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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 잠두봉-백석산의 하얀 눈길을 걸으며....
<산행> (평창군 대화면 신리삼거리)→[산행들머리]모릿재(터널 앞)→(오름길)→대화·진부면계 능선→(오름길)→잠두산(1,243.2m)→(설원의 능선길)→안부(신리3리 하산지점)→(오름길)→백석산(1,364m) 정상 헬기장(대전망)→
정상아래의양지(점심식사)→미랑치→영암사 하산길→던지골(대화3리) 송어양어장→<귀경>산행거리 14,3Km5-6시간소요
▶ 산으로 가는 길, 봉평의 이효석을 생각하며
☆… 아침 서울의 기온이 영하 9℃의 매서운 날씨,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연일 이어지는 한파가 오늘도 그 겨울의 성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의 버스는 중부·영동고속국도를 타고 문막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장평I.C에서 31번 국도로 진입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6번 국도를 타고 가면, 가산(可山)이효석(李孝石)의 소설「메밀꽃 필 무렵」
그의 문학의 숨결이 살아 있는 봉평으로 가고,
남쪽으로 31번 도로를 타고 내려가면 그 소설의 또 한 무대인 대화로 가는 길, 평창읍내로 이어진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이 작품은 토속적이면서 동시 서정적이다.
봉평장터 옆 가산공원에는 주인공 ‘허생원’과 장돌뱅이들이 하루의 지친 여정을 푸는 주막인 ‘충주집’이 있다.
다리를 건너 ‘허생원’과 ‘성씨 처녀’가 정을 통했던 ‘물레방앗간’을 지나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메밀밭 길을 돌아가면
‘이효석의 생가’에 이를 수가 있다. 작품은 봉평과 대화의 장터로 이어지는 무대에서 펼쳐지므로
오늘 우리가 산행하기 위해서 내려가는 대화 가는 길이 바로 소설의 무대가 될 것이다.
그윽한 달밤, ‘허생원’이 ‘동이’의 등에 업혀 건너던 개천이 어디쯤일까.
“옛 처녀나 만나면 모를까- 난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을 걷고 저 달 볼테야”
단 한 차례 인연을 맺은 ‘성씨 처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자신이 아들일지 모를 ‘동이’의 등짝은 어찌 그리 따뜻한가.
▶ 잠두산-백석산으로 가는 길, 산행의 들머리
☆… 우리는 대화 읍내로 들어가기 전, 신리 삼거리에서 진부로 넘어가는 지방도로로 들어가서,
산행의 들머리인 모릿재 터널 앞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예리한 칼끝을 느끼게 하는 차가운 바람결이 옷깃을 파고든다.
하늘은 눈이 시린 청람(靑藍) 빛이었다. 문지르고 문지르다가 더 이상 어쩔 수 없어 파랗게 질린 듯한 쪽빛이었다.
티 없이 맑은 하늘, 태양은 눈부신 햇살을 지상에 뿌리고 있는데, 햇살은 산록에 쌓여 있는 하얀 눈밭에 내려와
다시 무수한 순백의 빛살이 뿜어내고 있었다. 우선 차가운 금속성으로 매섭게 찔러오는 차가운 냉기가 숨을 막히게 했다.
스패츠를 치고 아이젠을 장착한 뒤, 얼마간의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본격적인 산행에 돌입했다.
10시 40분, 우리 산우들이 순백의 산길 위에 오색의 대열을 이루었다.
☆… 우선 잠두산은 남쪽으로 향하는 산길이다.
오늘 산행지인 잠두산-백석산은 강원도 평창군의 대화면과 진부읍 사이에 위치해 있으므로 면계능선(面界稜線)인 셈이다.
북쪽의 백적산에서 안부 모릿재를 넘어 일로 남으로 내리뻗는 평창군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산줄기인 것이다.
그리하여 산의 서쪽은 대화천-평창강이 흐르고 동쪽에는 오대천이 흘러내려 정선의 아우라지 강과 합류한다.
