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독작장언(獨酌長言)」 유배객의 처절한 취중독백(醉中獨白)>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편에 소개하는 ‘先’ 운목(통운)의 칠언고시(七言古詩) 「독작장언(獨酌長言)」 ‘홀로 술을 마시며 길게 말하다’는 조선전기 문신 용재(容齋) 이행(李荇 1478~1534)의 작품으로, 『용재집(容齋集) 제6권(卷之六) 해도록(海島錄)』에 수록되어 있다. 해도록은 정덕(正德) 병인년(1506년) 봄 2월, 거제도(巨濟島)로 귀양 간 이후 지은 시들이다(正德丙寅春二月 赴巨濟以後作). 이 작품은 조선 중기 갑자사화 등으로 유배 생활을 겪은 작가의 고뇌와 달관, 그리고 도가적 초월 세계를 노래한 명작으로, ‘술과 초월의 노래를 빌려 외친 유배객의 처절한 곡소리’ 취중독백(醉中獨白)이다. 참고로 ‘先/元’은 중당 이후 자주 통운되었다.
덧붙여 이러한 칠언고시(七言古詩)는 당나라 이후의 근체시(율시, 절구)처럼 글자 수나 평측(음의 높낮이), 압운의 규칙에 엄격하게 얽매이지 않고, 작가의 감정을 격정적이고 길게 쏟아내기에 적합한 자유로운 형식이다. 그래서인지 작품 중간에 가사나 초사(楚辭) 풍의 어조가 섞여 있다. 초사풍의 어조란? 중국 초나라의 시인 굴원(屈原)이 쓴 문학 양식인 『초사(楚辭)』에서 비롯된 특유의 분위기, 리듬, 그리고 감정 표현 방식이다. 즉, 극단적이고 격정적인 비장미(슬픔과 억울함)와 가사(歌詞) 같은 독특한 리듬감과 '혜(兮)'의 사용, 그리고 상징적이고 환상적인 도가(道家)적 표현이다.
이행의 「독작장언(獨酌長言)」에서 초사 풍의 어조가 가장 강한 구절은 후반부의 "我衣之華兮我佩之蠲, 美人不見兮空悁悁"이다. 영탄조의 어조사인 '혜(兮)'를 배치하여 호흡을 길게 늘이고 비장한 운율을 형성했고 '내 옷의 화려함이여, 내 노리개의 깨끗함이여(我衣之華兮 我佩之蠲)'와 같이 명사구 뒤에 조사 '之'를 붙여 속성을 강조하는 초사 특유의 화려한 수사학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게다가 각 구(句)의 끝마다 같은 통운자(通韻字)인 ‘先’ 운목의 압운자를 모두 사용해, 한시의 리듬(rhythm)과 라임(rhyme)을 극대화하였다. 또한 굴원의 『초사』와 이행 시의 「독작장언(獨酌長言)」의 공통점은 먼저 두 사람 모두 억울하게 쫓겨난 신하의 비장함과 고독감, 임금(중종)에 대한 변함없는 충정과 그리움, 자신을 압박하는 정적들과 위태로운 운명을 시각적·상징적 괴수(뒤에는 높은 산, 앞에는 깊은 못, 맹호는 이빨을 갈고 이무기는 침을 뱉는다)로 묘사한 점이 일치한다.
○ 요약해 보면, 이 시는 거칠고 뜨거운 변방 유배지에서 홀로 술을 마시며 느끼는 정치적 좌절감, 고독, 그리고 이를 술로 달래며 초월하려는 도가적 신선 사상이 결합해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같은 유배객 굴원과 이백의 대비를 통해 이백처럼 살고 싶어 한다. 초나라의 굴원은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 물에 빠져 죽었다. 작가는 자기를 태워버리는 엄격한 명절(名節)보다, 차라리 이백(이적선)처럼 술에 취해 세상의 시름을 잊는 삶을 택하겠다고 선언한다. 또한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보여준다.
