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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화샘인터넷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호쉬아
하나님께서 듣고 응답하시는 기도
중요한 기도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그리고 바른 자세로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법을 배웠던 것과 같이 기도를 잘 배워야 한다. 폴 밀러는 이렇게 말했다. “기도를 잘 배우면 세상이 우리 아버지의 세상임을 알게 됩니다. 만사가 내 아버지의 소관이기에 나는 구할 수 있고, 그분은 들으시고 행동하십니다. 내가 그분의 자녀이기에 변화가 가능한 것입니다. 희망이 태동합니다.” (폴 밀러의 일상 기도 중에서)
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
우리는 기도드릴 때 기도드리는 시간이나 말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신경 쓸 때가 많다. 심지어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께 우리의 다짐을 내비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하나님과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진 않는다. 평소 기도드릴 때 ‘하나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께 헌신하겠습니다. 그 어떤 위험과 고난이 닥쳐도 물러서지 않고 평생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한다거나 '하나님, 당신의 말씀은 제 앞길을 밝혀 주는 등대이자 빛입니다. 범사에 당신의 말씀을 따르고 당신의 뜻을 만족게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말 역경이 닥치고 좌절을 맛보거나 집안에 우환이 생겼을 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려는 의지도 없어진다. 오히려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소극적인 행동을 보이면서 하나님을 배신하고 멀리한다. 현실의 삶 속에서 이런 행동을 보인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앞에서 한 기도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기도가 아니라 허풍과 빈말, 그리고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의 기쁨을 얻어 다른 사람이 자기를 우러러보고 자기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보여 주며 하나님께 충성을 다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사실 그 속에는 허위와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기도를 어떻게 하나님께 응답받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비유하신 적이 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8:10~14).
여기서 우리는 바리새인이 기도드릴 때 교만하고 자신의 죄를 전혀 모른 채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로 자신을 나타내며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충성심을 자랑하고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세리를 낮추었다. 이런 외식하는 기도로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이와 달리 세리는 진심으로 기도드렸으며 자신이 지은 죄를 하나님께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지난 과오를 반성하며 하나님께 회개했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다. 예수님은 세리의 기도에서 그의 진심을 보셨고 그의 기도를 칭찬해 주셨다.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빈말이나 허풍, 또는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께 아첨하고 기만하는 기도를 싫어하시고 우리가 마음을 열고 진짜 마음의 소리와 진실한 말을 통해 하나님과 마음으로 통하길 바라심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한복음 4:23~24).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교활한 마음이 아니라 단순하고 진솔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기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는 것이고, 자신의 결함이나 패역 성품을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털어놓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너의 기도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따라서 기도드릴 때 우리는 삶 속에서 맞닥뜨린 어려움이나 고통을 하나님께 털어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 부디 당신의 영이 감각이 없는 제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믿음과 힘을 주시어 제가 사탄의 시험을 이겨 내고 평온한 마음으로 당신의 앞으로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이렇게 진심으로 여러 번 기도드리면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인도해 주시어 우리가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결국 우리를 죄악 속에서 살게 할 뿐이며 하나님과도 점점 멀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신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고 우리가 진리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으로 기도드리지 않고 그저 좋은 말로 하나님께 아첨하거나 하나님을 속인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며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길 바란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앞에서 순수하게 마음을 터놓고 속마음을 이야기해야 한다.
나. 하나님께 인정받는 기도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우리 몸에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우며, 교활하고 간사하며, 이익만을 추구하는 등 사탄의 타락한 성품이 가득하게 되었다. 모든 일에 있어 이익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심지어는 하나님께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있다. 많은 형제자매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당연히 우리를 축복해 주실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하던 하나님께서 모두 들어주실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픈 병이 낫고, 가정이 평안하고, 자녀가 좋은 일자리를 찾게 해 달라는 등 자신의 육적인 이익과 관련된 일을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창세기 1:28)고 명령하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창조주 참된 아버지되심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 풍요롭게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이 땅에서 복을 구할 특권이 우리에게는 있다. 하지만 이 땅에서의 풍요가 이 땅에서의 삶만을 위한 것이라면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주는 풍요와 번성의 전제는 참된 하나님의 지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그 뜻을 이루어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을 드리기 위한 도구로서의 풍요와 번성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누가복음 12:29~31). 즉 이 땅에서의 소용은 오직 주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진리와 생명을 얻고 하나님과 합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기도일 것이다.
