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 추억 #68, 이단사이비의 불가사의 (Ⅰ) - 계시
나는 북한의 내무성에 소속된 제 2여단 제 1대대 제 3중대장으로서 1947년 5월부터 황해도 해주에서 철도보안대의 임무를 맡고 있었는데 그해 12월 1일 같은 여단의 제 2대대장으로 승진발령을 받아 황해도 사리원의 큰 기지로 옮겼다. 일본의 조선통치시대에 만주 신경(현재 중국)의 공업전문학교 토목과를 졸업한 나는 만주국 관사(길림성)를 거쳐 일본군의 공병대 중위로서 중대장으로 근무한 경험도 있고 북한에서는 말하자면 엘리트로서 장래가 촉망되어 있었다. 그런데 착임해서 얼마 않되는 5월 7일 엉뚱한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제 2대대의 제 3중대장으로서 황해도 신막에 근무하고 있던 허정이란 사람이 엉뚱하게도 군의 차량으로 상인들의 물자를 수송해 주고 돈을 받기도 하고 여성들의 모발등 북의 상품을 남쪽 한국측에 파는 암매상에 협력하고 있던 사실이 발각된 것이다. 체포된 허정은 2월 2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고 또 대대장인 나는 부하의 부정 행위에 대한 감독 불충분이란 것으로 책임을 물어 직무태만죄로 징역 3년형에 선고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평양 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흥남 특별 노무자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1949년 2월 2일 35세 때의 일이다.
죄수들은 두사람씩 손을 묶고 4열로 나란히 정면에서 부터 나가기 시작하였다. 정면 좌우에는 간수가 줄지어 늘어싫고 완장을 단 "총반장"이 죄수들을 점검 인수하였다. 두사람씩 손을 묶게 하는 것은 역시 도망방지 때문인 것이다. 수용소에서 조선 질소 비료 주식회사(구 일본질소) 흥남 공장까지는 약 4킬로의 거리가 된다. 이날부터 비가 오나 눈이 쌓이거나 우리들은 매일 걸어서 감옥과 공장을 왕복하게 된 것이다. 우리들은 횐 암모니아비료 가루가 산처럼 괌인 곳에서 10인 1조가 되어 비료포대의 가마니에 하루, 1,300포대를퍼 넣어야 하는 책임량(노루마)을 할당받았다. 산더미 같은 비료앞에 저울이 놓여 있고 공장측의 검량원이 중량을 달기 위해서 앉아 있다.
나의 작업은 여전히 서틀러서 차마 볼수없던지 조장이 가마니의 아구리를 벌리는 일이나 삽으로 비료를 가마니에 퍼 놓는 일로 돌려 주었으나 어느 것이고 제대로 익숙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40키로의 비료가 든 가마니의 짐 꾸리기로 악전고투하고 있는 내 옆에 10인의 조원 가운데서도 훨씬 건장해 보이는 30세가량의 사나이가 와서 "가르쳐 드리지요"하고 말했다. 그는 익숙한 솜씨로 자기의 일거리를 가볍게 해치우면서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나는 더욱 일에 익숙해져서 훌릉하게 해 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다행히도 건강해서 힘은 있었으므로 몇일 동안 계속해서 가르쳐 주는 바람에 그럭저럭 한사람 몫의 작업 책임량을 해낼 수가있게 되었다. 이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었다.
그는 나보다 반년정도 먼저 흥남감옥으로 후송되어 온 듯해서 소내의 사정이나 물물교환으로 살아가는 지혜등 여러가지를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지옥에서 부처님 만나기란 바로 이런 것인가. 나는 괴롭고 쓰라린감옥의 중노동속에서 비로서 따뜻한 사람의 마음씨에 접하게 되었고 절망속에서 어렴풋이 희망이 보이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과는 방이 달랐으므로 작업이 끝나고 만원이 된 방으로 돌아오면 공복의 쓰라림과 잠을 푹 자지 못하는 괴로움이 있었다. 그래도 아침이 되어 비료공장의 일터로 나가면 그 사람과 같이 일을 할 수있다. 지옥과 같은 곳에서나마 서로간에 마음을 주고 받을 수가있게 되었으므로 한 시간이라도 빨리 일터로 나가는 것이 기다려지곤 했다.
아침 8시 운동장으로 나가면 나는 서둘러서 그 사람을 찾아서 그뒤에 앉는다. 점검이 끝나면 그사람과 2인 1조가 되어 비료공장까지 손을 묶고 걸을수가 있다. 지금까지는 비오는 날 같은 때는 그야말로 죄수생활의 비참함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도보행진이었는데 어느새 나에게는 그 사람과 매일 아침 만나서 함께 일을 하는 것이 옥중에서 그나마 즐거운 일과였다. 이렇게 20일 정도 지난 어느날 초반, 회색 옷에 갓을 쓴 백발노인이 꿈속에 나타나 나의 이름을 부르며, "네가 매일 함께 도와주고 거둬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고 물었다. 나는 "그 분은 무척 친절하고 좋은 분이므로 함께 지내고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노인은 "그분은 네가 어릴때부터 배워 온 성경에 장차 이세상에 오신다고 가르쳐 온 재림주(메시아)이시다"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나는 황급히 일어나서 사방을 둘러 보았으나 깊은 잠에 떨어진 동료들이 있을 뿐 노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예수님이 겟세마네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하고 골고다의 언덕에서 십자가에 지워져서 돌아가신 후 삼일 후에 부활되어 40일간 이곳 저곳에서 재림하였다. 그리고 감람산(성경에 나오는 산)에서 여러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실 때 예수님은 "너희들은 어찌하여 하늘을 처다 보는가, 나는 이처럼 하늘에 오르는 것과 같이 머지 않아또 재림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사람이 바로 재림주라고 하는 꿈이 마음에 걸려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침이 되도록 생각하고 있었으나 복잡한 심경으로 조반을 마쳤다.
나는 어느 때와 같이 운동장으로 나아가 그사람 뒤에 앉았다. 그리고 간밤의 꿈 이야기를 해서 무슨 일인가를 물어 보고자 하였다. 그런데 내가 말을 걸기 전에 그가 별안간 돌아보면서 "간밤에 꿈을 꾸었지요 꿈속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말 하던가요"라고 묻는 것이다. 어떻게 그가 알고 있는 것인지 이상 하였지만 나는"재림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라고 답하였다. 그때부터, 이 사람은 29세로 나이로는 7년이나 손아래 이었지만 반드시 "선생"이라고 존경해서 부르게 되었으며 그 사람도 "정화"라고 나의 이름을 불러서 점점 친근감을 느끼면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 사람이 죄수번호 596을 단 문용명 이었다.
문선명이 북에서 남으로 내려 와서 이름을 바꾼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성경의 「요한계시록 12:91에 이 세상에는 끝날에 붉은 용이 나타나서, 이세상을 미혹케 한다고 씌어져 있다. 자기의 이름에 용(龍)이 들어있는 문용명(文龍明)은 그것에 착안해서, 서둘러 이름을 문선명으로 바꾼 것이 었다. 이것은 자기가 붉은용=사단 임을 인정 한것이 된다. 나 자신의 부끄러움을 천하에 내밝혀 쓴 이 고백에 거짓은 없다. 문선명이야 말로 진짜 사단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이 붉은용 문선명으로 인해서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들이 이 이상, 기만 당하거나 희생되는 것을 방지 하기 위해서 나는 이 원고를 목숨을 걸고 발표 할 결심을 한 것이다.
(네이버/검색-박정화著 야록통일교회사)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