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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화 글로벌 하우스 7회 (2~7화). 한 접시씩 한 접시씩 파트럭 파티를 벌이다.
외국인 친구와 함께 살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 가운데 하나가 집에 세계 각국의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어보는 것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예쁜 드레스를 입고 와인 잔을 기울이는 거창한 파티가 아니라(물론 그런 파티도 언젠가는 열어보고 싶지만) 부담 없는 친구들끼리 모여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수다를 떨며 다과를 나누는 조그만 파티 말이다.
미국 유학 갔던 친구가 말해주기를, 외국에서 초대받은 사람들이 음식을 한 가지씩 들고 와서 서로 나눠 먹으며 파티를 한다고 한다. 그런 파티를 파트럭 파티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주인이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감이 없어서 좋고 서로 가져온 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 더욱 즐거운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아그네스에게 그런 파티를 하자고 했더니 좋은 생각이라며 자신도 친구들을 초대하겠다고 했다. 휴도 같이 맞장구치면서 좋아했다.
“누나, 저도 친구들을 초대할게요.”
우리는 각자 7~8명의 친구들을 초대하기로 하고 이 주일 뒤 금요일 저녁 7시로 날짜를 정했다. 남은 시간 동안 어떤 종류의 음식을 만들고 어떤 음악을 틀어야 할지 계획을 세우고, 꽃도 사고, 넓은 접시도 준비하면서 기다렸다. 그런데 아그네스가 갑자기 자기 친구들은 다음에 파티를 하면 그때 초대하겠다고 했다. 고향도 그립고 우울증이 심해져서 친구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내가 파티를 연기해야 하나 고민을 하니까, “나 때문에 계획을 변경하지는 마. 처음으로 친구들을 초대하는 건데 지금 취소하면 언제 또 파티를 하게 될지 모르고”라며 반대했다.
아그네스 친구들이 오지 않으니 내 친구들을 더 부르기로 했다. 나는 그동안 알고 지내던 외국인 친구들을 모두 초대했고, 한국 친구들도 초대했다.
“영어를 못해서 난 아무래도 못 가겠다.”
외국인들이 참석한다는 말에 한국인 친구들이 대거 불참 의사를 밝히는 바람에 친한 내 친구들 가운데 영어가 조금이라도 되는 친구 몇 명과 외국인 친구들이 모였다. 모두 제각각 가져온 한 접시 분량의 음식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먹으면서 자기 소개를 했다.
하버드대를 졸업했다고 자랑하던 사회 친구 미스터 유, 미국인 영어 강사 줄리, 컴퓨터 세일즈를 하는 쿠웨이트 출신의 캐나다인 폴, 프랑스인 모델 리처드와 그의 연인 에이미, 한국에서 경영대학원을 다니는 릴리, 뉴욕에서 온 카피라이터 데이비드 그리고 아그네스와 휴, 휴의 일본인 친구 에이꼬, 나 이렇게 열네 명이 모인 파티였다.
“여기는 한국이니까 한국어로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
한동안 영어로 대화를 나누다 폴이 깜짝 제안을 했다. 모두들 “Great idea!”라고 외치며 아는 한국어를 동원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스타트는 리처드. 그의 연인 에이미가 요리한 야채전에 곁들여 와인을 챙겨 온 그는 맥주를 병째 마시는 데이비드를 보며 “맥주, Beer”라고 말했다. 아랍어, 쿠웨이트어, 영어에 이어 한국어도 제법 잘하는 폴이 “Hello, 안녕하세요”라고 맞받았다. 영어 강사이면서 소설을 쓰고 있는 문학가 줄리도 여유롭게 “We are together, 우리는 함께”라고 했다. 서로 돌아가며 한국어 한마디씩을 하는데 한국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유일하게 이 게임에서 한 마디도 못하고 있던 데이비드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소리쳤다.
“break, 브레키!”
외국인 친구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멀뚱 데이비드를 쳐다보는데 한국 친구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가 그 말을 배웠을 상황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하긴 우리가 사용하는 일본식 발음의 영어가 어디 한두 가지여야 말이지.
