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노구사에서 바라 본 노구소 마을..2020.11.17.월
노구사는 조선 태종과 운곡 원천석에 얽힌 설화가 담겨 있는 곳이다.
태종 원년인 신사년(辛巳年 1401) 태종의 옛 스승이던 운곡은 변암에
은둔해 있던 중 태종이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동네 노파에게
자신의 은둔지를 다르게 알려 줄 것을 당부하고 은신해 버렸다.
노파는 운곡의 당부대로 태종에게 거처를 다르게 알려 주었고,
훗날 임금에게 거짓을 고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노파는 죄책감으로
노구소(老軀沼)에 투신하여 죽음으로써 임금에게 사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파의 충정과 넋을 기리고자 2005년도에 노구소가 바라보이는
이곳에 사당을 건립하고, 강림면과 강림면 제례위원회 주관으로
매년 10월21일(양력)에 추모제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원주 치악산 늦가을기행3- 치악산 태종대와 노구사, 그리고 수레너미재(20.11.17.화)
태종대(太宗臺)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6호,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강림(講林) 2리
태종대는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과 조선왕조 3대 임금인 태종에 관계되는
유적이다. 이 곳은 태종이 운곡을 찾아왔을 때 머물던 곳이라고 하여
'주필대(駐蹕臺)' 라고 불러오다가 후대에 '태종대(太宗臺)'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절벽 위의 비각 안에 '주필대(駐蹕臺)' 라고 새긴 비석이 있고, 절벽 아래쪽
바위 벽면에는 1723년(경종 3)에 새긴 태종대(太宗臺) 등의 글자가 있다.
근처에 운곡이야기와 관련된 노구소(老嫗沼), 횡지암(橫指岩)이 있으며,
치악산 비로봉 아래에는 운곡이 은거하던 곳이라 전해지는 변암(弁岩, 고깔바위)과
누졸재(陋拙齋, 원천석 본인 자신이 누추함과 옹졸함에 딱 들어맞았다 하여
거처하던 집의 이름을 누졸재라 했다) 터가 있다.
태종대 아래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강림천계곡(橫城郡 講林川溪谷)
태종대 사적기 암각서(岩刻書)
先生事蹟略記 弁岩(선생사적약기 변암)
太宗臺(태종대)
太宗大王訪 耘谷元先生自覺林避入弁岩上(태종대왕방 운곡원선생자각림피입변암상)
駐轝于此官其子賞 其婢而返篤後人(주연우차관기자상 기비이반독후인)
以名之崇禎後九十五年 癸卯夏刻(이명지숭정후구십오년 계묘하각)
선생사적약기 변암(고깔바위)
태종대
태종대왕이 방문하였으나
운곡 원천석선생은 각림사로부터 변암 위로 들어가 피신하였다.
이곳에 수레를 머물게하고 그 자식을 상으로 관직을 주고
그 비(노구할미)를 도리어 뒷사람들에게 돈독히 북돋아주었다.
그러한 이름을 숭정후 95년(1628+95 = 1723년, 경종3년) 계묘 여름에 새기다
불루힐 숙소에서 만난 불타는 단풍,
바라보는 내 눈까지도 빨갛게 물들었다.
황홀한 가을빛이 우리부부에게 축복으로
가슴 가아득 안겨 준다.
새말 인터체인지를 나오면 만나는 하룻밤의 둥지다. 따끈히 잘 보낸 둥지다.
하룻밤 신세진 부루힐 모텔앞 뜰숲에 새겨진 석비(石碑)가 시선을 끌었다.
門前灌木春啼鳥(문전관목춘제조): 문전 관목에는 봄에 새가 노래하고
屋畔長松夜宿雲(옥반장송야숙운): 옥반(집가)장송에는 밤에 구름이 머무네
새가 노래하고 구름이 머무는 곳이어선가 참 잘 보냈다.
상쾌한 아침, 태종의 설화가 깃든 노구사를 향하여 이동
노구사(老嫗祠)로 들어가는 다리 노구소교(老嫗沼橋), 멀리 노구사의 홍살문이 보인다
강림천
노구소 마을의 더덕밭인 듯.. 횡성엔 더덕이 유명해선지 주변에 온통 더덕밭이다.
