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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예레미야(12)/의인
제목 : 의인 한 사람이 없어 멸망당한 예루살렘
성경 : 렘 5:1~9
찬송 : 455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409018 낙양교회 수요예배
렘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렘 5: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렘 5:3 여호와여 주의 눈이 진리를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렘 5:4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어리석은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렘 5:5 내가 지도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렘 5:6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본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반역이 심함이니이다
렘 5:7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렘 5:8 그들은 두루 다니는 살진 수말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르며 소리지르는도다
렘 5: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시선을 주시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토라에 근거해 살아갑니다. 그 삶은 의와 공의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본문은 하나님 백성의 삶의 특징을 공의와 신실함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건강한 사람은 삶에 형통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서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서서히 내면의 욕망이 분출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무감각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의식하며 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욕망과 즐거움을 위해 모든 것을 이용합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이용하며 거짓으로 맹세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도 신뢰와 신실함을 잃어버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삶이 결국 그 자신을 삼켜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레고리 빌이 지적한 대로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그 우상처럼 되어 버립니다.
오늘 본문은 BC 6 세기 유다 백성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도 귀를 기울여야 할 메시지입니다. 이 경고의 메시지를 듣고 속히 돌이켜 하나님을 찾고 신실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의인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한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나 혼자 정의롭게 살아봤자 세상이 변하지 않으니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 것이 지혜롭다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수가 아니라 소수의 의인을 주목하십니다. 한 사람의 의인을 보시고 그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심판을 철회하기도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의식해서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하나님과 담판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10명이 있다면 그곳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참조, 창 18:17~33).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유사한 약속을 하십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의인을 찾기는 소돔과 고모라에서보다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1~2절)
렘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렘 5: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여기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세 가지 내용을 말씀하십니다.
첫째, 예루살렘 거리로 가서 얼마나 엄청난 불의가 이루어지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넓은 예루살렘 거리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의인을 한 명이라도 찾을 수 있으면 찾아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의인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의인 한 사람’을 찾으라고 하신 것은 이 성에 의인이 단 하나도 없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얼마나 죄가 이 성에 보편화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에 빠져서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죄가 보편화된다는 것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들끼리 서로 붙드는 것과 같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들이 서로 붙잡으면 아무도 살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구조훈련을 실시할 때 뒤로 가서 구조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한두 사람이 죄를 범할 때는 사람들의 양심이 살아 있기 때문에 죄를 짓는 사람이나 다른 사람들도 그런 죄를 부끄러워하므로 죄가 오염될 가능성이 적어집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죄에 빠져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오히려 죄를 짓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그 죄에 끌어들여서 같이 망하게 됩니다.
한두 사람이 뇌물을 받으면 그것이 죄인 줄 알지만 모든 사람이 뇌물을 받으면 뇌물을 받지 않는 것이 무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두 사람이 불륜 관계에 빠지면 그것이 아주 부끄러운 죄인 줄 알지만 모든 사람이 불륜에 빠지면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바보로 생각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죄가 모든 사람에게 아무런 수치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죄가 모든 사람에게 퍼져 있는 것이며 환자로 치면 거의 죽기 전의 상태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거의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중병에 걸린 도시로 생각하십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한통속’이 되어 서로 죄를 향해 끌어 들이고 의인들을 모두 쫓아내어서 보이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절대로 쉽게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둘째,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서 ‘정의와 진리’를 기대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는 예루살렘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입니다. 그래서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의 풍성한 진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영혼을 살리는 샘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그토록 사랑했습니까? 바로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나며 온 영혼을 뒤덮고 있던 죄가 말갛게 씻기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이 말씀의 샘물이 막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샘은 막히기가 아주 쉽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거나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거나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찾으면 이 샘물이 막혀 버립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서 이 말씀의 샘물이 막히지 않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이 샘을 유원지로 개발하면 안 됩니다. 유원지로 개발해서 사람들이 많이 오고 관광 수입을 올리는 것은 좋지만 이 샘은 잘못 건드리면 말라버립니다.
또 하나 필요한 것은 정의입니다. 이 정의는 모든 것이 바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바르지 않은 관계에서는 아무리 선행을 한다 해도 그것은 선행이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도둑이 도둑질해서 아무리 헌금을 많이 내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고 해도 그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남을 돕고 싶으면 일단 도둑질을 하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번 것으로 남을 도와야 선행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욕망을 하나님의 말씀 안에 가두어서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의입니다.
셋째, 의인 한 사람의 가치입니다.