후반부의 "미인은 보이지 않고 앞뒤로 맹호와 이무기가 노려본다"는 구절은, 여전히 임금(중종)을 그리워하지만 자신을 모함하는 조정의 정적들과 험난한 유배지 현실을 생생하게 비유하였다. 결국 작가는 태평성대가 오지 않는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시비를 따지거나 하늘에 원망을 묻기보다는 '홀로 술을 마시며 길게 말하기(獨酌長言)'를 통해 생사의 득실을 잊고 자연과 신선의 세계에서 정신적 자유를 얻고자 했다.
●[原文] **「홀로 술을 마시며 길게 말하다(獨酌長言)」** / 이행(李荇 1478~1534)
吾不學屈原 나는 배우지 않으리라 굴원(屈原)이
憔悴江潭遷 초췌한 모습으로 강가에 쫓겨나
獨醒自著漁父篇 홀로 정신 깨어 어부사(漁父詞)를 짓고는 죽어서
死葬魚腹終不悛 물고기 뱃속에 장사해도 후회 않은 것을.
但願學夜郞李謫仙 다만 배우고 싶느니 야랑(夜郞)으로 유배간 이 적선(이백)이
得錢沽酒醉則眠 돈이 생기면 술 사먹고 취하면 잠자며
眼下富貴滅沒雲與煙 눈 아래 부귀는 덧없는 구름과 안개라
仰視日月雙高懸 높이 걸린 해와 달만을 우러러본 것을.
李謫仙上天今千年 이 적선이 하늘로 오른 지 어언 천년 만에
德水子又竄炎海邊 덕수자(德水子, 작가 이행의 호)가 또 남쪽 바닷가로 귀양 왔구나.
炎海邊無酒錢 남쪽 바닷가에는 술을 살 돈이 없어
食貧寂寞枯腸煎 적막하고 가난한 터에 마른 창자 타겠네.
枯腸聲作車輪旋 마른 창자 우는 소리 수레바퀴 달리는 듯,
聖不可企聊希賢 성인(聖人)은 못 바라도 현인(賢人)이나마 갈구하노라.
宛陵方法禮家傳 완릉(宛陵, 매요신)의 술 빚는 법 예가(禮家)에 전해 오나니
必良其器香其泉 반드시 술 그릇이 좋고 향기가 좋아야지.
-매성유(梅聖兪)의 〈술양부(述釀賦)〉에, “반드시 그 술 그릇이 좋아야 하고, 반드시 그 샘물이 향기로워야 한다.[必良其器 必香其泉]”는 말이 있으니, 《예기》에 근본한 것이다(梅聖兪述釀賦 必良其器 必香其泉語 本禮記)-- 매성유가 '양부'를 지었는데, '그릇을 좋게 하고 샘물을 향기롭게 하라'는 말은 본래 『예기』에서 나온 것이다.-
一夜麥浪鳴闐闐 하룻밤 보리밭 물결치고 우레 울리더니
斗屋四面薰風牽 말통만 한 오두막 사면으로 훈풍(초여름 바람)이 불고
況値三五月政圓 게다가 보름날(三五)이라 달이 저토록 밝은데
靑山遠近聞杜鵑 원근의 청산에서는 두견새 울음 들리누나.
老木瓢吾甚憐 고목 표주박을 내가 몹시 아끼노니
手開玄匣親滌湔 손으로 상자를 열어 손수 물로 씻는다.
邇來玆事頗迍邅 근래에 이 술 마시는 일 자못 어려웠는데
對之一笑還依然 표주박 대하고 웃으니 여전히 반갑구나.
玉蛆翁翁星布躔 흰 술거품(玉蛆) 파르스름하고 별이 반짝이니
頭上葛巾安用旃 머리 위에 쓴 갈건을 어디에다 쓰리요,
平生好飮今最顚 평생 술 좋아했지만 지금 가장 취했나니
有似詩癖不可痊 시 좋아하는 성벽(詩癖, 시 짓는 고질병) 못 고치는 것과 같아라.
