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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플라스틱을 사랑합니다. 나는 플라스틱처럼 되고 싶어요.” 앤디 워홀은 말했다. 그에게 플라스틱은 ABS라기보다 LA였고 할리우드였으며,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동시대 자유로움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2018년, 그 자유분방함에 과도하게 길들여진 우리는 꼭 필요한 만큼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를 맞이했다. 이는 곧 일상 속 물건뿐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시급한 물음이자 도전으로 다가왔다.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컵, 플라스틱 백, 택배 박스 등을 우리는 과연 대체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더 멀리 내다본 스타트업을 통해 들여다봤다.
Shipping Box
배송받은 후 반납하는 택배 주머니
2011년, 핀란드의 지속 가능한 디자인 에이전시 페루스테Peruste는 우체국으로부터 택배용 이동 캐리어 디자인을 의뢰받았다. 리서치를 위해 우체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던 디자인 디렉터 유하 메켈레Juha Ma¨kela¨는 무수히 쌓여 있는 온라인 쇼핑몰용 택배 상자를 보고 조금은 다른 가능성을 그리기 시작했다. 핀란드에서는 이미 재사용을 위해 수거하는 빈병이 90%에 달할 정도로 반환금 시스템이 보편화돼 있는데, 이 제도를 이커머스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소재와 형태를 연구한 끝에 2013년 본격적으로 리팩RePack을 설립했다.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온라인 스토어 사업자들과 계약을 맺고 그들에게 리팩을 배달한다. 온라인 스토어의 고객들은 쇼핑 후 배송 옵션으로 ‘리팩’을 선택할 수 있고 내용물을 받은 뒤 우체통에 넣어 반환하면 일정한 적립금을 받는 식이다. 리팩으로 돌아온 택배 패키지는 품질 체크를 거쳐 다시 다른 온라인 스토어로 납품되거나, 품질이 불량인 경우 업사이클링을 통해 다른 주머니로 재탄생시킨다.
현재 리팩은 재활용된 폴리프로필렌 소재의 세 가지 다른 규격의 주머니를 사용하며 평균 20번 재사용된 뒤 업사이클한다. 이들은 기존의 1회성 택배보다 80% 적게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효과가 있다고. 온라인 쇼핑 회사들은 재사용되는 패키지 쓰레기 배출량을 줄일 수 있고, 한편으로는 신규 고객을 유입하는 기회도 얻는다.
리팩은 2016년 스웨덴의 필리파 K Filipa K, 네덜란드의 머드 진Mud Jeans 같은 대형 브랜드와 제휴를 맺었는데, 리팩의 반환금 격인 온라인 적립금은 리팩을 취급하는 여러 브랜드에서 포인트로 사용할 수 있다. 온라인 쇼핑뿐 아니라 친환경을 미션으로 삼는 제품 회사에 패키징을 컨설팅해주는 것도 리팩의 업무다. 물론 디자인 에이전시로서의 역량을 갖췄기에 가능한 일.
리팩에 패키지를 의뢰한 키츠베트Kiezbett는 지속 가능한 홈퍼니처를 만드는 베를린의 스타트업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목재만을 사용해 지역 장인의 손을 거쳐 조립하며 자전거로 배송할 정도로 지속 가능성을 몸소 실천하는 젊은 브랜드다. 다만 60kg에 육박하는 침대를 자전거로 배송할 수 없었던 이들은(독일에서 자전거 배달은 최대 24kg 까지만 가능하다) 침대를 양 옆판, 밑판, 헤드로 3등분해 무게를 나누기에 이르렀고 이에 적합한 맞춤 패키징이 필요했다. 12주에 걸쳐 여러 번 진행한 워크숍 끝에 침대 배송에 특화되어 재사용할 수 있는 맞춤식 리팩 패키지가 탄생했고, 이미 100개 이상의 침대 배송을 성공리에 마쳤다.
