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수요일)는 낮에 신촌 '아름다운 책방(뿌리와 새싹)'에 갔다. 시집과 잡서 몇권을 사는데, 인터넷 방송국인지에서 인터뷰를 해달래서 두서없이 이 말 저 말 했다. 하고 보니 그랬다. 나도 놀랜 것이 막상 인터뷰한다니까 내 가슴이 두근두근 떨렸다. 이 나이 되도록 가슴이 떨리다니... 조건 반사처럼 벌어진 현상에 저절로 긴장이 되었다. 의식과 존재의 통일이 참 어렵다. 내친 김에 책방 들어오는 장면하고 책 골라 읽는 장면도 부탁해서 연기까지 했다. 나쁜 건 아니니 그냥 해줬지만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두근거림, 당황 이런 것이 아직 수행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기에 부끄럽다.
신촌헌책방 주인 아저씨가 외출중이라 '숨어 있는 책' 집엘 갔다. 이것저것 고르고 나오니, 오늘 두 책방에서 5만원어치 책을 샀다. 아내가 준 용돈 중 어제 오늘 십일만원치 책을 산 셈이다. 이제 이번달엔 오만원어치 정도만 더 사고 말아야겠다.
저녁엔 수은회관 앞에서 김밥과 라면을 먹고 강의를 들으러 갔다.
표영삼 선생님! 지금까지 만난 선생님 중 가장 존경하는 분이다. 옛날 홍순명 선생님을 뵈었을 때의 느낌과 같은 느낌을 주시는 분이다. 보통 교수와 학자들은 지식이 풍부하지만 지행일치의 품격을 지닌 분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표영삼 선생님은 일생을 지행일치의 모습을 견지하며 사신 분이다. 천도교인으로서 동학에 대해 그렇게 치밀하고 합리적으로 연구하고 체화한 분은 없을 듯 싶다. 많은 종교인들이 교리와 경전의 문구에 얽매여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하고 독단에 빠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선생님은 경전의 핵심을 이해하고 그것을 현재에 맞게 재해석하며 노력과 성실로 80 평생 살아오셨다.
강의가 끝나고, 누가 건강회복을 축하하는 케잌을 사 같이 축하드리고 집에 왔다.
마음 속에 선생님으로 모시고 평생 닮도록 노력하는 거울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점심을 먹고, 도봉문화정보센터에 갔다. 회원증을 만들고 이곳저곳 구경을 했다. 격세지감이라더니 참 많이 변했다. 자료실에 책들이 많다. 영상자료는 아직 대중물 정도밖에 없는 수준이지만 문화부네서 정책적으로 지원한다면 질적 수준도 쉽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나 프랑스 같이 문화적 인프라가 잘 구축된 나라가 부러웠는데 일단 건물이나 기본 시설이 서서히 따라가는 느낌이 든다. 서고의 책을 보니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고, 공부를 더 깊이 해야겠다는 맘이 저절로 생겼다. 이 정도만 해도 몇년간 공부하기에 충분한 여건이다. 도서관만 잘 갖춰져도 학교는 소용이 없을 것 같다. 학교에서 배운 열 몇 과목 중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 거의 없다. 거기서 바른 가치관을 배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위험한 국가주의와 자본주의적 소양을 배웠고, 공부에 대한 오해를 배웠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도서관을 마음대로 이용하면서 하고 싶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과 지식 수준도 정말 높을 것인데 참 아쉽다. 젊은 날을 시험문제집에 매달려 다 보내야 하다니, 뭔가 거대한 사기가 있음에 틀림없다. 조셉 캠벨의 <네가 바로 그것이다>와 아미쉬공동체 사람들이 쓴 <아미쉬 공동체>라는 책 두권을 대출받았다. 조셉 캠벨의 책은 계속 읽으며 공부해야겠다. 심리학,신화, 종교에 대한 통찰이 놀랍다. 최근 샘물교회 사람들을 보며 종교인들이 조셉 캠벨의 책만 읽어도 그렇게 편협하게 굴진 않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종교인들이 맹신적 믿음만 강조하면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게 참 안타깝다. 차라리 모르면 말이나 하지 말지, 다른 종교는 그르고 자신의 것만 옳다는 유아론적 사고는 정말 견디기 어렵다.
문화정보센터에 와보니 학교는 정말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정도의 인터넷망과 도서관이 있다면 학교는 당연히 없어져도 무방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문화센터에서 수십 가지의 생활강좌를 꾸준히 열고 연령을 초월해 쉽게 수강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네트워크만 조정해주면 각종 전문가과 학생그룹이 연령을 초월해 저절로 형성될 것이다. 그게 이상적 학교의 모습이다. 자격증 따위란 기업이나 국가에서 노동자를 관리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 진짜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니다.
그리고 적당히 여행을 해야 한다. 경험은 지식보다 더 중요한 교육이기 때문이다. 문화정보센터를 나와 집에 오는 길에 든 생각이다. 아무리 편리하고 시설이 좋아도 이런 서울의 아파트촌에서만 산다면 자연과 문화도 역사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스스로는 개방적이고 오픈된 사람이라고 해도 그의 의식수준이 자연 편협하기 쉽다. 더구나 학교라는 곳은 경험을 더 제약하고 있는 게 현 실정이다. 한 곳에서만 살기를 고집하면 거기서 얻은 정보와 가치관에 제한이 되어 편협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젊어서는 일부로라도 이곳저곳에서 옮겨살아보는 것도 괜찮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곳, 다른 문명, 다른 자연 등을 경험하고 삶은 물론 지식과 가치의 상대성을 배우는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얻은 지식이 사람을 훨씬 자유롭고 주체성 있는 존재로 만들 것이다.
이 세계를 학교로 삼고 교과서와 교사로 삼는 것이 가장 옳다. 그래야 진정 교육이 산다.
첫댓글 방송촬영이야기는 금시초문이네요..어디서 나온답니까? 어설픈 몸짓이라도 봐야죠?^^
그게 아니고, 나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