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북간도에 가는가?
나는 성경의 말씀 중에서 창세기를 가장 좋아한다.
세상에는 태초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하는 것을 본 사람이 없고 아담과 이브의 에덴동산과 선악과를 목격한 사람이 없다. 카인과 아벨을 본 사람들도 없다. 그러나 나는 창세기 말씀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며 하나님의 위대하고 오묘하고 신비로운 창조의 역사를 만난다. 하나님의 사랑 에너지가 우주에 빛처럼 퍼지며 충만해지는 거룩하고 장엄한 세계를 본다. 뿐만 아니라 처음 인간인 아담과 이브의 본성, 정체성에 직면하며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을 만난다. 그러기에 창세기는 과거의 이야기지만 오늘의 이야기이고 오늘의 이야기이지만 미래의 이야기이다. 하늘 아래 새 것이 없다는 현자들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창세기에서 이 시대, 인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는다.
북간도는 창세기처럼 나에게 국가와 국민의 의미와 역사의 시작과 원형을 보여준다.
중국의 변방에 불과하였던 북간도가 동북아 역사의 수면으로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랜 역사가 아니다. 특별히 한국인들에게 북간도는 새로운 의미의 역사가 되었다.
1644년, 청나라는 8기군의 승승장구로 산해관을 넘어 중원을 제패하고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며 동북지방에 훈춘협령을 설치하고 두만강 일대를 봉금(封禁)지역으로 정하였다. 청나라의 봉금정책으로 간도는 168년 동안 무주공산이 되었다. 그러나 1850년대부터 사람들이 밀려왔다.
가장 먼저 러시아 군인들이 밀려와서 조약을 빌미 삼아 훈춘과 흑룡강성 일부를 차지하였다.
이어서 조선의 소작농과 천민들이 기아와 조선의 악정을 피해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조선의 양반, 관리, 유림 지식인 계급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서북간도에 밀려 들었다.
이어서 캐나다장로회가 들어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일본인들이 용정에 조선통감부 간도파출소를 세우며 들어왔다.
이어서 청나라가 망하고 중화민국이 세워지고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이어서 북양정부가 들어섰다.
이어서 사회주의자들이 물밀 듯이 들어와 러시아의 10월 혁명과 레닌의 사상을 전파하였다.
이어서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이 치열하게 다투는 장이 되었다.
이어서 일본에 의해 만주국이 세워졌다.
이어서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이 관내로 이동하였다.
이어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이 연해주로 이동하였다.
이어서 소련군이 해방군으로 밀려 들었다.
이어서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의 내전이 일어났다.
실로 북간도는 200년도 채 되지 않는 역사 속에서 청나라와 러시아, 청과 조선, 중화민국과 일본, 중국군벌과 일본, 일본과 소련의 각축장이 되었다.
북간도 역사는 창세기처럼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신생 국가가 세워지고 흥하고 망하는 역사의 변수와 인간들의 군상을 보여준다.
막연하게 희미하였던 조선왕조의 정체성과 애국, 애족을 자처하던 유림, 양반, 관료들의 탐욕과 위선을 가르쳐 주었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의 주역이 망국지사들이 아니라 조선에서 온갖 천대와 억압을 받았던 천민, 생명을 걸고 도강하여 수전을 개척한 소작농과 천민들임을 드러 내주었다.
사람의 생명이 국가보다 우선이므로 백성들이 위험을 느끼면 생명이 안전한 곳을 찾아 이합집산 하는 것이 인간사임을 가르쳐 주었다.
국가도 인간처럼 생로병사가 있으므로 존립의 위기가 올수 있고 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영토는 주인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지키기 위한 치열한 노력과 희생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북간도는 나의 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열등감과 일말의 기대를 깨끗하게 청소해주었다. 크리스천인 나를 종종 회의와 절망에 빠트렸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담론으로부터 해방시켰다. 뿐만 아니라 이념과 사상은 영원한 것도, 진리도 아니고, 단지 그 시대와 그 문명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철학적, 정치적, 경제적 제안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해주었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혁명으로 이루고자하는 이상사회가 자유와 탐욕을 가진 인간들의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종교 지도자들의 초아의 봉사와 섬김이 절망의 사람들에게 새 세상에 대한 희망과 비전이 됨을 보았다.
