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은 노무현 대통령 3주기 추모기간인 5월 한달 간 '노무현이 꿈꾼 나라'를 주제로 특집칼럼을 연재합니다. 각 분야의 명사들이 쓰는 칼럼을 통해 노무현의 가치와정신, 그리고 그가 만들고자 했던 세상의 모습을 재발견해봅니다. 노무현의 가치와 정신이 아직 명확하게 정리돼 있지 않거나 사람마다 약간씩 차이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깨어있는 시민들이 '노무현의 꿈꾼 나라'를 재발견해 실천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
[특별칼럼 ①]
노무현이 남긴 세 개의 질문
- 지역공동체, 한미FTA, 민주주의(上)
정도상(소설가)
노무현은 질문이다
노무현은 질문이다. 고유명사로서의 노무현이 아니라 일반명사로서의 의미를 획득한 그 이름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아직 누구도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은 집권 5년 동안 끊임없이 국가와 국민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의 질문에 대해 국가와 국민은 이해와 오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끝내 오해를 선택했다. 그 오해가 국민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소통의 부재와 또 그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소통이란 홍보가 아니라 이해를 구하려는 친절한 설명이며 오해마저도 수용하려는 적극적 포용에 있다. 하지만 참여정부에서는 내각도 비서진도 대통령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서, 그리고 그 질문이 불러일으킬 소통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홍보의 부족만 탓하고 있었다.
까닭에 노무현의 표정은 늘 고독했었다. 그 고독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성찰의 깊이에서 오는 것인데 대통령의 곁에 있던 보좌진들은 국민들이 대통령의 마음을 몰라준다는 즉시적인 ‘화’에만 몰두했다. 그 즉시성에 대해 지금이라도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노무현이 던진 질문들은 오늘도 여전히 현실적합성을 지닌 채 화두처럼 존재하고 있다. 노무현은 현대사회의 문제를 직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이 직관했던 한국사회는 선진국으로 도약을 앞두고 있는 단계에 와 있었으나 여전히 지역공동체가 붕괴된 상태에서 농경사회적 특징이 드러나고 있었으며 일국주의적 경제에서 세계경제로 구조조정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등 후기 산업사회의 불안요소가 더해졌고, 지식산업 중심의 정보사회적 성격도 혼합되었으며 이념적으로는 좌우의 이분법적 이데올로기가 더욱 강화되는 양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태였다.
노무현의 이러한 직관을 종합하고 분석해보면 세 개의 질문이 추출되어 우리 앞에 등장한다.
노무현의 질문(1):‘지역공동체’-중심주의의 해체
첫 번째 질문은 “붕괴된 지역공동체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였다. 지역균형발전론은 이 질문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춘 적확한 대답은 아니었다. 노무현의 질문은 ‘봉하마을’이라는 해답을 내놓았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드물다.
노무현은 근대의 이성이 이룩한 중심주의를 해체하고자 시도했다. 18세기 후반부터 세계는 유럽중심주의의 프레임 속에서 근대의 이성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 인간중심주의를 비롯하여 모든 권력이 중앙으로 집중되는 중앙집권중심주의, 문화가 집중되는 문화중심주의, 생태와 환경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개발중심주의, 식민지 건설과 식민지 약탈을 목적으로 하는 군사력중심주의(두 번의 세계전쟁은 바로 이 때문에 발생했다), 지역공동체가 서서히 파괴되며 이룩된 경제중심주의 등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여전히 근대의 이성이 미완의 기획으로 남아 있기에 성찰적 근대화를 통해 더욱 진전시켜야 한다는 측과 근대성을 해체하여 탈근대성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논리를 전개시키는 측도 존재한다.
대통령 노무현은 이 문제를 담론이나 학술적으로 제기하지는 못했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생득적으로 체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맨 먼저 수도권에 집중된 모든 중심주의를 해체하는 정책을 입안했고 실행에 옮겼다. 세종시로 수도 기능의 일부를 옮긴 것이나 혁신도시를 지정해 수도권에 집중된 연구개발과 신산업을 지방으로 이전하고자 했다.
또한 정부 산하기관을 지역의 각 도시로 이전하도록 정책을 시행했다. 강력한 반대와 정책 집행의 태업으로 아직도 그 성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못하고 있지만 수도권 중심주의를 해체하고 지역균형발전으로 가고자 했던 그 가치는 여전히 작동중이다.
또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해체시킨 지역공동체의 복원에 대해서도 논리를 만들기 전에 실행에 옮기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봉하마을인데 핵심은 ‘커뮤니티 비즈니스’였다.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작은 모델은 봉하마을이지만 크게는 혁신도시였다.
봉하마을, ‘커뮤니티 비즈니스’ 모델이자 혁신도시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탄생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의 출발과 맞물려 있다. 빈사 직전의 영국 경제를 살려내기 위해 투입된 대처는 강력한 개혁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의 여파로 거리로 쫓겨나 실업자가 되었고, 중공업단지를 배후로 조성된 도시와 마을은 어김없이 퇴락의 길을 걸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표현되었지만 지역공동체에서는 인간의 얼굴이 지워지는 비극을 낳고 말았다. 노무현은 본인의 삶에서 그 비극의 일단을 체득했었다.
