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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령 14~18 | g1
작성자 : 김영순 (gamsun2)
제14信 7-16-99 dear현령
출근길 한꺼번에 받게된 두 통의 네 편지를 어쩔 수없어 가방에 챙겨 넣었다
차 안에서 부산스럽게 봉투 뜯어 읽으려는 내게 유영은 분위기 살려준다고 배경음악을 깔아주더라
암~칭찬하고 말고! 쓰다듬어 주고 말고!! (유영 말고 너 말이다)
그대는 純白의 美를 아시는가 그건 바로 그대와 나의 情을 두고 한 말이 아닐련지...
자연 앞에 서 있으면_. 풀 한 포기에서부터 우주공간의 공간까지도 사랑하고 감사할 수 있음이며
책에 빠지면_.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진지한 가슴을 지니고 있는 네가
자랑스럽고 부러워 죽겠는데 포장된 모습을 보지 않았나 라니 무슨 당치도 않는 말씀이신가?
전에도 말했듯 모든 것 벗어 던진 (포장지 벗겨버린) 그 순간부터
진한 정이 우러났다고 하질 않았던가!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당당할 수 있음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당당함은 아니질 않는가!
현령아 ! 내가 어느집 서재에서 황금비늘을 발견했을 때 네생각에 주저 없이 빼어들어 빌려왔다
빌려준 이도 좋은 책을 알아본다고 흐뭇해하더라
모든 식구들이 돌아가며 읽었지 이 외수씨가 문인계의 기인이라고만 알았지
그의 작품을 한번도 읽어 본적이 없었는데 참으로 깊이 있는 글을 썼더구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을 만큼 말이다
이렇듯 소설책 한권 시 한귀절도 너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으니
넌 나의 문화 보급소이기도 하단다
전에 부탁한 녹화 잘 해 나가시는지 못 했으면 지금부터라고 시작해 주라 편지 해줘!
이거 해줘! 할 수 있는 만만한 네가 있어 너무 좋구나
박 부자야! 우리 집 부자얘기 한번 들어볼래 유영이 자칭 재벌이란다
경록이 외출을 하니 재빨리 발코니로 가서 빳빳한 지폐 1불짜리를 한장 한장 뿌려 주었단다
경록이 좋아하는 것 보려고 말야
그러다가 그사이에 20불 짜리 한 장이 섞여나가는 바람에 부리나케 뛰어 내려가 주워왔는지 뻇어왔는지 다행스러워 하는 졸부를 봤다
얼마나 심심하면 하늘에서(3층) 돈벼락 내리는 놀이를 할까?
나 역시 엉뚱하긴 마찬가지지 애들 방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면 가만히 듣고 있다
알만한 터보의 신곡 '보이지 않니 나의 뒤에 숨어서...' 하고 나오면
얼른 경록뒤에 숨어서 코믹 연기를 한단다
또 하나 침대에 납짝 엎드려 음악도 없이 책도 보지 않고 두눈만 껌뻑이고 있는
무아지경 상태를 즐기기도 한다
애들은 그걸 시체놀이라 이름지어 놓았지
그 놀이는 유영이도 경록이도 나도 모두 즐긴단다
(좀 우습지?)
