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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일 성령강림절 후 둘째 주일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22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입니다.
성경 계14:14-20절(신414)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마지막 추수(재판, 심판)
하나님이 천지와 함께 시간을 창조하신 후에 우리 인간 세계에는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그 끝이 있습니다.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 사이에 있는 큰 삽입(11:19-14장)에서 마지막 부분인 오늘 본문(14:14-20)은 마귀와 영적 싸움의 인간 역사의 마지막(결론)을 추수 비유(환상)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곡식 추수 비유’(14-16)와 ‘포도 추수 비유’(17-20)인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둘을 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비유로 이해하는 자들이 있고, 곡식 추수(14-16)는 그의 마지막 구원의 비유로 이해하나, 포도 추수(17-20)는 그의 마지막 심판의 비유로 이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포도 추수 비유’에서는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19)과 ‘틀에서 포도즙이 아니라 피가 나서’(20)라는 그의 심판의 분명한 표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곡식 추수 비유와 포도 추수 비유는 거의 동일한 언어적 표현과 평행 대구 구조입니다. 그러기에 둘 다 동일한 주제(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인가, 그렇다고 해도 서로 다른 주제(그의 마지막 구원과 심판)인가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곡식 추수 비유’(14-16)를 하나님의 마지막 구원으로 이해합니다. 이는 본문 앞에 있는 6-13절에서 첫째 천사가 영원한 복음을 선포하였고, 둘째와 셋째 천사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선포하였는데, 역시 세 천사가 나오는 오늘 본문에서 ‘곡식 추수 비유’(14-16)는 첫째 다른 천사를 통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인자(사람의 아들)가 곡식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추수(구속)를 실행하는 내용이며, ‘포도 추수 비유’(17-20)는 셋째 다른 천사를 통한 하나님 명령에 따라 포도에 대하여 둘째 다른 천사가 그의 마지막 심판을 실행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즉 오늘 본문이 하나님 말씀의 선포(7-13)에 대한 그 실행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동일한 언어적 병행과 평행적 대구 구조를 가진 ‘곡식 추수 비유’와 ‘포도 추수 비유’가 각각 하나님의 마지막 구원과 심판의 내용이다는 것은 그의 마지막 구원과 심판이 서로 동전의 양면과 같이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구원과 심판은 ‘동일한 율법(창조, 행위) 언약’(11:19)에 따라 ‘동일한 인자’(요5:29)가 ‘추수꾼인 천사들’(마13:39)을 통하여 직접 실행하실 것입니다. 19:15절입니다.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여기서 두 번 나오는 ‘친히’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그가 직접 하나님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포도 추수의 ‘그 틀이 밟히니’(20)에서 ‘밟히니’가 부정과거 수동이기에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 틀이 밟혔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곡식 추수와 같이 ‘인자’에 대한 소개(14)가 없지만, 포도 추수(17-20)의 주체로 ‘인자(그리스도)’가 전제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동일한 율법(창조, 행위) 언약(11:19)에 따라 동일한 인자가 천사들을 통하여 직접 실행하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추수의 비유에서 왜 곡식 추수는 그의 마지막 구속이며, 포도 추수는 그의 마지막 심판일까요? 동전의 양면과 같이 오늘 본문의 곡식 추수와 포도 추수는 의도적으로 서로 대응되는 부분과 다른 부분을 통하여 이 질문에 답(우리에게 강조하는 메시지)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구속과 심판에서 같은 점과 차이점을 통하여 그의 마지막 추수(심판, 재판)에 대하여 큰 확신을 하시기 바랍니다.
1. 곡식 추수 비유입니다(14-16).
곡식 추수의 비유에 사용되는 동사는 다 예언적 부정과거입니다. 미래의 종말에 일어날 사건이지만 과거에 이미 일어났다고 할 정도로 너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1) 곡식 추수를 직접 실행하시는 주체인 인자의 소개입니다(14).