그리고 오늘 산행 기점인 모릿재 북쪽에 위치한 백적산(1,141m)을 거슬러 올라가면 진부(터널)를 지나
오대산의 호령봉(1,531m)-정상 비로봉(1,563.4m)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남쪽의 백석산의 줄기는 그 남으로 내달리다가 동쪽의 가리왕산(1,560.6m),
서쪽으로 중왕산(1,376m), 그리고 그 아래쪽 평창 청옥산(1,255.7m, 정상의 고원 지대는
일명 육백마지기로 칭하는 고랭지 채소밭이 있다.)과 더불어 평창의 중심 산군을 이룬다.
▶ 하얀 눈길에서 떠올린 선인의 시 한 수 …
☆… 처음부터 가파른 오름길이었다.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자 아래에서 거의 느끼지 못했던 바람결이 살아나오기 시작했다.
손이 아리고 볼이 차가와진다. 무릎까지 쌓인 눈밭은 얼어 있었고 길은 앞서 갔던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남아 있었다.
눈이 오고 난 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 본 적이 있는가.
길을 낸다는 것은 나와 이 길을 같이 가는 사람들의 발자취이면서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역사를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행자의 발자취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 발걸음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의 길잡이가 되느니만치 자신의 행동은 늘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행해져야 한다.
문득 선인의 시 한 편이 생각난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내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今日我行蹟(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野雪>(야설)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조선시대의 서산대사(西山大師, 1519~1604)의 시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백범 김구 선생이 좌우명으로 삼아 애송한 시로도 유명하다. 백범(白凡) 선생께서 큰 결단을 내릴 때마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어 행여 후세 사람들이 전철(前轍)을 밟게 될까 경계하였다고 하니
선각자나 지도자의 자질과 품격을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어서 실로 의미심장한 것이다.
이 시의 작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주(註)] 백범 선생의 글에도 서산대사의 시로 나와 있고, 이 시를 새긴 빗돌에도 서산대사의 시로 명시하고 있어
예전부터 서산대사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서산대사의 문집인 『淸虛堂集』(청허당집)에는
이 시가 실려 있지 않아서 작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혹자는 이 시를 조선후기의 문신인 임연(臨淵) 이양연(李亮淵)의 소작이라고 정리하기도 한다.
한문학자 안대회 교수는, 『臨淵堂別集』(임연당별집)과 1917년 장지연(張志淵)이 편찬한
『大東詩選』(대동시선) 등에 이 시가 조선시대 순조 때 활동한 이양연(李亮淵, 1777~1853년)의 작품으로 나와 있다고 했다.
『大東詩選』8권 30장에 나와 있는 이 시의 제목이 ‘穿雪’(천설)로 되어 있고,
내용 중 ‘踏’(답)자가 ‘穿’(천)자로, ‘日’(일)자가 ‘朝’(조)로 되어 있는데, 글자가 다를 뿐 그 의미를 같은 것이다.
북한에서 발간한 한시집에도 이와 같이 쓰여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작품의 작자를 문헌고증학의 입장에서 볼 때 이양연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 오늘의 산행에 대하여
☆… 오늘 잠두산-백석산은 오직 우리 새재 가족만이 산행을 하고 있다.
사실 아침 문막휴게소에서 보았던 그 많은 산악회 버스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마도 겨울 눈 산행으로 유명한 선자령이나 계방산 등으로 향하지 않았을까.
사실 잠두산-백석산은 인터넷 사이트 <한국의 산하>에도 나오지 않는 오지(奧地)의 산인 것이다.
우리의 우복 대장은 원래 연간 계획으로 가리왕산을 산행지로 잡고 몇 주 전 자비로 답사를 다녀오기까지 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슬로프를 건설한다는 발표가 있었고
올 3월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간다는 정보에 따라 산의 진면목이 자연 그대로 남아있을 때
가리왕산-중봉 코스를 가보기 위해 잡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16일부터 평창군에서 산불방지를 위한 입산금지령을 내렸으므로 부득이 행선지를 급거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겨울 ‘눈맛’을 만끽할 수 있는 산을 생각하다가 오늘의 잠두·백석산을 잡은 것이다.
오늘 여기 아주 쾌적하고 호젓한 적설의 산길을 가고 보니 결과적으로 오히려 잘된 변경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우복 대장의 정성어린 고심과 밝은 지혜가 우리 대원들을 이렇듯 행복한 산행으로 인도한 것이다.
