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조선의 실상이었다.🔊⛑
- "일본간첩(日本間諜)의 조선정탐록(朝鮮偵探錄)"
'조선(朝鮮) 잡기'의 사료적(史料的) 가치(價値) - 일본인(日本人) 들에게 '조선(朝鮮)의 이미지'를 심어준 책(冊).
1893년(年) 일본(日本) 공무원(公務員) 혼마 규스케(本間九介)는
조선(朝鮮) 땅에 파견(派遣)되어 전국(全國)을 돌면서 이곳저곳을 정탐(偵探)하게 되는데 그 내용(內容)을 모아 1894년(年)에 신문(新聞)에 연재(連載)하고 다시 한 권의 책(冊)으로 묶어서 간행(刊行)했으니, 그것이 바로'조선(朝鮮) 잡기'라는 책(冊)이었다.
책(冊) 내용(內容)을 보면
당시(當時) 조선(朝鮮)의 무능(無能)함+낙후(落後) 함+불결 (不潔)함 +부패(腐敗)한 모습(模襲)이 적나라(赤裸裸)하게 묘사(描寫)되어 있는데 사료적(史料的)인 가치(價値)는 상당(相當)한 책(冊)으로 인정(認定) 받고 있다. 특(特) 히 이 책 내용(內容) 이 향후(向後) 일본인(日本人)들에게 조선(朝鮮)에 대한 고정(固定)된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지대(地帶)한 공헌(貢獻)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알면 유용(有用)하다) 몇 가지 인상(印象) 깊은 내용(內容)을 뽑아봤다.
🕹조선(朝鮮)은 어떤 나라인가?
01. 언어(言語)와 문장(文章)
언어(言語)는 전국(全國) 모두가 같다. 다만 지역(地域)에 따라 억양(抑揚)과 사투리의 차이(差異)가 있을 뿐이다. 그렇더라도 일본(日本)과 비교(比較)하면 사투리의 지역(地域) 차이는 심(甚) 하지 않다.
가령 함경도(咸鏡道) 사람과 전라도(全羅道) 사람이 상봉(相逢)
하더라도 가고시마 일본(日本) 남부(南部)와 이와테 일본(日本) 북부(北部) 사람이 상봉(相逢)하는 것처럼 기이(奇異)한 상황(狀況)은 발생(發生) 하지 않는다.
02. 한글의 교묘(巧妙)함
'언문(諺文)'이란 곧 조선(朝鮮) 문자(文字)를 말한다. 교묘(巧妙)한 것은 서양(西洋)의 알파벳을 능가(凌駕)한다.
조선인(朝鮮人)들은 실로 이와 같이 교묘(巧妙)한 문자(文字)를 가지고, 왜 고생스럽게 일상(日常)의 서간문(書簡文)에까지 어려운 한문(漢文)을 사용(使用) 하는지 의문(疑問)이다.
이와 같이 교묘(巧妙)한 문자(文字)도 겨우 중(中)하층(下層) 사회(社會)에서나 사용(使用)될 뿐이다.
03. 가야(伽倻)라는 국호(國號)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수로왕(首露王)이 도읍(都邑)한 땅으로 국호(國號)를 '가락(駕洛)'이라고 부르고, 대(大) 가야(伽倻), 소가야(小伽倻), 고령가야 (高靈伽倻)등의 5가야(伽倻)를 지배(支配)했었다.
바다를 낀 이 지역(地域)은 일본(日本)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진구 황후(皇后)가 삼한(三韓)을 정벌(征伐)하기 위(爲)해 보낸 군대(軍隊)는 틀림없이 여기에 상륙(上陸)했을 것이다.
가락(駕洛)은 곧'가라(伽羅)'다.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外國)을 가리켜 '가라(伽羅)'라고 부르는 것은 아마도 여기서 기원(起源)했을 것이다.
04. 독립(獨立)한 적(的)이 드물다.
일본(日本)사람들은 흔히
조선(朝鮮)은 지금(只今) 비록 쇠미(衰微) 해지기는 했지만 4천 년(千年)의 오랜 역사(歷史)를 지닌 국가(國家)로서 경외(敬畏) 시 한다.
하지만 실상(實狀)을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문물(文物), 제도(制度), 기계(機械), 공예(工藝) 하나같이 사람의 시선(視線)을 끌만한 것이 없다. 거의 아프리카 오지(奧地) 탐험(探險)을 연상(聯想)시키게 한다.
조선(朝鮮) 역사(歷史)를 탐독(耽讀)해봐도 그렇다.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지금(只今)까지 줄곧 다른 나라에 속박(束縛)되고 상대(相對) 하지 않았던 시절(時節)이 드물다.
진정(眞正)으로 독립(獨立)한 적이 있었는지 의문(疑問)이다.
05. 대(大)·중(中)·소화(小華)사상(思想)
조선(朝鮮)의 선비는 중국(中國)을 항상(恒常)'중화(中華)'라고
말하고 스스로는 '소화(小華)'라고 부른다.
그런 조선(朝鮮) 사람들은 나에게도 묻는다.
조선인(朝鮮人)"일본(日本)은 어떻게 부르는지?"