준비성 많은 넌~ 혼자 있어도 결코 외롭지 않을 수있는
많은 메모들과 함께 하며 여전히 메모하고 정리하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는 그 마음은
그 옛날 딸의 육아일기 (성장일기) 써오신 어머님의 정성을 그대로 닮아가는구나 너가 기분전환용으로 적어본것중 난 몇 가지나 써먹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내 취미를 누린다는 게 너무 빈약하단 걸 알았다 때론 음악에 빠지는 감성을 가지고 있음을 유난스럽게 자찬도 해 보았다만 지난날 외워두었던 시 한 구절에도 찡한 감동을 받을 수 있음을 흡족해 하기도 했다만 밑천이 짧아 금방 떨어지고 마나니 그야말로 밑천이 풍부한 부자를 뛰어넘어 거부가 된 네가 얼마나 부럽겠냐 내 재산 중에 하나인 여학생 시절 꽃잎과 나뭇잎을 모아서 일기장 여기저기 붙여놓은 것이 해가 지날수록 한잎 두잎 부스러져 떨어져나가기에 아까워서 펼쳐보기가 망설여지더구나 생각다 못해 그 빛바랜 꽃잎들을 스카치 테입을 도배해 버리는 결단을 내리고야 말았단다 광여고 교정에서 모아둔 물망초도 있고 그땐 꽃말이 좋아서 물망초를 무진 좋아했었지 또 내가 좋아했던 한 소년이 자기집 정원에서 따다 준 것도 많고 한라산 눈밭에서 수집한 것도 있는데... 그날들이 _. 엊그제 같다는 느낌은 여전하다만 그 말만 하면 딸들이 까마득한 옛날 일을 (자기네 태어나기 이전이므로) 엊그제라 한다고 날 마치 시간개념 망각한 노인네 취급을 하니 되도록 애들 듣는데선 그 말을 안 한단다 현령아! 여고시절 하면 떠오르는 핑크빛 사연하나 고백할게 난 그때도 외로움을 즐겼는지 어쨌는지 아무튼 혼자 있기를 좋아했단다 언젠가_. 냇가에서 신발을 벗어들고 물장난을 하며 놀다가 강둑 위에 만발한 코스모스가 보이기에 새찬 물살 헤치며 무작정 건너갔었지 누가 야단칠까 약간 겁이 났지만 욕심껏 코스모스를 꺾고 말았단다 그 꽃을 안고 오는 길에 우연히 두 남학생을 만났는데 그중 한 학생을 내가 많이 좋아했었거든 진정 코스모스를 주고싶은 사람에겐 차마 주지 못하고 옆에 있던 친구에게 대뜸 안겨 줘 버렸던 그 부끄러움을 넌 이해 할 수 있겠지(싱겁냐? 짜냐? 달콤하냐?) 이 얘긴 코스모스가 만발한 가을에 해야 하는 건대 왜 물망초 떠올리다 말고 이 생각이 났는디 아무튼 옛것은 좋은 것이여 현령아 ! 아프단 팔이 나아 다행이다 전에 그 소리 듣고 속으로 너만 아프냐 나도 그러다 하며 동병상린의 아픔을 느꼈는데 정말 다행이로구나 너나 나나 나이 드는 증상인지 직업병인지 시원찮해진 팔이기에 글씨를 쓰다보면 팔목에 무리가 가므로 힘이 절로 빠져 흘려 쓰기가 일쑤고 그래도 펜을 붙잡고 놓지 못한 이 심정 너 알지? 피곤한 것도 같고 졸리운것도 같고 시력이 떨어져 초점을 잘 못 맞추기에 귤씨가 커졌다 줄었다 이것도 너 알지? (넌 글씨도 또박또박 한석봉 모친 떡 썰어 논 것처럼 고르게 쓰더라 만)내일을 위해 충분한 수면이 필요한데도 잠 못 드는 네 모습은 바로 내 모습이기도 하구나 현령아 연로하신 어머님 옆에서 조바심으로 애태우는 네게 주검에 대한 얘기를 너무 가볍게 쏟아내었으니 철부지 날 용서해다오 다음부턴 너의 아픔이기도 할 그 말을 하지 않을게 친구야! 삶이 나를 떠밀어 이곳까지 오게 했고 때론 가장되어 무거운 짐 혼자 다 짊어진 것 같았다만 그건 당차고 생활력이 강해서 그런게 절대 아냐 닥치면 누구든 하기 마련이지 내가 생각하는 강한 엄마는(女子는) 남편이 힘잃었을 때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기필코 성공하여 남편을 출세시키고야마는 그런 女子가 진짜 당찬 女子 게지 난 그저 운이 좋아 미국까지 와서 자연 뽕으로 애들 공부시키고 (우들 생인거 알지?) 