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도 어려운 생소한 도시 푸르워케르토(뿌르워께르또 Purwokerto)는 뭐하러 갔냐고? 그냥 갔다. 팡안다란에서 족자카르타의 중간쯤에 있는 도시라는 이유만으로.
203.12.29
팡안다란에서 반자르까지 가는 버스 요금은 50리부인데, 반자르에서 푸르워케르토 가는버스는 (거리도 비슷하고 버스도 비슷한데) 110리부다. 설마 버스 요금을 속이는 건 아니겠지?
푸르워케르토 터미널에 도착하자 못 보던 과일이 보인다. 노점 아줌마가 시식을 강권하기에 먹어 보니 겉모습(뱀껍질 비슷한?)과는 달리 맛도 식감도 괜찮다. 이름을 물어보니 살락(Salak)이란다. 7리부를(600원!) 주고 1킬로를 사서 다음날까지 맛있게 먹었다.
이틀 전에 구글 지도를 탐색하여 3박 15만원에 예약해 두었던 엘소텔(Elsotel)은 .평소 요금 3만원대의 3성급 호텔인데, 기대했던 수준을 넘어 완전 만족스러운 호텔이었다. 깔끔한 신축 건물에 로비부터 복도와 엘리베이터까지 에어컨이 빵빵한 것도 좋았지만, 마주치는 직원들마다 환하게 웃으면서 뭐라도 도와주려 하는 분위기가 더욱 맘에 들었다.
그리고, 체크인을 하면서 송년 디너 파티 초대권(이라기보다는 영수증에 따로 적어 줌)을 주길래 별 생각 없이 받았는데, 엘리베이터에 붙은 광고를 보니 이게 일인당 150리부짜리 유료 행사다. 우린 왜 공짜지? 숙박객은 다 무료인가? 3박이라서? 외국인이라서? n번 째 손님으로 당첨된 걸까? 하여튼 공짜로 춤과 노래를 감상하며 저녁을 먹을 수 있다니 살짝 기대가 되었다.
깨끗하고 편안한 객실 안에서 두어 시간 빈둥거리다가, 호텔 창문으로 내려다 보이는 식당(Spesial Soto Boyolali)을 찾아 가서 소또라는 음식을 처음 먹어 봤다. 소또 아얌(닭죽)과 소또 사삐(소고기죽)를 하나씩 시켜 먹어 보니 맛은 좋은데 양이 적네? 한 그릇을 더 먹었다. 홀 가운데에는 사떼 종류와 튀김 종류를 부페처럼 차려 놓은 사이드 음식들이 있었는데 어쩌면 이쪽이 주 메뉴고 소또가 국물있는 사이드 음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소또와 음료는 직원에게 주문을 하면 갖다 주지만, 부페 음식들은 셀프로 가져다 먹는 시스템이다. 더 낯설었던 것은 자기가 먹은 음식을 자기가 체크했다가 나중에 계산하는 방식, 사떼와 이름도 모르는 음식 몇 개를 가져온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어리버리하고 있는 우리를 보고 손님 한 사람이 주문서(?)를 주며 직접 체크하라고 알려준 덕분에 겨우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도 음식하고 이름하고 매치가 어려워서 다시 그 손님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이건 주인이 손님을 완전히 믿어야 가능한 시스템인데? 우리 말고는 셀프 시스템이 매끄럽게 잘 돌아가는 것 같으니 걱정할 일은 아닌 듯. 가격은 너무하다 할 정도로 싸다. 소또 세 그릇에 아이스티 두 잔, 플러스 이것저것 맛보기로 먹었는데 단돈 67리부.
저녁을 먹고 나서 약국도 찾아 볼 겸 구경삼아 거리로 나가 보니, 반둥이나 팡안다란에 비해 깔끔해 보인다.
발가락에 무좀 비슷한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서 약국을 찾아간 것인데, 약사님이 세 가지 약을 꺼내 놓고서 같은 성분인데 오리지널이냐 복제약이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고 골라 사라고 해서 확 믿음이 갔다. 우리나라 약사님들도 다 이럴까? 물론 우리는 젤 저렴한 걸로 (32.5리부) 샀다. 그런데 이 스테로이드 계열 연고가 처음에는 신기할 정도로 잘 듣는 것 같았는데, 한 달 넘게 발랐지만 끝내 완치는 되지 않았다. (글 쓰고 있는 지금도 미해결)
2023.12.30
아무 계획도 없이 오긴 했지만, 아무 것도 안 할 수는 없지. 열심히 구글 지도를 탐색한 결과 놀이동산 워터파크 폭포 온천 등 꽤 많은 관광지가 보인다. 세계적인 관광지가 아니면 어떠랴.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이 지역 사람들이 즐겨 가는 로컬 관광지 한 두 군데 들러봐야지. 그렇게 찍은 곳이 제일 인기가 있어 보이는 바투르라덴(BaturRaden)이다. 그랩(73리부, 꽤 먼 거리다)을 타고 가 보니 폭포와 온천을 끼고 있는 계곡형 유원지다. 입장료 25리부, 온천은 별도로 15리부고 (유원지가 다 그렇듯이) 안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이것저것 즐길거리가 있어서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여러가지 놀이기구나 포토 스팟들은 다른 데에도 비슷한 게 많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유원지 규모에 비해 음식 파는 노점상이 너무 많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여기는 인상적인 정도, 나중에 보로부두르의 기념품 가게들은 경악할 정도)
가믈란 공연 -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아줌마들은 지나가던 관광객 같은데?