酌我勸我唯我便 나 혼자서 술 따라 마시니 내가 편하고
我歌我謠我無諐 나 혼자 노래를 부르니 허물이 없어라.
死生得失兩忘筌 삶과 죽음 얻음과 잃음을 모두 잊으니
豪氣欲拍洪崖肩 호기가 일어 홍애(洪崖)의 어깨를 치고 싶어라.
三山螘垤相接聯 삼신산(三神山)은 개미집처럼 서로 나란히 잇닿았고
弱水朝暮生桑田 약수(신선의 강)는 아침저녁으로 뽕밭이 생기는구나.
哀哉名節強包纏 슬프도다, 명절이 억지로 나를 휘감으니
如木出火以自燃 마치 나무가 불 일으켜 자신을 태우는 듯,
百年湖海淸且漣 백 년이라 호해 물결이 맑게도 찰랑이건만
此生已斷朱絲絃 이내 생애에 붉은 현(知音)은 이미 끊어졌어라.
我衣之華兮我佩之蠲 나의 옷은 화려하고 나의 패물 정결하며
美人不見兮空悁悁 미인(임금)을 못 봄이여 속절없이 근심하도다.
後有喬岳兮前深淵 뒤에 높은 산 있고 앞에 깊은 못 있으며
猛虎磨牙兮蛟吐涎 사나운 범 이빨 갈고 교룡이 침 흘리누나(유배지의 험난한 현실).
唐虞三代遠矣邈焉 요순과 삼대의 시대 아득히 멀어졌으니
但飮酒休問天 그저 술이나 마실 뿐 하늘(세상사)에 묻지 말자.
[주1] 야랑(夜郞)의 이 적선(李謫仙) : 이 적선은 이백(李白)을 가리킨다. 이백이 호남성(湖南省) 야랑으로 귀양 갔다.
[주2] 높이 …… 것을 : 이백의 〈상황서순남경가(上皇西巡南京歌)〉에 “젊은 황제가 장안에서 보위에 앉으시니, 한 쌍의 해와 달이 건곤을 비추는 듯.[少帝長安開紫極 雙懸日月照乾坤]”이라 하였다.
[주3] 덕수자(德水子) : 용재 자신을 지칭한 것으로, 그가 덕수 이씨(德水李氏)이기에 이렇게 부른 것이다.
[주4] 성인은 …… 갈구하노라 : 성인은 청주(淸酒)를, 현인은 탁주(濁酒)를 은유한 단어이다. 삼국시대 때 조조(曹操)가 금주령(禁酒令)을 내렸는데 서막(徐邈)이 술에 잔뜩 취하고서, “나는 성인[聖]에 취하였다.” 하였는데, 당시 세상 사람들이 청주를 성(聖)이라 하고 탁주를 현(賢)이라 하였던 것이다.
[주5] 완릉(宛陵) : 매성유(梅聖兪, 송대의 시인 매요신)를 지칭한 말로, 그가 완릉에 살았기에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주6] 갈건(葛巾) : 도연명(陶淵明)이 머리에 쓴 갈건을 벗어서 탁주를 걸러 마셨다함.
[주7] 홍애(洪崖)의 어깨 : 전설상 황제(黃帝)의 신하로서 신선이 된 영륜(伶倫)의 호가 홍애 선생(洪崖先生)이다. 진(晉)나라 곽박(郭璞)의 〈유선(遊仙)〉 시에, “왼손으로는 부구의 소매를 당기고, 오른손으로는 홍애의 어깨를 친다.[左挹浮丘袖 右拍洪崖肩]” 하였다.