리팩은 2017년 11월 노르딕에서 가장 권위 있는 노르딕 환경 프라이즈Nordic Environment Prize에서 우승한 뒤, 같은 해 핀란드의 이노베이션 펀드 테케스Tekes로부터 25만 유로(약 3억 3000만 원)를 투자받았다. 현재 리팩의 주력 지역인 유럽의 패키지 회수율은 75% 정도다. 앞으로 호주로 서비스를 확장할 예정이고 미국과 UK 마켓에도 진출을 준비 중이다. 욘네 헬그렌Jonne Hellgren 공동 설립자는 말한다. “사용한 택배 주머니를 되돌려받는 시스템은 전 세계적으로 언제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재사용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부족한 것만이 걸림돌이죠. 경쟁사가 쓰는 것을 보기 전까지 선뜻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브랜드들의 인식도 마찬가지고요.”
Takeout Cup
전문 업체가 세척해주는 다회용 컵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 사용하는 테이크아웃 종이컵은 종이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음료가 스며들지 않도록 내부에 플라스틱 코팅이 되어 있는데 이걸 분리하는 작업 비용이 많이 든다. 현재 통용되는 대책은 개인 텀블러를 지참한 고객에게 할인 혜택을 주거나 매장에서는 머그잔을 제공하는 원칙 정도. 이러한 지침이 미봉책인 이유는 결국 개인이나 커피숍 주인 모두 귀찮아하는 세척 문제와 손쉽게 테이크아웃 커피를 즐기다 부담 없이 폐기하는 습관 때문일 거다.
영국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사피아 쿠레시Safia Qureshi는 바로 이 두 가지를 해결하고자 했다. 2015년 소셜 임팩트에 주력하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스튜디오 [디]테일[D]Tale을 공동 창업한 그는 2016년 재사용 컵을 서비스하는 스타트업 컵클럽CupClub을 론칭했다. 재사용이 가능한 컵을 직접 세척해 각 점포로 배달하고 다시 수거해준다는 아이디어다. 그는 바이오플라스틱이나 재사용할 수 있는 대나무 등도 좋은 대인이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폐기할 시점에 재활용할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데 주목했다.
컵클럽의 컵은 재활용이 가능한 폴리프로필렌 용기와 저밀도의 폴리에틸렌 뚜껑으로 이루어졌고, RFID 칩이 삽입돼 있어 컵 위치 등의 정보를 담을 수 있다. 소비자는 사용한 컵을 시내 곳곳에 비치한 전용 수거함(예를 들면 쓰레기통 옆 등)에 반납하고, 이렇게 수거한 컵은 전문 세척 시설로 옮겨 일괄적으로 세척한 뒤 매일 아침 서비스를 신청한 매장으로 다시 배달한다. 컵클럽은 RFID 칩을 활용해 컵 위치뿐 아니라 해당 고객이 자주 마시는 음료나 반납한 곳, 남긴 양 등을 커피 전문점 주인에게 고객 파악용 데이터로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컵은 평균 132회 사용할 수 있으며 이후 100% 재활용된다.
컵클럽은 2015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처음 콘셉트를 공개한 이래 런던 RCA 내 몬마우스 커피Monmouth Coffee 3개 지점에서 9주간 파일럿으로 운영했다. 절반이 넘는 소비자가 기꺼이 컵클럽의 컵을 시도해보겠다고 했고, 오히려 커피 맛이 더 좋다는 피드백을 남겼다. 이 기간 커피숍의 매출이 평균 4% 상승했으며, 결과적으로 1회용 컵 사용량이 이전보다 50% 줄었다. 그리고 지난 4월, 세계적인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사 쿠시먼 & 웨이크필드 Cushman & Wakefield와 함께 컵클럽은 런던에서 첫 서비스를 개시했다.
현재 쿠시먼 & 웨이크필드의 F&B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으며, 하루 500개 이상의 테이크아웃 컵을 필요로 하는 런던 내 커피숍이라면 어디나 신청할 수 있다. 사피아 쿠레시는 서비스 론칭 당시 디진DeZeen과의 인터뷰에서 “1회용 컵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대체품이 ‘유비쿼터스적’이어야 한다”며 이를 런던의 공유 자전거에 빗대어 말했다. “(환경을 생각한 좋은 디자인이란) 그 누구도 훔쳐가고 싶지 않을 만큼 외관은 볼품없지만 제 역할은 훌륭하게 해내는 자전거 같아야 한다.”
