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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외암마을전원 입지
옛 한옥마을에서 길을 묻다
글·사진 _ 박인호 (전원칼럼리스트)
조선 후기 실사구시 학풍의 대표적 실학자인 이중환(1690∼1752)은 전국을 다니면서 지리·사회·경제를 연구하여 저술한 『택리지(擇里志)』에서 ‘주거지로 선택하는 땅은 먼저 지리(地理)를 고려해야 하고, 그다음에는 생리(生理), 그다음에는 인심(人心)을, 그리고 마지막에는 산수(山水)를 고려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지리는 풍수지리의 자연적인 조건을 말하며, 생리는 생업·교통 등 경제적인 요소를 뜻한다. 인심은 사회적인 조건을, 산수는 자연경관을 각각 의미한다. 이 네 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결핍되면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를 모두 충족시키는 전원 입지를 찾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나와 가족의 안식처인 전원 보금자리를 아무 데나 마련할 수는 없는 법. 전원주택 입지 선택과 관련, 조상의 지혜와 삶이 어려 있는 옛 한옥마을에서 답을 구해보자. 주거공간인 한옥은 우리 나무와 흙(황토), 돌 등의 자연재료를 사용해 지은 진정한 ‘힐링(healing, 치유) 하우스’이다.
자연에 순응하며, 명당에 들어선 옛 한옥마을들산청 남사예담촌 회화나무
안동 하회마을 등 전국의 옛 한옥마을을 살펴보면 주변의 지세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마을이 기존의 산이나 강 등을 훼손하지 않고 이에 순응해 들어서 있다. 그러면서 자연의 힘이 모이는 곳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우리 고유의 주거양식인 한옥의 입지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풍수이론이다. 경주 양동마을에 가 보면 주변 자연의 모습이 매우 아름다운데, 이는 풍수에 근거해 집들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특히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배산임수의 남향 터는 집을 지을 때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명당이다.
근대화 이전의 마을은 가족 생활과 농업 생산이 함께 이루어지는 공동체였다.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씨족 마을은 조선시대에 크게 증가했다. 씨족 마을의 주거지는 논과 밭의 경계 지점, 즉 평탄지가 끝나고 경사지가 시작되는 산기슭, 일조를 위한 남경사면에 위치했다. 씨족 마을에서는 풍수지리와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산의 기운이 내려오는 마을의 후면 가장 높은 자리에 종가와 사당을 배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했다. 씨족 마을의 사례로는 아산 외암마을, 안동 하회마을 등을 들 수 있다.
씨족 마을과 구분되는 읍성 마을은 해당 군이나 현의 중심을 이루는 객사, 동헌과 성벽, 제사시설, 주변의 농촌 마을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도시화와 함께 대부분 멸실되었다. 읍성 마을의 사례로는 수원 화성, 경주 읍성, 해미 읍성 등이 있다.
1930년대 들어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주택부족현상이 초래되자 한옥을 전문적으로 지어 공급하는 주택업자들도 등장했다. 이들은 큰 땅을 구입해서 여러 채의 한옥을 지어 팔았다. 이때, 조금씩 개발된 지역은 비정형적인 가지형의 골목을, 한꺼번에 개발된 지역은 정형적인 격자형 골목을 갖게 되었다. 도시한옥마을의 사례로는 서울 북촌, 전주 한옥마을 등이 있다.
느림과 힐링,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곳
현재 경상도를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는 많은 전통 한옥마을이 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의 남산골 한옥마을, 북촌 한옥마을 △경기도의 용인 한국민속촌 △강원도의 고성 왕곡마을, 삼척 너와마을 △충청도의 아산 외암마을 △경상도의 경주 양동민속마을, 고령 개실마을, 대구 옻골마을, 봉화 닭실마을, 성주 한개마을, 안동 하회마을·군자마을, 영양 두들마을·주실마을, 영주 무섬마을·선비촌, 예천 금당실마을, 의성 사촌마을·산운마을, 거창 황산전통한옥마을, 산청 남사예담촌, 하동 청학동, 함양 개평한옥마을 △전라도의 구례 다무락마을·쌍산재, 나주 도래마을, 담양 삼지천마을, 목포 외달도, 보성 강골마을, 순천 낙안읍성민속마을, 영암 구림한옥마을, 해남 무선동마을, 전주 한옥마을 △제주의 성읍민속마을 등이다.
이 가운데 전라남도 광주의 진산인 무등산 아래 자리 잡은 삼지천마을(담양군 창평면)은 산 좋고 물이 풍부해서 양반들이 모여 살던 동네로, 전형적인 옛 남도 부농의 고택들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고즈넉하게 들어서 있다. 완만하게 휘어지는 돌담길을 걷다 보면 새 소리와 바람 소리가 스쳐 지나가는데, 그 순간들이 마치 과거로의 느린 여행을 하는 듯하다. 백제 시대에 만들어진 이 마을은 지난 2007년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경상남도의 대표 한옥마을로는 산청군 남사예담촌을 꼽을 수 있다. 지리산 천왕봉과 연결되어 있는 이 마을은 고가마다 ‘집안에 심으면 인재가 난다’는 속설이 전해 내려오는 회화나무가 한 그루씩 심어져 있다. 이상택 가옥 초입에서 만나는 몸을 ‘x’자로 포갠 회화나무(수령 약 300년)는 단연 눈길을 끈다.