지네들 앞가림 할 수 있데 해 놓았으니 (아르바이트로 용돈 다 해결하는 것도 알지?) 그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온대도 이젠 애들 가여워서 눈물짓는 일은 없을 테니 그걸로 만족할밖에... 현령이 넌 나를 이곳 먼 곳으로 여행시켜 놓았지 우리 함께 낯선 여행지에서 길다란 사연 적은 편지에 엮어 만나고 서로 격려하고 아파해 주니 이 또한 자연 뽕으로 귀한 너를 얻었구나. 안녕 99- 7-24 제15 信 7-30-99 dear현령 지난번 함평나비축제 얘길 네게 잠깐 들었을 때 난 속으로 기대한게 있었다 축제있는고장이면 찾아 다니는 전국노래자랑 T.V 프로란다 소개하는 안내 자막엔 5월7일 함평녹화라기에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 주말마다 한편도 빼지 않고 꼬박 꼬박 빌렸것만 7월이 다 가다록 소식이 없기에 너무 재미없게 찍힌거라 재외 시킨 줄 알고 포기했었다 근데 지난주 거에 다음주는 함평군편입니다 라고 씌어 있더구나 내가 어찌 토요일까지 기다리겠누 금요일 당장 경록깡 대동하고 함평군편을 빌려왓지 약간 흥분한 듯 오는 차안에서 경록에게 인터뷰하는 시늉을 했다 '엄마가 집에 가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전국노래 자랑이요'! 어디서 하는 거지?' '함평군요!' 오랜 기다림과 즐거움에 애들과 한몫 끼어 지내들은 잘 보지도 않는 프로지만 오늘만큼은 꼭 붙어 관심 있는 척 해주더라 비디오 빌려오는 길에 메일박스에 들려서 한 무더기 메일들을 안고 왔지만 많은 우편물 틈에 낀 네 편지는 비디오 방영 중에야 발견했지 뭐냐 대충은 네 편지 올 날을 헤아릴 수 있었기에 오늘은 관심 있게 찾아보지도 않았거든 지집애~~!! 내 답장 받지도 않고 보내는 이쁜짓을 또 했구나 양손에 떡을 쥔 심정으로 편지를 펼쳐 그 속에 빠지는데 반가운 언니의 전화가 와서 방해아닌 방해를 하게되니 우리 딸들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슈? 하듯 쳐다보더라 아이쿠 숨차라~~~ 여기까지가 직장 출근하기 2시간 전에 일어난 잠깐동안의 실황중계다 선영 아빠가 처음 함평천지를 방문했을 때의 첫 이미지가 (중2?) 함평의 산들이 모두다 꼭 女子의 젖가슴 같더란 그런 말을 자주 하더라구 난 잘 느끼지 못하였기에 그랬던가? 했었는데 화면 속의 함평은 그냥 함평이라니까 기나보다 하지 낯설은 이방고장이나 다름없었지만 정말이지 부근씨 말처럼 여기저기 봉긋이 솟아있는 산들이 젖가슴을 연상케 되더구나 그 양반이 어릴 적 첫눈에 알아본 그 포근함은 먼 훗날에 자기 아내 될 영순씨(?)가 잉태되어 태어난 고장임을 미리 예감하였기에 그래서 였을까? 현령아! 내가 너를 부러워한다 네것이나 다름없는 마을문고 차안 가득히 쌓인 책더미 속에서 빌려볼 책 고르는 그 모습이 부럽다 소녀처럼_. 편지지와 봉투지 취미대로 색깔대로 고르는 멋스러움을 누린다는 게 얼마나 부러운지~~ 그리고 자그마한 시골 우체국에 가서 우표사서 편지 보내는 그 모습을 그린다. 난 그 멋 부리는걸 포기했기에 기본 우표 몽땅 사다놓고 행여 무게 중량 넘칠까봐 3장을 넘기지 못하고 편지지를 늘렸다 좁혔다 하는데 이런 한심한 게으름이여~~ 부러우면 나도 하면 될 것 아닌가!! 그래도 마음은 있는데 편지 못하노라 는 친구들에 비하면 조금은 나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구나. 내가 실로 몇 십년만에 네게 처음으로 편지 쓰기를 시도했던 동기가 뭔줄 아니? 넌 우습겠지만 어떤 노래 가삿말 에서란다. '베고니아 꽃이 핀 우체국 계단에서 어딘가에 편지(엽서)를 쓰는 그녀의 하얀 손~' 이라던가!? 