Plastic Food Package
플라스틱 포장재 없는 장보기
지난 7월 1일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서는 과도한 1회용 플라스틱 포장에 반대하는 소비자 행동 ‘플라스틱 어택’이 열렸다. 올 3월 영국 테스코를 시작으로 유럽을 넘어 미주, 아시아로 확산된 자발적인 소비자 행동이다. 플라스틱 어택에 참여한 30여 명의 시민들은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자두와 이중 팩에 포장된 우유 등을 알맹이만 담아 가고 껍데기는 별도의 카트에 모았다. 10개가 넘는 카트에 가득 찬 포장지는 소비자들이 아무런 선택지 없이 각자의 집에서 배출해야 할 ‘쓰레기’였다.
그간 식료품의 포장을 없애려는 마트들의 시도는 다양했다. 2014년 6월 베를린의 포장지 없는 슈퍼마켓 ‘오리지널 운페어팍트Original Unverpackt’를 시작으로 파리, 뉴욕, 홍콩 등에도 소비자들이 직접 다회용 용기를 가져와 원하는 만큼 덜어가는 매장이 문을 열었다(서울에는 2016년 영업을 시작한 성수동 ‘더 피커’가 있다).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장보기는 포장된 식품을 판매하는 마트보다 적은 아이템을 취급하고 매장 주변에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흥미로운 단발성 체험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네덜란드 에코플라자의 플라스틱 프리 섹션. 생분해성 플라스틱 포장지를 사용한 식료품을 진열해놨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월 네덜란드 마트 체인 에코플라자Ekoplaza가 암스테르담 지점 한편에 설치한 플라스틱 프리 복도Plastic Free Aisle는 실효성이 한층 더 높아 보인다. 고기, 소스, 시리얼, 우유, 초콜릿 등 일반적인 마트에서 판매하는 700여 가지의 상품을 비닐봉지와 유리병 등에 담아 진열했는데, 이 비닐봉지는 목질 섬유,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젖산 등 식물성 원료로 만든 포장지로 12주 안에 흙에서 자연 분해된다.
네덜란드 내에 74개 지점을 두고 있는 가족 기업 에코플라자는 올해 안에 모든 지점에 플라스틱 프리 진열대를 개설할 예정이다. 여기서 나아가 이들은 ‘플라스틱 프리’ 전용 인증 마크를 개발해 생분해되는 포장지에 로고를 부착하기로 했다. ‘유기농’, ‘동물 복지’와 더불어 ‘플라스틱 프리’까지 소비자의 선택지가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모바일로 주문 받은 양만큼을 다회용 용기에 담아 판매하는 식료품 쇼핑 플랫폼 미와MIWA
한편 체코의 포장 기업 아란치아Arancia는 2017년 오프라인과 온라인 경험이 혼재된 모바일 기반의 식료품 쇼핑 플랫폼 미와MIWA(Minimum Waste)를 론칭했다. 소비자가 모바일 전용 앱으로 식료품을 구매하면 도매용 벌크 용기에서 주문받은 양만큼을 덜어 다회용 용기에 담아 판매하는 방식이다. 식품의 생산 단계부터 운반, 유통, 진열까지 일회용품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한 가지의 스마트 용기를 이어 사용하는 ‘프리 사이클링’을 표방한다.
미와가 지역의 농수산품 생산자에게 재사용이 가능한 상자이자 곧 디스펜서인 용기를 보내면 농부는 그곳에 수확한 농수산물을 담고, 그 자체로 운반이 되어 지역 마트의 선반에 모듈처럼 그대로 놓인다. 디스펜서에는 내용물의 잔여량을 실시간 측정하는 센서와 가격 바코드를 부착해 소비자는 모바일 앱으로 정확한 수량을 조절해 모바일 결제로 그 수량만큼만 계산할 수 있다. 결제를 마친 식품은 디스펜서에서 직접 개인 용기에 받아 가거나, 마트에서 제공하는 다회용 용기, 생분해성 용기 중 선택해서 가져간다. 미와는 아직 콘셉트만으로 존재하지만 최근 엘런 맥아더 재단Ellen MacArthur Foundation이 개최하는 이노베이션 어워드에서 순환 디자인 부문 위너로 지목되며 전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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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반납하면 돈으로 돌려준다고요? (플라스틱을 대체할 아이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