여기서 의인 한 사람은 온 세상이 죄에 오염되어도 그 모든 줄을 끊어버리고 혼자 신앙 양심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사실 사람의 눈에는 이런 사람이 모든 세상의 줄과 사람의 줄을 다 끊고서라도 자기 양심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도 인간인데 마음속으로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고 결국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주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서워서 죄를 짓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의인 한 사람의 가치가 어느 정도입니까? 하나님은 의인 한 사람을 찾으면 예루살렘 성 전체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바로 그 사람 때문에 이 거대한 예루살렘을 멸망에서 건져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을 지키는 것은 창이나 칼이 아닙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대로 죄를 짓고 살아도, 그 모든 유혹의 줄을 다 끊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바른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것이 예루살렘을 지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의인 한 사람 때문에 그 성을 용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예루살렘에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 곧 의인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예루살렘을 용서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소돔은 의인 10명이 최종 조건이었는데, 예루살렘은 단 한 사람입니다. 물론 예루살렘 사람들 중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을 것입니다.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2절)라고 번역된 본문의 본래 의미는 그들이 거짓이라는 이름을 가진 신을 대상으로 맹세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실상은 여호와의 살아 계심이 아니라 ‘거짓의 신’을 두고 맹세하고 있다고 일갈하십니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백성의 영적 상황이 이러했다면 ‘천만 성도’ 운운하는 한국교회도 각성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 수많은 교회가 세워져 있는 한국에서 의인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그 나라를 용서하리라.”라고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 그 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해야 할 것입니다.
지도자들 중에서도 찾을 수 없는 의인(3~6절)
렘 5:3 여호와여 주의 눈이 진리를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렘 5:4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어리석은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렘 5:5 내가 지도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렘 5:6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본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반역이 심함이니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 거리를 오가며 살펴본 선지자가 하나님께 보고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영적 감감이 살아 있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고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눈이 진리를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이러한 수사학적인 질문을 통해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징계하시고 계신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픈 줄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의 영적 무감각함을 폭로하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거의 끝장을 내셨는데도 그들은 훈계를 들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얼굴을 굳게 하고 여호와께 돌아오기를 거절합니다.
3절은 선지서 본문 가운데 유다 백성의 상태를 가장 잘 진단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첫째, 무감각함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대노하실 상황인데 오히려 그들이 여호와를 향해 분노한 것입니다.
셋째, 삶의 방식을 바꾸고 돌이키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선지자는 그 원인을 백성이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4절). 그래서 선지자는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혹시 다르지 않을까 싶어 종교 지도자들을 찾아보려 합니다. 그들은 적어도 하나님의 토라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도 하나같이 토라를 하나의 멍에로 여기고 그 속박에서 벗어나겠노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과 원한을 따라 사는 것을 자유라고 하지 않습니다.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인간의 마음이 만물 가운데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당시 유다 백성은 우상을 숭배하는데 익숙해져서 우상처럼 사고하며 사는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6절에 보면 그들 중에 여호와께 돌아서는 자는 결국 아무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재앙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 재앙이 얼마나 처참한가를 묘사하기 위해 화자는 먹이를 사냥하는 사자와 표범의 은유를 사용합니다. 여호와의 심판을 실행하기 위해 다가오는 군대는 마치 굶주린 사장와 표범이 먹잇감을 포획하듯이 예루살렘에서도 망하는 자들을 찢을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루살렘이 멸망한 이유는 백성의 무지 때문이 아니라 지도자들의 타락 때문입니다. 지도자들이 바로서야 백성이 살길이 열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예루살렘(7~9절)
렘 5:7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렘 5:8 그들은 두루 다니는 살진 수말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르며 소리지르는도다
렘 5: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정의와 진리를 행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이 행한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징벌과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앞에 맹세했고, 하나님이 주신 양식을 먹고 배가 불러 창기의 집에 모이기를 즐기고, 마치 살진 수말같이 이웃의 아내를 따르며 소리를 질렀다고 정죄하십니다. 유다 사람들은 우상 숭배로 영적 간음을 범했을 뿐 아니라 육신의 정욕을 따라 음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싯딤에서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고 모압 사람들의 신들을 섬김으로 바알브올에게 가담했을 때 염병으로 죽은 자가 2만 4천 명이었습니다(민 25:1~9).
하나님은 가나안 거민들이 음행과 우상 숭배로 땅을 더렵혔기 때문에 그들을 벌하셨고 그 땅도 그들을 토해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들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레 18:24~29). 그러나 유다 백성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보이신 우상 숭배와 음행에 대한 심판을 알고도 교훈으로 삼지 못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치셔도 아픈 줄 모르고 징계하셔도 회개할 줄 모르는 그들이 비천하고 어리석어 ‘여호와의 길,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한다고 탄식하면서 맹수 같은 이방인들에게 멸망당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유다 백성과 다를 바가 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영원히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인 한 사람이 없어 멸망을 당했던 예루살렘은 타락한 인간의 영적 무능력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의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생명과 진리와 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인으로 살아가기를 힘쓴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