데이비드는 우연히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친구다. ICQ 채팅에 흠뻑 빠져 있던 나는 어느 날 뉴욕을 검색해 뉴요커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중 유일하게 관심을 갖고 대답해준 사람이 바로 데이비드였다. 그렇게 ICQ로 대화를 나누다 두 달 후 데이비드는 한국으로 왔다. 그 당시 카피라이터인 그는 자기 작품을 나에게 인터넷으로 보여주었다. TV에도, 잡지 광고에도 그의 카피 문구가 등장하는 멋진 그가 한국에 와서 영어강사를 하고 싶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 계통의 일을 계속한다는 게 너무 어려워서.”
그래서 다른 일을 알아보던 그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국 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며 고민을 계속했다.
“서울은 교통 체증이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어느 정도야?”
“북한과의 관계는 어때? 서울은 안전해?”
“경기도 광명에 있는 한 영어학원과 계약 중인데 광명은 서울에서 가까워?”
그는 틈날 때마다 내게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것을 ICQ를 통해 물었다. 심지어 몇몇 영어학원을 알려주며 어디가 가장 좋은 위치인지 골라달라고까지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결국 잠실 근처의 한 영어학원과 계약해서 서울에 도착했고, 나는 그를 파티에 초대한 것이다.
모델 리처드와 에이미를 처음 만난 건 LG 인턴사원으로 일하던 독일 친구 옌스를 통해서였다. 어느 날 옌스가 함께 식사를 하겠냐고 물어왔고, 한국에서 알게 된 독일계 프랑스 친구와 그의 여자친구가 함께 식사할 거라고 덧붙였다. 그 독일계 프랑스 친구가 한국에서 모델 일을 하고 있다고 내게 살짝 귀뜸해 주면서 말이다. 나는 모델이라는 직업에 호기심이 동해서 나갔다가 그를 만났다. 여자친구 에이미는 한국인인데 대학을 졸업하고 세계를 여행하다 5년 전쯤 미국 라스베이가스에서 그를 처음 만났고, 리처드는 그때 라스베이거스에서 영화 보조출연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금요일 저녁의 파티라 토요일에 일을 해야 하거나, 밤샘을 원하지 않는 한국 친구들은 12시쯤 잠자리에 들었고, 주말에 일이 없는 외국인 친구들은 밤새도록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집 주인이기도 하고, 이런 분위기가 처음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예술적 기질이 다분한 리처드는 자신이 좋아하는 피아노곡을 계속 들으면서 미술 전공자인 나에게 미술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고, 세일즈맨인 폴은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과 국제 매너를 갖추고 파티를 유쾌하게 이끌었다. 쿠웨이트에서 태어난 폴은 부모님과 15형제와 함께 중학교 때 캐나다로 이민 가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인 회사에서 일하다 작년에 한국지사로 발령이 나서 한국에 오게 되었다. 지금은 호주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인터넷 관련 세일즈를 담당하고 있다.
“폴은 굉장한 부자일 거야. 쟤네 나라 남자들은 아내도 몇 명씩 데리고 있을 걸.”
아그네스는 귓속말로 나에게 말했다.
“폴, How many wives do you want?”
내가 묻자 폴은 의외로 아내는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아내 두 명과 결혼하면 인생이 두 배로 힘들어지고, 세 명과 결혼하면 세 배의 고민거리가 생겨요. 우리 삼촌과 친척들을 보면 알 수 있지요.”
폴은 그렇게 말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기 시작했다. 첫 번째 파티는 그렇게 끝이 나고 있었다.
“초대해 줘서 고마워.”
“너무 따뜻하고 즐거운 파티였어.”
“다음 파티에도 꼭 초대해줘.”
모두들 그렇게 인사를 하고 아침 7시가 되어 집을 나섰다.
모두 돌아가고 날이 환히 밝은 방에 누우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내 집에서 세계 여러 나라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새벽까지 음악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사람이었는데…. 외국인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영화 속이나 길거리에서 잠시 지나치는 타인으로만 여겼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그들과 밤을 지새우며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너무너무 신나고 즐거운 파티였다. 평생 잊지 못할 첫 번째 파티로 기억되겠지 ….