“또 내가 보니, (보라)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요한은 ‘보라(이두)’라는 감탄사를 사용하여 자신이 보고 감격하였던 큰 영광의 ‘인자(사람의 아들)’에 대한 환상을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성도 여러분, ‘금 면류관을 쓰시고 흰 구름 위에 앉아 있는 인자’를 상상하여 요한의 감격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흰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금 면류관’은 그의 만유의 주(왕)권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단7:13-22절의 성취입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 18)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 22)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 여기서 13절에서 신의 현현을 상징하는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하나님)’에게 오신 ‘인자’는 22절에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이시므로 ‘지극히 높으신 이(하나님)’(18, 22)와 동등한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성도(아들)들의 대표자(언약적 머리, 주, 왕)로서 그들이 얻을(18, 22)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받으신 하나님 아들을 가리킵니다. 어떻게 요원한 왕권과 나라를요?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고난(눅18:31-38), 죽음(마12:40), 부활(마17:9-23), 재림(마24:29-37), 그의 왕권(마16:28) 등을 설명하실 때에 다니엘의 ‘인자’를 자신을 가리키는 공식적 호칭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계1:13-18절에서도 ‘죽었다가 부활하여 영원하신 영광의 그리스도(주)’를 ‘인자 같은 이’(1:13)로 소개합니다.
이제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14)입니다. 그런데, 둘째 다른 천사도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16)입니다. 여기 ‘예리한 낫’은 인자가 하나님에서 받은 그의 마지막 추수(재판)에서 예리한, 즉 가장 정확한(공의로운) 도구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무엇을 상징할까요? 다시 19:15절입니다.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여기서 ‘예리한 검’은 그리스도 심판의 도구인 성령의 검(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엡6:17).
그러면, 하나님의 추수에서 예리한 낫(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큰 삽입(11:19-14장)의 서문인 11:19절입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여기서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은 하나님의 언약궤 안에 있는 십계명이 상징하는 율법 언약에 따라 행하시는 그의 임재와 영광의 상징입니다. ‘율법 언약’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아담의 마음에 새겨졌고 선악과 금지의 초자연적인 계시(창2:16-17)에 근거한 ‘창조(행위) 언약’이 다시 나타난 것으로, 죄로 인하여 희미하여졌지만 모든 사람의 마음에 있는(롬2:14-15), 즉 ‘영원한 언약’(사24:5)입니다. 그러므로 ‘예리한 낫’은 율법(창조, 행위) 언약에 따라 판결하신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을 상징합니다(13, 20:13, 22:12).
그러면, ‘예리한 낫’이 어떻게 곡식 추수에서는 하나님의 마지막 구속이 되며, 포도 추수에서는 그의 마지막 심판이 될 수 있을까요? 이는 인자가 죄인들을 대신하여 율법(창조, 행위) 언약에 따라 죽임(하나님의 심판)을 당하사 그들이 하나님의 마지막 추수에서 받을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미리(앞당겨서) 십자가에서 다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그들의 주와 그리스도(인자)가 되신 것(복음)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의 ‘예리한 낫’이 율법 언약에 근거한 하나님의 마지막 구원의 말씀이 되며, 그것(복음)을 거절하는 자(불신자)들에게는 그의 ‘예리한 낫’이 율법 언약에 근거한 그의 마지막 심판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어린 양’이 28(4x7)번이나 반복되어 이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첫째 천사를 통하여 인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과 그 이유입니다(15-16a).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여기서 ‘성전으로부터 나와’(15)는 인자에게 향한 첫째 천사의 명령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당신의 낫을 보내라. 그리고 너는 거두라’(15)이며, 그 이유는 ‘왜냐하면, 거둘(추수할)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땅의 곡식이 다 익었기 때문이다’(16a)입니다. 여기서 ‘거둘 때’는 하나님이 인자를 통하여 그의 마지막 추수(재판, 심판)를 하시기로 정한 때를 가리킵니다(마24:36, 막13:32, 행1:7).
그리고 ‘땅의 곡식이 다 익었기 때문이다’에서 ‘익었다(엑세란테)’(16a)는 부정과거 수동태입니다. 이것(16)은 18절의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에서 ‘익었다(에크마산)’의 부정과거 능동태와 대조적입니다. 이것(16)은 수동태로서 곡식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의하여 완전하여지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곡식 추수’는 복음의 새 언약에 따라 하나님에 의하여 성령으로 영화 구원이 이루어질 144,000(모든 성도)의 추수를 상징합니다. 성도 여러분, 천지가 흔들려도 인자가 복음의 새 언약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공동체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며, 개인적으로도 믿는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롬8:30)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인자가 직접 추수하십니다(16b).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던지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인자가 그의 낫을 땅에 한 번 던지심으로 땅의 곡식이 다 거두어집니다. 이것은 그의 말씀, 한 마디로 모든 성도의 구속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2. 포도 추수 비유입니다(17-20).
포도 추수 비유에서도 동사들이 다 예언적 부정과거입니다.
