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5. 10
지난 서울 및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미디어 영역의 문제를 일깨워주었다. 낮은 품질의 편향적 보도를 일삼는 공영방송 문제다.
우리 사회의 공영방송이 보수·진보 정부를 불문하고 정치권력에 휘둘려왔음은 기지(旣知)의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야당 시절 이 문제를 강하게 질타했고 공영방송 개혁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지난 보궐선거는 공영방송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 그 한계를 보여주었다.
교통방송(TBS)의 시사 프로그램인 ‘뉴스공장’의 엇나간 행태에 대해선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애초에 공정이나 균형은 안중에 없이 음모와 선동으로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제멋대로 방송이다. 하지만 국가 기간 공영방송을 자부하는 KBS의 저급한 선거 보도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중도 성향의 KBS 노동조합(1노조)이 이를 지적하고 나섰다. 그에 따르면 지난 선거에서 KBS는 신뢰하기 어려운 비상식적 증언이나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근거해 내곡동이며 엘시티 의혹을 부각시켰다. 민주당은 이 보도들에 기대어 상대 후보를 물고 늘어지는 네거티브 유세로 일관했다. “KBS는 선거판에서의 언론의 역할,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한 전대미문의 부정적 사례를 만들면서 이번 선거를 마무리했다.”(4월 8일 자 성명서)
이제 TBS로부터 KBS에 이르기까지 공영방송은 한국 사회의 정치적 소통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일차적 요인이 되고 있다. 이 문제를 방치한 채 내년 대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그간 수많은 공영방송 개혁 논의들이 있었지만 뾰족한 답이 제시되지 못했다. 필자는 그 이유가 다음 두 가지 오류에 기인한다고 본다.
첫째, 목표 설정 차원의 문제다. 공영방송 개혁의 목표로 흔히 정치적 중립이 제시된다. 하지만 무엇이 중립인가. 이 목표는 역사상 어떤 공영방송에 의해서도 제대로 실천된 적이 없다. 이는 독립적 거버넌스 구축 및 재원 마련을 통해 성역 없는 권력 비판을 지향하는 공영방송 제도 설계의 취지와도 거리가 멀다.
둘째, 방법론의 문제다. 지금까지의 공영방송 논의는 이사회 구성 방식이나 사장 선출 방식 등 위에서 아래로의 하향식 제도 개혁에 집중했다. 이 논의들이 간과한 것은 법 제도 개정은 최종적으로 정치권력의 손을 거친다는 점이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듯 공영방송 문제의 해결을 그 원인 제공자인 정치권력에 떠넘긴 셈이다.
공영방송 개혁 논의가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이 오류들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선 목표 차원에서 비현실적이고 맥락 없는 정치적 중립은, 자유롭고 치열하되 원칙을 준수하는 ‘고품질 저널리즘의 추구’로 전환되는 게 옳다. 또한 방법론 차원에서 권력 개입이 불가피한 하향식 제도 개혁은 ‘아래로부터의 개혁’으로 대체될 필요가 있다.
이때 중심 키워드는 규범이다. ‘민주주의’ ‘정치적 독립’ ‘공정성’ ‘사실성’처럼 생명과도 같은 언론의 가치들이다. 우리 공영방송에서 이 규범적 가치들은 형식적 구호에 머물렀다. 미디어 빅뱅 시대, 공영방송의 위상과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이 가치들은 아예 허물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윤리·법규가 지켜지지 않는 상태를 넘어, 일선 기자·PD들이 역할에 대한 인식과 소명을 상실한 상태를 의미한다. 무엇이 공영방송의 책무인지, 취재·보도하는 문제를 어떤 맥락에서 접근할지, 애초에 무엇이 취재·보도할 가치가 있는 사안인지 분간 못 하는 상태가 그것이다. 참사 수준의 “생태탕” “흰 셔츠에 선글라스” “페라가모 구두” 보도는 그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이 문제는 정치권력 및 그 낙하산을 타고 내린 수뇌부가 주도하는 제도 개혁을 통해선 해결될 수 없다. 부서·팀·직능 단체 단위로 잔뼈가 굵듯 전문직 규범이 복원되어야 한다. 동시에 규범적 공감대를 기반 삼아 오랜 기간 공영방송을 파행으로 이끈 성원들 간의 반목과 갈등이 극복되어야 한다. 이처럼 아래에서 시작되어 옆과 위로 확장되는 개혁을 통해, 궁극적으로 권력의 필요에 정론 보도를 희생시킨 정권 방송, 경직된 투쟁의 논리에 다양성과 활력을 희생시킨 노영 방송을 넘어서야 한다.
진통이 적지 않겠지만 공영방송을 바로 세울 길은 이것뿐이다. 이제 국민들은 공영방송이 왜 필요한지 반문한다. 존재 자체를 망각해 가고 있다는 게 보다 정확한 지적이다. 구성원들이 하나 되어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때, 공영방송은 머지않아 실패한 제도적 실험으로 폐기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윤석민 /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