오늘은 선두에 는 전문산악인 김화영 님이 맡아 주었고 우복대장이 선두와 중간을 연결하며
산행 전체의 흐름을 조정해 나가고 후미에는 김동순 부대장이 뒤에 오는 대원을 수습하여 오기로 했다.
▶ 잠두봉으로 가는 능선 길
☆… 한참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고 난 후 다시 완만하게 올라가는 능선길, 그리고 한 단계 한 단계 다시 오름길이 이어져 나갔다.
해발 1,000 고지, 하늘은 파랗게 눈이 시리고 햇살은 따갑게 얼굴을 찌르고,
공기는 매정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매섭게 볼을 때린다. 능선 길의 바람결은 차갑다.
내 스마트폰이 가리키는 능선의 온도는 영하 15℃를 가리키고 있었다. 겨울산의 시련은 바람이다.
그래도 오늘의 바람결은 그렇게 드세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지난 달 오대산의 날씨만큼이나 천혜를 입은 산행이다.
눈길은 얼어 있고 주위의 겨울나무는 앙상한 몸채를 드러낸 채 아프게 스치는 삼동의 찬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산에는 소나무와 같은 상록수가 그의 없는, 여름의 성성한 잎들을 다 떨쳐버린 벌거숭이 나목의 군상들이다.
그저 소리 없이 봄을 기다리며 침묵의 언어로 세월을 견디고 있었다.
캄캄한 겨울밤, 세찬 바람이 몰아칠 때에는 아마 한밤 내 소리 내어 울기도 할 것이다.
대원들의 상태는 쾌조(快調), 산행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대원들의 상기된 얼굴에 해맑은 겨울 햇살이 비친다. 잠시 숨결을 고르며 휴식을 취했다.
▶ 숨 막히게 가파른 잠두산 등정 길
☆… 오늘 산행의 일차적인 포인트인 잠두산을 오르는 막바지 오름길은 실로 가슴에 차오르는 급경사였다.
대원들의 얼굴빛이 벌겋게 상기되어 거친 숨을 몰아쉰다. 고개를 들면 앞 사람의 엉덩이가 하늘을 가렸다.
“오늘은 앞 사람과 너무 가까기 붙어가지 마세요.
지난 번 오대산에서 보니까 앞 사람의 ‘용가리의 콧김’이 솟아나오는 걸 봤거든요.
뒤 따라가다 그냥 얼굴이 노래질 수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아침 차 안에서 우복이 던진 썰렁한 농담이 생각나서 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
경사진 산길은 잔설이 얼어 있고 그 위에 낙엽이 떨어져 쌓여 있었다.
가파른 길의 발자국을 한 발 한 발 힘겹게 내디디며 산을 올랐다.
아이젠이 아니면 몸을 균형을 도저히 잡을 수 없이 위태로운 길이었다.
(가이드 김화영 님은 이런 길에도 아이젠을 장착하지 않았다.) 오늘 산행 전반부의 가장 난(難) 코스인 것이다.
☆… 드디어 12시 15분, 잠두산(蠶頭山)에 올랐다.
잠두산은 이름 그대로 정상 부분의 암봉이 ‘누에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올라와 보니 그 봉우리가 누에가 고개를 쳐들고 있는 형상이었다.
막바지 올라오는 길이 왜 그렇게 가팔랐는지 이해가 되었다. 선두와 후미의 차가 많이 벌어졌다.
산길이 험할수록 개인차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산봉 막바지에 올라오는 대원들의 얼굴은 무척 힘든 표정이었다.
오지 산행의 참맛을 느끼게 해 주는 묘미가 있다고 하자 몇몇 분의 얼굴이 벌레 씹은 표정이다.
힘든 데 괜히 썰렁한 농자를 풀었나 보다.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얼굴에 화기를 되찾고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런데 20여 분이 지나도록 후미 산향기 고문을 대동하고 있는 김동순 부대장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1200고지의 설원(雪原)을 누비며
☆… 12시 45분, 시차를 두고 다시 산행은 계속되었다.
잠두산에서 백석산 정상까지는 2km 정도의 거리,
산길은 이제까지와는 딴판으로 아주 평지에 가까울 정도로 완만하게 이어져 나갔다.