그러고 보면 어머님만 소녀 같으신 게 아니라 우리도 조금은 소녀다운 데가 있긴 있나 보구나 호! 호!(소녀다운 웃음임) 친구야! 덩달아 춤을 추듯 네 발이 예뻐보였다니 무척 듣기 좋구나. 한가지 더 예뻐했던 게 있었는데 마저 실토하마 남들의 안중에도 없었겠지만 난 스스로 내 목이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었단다. 그것도 혼자서 욕실에서만 느껴 본 거지만 말이다. 전엔 진짜로_. 짧긴 하지만 내 목에서 깔끔하고 미끈함이 느껴졌기에 예뻤었는데 지금은 상대 적으로_. 나보다 더 나이든 분들의 탄력 잃고 주름진 그 못을 바라보며 약간은 위로 받은 듯 그래도 아직은 예쁘다고 생각하자 한단다. 한동안 대머리 홀랑 벗겨질 것 같은 (또 안쓰럽니?) 따가운 날씨가 연속이더니 오늘 아침은 안개비가 촉촉이 내리며 설악산처럼 내장산처럼 온통 사방이 신선놀음 할만큼의 안개에 싸여 있구나. 따끈함이 그리워 커피를 한 모금 삼키며 창밖을 보니 건너편 Apt에 희미하게 하얀 찻잔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보노라니 어떤 여인네가 전화통을 붙들고 차를 마시는구나. 난 편지를 쓰면서 나다운 오색빛 선명한 머그잔에다 커피를 마시는데 말이다. 친구야! 너의 막내네동생과 그 친구들의 얘길 들으며 평화스러움 그 자체임을 느꼈단다. 그리고 나 또한 안될 것 많고, 걱정도 탈도 많은, 호사스럽고, 거들먹거리는 세상 쪽에 나를 합류시킨다는 게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차라리 이대로 무원동 (황금 비늘에서) 지기가 돼버리려 한다. 욕심 없고 미움 없고 무시당함 없는 곳 난 그곳으로 향하기가 훨씬 쉽구나. 그리고 너의 집 해방 구에 무원동 하나를 더 붙이자꾸나. 우리가 이 모습대로만 살아간다면 굳이 무원동을 찾아 나설 필요가 없질 않겠는가? 마음속에 푸르른 대나무 숲같은, 저 안개속같은 넓은 터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황금 비늘의 마지막 결론철검 행복해지기 위해 아니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되는 게 아닐까? 紳 께선 세상 적으로 살지 말라고 내게 많은걸 주지 않으셨나 보더라. 내가 너처럼 늘씬한 키에 예쁜 몸매를 가졌다면_. 몸치장하기에 정신이 없었을 게고, 훌륭한 예술가가 되었다면_. 호화스런 무대에서, 문단에서, 또는 화랑에서 나를 뽐내기 위해 진땀께 나 빼고 있을 게고, 후한 경제력이 주어졌다면_. 사치스러움의 주동자가 되어 온갖 거드름 다 피우고 다녔을 텐데... 위의 아무것도 주지 않는 신께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하는 마음이 잦으 니 그분은 대단히 수지맞은 장사를 한것같지 않니? 친구야! 한동안 집필(딸들이 놀리느라고 붙여준거 알지?) 하는데 정신이 팔렸 었는데 이젠 밑천이 다 떨어져서 무응답의 친구들에겐 그만 절필(?)을 할까 생각했었다. 편지 대신 전화안부 하는 내게 살인적인 그곳 더위에 닭들이 죽어 가는 안타까움을 저하는 풀죽은 애자의 목소리에서 '고맙다 나 같은 년이 뭐기에 전화에 편지에...' 난 그 '나 같은@' 한마디에 단 숨으로 앞 뒤 메꾼 3장의 편지를 쓰고 말았단다. 내 편지 한 통에 위로 받고 눈물짓는 친구를 떠올리며 어찌 절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서로의 닮은꼴을 찾아가며 맞장구치기 잘하는 너와 나의 장단을 어이 그만 둘 수 있으리요. 네게 지지 않으려고 (실은 나처럼 받는 기쁨 크라고) 3장을 넘기려 했 다만 젊은 태양보다 더 젊은 지하여장군을 이겨먹지는 못하겠구나. 한계가 이뿐이니 그만 줄여야 겠다.