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사(德山寺). 구 내원사(內院寺)는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586번지,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 말사.
지리산은 '어리석은 사람(愚者)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智者)이 된다해서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린다고 한다. 지리산 장당골과 내원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합치는곳에 위치. 지리산은 명산이라 골짜기마다 좋은 사찰이 많다. 세상사 어려움을 부처님께 의지하려는 발원, 옛날이나 지금이나 삶이 쉽지않다. 다 일장춘몽인데.
신라 태종무열왕 4년(657) 원효대사가 덕산사(德山寺)로 창건, 대중들의 수행정진하는 사찰로 유지되어 오다가 1609년(광해군 원년, 만력 37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큰 화재로 모든 당우가 소실되어 그대로 방치되어 폐사지로 있다가 1959년에 원경스님에 의해 다시덕산사가 중창. 화재 이후 이곳의 스님들은 덕산사를 버리고 수선암이라는 곳으로 올라가 수행을 했다고 한다.
현재 옛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1950년대에 도굴꾼들에 의해 훼손되어 있던 것을 1961년에 복원하여 보물 제1113호로 지정된 “내원사 삼층석탑”과 1,2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 제1021호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다. 또한 불상 대좌 속에서 발견된 영태2년명납석제호(永泰二年銘蠟石製壺) 사리함은 국보 제233호 “전 산청 석남암사지 납석사리호(傳 山淸 石南巖寺址 蠟石舍利壺)”라는 명칭으로 현재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편 내원사 삼층석탑은 신라시대 것으로 사라진 덕산사가 남긴 유일한 흔적이기도 하다.
반야교를 거쳐 내원사 경내로 들어간다. 반야교 아래의 너럭바위에는 명옹대(明翁臺)라는 이름이 음각되어 있다. 설화에 의하면 내원사의 옛 이름인 덕산사의 수맥이 더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위하여 어떤 장수가 들어다 막아 놓았다 하여 장수바위라고 하기도 한다.
대웅전은 정밀 발굴 조사작업으로 왼쪽 요사채로 임시 이전하여 사용중이다
내원사 삼층석탑(보물 제1113호)
신라시대 때 세워진 3층 석탑으로 도굴된 것을 1961년 내원사가 세워지면서 복원되었다. 이 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놓고 정상부에 상륜을 장식한 신라시대 일반형 석탑으로 높이는 4.8m이다. 탑의 위쪽 옥개석(屋蓋石)이 많이 부서지고 상륜부는 상실하였다. 신라시대 하대의 석탑의 원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비로전
정면 3칸, 측면 2칸에 겹처마에 익공계 맞배지붕이다. 창호는 띠살무늬를 하고 있으며, 안에는 석조비로자나불만 봉안되어 있다. 석조비로자나불은 지리산 중턱에 있던 석남암수(石南巖藪)에 있던 것을 1970년 후반에 옮겨온 것으로, 현재 보물 제1021호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山淸 石南巖寺址 石造毘盧遮那佛坐像)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대좌 속에서 사리기가 발견 되었는데 사리함에 적힌 명문에 따르면, 776년 신라 혜공왕 2년에 비로자나불을 조성하여 석남암사에 모신다는 내용이 있다.
비로자나불의 상체는 건장한 모습으로 전신을 감싸고 있는 법의〔가사 혹은 납의(衲衣, 衲은 기웠다는 뜻)〕주름은 촘촘하고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다. 두 손은 가슴에 모아 지권인(智拳印)을 결하고 있다. 대좌는 8각의 하대에 연꽃무늬를 새기고, 중대는 8각의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겼으며, 상대에는 2겹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에는 연꽃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위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하단까지 깨져 약 3분의 1정도가 없어져 버렸다.
대좌의 가운데 받침돌 안에서 통일신라 때의 거무스름한 곱돌(납석)로 만들어진 작은 사리기(舍利器)가 나왔다. 영태2년(永泰二年)이라는 명문이 있는 이 항아리는 총 높이 14.5㎝, 병 높이 12㎝, 아가리 지름 9㎝, 밑 지름 8㎝이다. 영태2년명납석제호(永泰二年銘蠟石製壺)는 국보 제233호 전 산청 석남암사지 납석사리호(傳 山淸 石南巖寺址 蠟石舍利壺)라는 이름으로 부산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영태 2년(永泰二年)은 신라 혜공왕 2년(766)임을 나타내고 있어 신라 비로자나불 좌상의 제작 연대를 8세기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또한 불상 대좌의 중대석에 사리를 봉안한 것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있는 사례로 복장물의 변천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흔적이다.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익공계 팔작지붕으로 건물의 전면에는 칠성각, 천왕전(天王殿), 산신각이라는 편액이 함께 걸려 있다. 산신각의 편액이 걸려 있는 곳의 창호는 빗살무늬 3분합문이 달려 있고, 칠성각은 빗살무늬 4분합문이, 중앙의 천왕전은 빗살무늬 3분합문이 달려있다. 천왕전 칸에는 보살상 3구가 봉안되어 있는데, 하나는 정병을 든 청동불입상이며 나머지 2구는 석조천왕보살상과 석조독성좌상이다.
천왕전에 모셔진 천왕보살에 관한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우리나라에서 중국에 왕비로 가게 된 한 여인이 지리산으로 도망을 와서 수행을 하면서 신통력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의 이야기에서 누군가 천왕보살로 모셨고, 한 노보살이 보살상을 만들어 자기 집에 보관하다가 산청 내원사에 기증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보살상은 옛날 왕비들이 한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
삼성각 앞에는 작은 3층 석탑이 세워져 있는데, 이 석탑은 불기2522년(1978년)에 건립한 것이다.
덕산사(내원사)에 전해오는 설화
지리산 품안에 자리한 내원사는 옛날 덕산사(德山寺)가 있던 곳으로 풍수지리로 볼 때 명당 자리로 알려졌다. 그래서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으로 큰 혼잡을 이루게 되었는데, 수행하는 스님들이 불편해 하여 주지스님이 이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노승이 찾아와 “남쪽의 산봉우리 밑까지 길을 내고 앞으로 흐르는 개울에 다리를 놓으면 해결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다음날부터 스님들은 개울에 통나무로 다리를 놓고 봉우리 밑까지 길을 내었다. 그러자 그렇게 많이 찾아오던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어 스님들이 조용히 수행 정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돌연히 고양이 울음소리가 세 번 들려왔다고 하다. 이상히 여긴 사람들은 무슨 징조인지 궁금하게 생각하여 풍수설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봉우리는 고양이 혈이고, 절 뒤에 있는 봉우리는 쥐의 혈인데 여기 길을 내고 다리를 놓으니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고 조금 지나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스님들이 개울에서 커다란 통나무에 물을 길어 불을 끄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왼쪽에서 길어 쏟는 물은 오른편 개울에 떨어지고, 오른편에서 쏟는 물은 왼편 개울에 떨어지며, 앞에서 쏟는 물은 뒷산 봉우리에 떨어져 결국 불길을 잡지 못하고 절이 모두 전소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