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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성경 본문: 사도행전 8장 26-29절, 고린도전서 2장 1-5절
역사적·문학적 텍스트: 『십자가와 칼』 제1~3장 — 1958년 펜실베이니아 필립스버그 시골 목회지의 평온, 라이프(Life) 잡지 속 7명의 살인 혐의 갱단 소년들, 성령의 강권적 음성, 뉴욕 브루클린 법정 침투와 쫓겨남
학문적·신학적 과제: 안락한 기득권 목회와 관념화된 신학의 온실을 깨부수고, 피비린내 나는 범죄의 아스팔트 바닥으로 뛰어든 데이비드 윌커슨(David Wilkerson)의 행적을 통해 '성령의 주권적 소명(Divine Calling)'과 '야전적 순종'의 본질을 해부한다. 세련된 인본주의적 설득이나 인간의 지혜가 아닌, 오직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을 의지하여 흑암의 요새를 직격하는 성경적 복음 전도의 절대적 원형을 확립한다.
1. 온실 목회의 안락함을 찢으시는 성령의 거룩한 파괴
1958년 2월, 스물여섯 살의 젊은 목사 데이비드 윌커슨은 펜실베이니아주의 아름답고 조용한 시골 마을 필립스버그(Philipsburg)에서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교회 재정이 안정적이었고 성도들은 온순했으며, 목회자로서 평생 안락하고 존경받는 종교적 엘리트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완벽한 온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윌커슨은 심령의 깊은 갈급함 속에서 결단을 내립니다. 저녁마다 무의미하게 소비하던 TV 시청 시간을 완전히 끊고, 밤 9시부터 11시까지 오직 무릎 꿇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의 골방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그의 시선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던지셨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라이프(Life) 잡지에 실린 한 장의 흑백 스케치를 보게 됩니다. 뉴욕 브루클린의 한 공원에서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던 15세 소년 마이클 파머(Michael Farmer)를 잭나이프로 찌르고 몽둥이로 무참히 난타하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7명의 10대 갱단원들의 사진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괴물", "인간 말종", "사형대에 올려야 할 짐승"이라 부르며 침을 뱉었습니다. 그러나 윌커슨의 심장 속에는 하나님의 찢어지는 비통함이 성령의 불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저 아이들에게 가라. 그들을 도우라."
이 음성은 상식과 합리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명령이었습니다. 세속적 이성은 "시골 목사가 뉴욕의 살인 갱단을 어떻게 상대하느냐", "가족과 교회를 내팽개치는 무책임한 광기다"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소명은 언제나 안락한 종교적 기득권의 울타리를 박차고 나가는 거룩한 야성(Wildness)을 요구합니다. 윌커슨은 자신의 차를 팔아 여비를 마련하고, 낡은 양복 한 벌과 성경책 한 권만을 든 채 범죄의 소굴 뉴욕으로 단신 돌진했습니다.
2. 사도행전 8장: 광야로 향하는 빌립과 즉각적 순종
이 사건은 사도행전에서 성령께서 빌립 집사를 예루살렘의 부흥 현장에서 거친 광야로 몰아내신 구속사적 장면을 그대로 재현합니다.
사도행전 8장 26절, 29절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그 길은 광야라(Hautē Estin Erēmos)":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광야는 사역의 성공이나 안전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메마르고 황량한 버려진 땅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전략은 인간의 인구통계학적 계산을 뛰어넘습니다.
"일어나서... 가까이 나아가라(Anastēthi... Proselthe)": 빌립은 결과나 안전을 따져 묻지 않고 즉각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윌커슨이 향한 뉴욕 브루클린과 할렘은 영적·도덕적 광야였습니다. 그곳은 총성과 칼부림, 마약 주사기 찌꺼기가 굴러다니는 생지옥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언제나 계산기를 두드리는 자들이 아니라, 광야로 가라는 성령의 비합리적 명령에 목숨을 걸고 즉각 순종하는 한 사람의 발걸음을 통해 흑암의 심장부로 진격합니다.
3. 고린도전서 2장: 인간적 지혜의 참패와 십자가의 미련함
뉴욕에 도착한 윌커슨의 첫 작전은 보기 좋게 산산조각 났습니다.
그는 소년들의 재판이 열리던 법정으로 들어가 판사에게 "목사로서 저 아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게 해달라"고 청원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법정 경위들은 그를 재판 방해자로 오인하여 목덜미를 낚아채 법정 밖으로 내동댕이쳤습니다. 복도에 모여 있던 수십 명의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고, 다음 날 뉴욕의 모든 타블로이드 신문 1면에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끌려 나가는 그의 사진이 대서특필되었습니다:
"성경을 든 시골 목사, 살인 갱단 재판을 방해하다가 법정에서 쫓겨나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것은 철저한 패배이자 지독한 굴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수치 한복판에서 일하십니다.
고린도전서 2장 1-5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바울이 고백한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Hyperochēn Logou Ē Sophias)"은 인간의 세련된 언변, 정교한 정치적 협상력, 화려한 사회적 스펙입니다.
만약 윌커슨이 법정에서 합법적이고 세련되게 허가를 받아 교화 위원으로 들어갔다면, 갱단 소년들은 그를 위선적인 기득권 백인 사회의 또 다른 하수인으로 보고 마음의 문을 완전히 걸어 잠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문에 "경찰에게 쫓겨난 바보 같은 목사"로 대서특필되자, 경찰과 사회를 극도로 증오하던 거리의 갱단 소년들은 오히려 윌커슨을 "우리를 위해 경찰에게 맞서다 망신당한 별종"으로 인식하며 그를 향해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시골 목사의 어설픈 인간적 계획을 철저히 무너뜨리심으로써, 오직 십자가의 거룩한 미련함과 성령의 주권적 권능만이 일하실 수 있는 완벽한 야전의 무대를 준비하셨습니다.
[강의 요약 및 신학적 결론]
『십자가와 칼』 제1강은 참된 복음 사역이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첫째, 성령의 소명은 안락한 온실 목회의 껍질을 깨고 가장 비참하고 어두운 흑암의 현장으로 돌진하는 거룩한 야성에서 출발합니다.
둘째, 사도행전 8장의 빌립처럼, 성도는 인간적 이해타산을 버리고 황량한 광야로 가라는 신적 명령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셋째, 고린도전서 2장은 인간의 지혜와 수단이 완전히 파선하는 수치의 자리에서,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성령의 능력만이 진정한 구원의 문을 여는 열쇠임을 확증합니다.
그러므로 제1강의 결론은 서늘하고 분명합니다. 복음은 신학 서재의 화려한 장서 속에 갇혀 있는 박제된 이론이 아닙니다. 차가운 골방 기도를 통해 심령에 부어지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세상이 포기하고 침 뱉은 가장 절망적인 어둠의 골목길을 향해 온몸으로 뛰어드는 야전의 결단만이 영혼을 살려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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