남사예담촌은 특이하게도 집성촌이 아니라 성주 이씨, 밀양 박씨, 진양 하씨, 밀양 손씨, 연일 정씨, 진양 강씨, 전주 최씨, 현풍 곽씨 등 여러 성씨가 함께 사는 어울림 마을이다. 이 마을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100여 리 흘러와서 우뚝 멈춘 니구산 아래를 휘감아 흐르는 남사천과 넓은 들, 울창한 숲이 주위를 둘러싼 자연 승지(勝地)로 꼽힌다. 고려시대에는 왕비를 배출하고, 고려 말 문인 강회백과 조선 세종 당시 영의정을 지낸 하연 등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경주 양동마을 담양 삼지천마을
살기 좋은 터, 지역 가치 높은 곳을 골라야
오늘날 전원주택 터 잡기 요령 또한 옛 조상들로부터 그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배산임수 등 풍수가 갖춰진 곳, 자연에 순응하는 곳, 교통이 편리한 곳, 풍광이 좋은 곳, 인심이 후한 곳(텃세가 없는 곳) 등이 그렇다.
근래 들어 귀농·귀촌이 사회적 트렌드가 되면서 투기·투자 수요가 사라지고 대신 베이비붐 1세대(1955∼1963년생 758만여 명) 등의 실수요가 시골 땅과 집 시장의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이 과정에서 집터의 기준 또한 ‘보기 좋은 터’에서 점차 ‘살기 좋은 터’로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전원주택 입지로는 산을 감아 흐르는 강변이나 계곡 옆이 1급지로 꼽히며 단연 인기였다. 하지만 이런 집터는 대개 보기에만 좋을 뿐, 살기에는 좋지 않다. 근래 들어 기후변화로 인한 태풍, 지진, 쓰나미, 집중 호우 탓에 자연재해가 빈발하고, 그에 따른 인명 피해 또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자연재해 우려가 높은 곳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의 전원생활은 길고 긴 겨울을 불편 없이 잘 넘기는 게 관건이다. 겨울 칼바람이 부는 강변이나 계곡 옆보다는 낮에는 따스한 햇볕이 종일 들고 바람이 잠잠한 배산임수, 북고남저의 남향(또는 동남향) 터가 좋다. 건강에도 좋고, 난방비도 크게 절감된다.
귀농·귀촌이란 큰 흐름에서 보면, 전원주택 터를 고를 때는 개별적인 땅보다는 지역의 가치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개별 입지가 아무리 좋아도 주변에 혐오시설이나 기피시설이 들어서 있다면 그 개별 땅의 가치 또한 하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집터를 구할 때는 지역을 먼저 보고, 이후 개별 터로 서서히 좁혀 나가는 게 요령이다. 지역의 가치는 고속도로 IC, 복선전철역 등 교통이 편리한 곳, 산수가 어우러져 풍광이 뛰어난 곳, 전통과 문화가 숨 쉬는 곳, 교육 및 생활하기 편리한 곳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장점들을 엮어 테마화할 수 있다면 지역 가치로서는 최고라 할 수 있다.
지역 가치가 높은 곳은 또한 비전이 있는 마을이다. 마을 주민 간 단합이 잘 되어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현재는 권역단위종합정비사업)이나 생태마을, 장수마을, 정보화마을 조성사업 등 각종 국가 지원 사업을 따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곳이다. 이런 마을은 농업소득뿐 아니라 농업 외 소득을 추가로 창출해 주민 소득이 다른 마을에 비해 월등히 높다. 예비 귀농·귀촌인들은 이런 비전 있는 마을, 지역 가치가 높은 마을 주변에 집터를 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격언과 속설로 알아보는 좋은 땅 구하기
◎ 망설이면 놓치고, 서두르면 당한다.
땅을 구할 때 첫눈에 반한 땅을 놓고 너무 재면서 망설이다 보면 놓치게 된다. 그런 땅은 남의 눈에도 좋기 때문에 미적거리다 보면 다른 사람이 낚아채간다. 반대로 좋은 땅을 만났다고 해서 너무 흥분하거나 서두르면 오히려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서두르지 말고 서류와 현장답사를 통해 꼼꼼히 챙겨 보아야 한다.
◎ 땅을 구하는 것은 결혼하는 것과 같다.
결혼을 위해 배우자감을 고르다 보면 100%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경우는 없다. 단점보다는 좋은 점을 보고 결혼해 서로 상대방에 맞춰가며 살다 보면 서로의 모자람을 채워가게 된다. 땅을 구하는 것도 똑같아서 100% 마음에 드는 땅을 찾다 보면 영영 땅을 못 사게 되든가 아니면 아주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장점이 단점보다 많은 땅이라면 구입한 뒤 열심히 가꾸면 금싸라기 땅이 된다. 그래서 좋은 땅은 없고 만들어진다고 한다.
◎ 겨울에 땅을 보되, 처녀 땅을 사라
땅을 살 때는 겨울이 좋다. 다음 해 할 일 때문에 겨울에는 땅을 싸게 내놓는 경우가 많다. 또 옷을 벗은 맨땅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이때 손을 한 번도 탄 적이 없는 ‘처녀 땅’은 물어볼 것 없이 가격만 맞으면 바로 사라. 이런 땅은 기가 왕성해서 사 두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속설이다. 반면에 ‘걸레 땅’은 아예 쳐다보지도 말라. 주인이 자주 바뀌는 땅, 분할 또는 합병이 잦은 땅은 쳐다보지도 않는 게 좋다. 문제는 계속 문제를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