 수 있는 공감각적共感覺的이고 암묵적暗黙的인 규율을 동반하기 때문에 그런 환경은 투명하고 맑아서 바람처럼 자유로울 수도 있지만 의외로 유리처럼 깨지기도 쉬운 양면성兩面性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스님께서는 염궁선원을 열고 있으면서 운영과 책임 또한 전적으로 지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스님들의 선방 생활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법랍과 위계와 질서와 소임과 화합과 융화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을 도모하기위해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려는 수행자들의 애환哀歡에 대해서 조근조근 말씀하셨다. 고개를 숙일 때마다 그릇 속에 남아있던 붉은 짬뽕국물 위에 LED등의 하얀 불빛이 이따금 반짝거렸다.
(- 비룡반점의 홍굴이와 반점飯店에서의 대화對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