[주8] 삼산(三山)은 ……생기는구나 : 삼산은 신선이 산다는 전설상의 산인 삼신산(三神山)이고, 약수(弱水)는 서해(西海)의 이칭(異稱)으로 삼신산의 하나인 봉래산(蓬萊山)과는 거리가 30만 리나 떨어져 있어, 지극히 먼 거리를 표현할 때 봉래약수(蓬萊弱水)라 한다. 이 구절은 역시 취중의 호기를 극도로 묘사한 것으로, 신선이 되어 하늘 높이 오르니 삼신산이 개미집처럼 작아 보이고, 신선의 하루가 인간 세상에서는 장구한 세월이라 약수가 아침저녁으로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바뀌는 것을 본다는 것이다.
[주9] 붉은 현(絃) : 금(琴)의 현을 말한다. 이 현이 끊어졌다는 것은 지음(知音)의 벗이 죽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용재와 막역한 사이였던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의 죽음을 가리키는 듯하다.
○ 내용인즉, 이 시의 행간에 담긴 저자 이행(李荇)의 마음은 한마디로 "세상(조정)에 대한 깊은 환멸과 절망, 그러나 끊어내지 못하는 미련을 '술'과 '초월'로 억누르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첫 단락부터 그가 말하길, 남쪽 거제도로 유배 온 나(이행) 덕수자(德水子)는 굴원처럼 홀로 깨어 있어 어부사(漁父詞)를 짓고 물속에 빠져 죽느니, 차라리 야랑(夜郞)으로 유배간 이백(謫仙)처럼 술과 달과 구름과 해와 안개와 더불어 즐기겠다고 한다. 이에 성인(聖人)은 바라지 못해도 애오라지 현인(賢人)의 법이라도 기약해 보겠다고 읊고 있다.
유배지 거제도에서 저자가 자신의 심정을 언급하길, (1) "명예와 절개가 다 무슨 소용인가"라며 정치적 환멸과 좌절감을 드러냈다. 저자는 갑자사화 등 뼛속까지 시린 정쟁을 겪으며 남쪽 거친 바닷가로 유배를 왔다. 올바른 정치를 하려다 비참하게 죽은 굴원을 보며, "나를 불태워가며 명예와 절개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如木出火以自燃)" 하고 탄식한다. 올바른 가치관이 통하지 않는 어지러운 조정과 세상 권력에 대해 깊은 환멸을 느끼고, 다 내려놓고 싶어 하는 지친 마음이 기저에 깔려 있다. 이어 (2) "앞뒤로 호랑이와 이무기가 노려보는구나"라며 유배지의 고독과 생명의 위협을 밝혔다. "뒤에는 높은 산, 앞에는 깊은 못이 있고 맹호와 이무기가 침을 뱉으며 노려본다"는 구절에서 저자의 극심한 불안감과 고독감이 드러난다. 언제 사약이 내려올지 모르는 위태로운 유배지 환경과 자신을 제거하려는 정적들의 위협 속에서, 굶주림(枯腸)과 외로움에 뼈가 사무치는 처절한 심정으로 잔을 잡았다. 더하여 (3) "원망해도 소용없으니, 신선처럼 잊어버리자"라며 달관을 향한 강박적 초월을 묘사했다. 가장 핵심적인 마음은 '잊으려는 노력'이다. 술잔을 씻어 거품이 이는 술을 마시며 "삶과 죽음, 얻고 잃음을 모두 잊었다"고 외치고, 신선의 어깨를 치며 놀고 싶다고 호기를 부린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토록 격정적이고 길게(長言) 소리 높여 초월을 노래하는 것은, 실제로는 현실의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임금(미인)이 보이지 않아 가슴만 태운다"는 고백처럼, 유교적 지식인으로서 나라와 임금을 걱정하는 마음을 완전히 끊지 못해, 차라리 도가적인 신선 세계와 술의 힘을 빌려 강제로라도 마음을 누르고자 한 것이다. 결국 이 시를 지을 당시 저자 이행은 억울함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현실에서 도망쳐, 술 한 잔에 스스로를 위로하며 '나는 다 초월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최면을 걸면서 길게(長言) 소리 높여 외치고 싶은, 외롭고 서글픈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