글로벌 하우스 7회 (2~8화). 어휴~ 휴, 너는 그만 이 집을 떠나다오
휴의 행동에 아그네스와 나는 점점 피곤해지고 있었다. 자고로 집이란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곳인데 휴의 엽기적인 행동 때문에 집에 있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컴퓨터에 인터넷 선을 연결해야 돼서 용산전자상가 다녀올게요.”
나는 그런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회사에 다녀왔다.그런데 아뿔싸, 집에 돌아와보니 온 거실 바닥에 전선이 어지러이 엉켜 있는 것이 아닌가. 휴의 방문을 노크했다. 전선들이 엉켜 있는 것은 그의 방도 마찬가지였다. 엉켜진 전선뿐만이 아니었다. 방 여기저기 널브러진 책과 더러운 양말과 가방들…. 그런 난장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휴는 인터넷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세상에, 5미터만 사 와도 될 전선을 족히 100미터는 사 온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휴의 뇌는 정상이 아니었다. 아그네스가 들어와서 이것 보면 최소한 기절이었다.
“휴! Come here, right now! We need to talk.”
나는 휴를 앉혀놓고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절대 자기 물건을 집안에 늘어놓지 말 것. 공용 공간을 다른 사람 불편하게 어지르지 말 것. 가끔은 방 청소를 할 것. 함께 있을 때는 한국어나 영어만 사용할 것. 그리고 아침에는 10분 이상 화장실 사용하지 말 것. 샤워는 되도록 저녁 시간에 할 것. 집에 들어오면 서로 인사할 것 등등. 휴와는 거의 한국말로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을 편하게 요구할 수 있었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I can not live with you. Do you understand?”
나는 마지막으로 따끔하게 못을 박았다.
“알았어요, 누나.”
휴는 다소곳하게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가서 꼼지락거리면서 뭔가를 했다. 알고 보니 내가 말한 사항들을 한자와 한글을 섞어 커다랗게 적어서 자기 방에 붙여놓은 것이다. 기특한 것! 나는 휴의 행동이 이제야 달라지겠거니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사람 천성이 어디 하루아침에 바뀌랴!
아그네스는 휴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것 같다면서 집주인인 내가 최후의 조치를 취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나는 어린 녀석이 상처를 받을까봐 도저히 그에게 나가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도 닦는 심정으로 인내를 거듭했다. 결국 아그네스는 휴와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고 아예 피해버렸다. 그러니 나는 휴가 실수를 할 때마다 아그네스가 스트레스 받을까봐 그게 더 걱정되었다.
그즈음 아그네스는 불면증에다 호주에 대한 향수병으로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파란 바다와 광활한 자연이 있는 따뜻한 호주가 그리워.”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렇게 말하곤 했다. 하긴 처음으로 집을 떠나 낯선 나라에서 반년이 넘도록 지내고 있으니 병이 날 만도 하다.
휴는 아그네스에게는 꼼짝도 못하고 눈치를보면서도 나만 보면 “누나! 누나!” 하면서 졸졸졸 따라다녔다. 그런 휴가 측은한 기분이 들어서 맘 약한 나는 어느날 “고기를 한 번 먹어야겠어”
하고 넌지시 말했다. 내 말에 휴는 두 눈을 강렬하게 빛내며 “누나, 이번엔 개고기 먹으러가요” 하고 입에 군침까지 흘리며 말하는 것이었다.
“휴! 너 개고기 먹어봤니?”
“네… 아주 맛있어요. 아주아주 맛이 좋아요!”
그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 살던 집에서 아저씨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개고기를 먹으러 갔었단다. 게다가 1인분으로는 부족해서 보통 2인분씩 먹어야 식당을 나왔다고. 그는 개고기를 ‘남자 음식’이라고 말하며 웃었지만 그래도 살짝 걱정이 되었나보다.