그야말로 순백(純白)의 설원(雪原)이었다. 해발 1200m 고원에 펼쳐진 눈밭이었다.
파란 하늘빛과 대조를 이루며 맑은 햇살은 받은 하얀 눈[雪] 빛이 우리 마음에 낀 세상의 때를 깨끗이 씻어주는 듯했다.
그 눈밭에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서 있는데,
우리 대원들은 백색의 눈길을 따라 한 줄로 죽 대열을 이루며 걸어 나갔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산행은 계속되었다. 완만한 오르내림이 이어지는 산길을 쾌적했다.
얼마를 가다가 약간의 내림길 안부(鞍部)에 도착했다.
오른쪽 ‘신리3리 방향’(신리삼거리 마을)과 ‘백석산 방향’을 나타내는 노란 플라스틱 이정표가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 잠시 숨을 고르고 산행이 계속되었다. 서서히 오름길이 시작되었다.
완만한 듯 오르다가 숨이 턱에 차는 경사가 시작되었다.
이때까지는 토산(土山)의 설원이었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군데군데 각 진 암봉이 솟아있기도 했다.
그 바위 옆을 스치거나 그 사이를 치고 올라가는 길도 있었다. 제법 경사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순전히 올라만 가는 산길이었다. 다시 거친 숨이 열기를 토해낸다.
온몸에 실린 산의 무게가 다리에 묵직하게 내려온다.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면서 사방의 시야가 열리기 시작한다.
아직도 많은 눈이 그대로 쌓여 있고 눈을 수북이 이고 있는 나무들도 있었다.
나무들도 키가 작아지고 그 개체수가 줄어들었다. 하늘이 파랗게 눈을 찌른다. 정상이 가까이 온 모양이다.
앞서 홀로 걸어가는 전(全) 사장님의 뒷모습을 카메라로 잡았다
파란 하늘과 하얀 산너울 사이에서 장렬한 풍경화 한 폭을 담은 것이다.
▶ 백석산 정산에서의 천하 조망
☆… 오후 1시 30분, 드디어 백석산(白石山) 정상(1,364m)에 도착했다.
오늘의 최고 등산 포인트에 오른 것이다. 정상은 널따란 헬기 비상 착륙장이었다.
헬기장 한편에 초라하기 짝이 없는 표지판(‘백석산 정상/ 1365m/ 대화면장’)이 서 있는데,
앞서 오른 핸드폰 총무와 화수분 부회장과 짱가 총무를 비롯한 몇몇 대원이 사진 한 방을 찍기 위하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사위는 한 점 티 없이 맑은 시공(時空), 시야는 일망무제(一望無際),
강원도 영서지방에 솟아있는 무수한 산봉과 연면히 이어지는 모든 산맥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산들을 바라보는 전체의 조망은 한 마디로 장관(壯觀)이었다!
장엄한 산세가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정경은 실로 가슴이 저리도록 아름다운 조국의 명산들이다.
잔설을 쓰고 있는 원근의 산들이 마치 크고 작은 파도가 되어 출렁이고 있었다.
가까이 또는 멀리에서 첩첩으로 이어지는 강원도의 거대한 산군(山群)들,
백석산을 중심으로 원근의 산들이 원주를 그리면서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가까이는 우리가 지나온 잠두산 산줄기가 한 눈에 들어오고
그 뒤쪽으로 진부읍내와 오대산 월정사로 들어가는 길목의 호텔까지 선명하게 눈에 잡혔다.
☆… 우선 동쪽으로 백두대간의 장엄한 줄기가 뻗어가고 있다.
오대산의 동대(1,433m)와 노인봉(1,338m)에서 뻗어내리 오는 산줄기가 황병산(1,407m)을 거쳐
하얀 설원에 풍차가 도는 선자령과 대관령 능경봉(1,123m)으로 이어져 나간다.
북쪽으로는 오대산 비로봉(1,565m)을 중심으로 한 좌우의 연봉들, 그리고 그 서쪽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줄기 중에는 계방산(1,577m), 운두령, 회령봉(1,331m) 등이 눈에 들어온다. 서쪽에는 우선 가까이는 금당산(1,173m),
그리고 그 뒤로 백덕산(1,350m)의 연봉과 그 뒤쪽으로 멀리 치악산(1,282m)까지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가 처음 산행지로 잡았던 가리왕산(1,560m)과 중왕산(1,376m)의 거대한 산채가 몸을 누이고 있었다.