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가끔 우리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은 일에 직면하곤 한.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거나 집안에 평화롭지 않은 일이 생기거나 심지어는 천재지변이나 인재가 덮칠 수도 있다. 그런 일이 닥쳤을 때 대다수 사람은 하나님께 이런 상황을 모두 거두어 주시고 평안과 기쁨을 달라고 기도드린다. 힘들게 사역을 하고 심지어 결혼 생활이나 일도 뒤로 한 채 하나님만 믿었던 사람도 큰 병이 덮치면 평온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거나 하나님을 증거하며-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굳게 서기 위해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기도를 드리지 못한다. 오히려 하나님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거나 하루빨리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면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미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병을 고쳐 주지 않으시면 하나님께 실망하고 비관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려고 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육적 이익을 너무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며 증거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굳게 서서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려는 마음으로 육적인 고통이 닥친다고 해도 굳게 서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기도만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다. 그것이 바로 피조물인 우리가 마땅히 지녀야 할 양심과 이성이다. 시련 앞에서 모든 재산과 자식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생겨 몸과 마음으로 큰 고통을 견뎌야 했던 욥처럼 말이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께 왜 이런 고통스러운 환경을 주셨냐고 원망하지 않았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드리지도 않았다. 욥은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욥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건 거두시건 피조물로서 당연히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따라야 하며 하나님께 그 어떤 요구나 원망도 하지 않는 것이 사람이 갖춰야 할 마땅한 이성임을 알고 있었다. 욥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 그 후 욥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순종,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하였다. 우리도 우리의 관념에 맞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우선 평온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굳게 서기 위해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실천이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우리의 믿음에 힘을 주시어 우리가 난관을 헤쳐 나가고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있게 굳게 설 수 있도록 해 주신다.
라. 호흡과 같은 기도
마틴 루터는 기도는 호흡과 같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이 호흡과 같은 기도를 하지 않는 다면 죽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영적으로 퇴보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기도를 소홀히 한 결과이다.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삶 속에서 어떤 급한 일이 있거나 모든 일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될 때 너무나 쉽게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한다.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종종 기도하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분이 내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하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을 때가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라고 한 토레이의 말처럼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삶에서 필수적인 일이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일이 아닐 것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립보서 4장 6절)
성경은 믿는 자들이 항상 기도할 것을 격려한다. 이것은 삶의 계절이나 혹은 시간에 상관없이, 우리가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고 또 다가가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지원과 보호를 아낌없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있고 또 이를 여러 번에 명령하는 이유도 있다. 우리가 사람이기에 두려움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찾아올 수 있지만, 그런 면에서 기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기도가 우리 삶의 습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로 얻는 모든 혜택들이 우리의 삶에서 훨씬 더 명확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마. 아들로써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
기도의 성경적 패턴은 성령의 능력으로 아들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다. 아버지께 말씀드리는 근거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자로 입양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는 우리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신분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사실로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실 의무가 있으신 것을 시사하고 있다. 자녀들이 아버지와 교제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공유하는 것은 아버지의 기쁨이시라며 예수님은 “그러면 너희가 악하여 자녀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안다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선한 것을 얼마나 더 주시겠냐!” (마태복음 7:11)라 하셨다. 아버지의 마음은 자신의 자식들을 사랑하시기에 그들과 좋은 것을 나누시기를 갈망하신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뜻을 더 잘 알게 될수록 아버지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은 더욱더 쉬워질 것이다.