“저는 개고기가 아주 맛있는데, 연세어학당에서는 제가 개고기 먹는 것 아무도 몰라요. 왜냐하면…. 외쿡이니 음… 캐고기 멍눈다고 하며는 음… 타들 이쌍하다코 생각 마니 해요. 그러키 때무내… 말하면 나뿐 코에요….”
휴, 너는 그게 아니어도 너무 이상한 놈인 것 다들 알 텐데….
내가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자 휴는 그제야 걱정이 됐는지 애처롭게 부탁한다.
“아그네스한테는 비밀…이에요.”
어쨌든 그는 한국인은 모두 개고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나보다. 하여튼 별나다 별나. 한국 사람들도 일주일에 한 번씩 개고기를 먹으러 가지는 않을 텐데.
함께 산 지 보름도 안 된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의 엽기 행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를 내보내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날 아침 우연히 싱크대에서 머그잔을 발견했다. 내가 아끼는 하얀색 머그잔이었는데. 머그잔 안에 이상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콜라 같기도 하고 와인 같기도 한 액체였는데 그 정체를 모르겠어서 한참 동안 흔들어보기도 하고 냄새도 맡아보다가 급기야 그게 뭔지 알고는 기겁을 했다.
휴가 며칠 전에 사랑니를 뽑았는데 사랑니를 뽑고 난 후 피가 섞인 침을 내 머그잔에 뱉어 놓았던 것이다. 난 그 사실을 알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순간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것이 폭발했다.
휴가 문을 잠그지 않고 나가서 아무도 없을 때 문이 열려 있는 집에 들어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때도 참았고, 녀석이 정신없이 거실을 뱅글뱅글 돌아다닐 때도 참았고, 원자폭탄 맞은 꼴로 방을 어지르고 살 때도 참았다. 하지만 이번만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당장 휴를 불렀다.
“너, What is this?”
내가 화를 삭이면서 묻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고작 “미안해요… 씻어놓을게요”가 다였다. 도대체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거의 발작을 일으키다시피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네가 부엌에 테러를 저질렀어! 알기나 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컵에 이런 식으로 침을 뱉었니? 내가 이걸 보고 어떻게 그릇을 안심하고 사용하겠니? 침은 휴지에 뱉으면 되지 왜 다 함께 사용하는 컵에 뱉은 거야? 이 집에 있는 컵 다 버려야 되잖아!”
난 똑같은 디자인의 하얀 머그잔 다섯 개 세트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고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동안 휴가 내가 모르는 이상한 짓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을지를 생각하니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마 학교에 폭탄을 터뜨린 것도 쟤가 한 걸 거야. 어쩌다 저런 사이코와 한 집에서 살게 됐지? 그야말로 그날 내 기분은 하루종일 엉망이었다.그를 불러 말했다.
하지만 저녁때가 되자 내 마음도 다소 진정이 되고 어린 나이에 낯선 나라에 살고 있는 휴가 불쌍한 마음도 들어 조용히 그를 불러 말했다.
“휴, 함께 살 때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는 거야. 누나가 아침에 소리 지른 건 미안해. 하지만 나도 너무 화가 나서 그랬으니까 니가 그 점은 이해 해줘.”
그날 저녁 나는 오랫동안 그에게 단체생활과 신뢰받는 사람의 행동. 그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다른 문화에 대처하는 방법들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아그네스나 나나 직장을 다니고 있고 또 여자이기 때문에 너와 공통점이 별로 없는 것 같아. 학교 근처의 하숙집으로 옮기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 더 나을 것 같다. 좋은 하숙집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게.”
“저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 준 거 미안해요. 일본인 친구가 살고 있는 하숙집으로 옮길게요.”
이렇게 해서 휴와의 짧은 동거 생활도 마쳤다. 매일 인터넷으로 북한 뉴스를 찾아보고.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여중생의 안타까운 사건이 있은 후에는 광화문에 가서 촛불시위에도 참가하고, 한국식으로 절까지 하던 휴와 함께 살았던 기간은 겨우 보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때의 인연으로 우리는 종종 MSN으로 따뜻한 인사를 나눈다. 학구열 하나는 뛰어났던 그는 이제 완벽한 한국어에 고사성어까지 구사하며 나를 놀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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