아아, 오늘의 쾌청한 날씨가 천하의 장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안복(安福)을 내린 것이다.
우복 대장이 오대산 너머 곰배령을 지적하기도 하고 우리가 지난 연말에 올랐던 사자산 옆의 구봉대산을 가리키기도 했다.
여기 백석산(白石山) 정상은 강원도 영서지방의 산들을 조망하기에 가장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정상 아래 양지바른 눈밭에서의 점심식사
☆… 정상 바로 아래 남쪽의 산록, 겨울나무의 귀족, 자작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양지 바른 눈밭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차가운 바람이 불지 않은 따뜻한 장소였다. 새벽밥을 먹고 온 대원들에게는 점심이 매우 늦은 시간이어서,
삼삼오오 자리를 펴고 꿀맛 같은 백설의 오찬을 나누었다.
인정 많은 꼬공 가족의 식탁에서는 웬 ‘구룡포 과메기’가 김쌈을 만들고, 또 그것을 이웃자리에 건네기도 했다.
매셍이죽은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따끈한 미소된장국이 팍팍한 속을 풀어 주었다.
네것내것 가리지 않고 음식을 나누는 풍경이 아주 보기에 좋았다.
그런데 오후 2시 10분, 대원들이 점심을 다 먹을 때까지 후미의 두 분이 도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점심식사를 마친 대원들을 선두 김화영 가이드를 앞세워 먼저 출발하게 하고,
장 회장과 호산아를 비롯한 몇 분의 산우들이 그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약 20여 분이 지난 뒤 김동순 부대장이 산향기 고문을 모시고 올라왔다. 참으로 반가웠다.
그 모습이 개선장군(?) 같았다. 장 회장이 감격에 겨운 나머지 산향기를 포옹하기도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식사를 다할 때까지 다함께 기다리면서 담소했다.
☆… 오후 2시 46분, 산향기 고문과 김동순 부대장이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까지 함께 남아있던
장병국 회장, 전풍국 사장, 김준섭·엄태원 산우, 그리고 호산아 등이 후미를 수습하여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백석산 정상 남쪽의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하늘을 찌르듯이 쭉쭉 뻗어올라간 낙엽송 군락지를 지나서 시퍼런 전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남록의 산길을 걸었다.
기분이 쾌적하다. 바람을 타지 않는 양지 바른 곳 산길에는 눈이 녹고 있었다.
저 멀리 가리왕산(1,560m)과 중왕산(1,376m)이 더욱 가깝게 보였다. 발아래에는 임도가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 위태롭고 험난한 하산 길
☆… 본격적인 하산은 미랑치에서 우측의 영암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그런데 이게 무언가?
산길은 거의 벼랑에 가까운 경사면에 겨우 깎아서 만든, 그것도 급전직하의 급경사로 쏟아지는 길이었다.
그러고 보니 백석산의 서쪽은 절벽으로 이루진 지형이었다.
그 암봉 아래 영암사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 고산의 영암사는 원래 100여 년 전 산삼을 캐러 다니는 심마니들의 산막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뒤 기도하는 도량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천인단애의 높은 산록에 사찰이 있다는 것이 참 기이할 정도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산길은 그냥 아래로 쏟아지는 위태로운 험로로 이어지고 있었다.
매우 경사가 급한 산길엔 두터운 눈이 쌓여 있어 아이젠을 찬 신발이 그냥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이었다.
마음이 급해서일까. 하산 길은 멀고도 멀었다.
산 아래 계곡 길로 내려오기까지 빠른 걸음으로 거의 30여 분 걸리는 험난한 길이었다.
한참을 앞서 간 대원들은 어떻게 잘 내려갔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산 길의 중간쯤에서 마지막으로 앞서 갔던 소슬바람과 꼬공 등 세 분의 여성 산우들을 만났다.
