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 배! 그러나 거기에도 소망이
38년 전 농촌목회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았을 때 인근에서 목회하시던 목사님의 은퇴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몇 되지 않은 성도들이 모은 얼마간의 사례비를 받으시면서 겸연쩍게 웃으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아련하게 남아 있습니다.
목사님은 뭐가 그리 급한지 은퇴식을 마치자마자 40년간 묻혀 지냈던 허술한 사택에서 벗어나 1톤 트럭에 남루하기 그지없는 짐을 싣고, 가는 곳도 밝히지 않으시고 훌쩍 떠나버리셨습니다.
40년! 그리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한 교회를 섬기며 마을의 모내기, 추수 등 여러 농사일에 마다하지 않고 나누셨고, 여러 경조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하셨던 분이십니다. “무능하다, 답답하다, 주변머리가 없어도 너무 없다.” 등 비난의 소리가 들려도 들으셨는지 아닌지 모르게 무덤덤한 표정으로 오직 한 길을 달려오셨던 그 목사님은 텅 빈 배로 목회를 마치셨습니다.
그때 저는 말로 표현 못 할 애잔한 슬픔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목회의 결론인가 하는 회의감도 제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모습이 어느덧 제 목회의 마지막에 어른거리고 있습니다. 저 역시 빈 배로 매듭을 지을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저의 목회 여정에서 여러 고난도 있었고 답답하여 금세 쓰러질 것만 같은 위기도 겪었습니다. 그때마다 이기고 일어설 수 있었던 비결은 담양에서 대나무숲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나무가 휘어지지 않고 똑바로 자랄 수 있는 요인은 줄기의 중간마다 마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디를 생성하기 위하여 성장을 멈추고 만들어진 마디는 세찬 비바람에도 부러지거나 휘어지지 않도록 하며 강인하게 버텨내게 한다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음을 시인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절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이 아픔과 시련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믿어지는 순간 제 마음에 담대한 믿음의 마디가 생겼습니다.
나의 욕심도 야망도 사라진 채 빈 배가 되어 내 목회 여정이 마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내 생명의 주관자이신 주님이 함께 계시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하려 합니다.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