1’) 포도 추수 비유에서 추수의 일꾼인 둘째 다른 천사의 소개입니다(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여기서도 이 다른 둘째 천사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의 추수(심판)를 하러 나왔으며, 인자(14)와 같이 하나님으로 받은 ‘예리한 낫’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동일한 명령과 동일한 예리한 낫을 가졌지만, 곡식 추수는 인자가 직접 실행하는 반면에 여기의 포도 추수는 천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대조됩니다. 이것은 성도의 마지막 구원과 불신자의 마지막 심판에 대한 주체가 다르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실제 마지막 구원과 심판의 궁극적인 주체는 성부 하나님이시며, 직접적 주체는 그리스도이시며, 천사는 그 구원과 심판의 일꾼(종)으로 참여합니다(마13:41-42). 그런데 성도의 마지막 구원은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기술하고, 불신자의 마지막 심판은 천사의 관점에서 기술하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구속과 심판을 그리스도가 직접 수행하시되 그리스도의 더욱 깊은 관심은 바로 성도들의 구원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의 영광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2’) 셋째 천사를 통하여 둘째 천사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과 그 이유입니다(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들을 거두라. (왜냐하면) 그 포도들이 익었느니라 하더라.”
여기서 셋째 천사를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라고 합니다. 이것은 10절에서의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라는 셋째 천사의 선포와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왔다’는 제단이 하늘의 성전 안에 있기에 역시 하나님 명령을 전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기도(6:9, 8:3-5)에 대한 하나님 응답으로 그의 마지막 심판이 실행될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네 예리한 낫을 보내라. 그리고 너는 땅의 포도송이들을 거두라’ 이며, 그 이유는 ‘왜냐하면 그 포도들이 익었느니라’입니다. 여기서 ‘익었다(에크마산)’는 ‘땅의 곡식이 다 익었다’(16)의 수동태와 달리 부정과거 능동태로서 포도들이 스스로 더는 성숙할 수 없는 정도로 ‘무르익었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이 그 추수를 유보할 수 없기에 지금이 바로 추수의 적기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도 추수’는 복음을 거절하고 스스로 그들의 죄악을 절정에 이르게 하는 불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상징합니다.
3’) 불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입니다(19-20).
먼저, 19절입니다.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여기서 요한은 ‘큰 포도주 틀’(19)을 ‘하나님의 진노’(19)라는 말로 설명함으로 포도 추수(17-20)가 불신자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비유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제, 20절입니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첫째로 ‘그 포도주 틀이 (그) 성 밖에서 밟히었다’입니다. 여기서 ‘밟히니’는 부정과거 수동태로 사용됨으로 그 틀을 밟는 주체가 누구인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둘째 천사일 수도 있지만, 14절의 ‘부활하신 그리스도, 인자’일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틀이 (그) 성 밖에서 밟히니’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성인지는 구체적 언급이 없지만, ‘그 성’ 앞에 정관사가 있기에 예루살렘(새 예루살렘)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성 밖에서’의 심판은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암시합니다(요19:20, 히13:12). 이것은 종말에 그 성 밖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이 밟히는 것과 같이 인자가 우리를 대신하여 그 성 밖의 십자가에서 율법(창조) 언약에 따라 그의 마지막 심판을 이미(앞당겨서) 받으셨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인자가 그의 복음을 거절하는 모든 죄인의 포도주 틀을 그 성 밖에서 영원히 밟으실 것입니다.
둘째로 그 결과로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입니다. 이것은 율법(창조) 언약에 따른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형벌의 극히 심함을 나타냅니다. 그 틀에서 나온 피가 말의 굴레에 닿을 정도로 아주 깊었으며, 그 길이가 1600(4x4x10x10) 스다디온(약 200m)까지 퍼질 정도로 불신자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전 세계적으로 아주 극심하며 영원한 형벌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자가 ‘예리한 낫’을 땅에 던질 때, 즉 하나님의 마지막 추수의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사람의 끝은 율법(창조, 행위)의 영원한 언약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그때 율법 언약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추수(재판)에서 정죄가 있을까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롬8:1). 이는 하나님의 마지막 추수에서 죄인인 우리가 받을 심판을 인자가 율법(창조, 행위) 언약에 따라 이미(앞당겨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다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복음의 새 언약대로 되는 것만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 대한 결론입니다. 천지가 흔들려도 복음의 새 언약대로 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직 그리스도(복음)이요, 오직 은혜요, 오직 믿음입니다. 이런 확신으로 우리 주님의 성찬(복음)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찬송 252장, 성찬 후에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