본질적으로 보면, 영국의 경제를 다시 살려낸 것은 대처가 아니라 토니 블레어였다. 물론 블레어는 대처의 모든 것을 부정하진 않았다. 블레어는 앤소니 기든스가 기획한 ‘제3의 길’에서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모델을 정책적으로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영국 경제를 살려낸 것은 대처의 개혁이 아니라 블레어가 정책으로 확장시킨 커뮤니티 비즈니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처의 집권 시절에도 영국은 장기불황 속에서 허덕였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과는 별개로 민간과 커뮤니티 차원에서 경제적 자립에 대한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었다.
“1980년대 대처의 대형 장치산업 폐기정책으로 가장 타격을 받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방식이며, 주민의 주도로 황폐한 시가지를 재생하는 마을 만들기 회사인 ‘개발 신탁 development trust’도 보수정권 시대에 탄생했다.” (요시다 다로 지음, 안철환 옮김,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234쪽, 들녘출판사)
그 후 가옥의 수선, 어린 아동의 보육, 고령자와 장애자 보호 등의 사회복지 서비스를 이른바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담당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NGO와 기업경영의 양측면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스스로를 고용하는 일자리 창출의 방식이라는 점을 노무현은 알았다.
노무현은 도시든 농촌이든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새로운 시스템에 참여해 협력하는 ‘혁신도시와 봉하마을’에 정책 목표를 두었다. 국가와 지역공동체 그리고 기업과 NGO가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참여와 협력이라는 정책적 목표를 질문으로 던져놓은 것이었다. 이제 노무현의 질문에 대해 어떤 답변을 내놓을 것인가? 노무현이 기다리는 답변은 개념적 당위가 아니라 정책의 실행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노무현의 질문 (2) :‘한미FTA'
두 번째 질문은 ‘한미FTA’였다. 노무현은 참여정부에서 함께 일했던 정치인들이 아무 맥락 없이 한미FTA 반대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하늘에서 염려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정보화는 개인의 주체성을 발견했고 세계화는 자본과 노동과 문화가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초월하여 넘나드는 속도와 이동성을 발견했다. 정보화의 촘촘한 네트워크는 현대사회를 세계화라는 거대한 체제로 연결하는 동시에 단절시키는 양상을 지니고 있다. 정보화에서 탄생한 개인화와 세계화에서 출발한 지구화가 현대사회의 두 축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한 국가의 경제 또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노무현은 보고 있었다.
한국 정치는 김대중 정부에 이르러서야 반(半)국적 정치에서 일(一)국적 정치로 전환되었다. 김영삼 정부까지 정치인들의 상상력 범위는 언제나 한반도 남쪽이었다. 물론 문익환 목사의 상상력의 범위는 일찌감치 일국을 넘어 만주와 동아시아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권을 담당했던 정치인들의 상상력은 철저히 반국적이었다. 그것을 한반도 전체 즉 일국적 범위로 상상력을 확장시킨 정치지도자는 김대중이었다. 김대중은 또한 IMF 구제금융의 시대를 거치면서 상상력을 지구적으로 확장시켜야 한다고 예감했다.
노무현의 정치적 상상력도 김대중을 계승했고, 그리하여 지구적 차원의 정치로 나갈 것을 요구받았다. 경제도 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국적 경제에서 일국적 경제(6.15공동선언을 통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으로 발현, 10.4선언의 구체성)로 다시 지구적 경제로 이행은 필수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본과 노동의 갈등은 첨예하게 대립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대안으로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정책적으로 입안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자 노력했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면 삼성전자는 6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할 지도 모르는 게 오늘날의 지구적 경제상황이다. 중국이 개발구 등을 집중 육성하면 철강재의 가격이 전지구에서 상승하고 재품 품귀현상이 발생한다. 전지구적 경제상황은 자본주의를 일부 수정할 수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대치하진 못하고 오히려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노무현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는 보수와 노동과 인권과 복지를 요구하는 진보의 대립을 넘어 세계사의 문명적 전환의 패러다임에 속하는 문제였다. 아울러 간신히 이룩한 일국적 경제의 미약한 토대(개성공단)도 지켜야 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국가도 국가 내부의 시장을 영역으로 삼은 경제정책만 시행한다면 국가경제는 오래지 않아 파탄에 이르고 지역공동체는 돌이킬 수 없이 붕괴되는 것은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노무현은 지구적 차원의 경제로 확실히 진입할 수밖에 없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수용하면서 국가와 시장의 관계에 대해 깊게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고민 속에서 던진 질문이 ‘FTA’였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시장을 개방했을 때, 대부분의 국가들이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이 열렸다고 판단했고 반면에 중국은 지구라는 시장을 열었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의 차이는 바로 일국적 경제에서 지구적 경제로 이행하고자 하는 패러다임을 수용하느냐 마느냐의 차이에서 발생했다. 중국의 판단은 정확했고, 그 결과 G2의 위상까지 획득했다. 지구적 경제는 생사를 건 치열한 시장의 전장(戰場)이다.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이 자본과 상품을 쏟아 붓는 전쟁이 본격적으로 개막한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읽어내지 못하고 노동시장의 불안정성(구조조정과 비정규직의 양산)과 지역경제의 붕괴만 강조하는 것은 아무 대안도 없이 일국적 경제체제로 회귀하자는, 세계경제의 패러다임에 대한 순진한 반역과 퇴행에 다름 아니다.
이미 세계는 일국적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지구적 경제체제로 이행해버렸다. 재협상과 수정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일국적 경제체제로의 퇴행을 의미하는 한미FTA의 폐기는 경제에 대한 순진성만 드러내고 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봉하마을의 질문과 한미FTA의 질문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무현이 남긴 두 개의 질문은 동시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지속가능성도 그 질문 속에 포함되어 있다. <(하)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