새 날 아침, 더덕밭을 일구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멀리서 보아도 싱그럽다.
노구소마을의 노구사당을 찾았다.
제3코스는 지난 2006년 건설교통부가 선정한 '한국의 이름다운 길 100선'에 뽑힐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소초면 학곡리 군도 1호선의 느티나무 가로수길을
거쳐 수레너미재를 넘어 태종대까지 연결되는 길이다.
봄에는 곳곳에 만개한 철쭉꽃, 여름에는 수많은 들꽃들, 가을에는 단풍나무와
느티나무의 오색단풍이 장관을 이루고, 겨울에는 크고 작은 산줄기들의 설경이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케하는 등 계절마다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노구사 삼문(老嫗祠 三門)
노구사(老嫗祠) 현판, 현판글씨는 호산(湖山) 채희승(蔡熙昇)의 글씨
운곡 원천석선생(1330 ~ ?) 耘谷 元天錫
고려가 패망하기까지 61년동안 고려의 4처사의 한분으로, 고려말의 시국이 어지러움을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라고 한탄하며 치악산에 은거하여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지키신 분이다.
"흥망(興亡)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滿月臺)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 왕업(王業)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석양(夕陽)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겨워 하노라."
노구할미
운곡선생의 부탁으로 임금을 속이게된 것을 괴로워하며 강물에 자신의 몸을 투신하여
임금에 대한 죄를 사죄하였다. 후에 노구의 충성심을 가륵히 여겨 제례를 지냈으며,
현재는 투신한 곳을 노구소라하여 충절을 상징하는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태종(1367 ~1422), 이방원(李芳遠)
조선왕조 3대왕인 태종은 일찍이 운곡선생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스승인 운곡을
관직에 앉히려고 치악산에 와서 현재의 비각이 있는 바위에 머물면서 운곡을
찾았으나 운곡은 태종과의 만남을 피하였고, 태종은 비로소 스승의 뜻을
돌릴 수 없음을 알고 돌아갔다.
운곡선생과 노구할미의 대화장면
운곡선생이 빨래를 하던 노구할미에게 이 뒤에 사람이 찾아와 나의 거처를 묻거든
나는 번암으로 가겠으니 그대는 "내가 바른쪽 치악산중으로 가더라" 라고 말하라시며
부탁하고 있음
태종과 노구할미의 대화장면
태종의 일행이 나타나 운곡의 거처를 묻자, 노구할미는 운곡이 부탁한 대로
'치악산중으로 가더라' 라고 알려 주고 있음
태종이 기다리는 장면
결국 태종은 운곡선생을 만나지 못하고 지금의 태종대가 위치한 바위에서 7일동안
머물다가 이곳을 떠나갔음
노구할미가 고뇌하는 장면
노구할미는 나중에 태종인 것을 알고 임금을 속인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강물에 투신하여
죽음으로 사죄하였는데 그곳을 '노구소(老嫗沼)'라 이름지어 충절을 상징함
홍살문을 빠져나옴
홍살문의 의미을 알아보면
전근대시대 국가에서 효자(孝子)·충신(忠臣)·열녀(烈女)들이 살던 마을 입구
또는 살던 집 앞에 그 행실을 널리 알리고 본받도록 하기 위하여 세운 붉은 문.
홍문(紅門)·홍살문이라고도 한다.
그 행실을 널리 알리고 표창하는 것을 정표(旌表), 그 일을 정려(旌閭)라고 했다.
조선은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하면서 유교가치관을 확산시켰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유교적 윤리규범에 따른 선행을 장려하는 일이었다.
강림천
수레너미 길
치악산둘레길 3개 코스는 총 33.1km이다
제1코스 꽃밭머리길은 11.2km는 행구동 국형사부터 소초면 제일참숯까지 고려 말
충신 운곡 원천석 선생의 얼이 살아 숨쉬는 코스이다. 국형사(國亨寺), 관음사,
성문사, 석경사, 원천석묘 등 고찰이 많다.
