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대한매일신보 에 이완용이 판돈 수만 원 규모의 화투판을 벌였다는 기사가 실렸다.
심지어 이지용은 며칠 만에 수만 원을 잃었다고 했다. 당시 조선 국채 총액이 1,300만 원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을사오적이
화투로 날린 돈이 얼마나 큰돈인지 짐작할수 있다.
화투는 알려진대로 일본에서 들어온 놀이이다. 19세기경 쓰시마(대마도)섬의 상인들이 장사차 우리나라를 왕래하면서 전했다는
설도있고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뱃사람이 전해다는 설도있다. 그렇다고 일본 고유의 놀이는 아니다.
16세기경 포르투칼 상인들이 즐기던 " 카르타" 라는 카드놀이가 전신이다. 일본인들은 카르타를 본떠 마흔여덟 점의 "우키요에(목판화)를 그린다음 두꺼운 종이에 찍어냈는데 이것이 "하나후다"의 시작이다.
하나후다를 한자 그대로 읽으면 "화찰" 즉 꽃패라는 뜻이고 이것이 우리나라에 건너와 화투 즉 꽃싸움이 됐다.
공통적으로 꽃이 들어가는 이유는 그림의 주된 소재가 나무와 화초 꽃이기때문이다. 정월이 소나무 2월이 매화 3월이 벚꽃
4월이 흑싸리 5월이 난초 6월이 모란 7월이 홍싸리 8월이 산과 보름달 9월이 국화 10월이 단풍 11월이 오동 12월이 "비"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나라의 화투에 대한 소개이고 하나후다는 약간 다르다.
하나후다에는 광이 없다. 그리고 11월과 12월이 바뀌었다. 11월이 비이고 12월이 오동이다. 또 8월의 산과 보름달에는 기러기에
억새가 더해지는데 화투에는 억새가 없다. 그외에 그림은 비슷해도 화투에서 달리 해석하는 것은 4월의 흑싸리와 5월의 난초이다.
하나후다에서는 각각 등나무 꽃 창포로 본다고한다. 그런가하면 늘 보면서도 잘 모르는것이 8월과 11월을 제외한 나머지 열달의
홍단과 초단에 보이는 붉은 띠이다. 이것은 깃발이 아니라 일본의 "단책"이다 일본 고유의 단시(하이쿠)를 적는 긴 종이이다.
하이쿠는 에도시대에 마쓰오 바소라는 걸출한 시인이 등장하면서 크게 유행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로 불린다.
그런데 유일하게 사람이 등장하는 패가 있다. 오광 중 하나인 "비" 이다.
유일하게 사람이 등장하고 또 가장 난해하다. 일본에서 11월을 한국에서 12월을 상징한다면서 한여름에나 어울릴법한 비와 버드나무가
배경인 것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리고 웬 남자 한 명이 우산을 들고 버드나무 아래 서 있는데 한때 이 남자가 이토 히로부미라는
차마 웃지 못할 풍문이 떠돈 ㅜ적도 있었다. 그는 누구일까?
수염이 나지 않는 것을 보니 나이는 많이 먹어봐야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쯤인거 같고 그에 어울리지않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차림새가 고관대작 같다. 그의 왼편에 납작 널브러져 있는것은 개구리다. 하도 커서 두꺼비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개구리다.
그리고 널브러진 것이 아니라 뛰어오르려고 안간힘을 쓰는중이다. 어디로 뛰어오르려고 하느냐면 청년의 머리 위에 드리워진
검은 수풀의 정체는 수양버들이다. 그냥 버드나무가 아니고 수양버들이라고 콕 짚을 수 있는 단서는 청년의 뒤에 있는 파란색 띠가 하천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단순한 구성에 대담한 구도. 입체감이 거의 없고 검정색을 많이 사용하는 우키요에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본 역사에 생소한 우리로서는 수수께기처럼 보이지만 일본에서 유명한 이야기를 담고있다. 바로 "오노의 전설" 이라는 이야기다.
