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맹자》진심장구 편에 나오는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君子三樂)’.
그 첫째는 부모가 살아계시며 형제가 무고한 것이고,
둘째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굽어보아 사람에게도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다.
부모는 나의 뿌리이자 제일 스승이시다.
그런 부모가 살아계시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는가!
또 형제는 한 콩깍지 안에서 태어난 콩과 같다.
이런 형제들이 무고하지 못하다면 두고두고 근심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즐거움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라 근심이 없다면 그것이 곧 즐거움인 것이다.
그러니 형제의 무고 또한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아래로 굽어보아 사람에게도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은,
마음가짐에 있어서나 행동에 있어서나 양심에 아무 부끄러울 것이 없는
대장부의 떳떳한 심경을 말하는 것으로, 이런 떳떳함이 곧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친다는 말은, 배움의 절정에 달한 스승으로서의 포부가 실려 있는 말이다.
좋은 스승도 중요하지만 좋은 제자 또한 중요하다.
아무리 스승이 뛰어나도 제자가 어리석다면,
스승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반영하지도 못할 것이다.
따라서 가르침을 충분히 소화해서 행동으로 옮길만한 제자를 얻어
가르친다는 것은 스승으로서의 크나큰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2. 불경의 하나인《대열반경》에 나오는 즐거움.
여기에 보면 “빚지지 않는 것과 아끼는 것은 최하의 즐거움이요,
재산이 있어 남에게 베푸는 것은 중간의 즐거움이며,
몸과 입과 마음을 청정히 하고 진리를 들어 즐거운 것이 최상의 즐거움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푼 두푼 아끼고 모아서 통장에 재산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커다란 즐거움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이런 즐거움이 없다면 살맛이 없을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즐거움을 가장 낮은 즐거움이라고 할까?
우리의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이다.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누구나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디에 쓰려고 그토록 애를 쓰며 재산을 모으는 것인가?
재산은 죽음이나 깨달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 비록 재산을 모아서 남에게 베풀며 살아간다고 해도 중간의 즐거움 밖에 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남에게 뭔가를 베풀면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우쭐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쭐해지면 이 역시 죽음이나 깨달음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깨끗이 하고
진리를 듣는 것이 가장 높은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수행을 의미하는 것이고 수행의 결과는 깨달음이다.
수행은 우리의 의무이고, 깨달음은 우리 삶의 궁극 목적이다.
그렇다면 의무를 다하고 궁극 목적을 이루는 것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우리가 궁극의 깨달음을 얻는다면 죽음과 윤회도 모두 끝난다.
따라서 깨달음은 더 이상의 즐거움이 없는 궁극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3. 《잡아함경》에 나오는 즐거움.
여기에 보면 “진정한 즐거움은 마음에 부담이 없는 것, 구하고 바라는 것 있으면 괴로움이다.
마음속에 바라고 원하는 것이 없는 것이 즐거운 마음 가운데 제일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일단 마음 안에 뭔가를 걸게 되면 괴로움이 시작되고,
마음속에 어떤 것도 걸리지 않으면 괴로움은 사라진다.
괴로움이 없다면 그것이 곧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현재의 상태로 만족하는 텅 빈 마음,
이것이 즐거운 마음 가운데서 제일이라는 말이다.
4. 《장자(莊子)》에 나오는 즐거움.
여기에는 “지락무락(至樂無樂)”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지극한 즐거움이란 그것이 즐거움인지 조차 모르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즐거움이 있다 없다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상대성의 세계이기 때문에, 즐거움을 찾으면 반드시 괴로움이 따라온다.
그러니 괴로움과 즐거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면,
그것이 즐거움인지 괴로움인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상대성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즐거움이란 괴로움을 전제로 한 즐거움으로,
괴로움과 괴로움 사이에서 일시적으로 스쳐가는 즐거움일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즐거움은, 잠시 스치는 즐거움이 아니라 언제나 즐거운 상태를 말한다.
이런 상태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참나에 머무는 사람, 즉 깨달음을 얻은 사람뿐이다.
이렇게 볼 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즐거움과 성현들이 생각하는 즐거움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물질에 얽매여 살아가지만, 성현들은 물질을 초월하여 살아가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진정한 즐거움이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물질 너머에 있는 진정한 즐거움을 찾고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 含笑 斷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