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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20.녹담만설
▲ 한겨울 눈 덮인 백록담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영주십경·탐라십경 등 정의 달라도 백록담 만설은 빠지지 않아
'여름까지 남은 눈'…한겨울 하얀 눈 덮인 한라산도 꼭 가볼만
#눈 가득 ‘滿雪’여름 눈 ‘晩雪’
이제 얼마 없으면 제주도 산악인들이 한라산 어승생악에 모여 한라산만설제(滿雪祭)를 올린다. 만설제는 1974년부터 열리기 시작했는데, 당초에는 산악인들의 적설기 훈련의 일환으로 산 정상에서 열려고 했으나 일반 등산객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어승생악을 택하게 되었다.
육지부 산악 단체들이 연초에 시산제를 올리듯 조국의 평화통일과 산악인들의 무사 산행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주산악회 주관으로 열리는데 도내 산악인은 물론 육지부에서도 많은 산악인들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를 끈다.
흔히들 한라산에서 만설이라 하면 산악회의 만설제보다는 영주십경의 하나인 녹담만설을 연상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잘못 소개되는 내용 중 하나. 만설제의 만설과 녹담만설의 만설은 그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다. 만설제(滿雪祭)에서 만설은 눈이 가득한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녹담만설(鹿潭晩雪)에서의 만설은 늦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한겨울이 아닌 여름 무렵에 남아있는 백록담의 눈을 말한다.
#열가지 아름다움 ‘영주십경’
녹담만설을 비롯한 영주십경(瀛洲十景)은 조선 순조 때 매촌(梅村: 제주시 도련동)에 살았던 매계 이한우(梅溪 李漢雨, 1818-1881) 선생이 자연의 변화 순서에 따라 제주의 경관을 정리한 것이다. 영주십경이란 제주의 다른 이름인 영주, 즉 신선이 사는 물가의 열 가지 아름다움이라 해석된다. 그 순서는 성산출일(城山出日), 사봉낙조(沙峰落照), 영구춘화(瀛邱春花), 정방하폭(正房夏瀑), 귤림추색(橘林秋色), 녹담만설(鹿潭晩雪), 영실기암(靈室寄岩), 산방굴사(山房窟寺), 산포조어(山浦釣魚), 고수목마(古藪牧馬)로 이어진다.
제주의 열군데 아름다움을 시로 노래한 이는 이한우가 처음은 아니다. 숙종때인 1694년 목사로 왔던 이익태(1633-1704)는 그의 저서인 지영록에서 조천관, 별방소, 성산, 서귀포, 백록담, 영곡, 천지연, 산방, 명월소, 취병담을 탐라십경(耽羅十景)으로 꼽고 있다. 특히 이익태목사는 63세의 나이로 한라산을 두 번이나 올랐는데 그 아름다움에 반해 탐라십경도라는 이름의 병풍을 만들기도 했다. 화가의 그림 위에 해설을 가미한 형태다. 탐라십경도는 이형상목사 당시의 탐라순력도보다 불과 8년 앞서 그려진 것으로, 둘의 기법과 구도 등 화풍이 비슷하다. 탐라순력도의 경우 김남길이 그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반해 탐라십경도는 화가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아 아쉬움을 주고 있다.
1702년 제주목사로 왔던 이형상은 병와문집에서 한라채운, 화북제경, 김녕촌수, 평대저연, 어등만범, 우도서애, 조천춘랑, 세화상월을 팔경으로 꼽기도 했다. 철종때 영평리의 소림 오태직은 한라산에서 바라보는 바다(나산관해), 영구의 늦은 봄(영구만춘), 영실의 개인 아침(영실청요), 사봉낙조, 용연야범, 산지포의 배(산포어범), 성산출일, 정방사폭 등을 8경이라 하여 노래하기도 했다.
1841년 제주목사로 부임해 1843년까지 머물렀던 이원조(1782-1871)는 탐라록에서 영구상화, 정방관폭, 귤림상과, 녹담설경, 성산출일, 사봉낙조, 대수목마, 산포조어, 상방굴사, 영실기암을 십경으로 노래했다. 특히 이원조목사는 영주십경을 노래한 이한우와 비슷한 시기에 부임했음을 감안하면 누가 먼저 영주십경을 노래했는지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다만 이원조목사가 제주를 떠날 때인 1843년의 경우 이한우의 나이가 25세임을 감안한다면 이원조목사가 먼저 정의내리지 않았을까 여길 따름이다.
영주십경과 관련하여 오문복선생은 명칭이나 차례를 바꿔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즉 성산출일을 성산일출로 바꾸면 사봉낙조와 대구가 맞지 않아 시의 흥취가 사라진다는 얘기다. 영주십경에 서진노성(西鎭老星)과 용연야범(龍淵夜泛)을 더하여 영주시이경이라 하는 것 또한 옥에 티끌을 붙이는 셈이라 지적하고 있다.