남자는 이토 히로부미가 아니라 10세기경에 활약했던 일본 최고의 서도가 "오노노도후" 이다.
우리가 서예라고 말하는 것을 일본에서는 "서도" 라고 부른다. 붓글씨의 특성상 붓에 먹물을 묻혀 종이에 대는 순간 단번에 획을
그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망친 글자가 된다. 붓글씨를 잘 쓸수 있는 비결이 일본에서는 "도" 에 있다고 보았고 우리나라에서는
"예" 에 있다고 보았는데 붓글씨에 있어 "도" 와 "예" 모두 중요하지만 일본이 좀 더 정신적인 면을 중시했다는 사실을 알수있다.
동시에 일본인들이 서도가를 어떤 인물로 봤을지도 짐작할수있다. 비에 담긴 이야기 역시 바로 그 도와 무관하지 않다.
반듯한 차림새는 그가 귀족이기 때문이기도하지만 성공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 길이 결코 쉽지않다.
그가 젊은 시절 붓글씨를 아무리 열심히 써도 발전이 없자 깊은 회의와 좌절에 빠진 적이 있었다. 회의와 좌절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방황이다. 마침 비까지 내렸다. 우산을 쓰고 한참을 걷다가 그에게 큰 깨우침을 준 장면을 목격한다.개울이 빗물로 불어나
물살이 거셌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급류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수양버들로 필사적으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뛰어오르다 떨어지고 다시 뛰어오르다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거듭했지만 개구리는 끝까지 포기하지않고 기어이 수양버들로
나뭇가지에 오르는데 성공한다. 오노노도후는 그 길로 방황을 끝내고 돌아가 붓글씨에 매진한다. " 나는 저 개구리만큼 필사적으로
붓글씨에 매달려했던가? 하는 자각을 했을것이다. 회의와 좌절이 방황으로 이어지는 까닭은 아직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황의 끝이 포기냐 재도전이냐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계기가 될것이다.
오노노도후는 그 반성의 계기를 개구리로부터 얻었다. 화투의 비광에 담긴 메세지가 이처럼 의미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왜 이 그림을 11월 혹은 12월경의 상징으로 삼았느냐 하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1년을 마무리하는 시기니만큼
오노노도후처럼 스스로 돌아보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가 담긴 것이 아니겠냐 는 말도 있지만 억지춘향 같다.
일본의 서민을 위한 풍속화로 그려진 우키요에는 그렇게까지 철학적인 메세지를 담고있지않다.
한편으로는 화투가 일본의 놀이라는 것이 "비" 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오노노도후가 나오는 그림도 그렇지만 문짝 그림도 그렇다.
일본 사람이라면 금새 알아차릴 그림을 우리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무슨 뜻인지 알수가 없다. 그런데도 정작 일본 사람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많이 더 신나게 화투를 가지고 논다. 참고로 비의 문짝 그림은 "라쇼몬" 시체를 내보내는 쪽문이라고 한다.
첫댓글 다크호스가 저 이야기를 한적이 있어 몇 자 옮겨 적었습니다. 여러가지로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네요
옆 나라 일본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문화의 차이가 꽤 많네요 에이스님들 방황은 잘 할수 있다는 반성의 시간이랍니다 . 오늘도 홧팅
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겨우내내 고향시골 마을회관에서는 매일 고스톱 타임이 있었다네요. 할매들이 몇백원에 가끔씩 다툼도 일어나고...ㅋ
우리도 친목도모 에이스배 고스톱대회 함 할까요?ㅎㅎ
치매예방에 좋다니까 배워두면 좋겠죠~~~
감사합니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올리신 덕분에 재미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책 한권을 읽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이런 것을 스토리 텔링이라고 하지요
호근 형님은 옛날 이야기 보따리를 많이 가지고 계신 듯 합니다.
나중에 손주들에게 인기 짱이실 듯..ㅎㅎ
어둠이 또 밀리면 어정역으로 방황하러 갑니다.
같이 방황하실 분들은 8시에 모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