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원주교구--강원감영, 원동 주교좌성당 》
오늘은 원주교구청관할 학산묘재, 용소막, 베론성지를 순례코자
집을 나섰으나 대중교통이 연결되지 못하여 원주에서 마음을 바꿔야만 했습니다
본당에서 북콘서트가 있어 시간을 허락하시지 않는가 봅니다.
"김홍신님 인생 사용 설명서"20시
원주교구청 설정 성지인 원동성당. 강원감영 (선화당).의 순례로 대신하기로 하고
순례를 마쳐야 했읍니다.
성지설명 (원주감영. 원동성당)
Goodnews 에서
원동성당
간략설명 : 원주 지역 선교의 요람이자 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
소속교구 : 원주교구
주 소 : 강원도 원주시 원동 85
전 화 번호 : (033)765-3350
홈페이지
http://www.wjwd.or.kr
성지소개
원주교구의 주교좌인 원동 성당은 1896년 8월 17일 풍수원 본당에서 분리 · 신설된 원주 본당을 그 모태로 합니다. 1902년 드브레 신부 때 신자들의 증가로 인해 사제관 부근 부지를 매입하여 오늘날의 성당 터전을 마련하였고, 1904년에는 용소막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 · 분리하였습니다. 1913년 조제 신부가 70평의 고딕식 성당을 완공하여 뮈텔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가졌고, 1950년 디어리 신부가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발발한 6.25 전쟁으로 인해 성당과 1934년에 설립된 소화유치원이 전소되었습니다. 본국으로 갔다가 1951년 10월에 돌아온 디어리 신부는 교우들과 함께 성당 재건을 위해 노력하여 1954년 9월 120평 규모의 시멘트 벽돌 성당을 완공하였습니다.
1971년 원주 문화 방송국의 부정으로 야기된 부정부패 규탄대회가 원동 성당에서 열리고, 1974년 지학순 주교 구속 이후 시국과 관련한 많은 기도회가 개최됨으로써 원동 성당은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로 떠올랐습니다. 본당 설립 100주년을 준비하며 1990년 8월 기념 교육관을 건립하여 축복식을 갖고, 1995년 성당과 수녀원 등을 보수하여 이듬해 10월 10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원동 성당은 돔형 종탑의 독특성과 양호한 보존상태 그리고 1970년대 민주화 운동과의 관련성 등을 인정받아 2004년 12월 31일 근대문화유산 등록 문화재 제13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강원감영(선화원)
고문의 서슬은 간곳없고
소속교구 원주교구
주 소 강원도 원주시 일산동 54-2
전화번호 (033)765-3350
홈페이지
http://www.wjwd.or.kr
성지소개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500년 동안 강원도의 정청(政廳)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래서 원주 일대의 죄인들이 강원감영으로 끌려와 정청인 선화당에서 형벌을 받고 처형되었습니다. 당시 이곳에서는 국사범 등의 중죄인은 물론 잡범들에 대한 형도 집행됐는데 박해가 일자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에 잡혀와 갖은 고초를 겪은 후 처형되었습니다.
강원감영지의 정문인 포정루와 정청인 선화당은 건립 당시 위치에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조선시대 감영의 형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그래서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는데, 지정 당시 명칭은 강원감영(문루 및 선화당)이었으나 2004년 1월 17일 ‘포정루 및 선화당’으로 그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포정루와 선화당이 순교의 피를 흘렸던 박해의 현장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 김강이 시몬, 최해성 요한, 최 비르지타 등 많은 순교자들이 강원감영의 옥에서 혹독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감옥 터에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복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 강원감영지에 있던 원주시 제2청사는 철거되고 지속적인 발굴과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강원감영 (선화루)
원동성당
미세먼지가 얼마나 심각한지 밝아야 할 태양이 뿌였게 빛을 잃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