멀지 않은 곳에 폭포가 있다길래 그랩(19리부)을 불러 찾아갔다가, (구경은 잘 했지만) 그랩 기사에게 덤탱이를 맞고 개운치 않게 돌아왔다. 그 동안 좋은 사람만 만나서 방심을 했던가, 폭포 입구를 놓치고 엉뚱한 곳에서 차를 세운 그랩 기사에게 (가격 흥정 없이) 우리가 폭포를 찾아서 구경하고 올테니 기다려 달라고 했던 게 실착이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그랩카를 두 번 탔는데 각각 73과 19리부였다. 그러니 돌아갈 때 100리부 주면 넉넉할 거라 생각한 건 나만의 착각? 기사는 500을 요구했다. 아, 진짜 나쁜 놈을 만났구나. 싸워야 하는데 가격 흥정 없이 기다리라고 한 내 잘못도 있으니 주먹에 힘이 덜 들어간다. 결국 제대로 못 싸우고 220리부를 주고 호텔로 돌아왔다. (10여년 전 베트남 훼에서 재래시장 아줌마들에게 바가지 쓴 기억이 재소환되었다. 꽝민이가 '베트남에선 가격 정하기 전에 입에다 뭘 넣으면 절대 안 돼'라고 했던 말을 잊고 주는대로 먹다가 ㅎㅎㅎ. 하긴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뿐이랴? 엊그제 을지로 유명 골벵이집에서도 중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더란다.)
저녁을 먹으러 호텔 근처에 있는 Waroeng SS로 갔다. 프랜차이즈 식당인가? 같은 이름을 여기저기서 본 듯하다. 갈비 구이, 새우튀김, 오징어 튀김, 깡꿍까지 음식이 다 맛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백미는 두리안 주스였다. 두리안 중에서도 최고의 두리안을 그대로 갈아 넣은 듯한 감격스러운 맛이었다. 이후에 주스를 마실 때마다 찾아 봤지만, 두리안 주스는 인도네시아에서도 귀한 음식인가 보다. 딱 한 번 더 만났다.
2023.12.31
오늘은 일정 없이 호텔에서 쉬기로 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호텔 앞 거리 분위기가 이상하다. 어제는 사람도 차도 많이 다니지 않는 한가한 길이었는데, 오늘은 웬 사람들이 저렇게 많아? 무슨 축제인가?
궁금해서 내려가니 호텔 경비원이 까르레스데이라고 알려준다. Carless day, 차 없는 날이라... 일요일이라서? 연말이라서? 길가에 노점들이 가득 늘어선 분위기로 미루어 보면 일요일마다 열리는 풍물시장 같다. 먹을 것도 팔고 장난감도 팔고, 그 중에서도 옷가게가 제일 많았는데 살 만한 게 눈에 띄지 않아서 구경만 하고 다니다가 옆 골목에서 두리안을 한 통 샀다.
11시쯤에 비가 쏟아지자 거리에 사람들이 사라지고 상인들도 다 철수하던데, 원래는 몇 시까지 여는 시장이었을까?
2시가 가까워지자 점심을 먹으러 구글 맛집을 찾아 나섰다. 제법 먼 길을 걸어가서 찾은 할머니 맛집(?)은 3시에 오픈한다고 했고, 두 번째로 찾아간 집은 6시에 오픈한다고 했다. (확인해 보니 지도에 오픈 시간이 제대로 나와있다. 검색? 제대로 좀 하자) 그렇게 허탕을 치고 호텔 근처로 돌아와서, 엊그제 그 소또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방에서 빈둥거리다가 시간에 맞추어 식당으로 내려갔다. 공짜 송년 파티를 즐겨야지. 겨울마다 여행을 다니다 보니 (코로나 때문에 중단했던 2년을 제외하면) 십수년 동안 외국에서 새해를 맞이했는데, 대부분 별 이벤트 없이 별 감흥 없이 무심히 넘어가곤 했다. 터키의 시와스에서 공짜 쾨프테를 얻어 먹은 일이 기억나는 정도. 아, 베트남, 태국, 스페인 등지에서 폭죽 소리를 듣기는 했지. 그러나 올해는 디너 파티라고!
조식 메뉴보다 가짓수는 줄었지만 질은 살짝 높아진 듯한 저녁 차림, 예쁘게 장식한 음료수들이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고 노래를 하는 듯하다.
라이브 음악을 들으면서 맛있는 음식을 (공짜로) 먹으니 즐겁지 않을 수가 있나? 호텔 직원들은 춤 공연을 했고, 전문 사회자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 의자 뺐기 게임 같은 즉석 게임도 진행했다. 그런데 외국인 투숙객은 우리뿐이었을까? 현지인들로 가득한 곳에서 우리가 좀 튀어 보였나 보다. 사회자가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는 바람에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꼬레아라고 하니 다들 반겨주는 분위기. 같이 춤추는 시간에 나오라고 강권하길래 못이기는 척 나가서 춤추는 시늉도 하며 우리도 파티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