제2코스 구룡길은 소초면 제일참숯에서 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까지 7km이며,
제3코스는 수레너미길로 소초면 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횡성군 강림면
태종대까지 14.9km구간이다. 이 코스에는 조선 태종이 스승인 운곡 원천석 선생을
찾기위해 수레를 타고 넘었다는 수레너미재를 따라 걸으며 그날의 역사를
살펴보고 행적을 따라가 볼 수 있다.
수레너미 정상까진 1.4km, 우리의 목표지점이다.
치악산둘레길 제3코스 수레너미길, 수레너미재정상
Stamp Tour, 치악산둘레길 3코스 등산확인 스템프 찍는 곳
수레너미 정상에 설치한 느린 우체통
1년 후에 배달되는 느린 우체통
사랑하는 이에게 나의 소중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보세요
빠른 것만 찾는 시대 느린 것의 소중함도 있답니다.
"앗! 자작나무 가로수 길이다."
수레너미길에서 안흥으로 가는 길목엔 하얀 자작나무 가로수로 눈길을 끌었다.
고은시인의 '자작나무숲으로 가서' 평소 걸으면서 암송하던 애송시가 절로 나온다.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 고은
광혜원 이월마을에서 칠현산 기슭에 이르기 전에
그만 나는 영문 모를 드넓은 자작나무 분지로 접어들었다
누군가가 가라고 내 등을 떠밀었는지 나는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 다만 눈발에 익숙한 먼 산에 대해서
아무런 상관도 없게 자작나무숲의 벗은 몸들이
이 세상을 정직하게 한다 그렇구나 겨울나무들만이 타락을 모른다
슬픔에는 거짓이 없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
오래오래 우리나라 여자야말로 울음이었다 스스로 달래어 온 울음이었다
자작나무는 저희들끼리건만 찾아든 나까지 하나가 된다
누구나 다 여기 오지 못해도 여기에 온 것이나 다름없이
자작나무는 오지 못한 사람 하나하나와도 함께인 양 아름답다
나는 나무와 나뭇가지와 깊은 하늘 속의 우듬지의 떨림을 보며
나 자신에게도 세상에서 우쭐해서 나뭇짐 지게 무겁게 지고 싶었다
아니 이런 추운 곳의 적막으로 태어나는 눈엽이나
삼거리 술집의 삶은 고기처럼 순하고 싶었다
너무나 교조적인 삶이었으므로 미풍에 대해서도 사나웠으므로
얼마만이냐 이런 곳이야말로 우리에게 십여 년 만에 강렬한 곳이다
강렬한 이 경건성! 이것은 나 한 사람에게가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을 내 벅찬 가슴은 벌써 알고 있다
사람들도 자기가 모든 낱낱 중의 하나임을 깨달을 때가 온다
나는 어린 시절에 이미 늙어버렸다. 여기 와서 나는 또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자작나무의 천부적인 겨울과 함께
깨물어 먹고 싶은 어여쁨에 들떠 남의 어린 외동딸로 자라난다
나는 광혜원으로 내려가는 길을 등지고 삭풍의 칠현산 험한 길로 서슴없이 지향한다
점심식사는 횡성군 안흥면 행정지원센타(옛 면사무소)앞에 산골밥상에서
맛있는 동태찌게로 하였다. 맛도 있고 양도 푸짐하며 가격도 저렴한 맛집이었다.
동태찌개 2인 만사천냥..
꽁치조림 등 밑반찬도 참 맛있었다.
식당이 있는 안흥 행정지원센터(옛 면사무소)가 있는 중심가를 뒤로 하고
마지막 일정으로 우리부부는 안흥진빵 본점으로 내 달린다.
주변엔 온통 안흥진빵집들이지만 진미를 찾기 위해 네비를 치니
본점이 안흥중심에서 지그마치 5km여나 떨어져 있었다.
서울에서 사먹던 안흥진빵과는 빵색깔부터가 다르고 맛도 감칠맛이었다.
이것으로 지난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 1차, 이어서 2차로 16일부터 17일까지 다녀온
원주, 횡성 치악산 여행기를 모두 마칩니다.
찬란한 빛/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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