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
“기도가 통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흔히 하나님이 내 때에 내 방식대로 내 뜻을 이루어 주시지 않는다.”(폴 밀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의 목적은 하늘에서 사람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으로 기도하고 싶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기도는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그것은 우리 내면의 가장 높고 깊은 표현이다. 우리가 주님을 기뻐하고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 자신 속에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 변화는 너무나 복된 소망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자기 자신의 소망이 된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일에 본이 되신 분은 물론 예수님이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 4:34)”
따라서 기도는 한 마디로 단순히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가 준비하신 잔을 받을 때가 되었지만, 예수님은 두려워하시지 않았다. 베드로는 주인을 보호하려 했지만,예수님은 그를 꾸짖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요 18:11). 하나님의 뜻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면 그분이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우리 마음의 소망은 점점 더 경건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소망은 주님께 끊임없이 올려지는 기도로 나타날 것이다.
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
기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으로 할 때, 온전하게 우리의 필요를 올바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실 것이다.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염려를 우리의 염려보다 먼저 두도록 가르친다. 일용할 양식, 용서, 죄로부터 보호와 같은 우리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도록 되어 있다. 성도가 땅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때, 하나님은 성도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실 수 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지 않으셨다면 오늘날 죄인들에게 구원은 없었을 것이다. 성령님이 오시지 않았을 것이고, 교회도 없었을 것이며 신약 성경도 그리스도인의 삶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로 영광을 받으실까? “ 우리는 기도할 때 이렇게 자문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까 하고 자문하는 것은 자신의 기도 온전함을 시험하고 자신의 기도가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지 아닌지를 감지하는 좋은 방법이다.
아.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찌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시편 56편 3-4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의 선진들이 이로말미암아 증거를 삼았느니라" (히브리서 11:1-2)
만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기도하시고 사역을 하셨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였겠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공을 확신하신 것이다. 제자들은 3년이 넘는 공생애 동안 함깨 하였음에도 결국 예수님을 버리고 다 흩어졌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요한복음 17:1~28) 그 기도의 결과로 제자들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은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로 대부분 순교를 당했. 예수님은 이들의 연약한 믿음을 아셨고 그들의 실패를 아셨지만, 믿음으로 기도하셨다. 그리고 그 기도로 제자들은 과거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은 인간적으로 보면 그것은 패배였다. 그러나 믿음으로 예수님은 그것을 진정한 승리로 보았기에 큰 시련을 앞두시고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한복음 12:23)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하신 것과 같이 성도도 믿음으로 기도할 때 신성한 관점에서 사물을 보기 시작하게 되고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자. 정직하게 드리는 기도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시편 139편 1-3절)
하나님께선 우리 인생 전체를 굽어 살피시는 분이다. 우리가 언제 어디에 있는지, 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심지어 왜 그런지조차 알고 계신다. 즉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 감추어진 것이 없고, 우리의 기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성경도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이 점을 인지할 때 우리의 기도 또한 더욱 정직해지고 열린 마음으로 행할 수 있다.
우리가 심각한 죄를 지었을 때도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괴롭게 했을때도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아신다. 오히려 우리가 정직한 태도로 하나님께 다가갈 때, 우리는 어느샌가 더욱 자주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정직하게 기도하는 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친히 간섭하시고 보살펴 주심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차. 은밀한 중에 드리는 기도
예수님이 좋은 모범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늘 물러가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했다(눅 5:16).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큰길이나 성전에서 공개적으로 기도한 것과 크게 대조되는 장면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기도하며 보상을 기대하지 않았다.
카, 말씀의 묵상과 함께하는 기도
기도는 성경 말씀을 섭취한 만큼 성경의 영감을 받게 된다. 성경 말씀은 묵상의 영양분을 공급하며 묵상은 우리의 기도를 힘있게 한다. 성경에 대한 묵상은 의미 있는 기도를 드리도록 도와준다. ‘묵상이 성경섭취와 기도 사이의 연결고리’라고 말한 사람은 도널드 휘트니(Donald Whitney)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목하고 있었다. “만약 복음 지도자 조지 뮬러의 기도 생활에 비결이 있었다면 묵상과 기도의 연관성을 발견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