#백록담 눈 오뉴월까지 남아
다시 백록담의 여름철 눈을 노래한 녹담만설(鹿潭晩雪)로 돌아가 보자. 이익태목사는 탐라십경에서 백록담(白鹿潭) 자체를, 이형상목사는 한라채운(漢拏彩雲)이라 하여 한라산에서의 채운현상 즉 구름자체에 색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양광의 회절에 의해 매우 선명하게 색이 붙어 보이는 현상을, 이원조목사는 녹담설경(鹿潭雪景)이라 하여 백록담의 눈 덮인 모습을, 이한우는 백록담의 여름철 눈을 노래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시의 의미를 무시하고 내용 자체만을 볼 경우 이원조목사의 녹담설경이 제일 먼저 와 닿을 것이다. 여름철에 백록담에 눈이 있다고 한들 얼마나 있겠느냐 하는 의문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백록담에 눈은 언제까지 남아있을까? 1601년 백록담에 오른 김상헌은 남사록에서 5월에도 쌓인 눈이 아직 있고, 8월에도 갖옷을 덧입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김상헌이 백록담을 찾은 9월에 아침 서리가 눈과 같고, 백록담의 물은 얼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는 현지 주민들에게 물어 일찍 추위가 오는 해는 8월에 눈이 내리고, 겨울철이 되면 매일 눈이 오기 때문에 그늘진 골짜기의 가장 깊은 곳은 5월에도 잔설이 남아 있다는 대답을 듣는다. 이어 제주에는 예부터 얼음을 저장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관가에서 여름철에 되면 항상 산 속에서 가져다 쓴다고 설명까지 덧붙이고 있다.
이보다 앞서 한라산에 대한 산행기록을 처음으로 남긴 임제의 남명소승에서도 음력 2월인데도 적설이 녹지 않은 곳이 있었는데, 일행이 말을 통해 이 깎아지른 골짜기(영실)는 깊이가 가히 10여 길이나 되니, 천개 봉우리의 눈들이 바람에 날리어 모두 이곳으로 들어와서 5월에도 녹지 아니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5월이 음력임을 감안한다면 양력 기준으로는 6-7월까지도 눈이 남아있다는 얘기다. 이형상도 남환박물에서 백록담의 암벽 북쪽은 눈이 쌓여서 한여름에도 여태 있다. 관아에서 쓰는 얼음조각은 산허리로부터 얻는다고 소개하고 있다.
실제 한라산에 자주 가다 보면 양력 오뉴월에 탐라계곡의 깊은 골짜기에서 쌓여있는 얼음조각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필자의 경우 간혹 4월말이나 5월초에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 얼음이 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심지어는 털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린 상태에서 얼음이 어는 경우까지도 볼 정도다.
▲ ‘제주십경도’ 중 백록담 그림(부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신선 전설 담은 ‘탐라십경도’
앞에서 일단 거론했으니 이참에 탐라십경도에서의 백록담 그림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탐라십경도는 제주도도, 영주십경도, 제주십경도 등 3종이 전해지는데, 19세기에 새롭게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 일본 고려미술관에 영주십경도 4폭이, 국립민속박물관에 제주도도 4폭과 제주십경도 10폭이 소장돼 있다. 이익태목사 당시의 제주십경도를 모사한 것으로 학계에서는 여기고 있다.
이 중 백록담 그림은 국립민속박물관에 두 종류가 전해지고 있는데 눈길을 끄는 것은 백록을 탄 신선과 사슴 사냥을 위해 활을 겨눈 사냥꾼이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냥꾼이 바위 뒤에 숨어서 사슴을 향해 활을 쏘았는데 홀연 백록을 탄 신선이 나타나 사슴들과 함께 사라졌다는 당시 전해지던 전설을 실제로 그려냈다는 얘기다.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건드려 화가 난 옥황상제가 한라산 꼭대기를 뽑아 던지자 백록담과 산방산이 생겨났다는 얘기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림에 대한 설명으로 백록과 백발의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데 못의 이름이 백록담으로 불리게 된 연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백록담 그림을 보면 가운데 연못을 그리고 주위의 바위들에 대한 이름을 붙여 있는데 북쪽에 구봉암(九峰岩), 한라산 후면주봉(後面主峰), 동북쪽에 황사암(黃砂岩), 서쪽에 두 개의 입석(立石)이 표시돼 있다. 다른 지도에서 간혹 보이는 혈망봉이 표기되지 않은 것 또한 특징이다.
녹담만설을 이야기 하다가 옆길로 새 버렸다. 어쨌거나 여름철 구석진 골짜기에 남아있는 눈보다는 한겨울 온통 하얀 눈이 덮인 백록담이 장관이라는 생각이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백록담에 한번 오를 것을 권한다.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