혼마"대화(大和)"이렇게 말하면 곧 나를 꾸짖는다.
조선인(朝鮮人)"이런 오만방자(傲慢放恣)한 지고"
하지만 오만(傲慢)하여 자랑하는 것과 비루(鄙陋) 하여 주눅 든 것 중에 어느 것이 나은가?
그들은 이렇게 박식(博識)한 척하면서 설명(說明)한다.
조선인(朝鮮人)"중국(中國)을 중화(中華)라고 칭(稱)하는 것은 대중소(大中小)의 뜻이 아니라, 가운데 위치(位置)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임."
그렇게 책망(責望)하면 나도 한마디 한다.
혼마"그렇다면 조선(朝鮮)은 왜 소화(小華)를 칭(稱)하는가?"
그러면 조선(朝鮮) 사람들은 아무도 말을 못 한다.
06. 기후(氣候)
조선(朝鮮)은 일본(日本)과 위도(緯度)가 같다. 그러나 강수량(降水量)은 대개 일본(日本)보다는 적다.
그리고 무척이나 춥다.
전라도(全羅道)와 경상도(慶尙道) 지역(地域)은 일본(日本)과 비슷한 기후(氣候)를 느낄 수 있지만 충청도(忠淸道) 위쪽으로 가면 기후(氣候)가 변(變)하여 급격(急擊) 히 추위를 느끼게 된다.
겨울이면 서울은 도로(道路)가 얼어서 봄에 얼음이 풀리는 때에 가옥(家屋)이 경사(傾斜) 지는 경우(境遇)도 매우 많다.
🕹조선인(朝鮮人)들의 기질(氣質)
07. 무사태평(無事泰平) : 느려터진 사회(社會)
일본(日本)의 목수(木手) 라면 반나절 걸려서 할 수 있는 일은 조선(朝鮮)의 목수(木手)는 3,4일 걸리는 것이 보통(普通)이다. 시간(時間)에 쫓기는 바쁜 삶이 없기 때문이다.
느리게 살아가는 것은 책망(責望)할 일은 아니지만, 외국인(外國人)들이 보기에 분명(分明) 화(禍)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08. 매운 음식(飮食)
조선(朝鮮) 사람들은 매운 것을 좋아한다. 생선(生鮮) 국, 된장국 등(等)을 조리(調理) 하는데, 모두 고추 혹은 고춧가루를 넣는다.
어린아이들은 생강(生薑) 혹은 무를 씹어,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는데
마치 일본(日本) 아이가 사탕(砂糖)을 먹는 것과 같았다. 타고난 취향(趣向)이라고 해도 자못 기이(奇異)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09. 싸움
조선(朝鮮) 사람들은 작은 일로 싸움을 시작(始作) 하면 서로 마음이 격앙(激昻) 되어 입에 거품을 물고 설전(舌戰)하는 것도 잠시(暫時), 서로 갓을 벗고 상투(上頭)를 잡아당기며
한바탕 육박전(肉薄戰)을 치른다. 하지만 크게 치고받고 하지는 않는다. 마지막은 언제나 옷이 찢어지고 그러면 옷값을 물어내라고 하는 수순(隨順)이다.
10. 담배 사랑
조선(朝鮮) 사람들은 담배를 매우 좋아한다.
3척(尺)(90cm)이나 되는 담뱃대를 걸어갈 때나 집에 있을 때나, 앉아서 누워서, 일을 쉬거나 침묵(沈黙)하는 사이에도 손에서 놓는 일이 없다.
심지어(甚至於) 목욕탕(沐浴湯)에서도 그런다. 일본인(日本人) 거류지(居留地)에 목욕(沐浴)하러 오는 조선인(朝鮮人)들이 있는데 이들은 탕(湯) 안에 들어가서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신분제(身分制) 사회(社會)
11. 예의(禮儀)가 바른 나라?
조선(朝鮮)과 같이 계급사회(階級社會)의 나라에서는 언어(言語) 행동(行動)에도 자연(自然) 히 계급(階級)이 있다.
예(豫)를 들면 '오라'라는 말에도 아래와 같은 여러 가지의 사용법(使用法)이 있다.
이리 오너라 :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
이리 오시오 : 같은 무리에게 하는 말
이리 오십시오 : 높은 사람에게 하는 말
이런 계급(階級) 사회(社會)의 모습(模襲)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상민(常民)들은 양반(兩班) 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고 앉으라는 명을 받지 못하면 앉을 수도 없고 도로변(道路邊)에서 이름 모를 양반(兩班)이라도 걸어가면 담배를 뒤로 감추고 지나가는 것을 기다려야 했다.
일본(日本) 사람들은, 조선(朝鮮)을 흔히 예의(禮儀)의 나라라고 하지만 실은 계급(階級)의 나라였다.
12. 노예제도(奴隸制度) : 노비(奴婢)
조선(朝鮮)의 사정(事情)을 깊이 조사(調査)할 때
실(實)로 놀랄만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조선(朝鮮)의
노예제도(奴隸制度)다. 조선(朝鮮)에서는 양반(兩班)이라면 모두 '노비(奴婢)'라는 노예(奴隸)를 데리고 있었다. 이들은 봉급(俸給)을 받고 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