이렇듯이 북간도는 나의 정신세계와 역사 인식에 한 획을 그어주었으며 나에게 살 있는 역사의 원전이 되었다.
2016년 전주 YMCA를 따라서 북간도 평화기행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서 중국에 3년을 머물렀고 그 인연으로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며 독립유적지를 찾아다닌 덕분에 북간도 독립운동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첫 번의 책은 ⌜우리가 몰랐던 북간도 독립운동 이야기⌟로 2020년에 출판하였고 다시 3년 만에 ⌜뜻으로 읽는 북간도 독립운동 이야기⌟로 두 번째 책을 펴낸다.
1부는 함경도 조선인들의 대탈출을 다루는데 그들의 탈출이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는 달리 1860년대 수해와 가뭄 그리고 조선의 관리와 양반들의 수탈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또한 이주한 조선인들의 몸과 마음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청나라와 일본과 조선 독립운동가인들이 벌이는 교육 주도권 다툼을 펼쳐 보인다.
2부는 용정〈3•13〉만세시위와 북간도에서 있었던 독립무장투쟁을 기술한다. 용정〈3•13〉만세시위 때 순국하신 19분의 이름과 그분들의 신분을 통하여 만세시위가 우연한 산물이 아니라 캐나다장로회 산하 지회 설립자들과 지도자들의 노력의 결실이었음을 밝힌다. 실패한 거사인 ⌜철혈광복단⌟의 15만원 탈취사건 또한 캐나다장로교회 청년들의 비밀단체인 철현광복단의 4명의 성원이 주도하여 이룬 거사이며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가 홍범도장군과 최진동장군 그리고 김좌진 장군의 전투로 알려진 것과 다르게 그 배후에 간도국민회가 있음을 그린다. 1920년 10월에 시작된 간도대토벌과 경신대학살의 참상은 2만5천명의 정규 일본군에게 육천여명에 이르는 조선 민간인들이 집단학살당한 것을 다루며 우리의 무관심과 이념 대립 때문에 아직도 그 실상이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아픔을 토로한다.
3부는 숨겨진 무명의 지도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1910년대 북간도 독립운동을 지도한 선구자이며 헌신적인 지도자이었음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사회에는 거의 숨겨진 존재가 되었다. 김치보, 김계안, 구춘선, 황병길, 이동춘을 짤막하게 다루며 끝으로 독립운동사의 자료를 학문적으로 정립해준 자이니치 강덕상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4부는 캐나다장로회 교회의 북간도 독립운동을 밝힌다. 대부분의 교회 설립자들이 독립운동가 이었다는 사실과 36명이 한꺼번에 불에 타죽은 장암 언덕의 대학살 이야기를 소개하고 조선독립운동을 지원한 용정 제창병원의 기여를 논한다.
⌜뜻으로 읽는 북간도 독립운동 이야기⌟ 는 쓰기 어려운 책이었다. 우리 이야기지만 남의 이야기처럼 배웠고 우리 역사지만 남의 나라에 속해 있어서 자유롭게 연구하기 어려운 여건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관심 밖에 있는 역사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기에 유산할 수도 있었고 난산으로 포기할 수도 있었다.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시험 출제영역도 아니기에 학생들이 굳이 찾아서 공부할 일이 없는 미운 오리새끼 같은 우리 역사를 재미있게 써야하는데 북간도는 출생부터가 비극이어서 재미있게 쓸 수가 없다. 그러기에 읽기도 어렵다. 내용이 지루하고 난해하고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뜻으로 읽는 북간도 독립운동 이야기⌟를 읽는 분들은 북간도의 역사에서 모든 역사를 보며 희망과 절망을 넘어서는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쉽게 읽을 수 없는 책을 읽으며 조상들의 땅으로 여행하고자 하는 꿈꾸는 청년들이 구름떼처럼 일어서는 환상을 보고싶다.
이제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겨울잠을 자고싶다.
자고 깨어나면 매화꽃이 만발한 봄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 떠나고 싶다.
2023년 11월 2일에 쓴 글을
우담초라하니 20일 자시에 수정하여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