급경사의 산길을 내려오는 중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서 상당히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소슬바람은 장 회장과 더불어 조심스럽게 내려오고,
마침 ‘꼬공’께서는 알콩달콩 ‘옆집 남자’를 만나게 되었으니 결국 천생연분이 되어 동행해 내려왔다. …
계곡 길에 다 내려와서 쏟아져 내리는 산길을 되돌아보니 거대한 백석산의 산채와 시야를 가리는 절벽이 아득하게 올려보였다.
그리고 온몸에 실린 가늠할 수 없는 산의 무게로 인해 두 다리는 천 근이었고 그리하여 몸에는 비로소 거대한 산이 실려 있었다.
▶ 서로 도우며 산행하는 미덕
☆… 눈 쌓인 계곡 길에 내려와서야 길은 아주 편안했다. 임도에 이르러 우복 대장이 혼자 길을 지키고 서 있었다.
던지골 하산 지점으로 가기 위해서는 임도를 따라 가서는 안 되기 때문에 후속 대원이 올 때까지 그렇게 지키고 서 있는 것이었다.
대장의 소임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 든든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앞서 내려온 대원 중에 그 쪽으로 가는 것을 따라 잡아왔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 임도는 백석산 아래의 주변을 따라 모릿재까지 이어지는 14.3km의 길이다.
그 길로 가면 우리가 출발한 지점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임도에서 이정표가 있는 지점의 도로까지 내려오니, 표지판에 ‘던지골 0.2km’를 남겨두고 있었다. 거기서 후속대원을 기다렸다.
☆… 잠시 뒤, 던지골에서 한 대의 코란드가 눈 쌓인 산간도로를 치고 올라왔다. 그리고 내 앞에서 차를 멈추는데,
운전자는 얼굴이 동그랗게 생긴 초로의 비구니스님이었다. 오른쪽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간 곳에 있는 혜광사의 스님이었다.
잠시 동안 인사를 나누면서 빙판의 산중 도로를 운행하는데 위험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4륜구동의 이 차는 괜찮다고 했다.
법명을 여쭈어 보았더니 ‘正心’(정심)이라고 했다.
날씨 추운데 조심하라고 하면서 봄철의 산불 방지를 위해 등산객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고 나서 대원들이 하산했다. 그러나 김동순 부대장의 후미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산림초소까지 내려오니 ‘입산통제’의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봄철 입산통제 기간(2.1~5.15)은 이미 실시되었다.
지금은 아직 산에 눈이 있어서 별일이 없겠지만 봄철마다 발생하는 대형 산불을 생각하면
산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그 주의할 바가 절실하지 않을 수 없다.
던지골을 평창군 대화면 대화3리, 송어양어장과 그림 같은 팬션이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 [에필로그]… 숨겨진 보석 같은 오지의 산
☆… 오후 4시 25분, 던지골 송어양식장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승차하고…
후속 대원을 기다려 5시 22분에 서울로 출발했다.
물 먹은 솜같이 가라앉는 무거운 몸을 의자에 누이고 일로 귀경길에 올랐다.
겨울은 스키시즌이어서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많았다. 그러나 몇 군데 정체된 구간도 있었지만,
저녁 8시 30분, 그렇게 늦지 않은 시각, 비교적 원만하게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의 산행지 잠두산-백석산은 비록 알려져 있지 않은 오지(奧地)의 이름 없는 산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비로소 아름다운 겨울산으로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그 무거운 등정(登頂)과 고난의 하산(下山) 길이 무척 힘겨운 여정이었지만,
푸른 하늘 아래 순백의 설원(雪原)을 누비며 거침없이 내달린 그 상쾌한 산길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백석산의 정상에서 바라본 우리 산하(山河)의 역동적인 산세,
그 장엄한 파노라마를 조망할 수 있었던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행운이었다.
맑고 밝은 하늘이 가호를 내린, 멋진 산행이었다. 오늘 동행한 모든 산우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
글쓴이 000산악회 고문 호산아
장회장과 진한포옹을.....
기다려준 후미 일행들...
정상에서 한컷!!
하산 후 우복대장과 동순 부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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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단합니다 자주 좀 뵙기를 바랍니다. 감하고 갑니다
자주몬나타나서 미안하이 언제한번 바둑한수 배워봐야되는디...잘지내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