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많은 발전이지 뭘. 안녕. 16 信 dear 현령에게 8. 5. 99 현령아! 놀라지 말거라. 이 몸이 이렇듯 어려운걸 해냈지 뭐냐! 한동안 이 놀음에 빠지면 시간가는 줄 모르겠구나. 유영, 경록 코치 받아 가며 떠듬떠듬 쓴다만 언젠가는 일사천리로 잘하리라 믿는다. 현령 현령 현령.......... 나 잘하지? 언젠가 한번 시도했었다가 알파벳을 보면서 가나다를 찍는다는 게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그만 포기하고 말았는데 잠실 영숙여사가 내 허락도 없이 먼저 선수를 치는 바람에 이에 용기를 얻어 나도 재도전한다는 게 성공해 버리고 말았단다. 이젠--. 편지 읽을 때 너의 예쁜 이마 찌푸려 가며 이 글잔가 저 글잔가 고민하지 않아도 되리라. 해내는 기쁨에 너를 대하고 있다만 실은 시간이 없구나. 일 갔다 오자마자 준비 대충하고 L. A 에 가야하거든. 꿈에도 부풀을 'out of state' 일텐데 나 이러고 잇느라고 아직 가방도 싸지 못한 거 있지 경록인 그 즐거운 일을 왜 미루는지 으아 하게 생각 할 테지만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다녀와서 다시 쓰마. 8, 12. 99 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느꼈노라!! 현령아! 난 꿈같은 캘리포니아 여행을 다녀와서 설레는 마음으로 너를 찾고 있단다. 조카 결혼식 참석차 가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동심으로 돌아간 오빠 언니들과 함께 어우러져 태평양을 무대 삼아 맘껏 소리지르고 뛰놀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만 같구나. 드넓고 푸르른 바닷가에서, 그 보드라운 모래밭에서, 여고시절 수학여행길에 받은 느낌 그대로, 난 맨발의 소녀가 되었고 파도가 쓸고 간 그 자리에 수많은 발자국 남기며 잠시 난 아줌마 되었음을 잊고 말았지. 야자수도 아름드리 이국정취 물씬 풍기는 발음하기조차도 어려운 xx 비-치(beach) 에 저녁노을이 물들여졌을 때--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그 정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니 내가 황홀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니 춥기 도하고 그래서 남들이 남기고 간 불 옆에 앉아있노라니 내가 이뻐서 였을까 어떤 이가 장작을 건네주지 않겠니, 그야말로 '불감청인들 고소 원일세' 이더라. 드디어 '캠프파이어' 는 시작되었고, 불꽃이 춤을 추니 우리도 덩달아 춤을 추며 목청 높여 노래했고, 육십을 바라본 이도 사십을 훌쩍넘은 이도 모두 다 함평 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여있던 초등학생으로 돌아가고 말았단다. '헐리웃' 구경도 나는 싫소, '유니버샬 스튜디오' 도 싫소, 사람 손으로 만들어놓은 '디즈니 랜드' 도 필요 없으니 그냥 바다구경이나 실컷하게해주오........ 은은하게 풍겨오는 갯내음을 맡으며 그야말로 저토록 거대한 바다에서 냄새가 겨우 그뿐이란 게 조금은 아쉬웁더라만 어디 간들 우리고향 아니 우리 나라 냄새만 할 라고? 현령아! 여행 좋아하는 나이기에 이곳 콜로라도를 떠나보면 잠시 한국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 바 있었는데 여전히 그리운 마음은 변함이 없구나. 이 한 몸 기대여 살아갈 터전 없는 그 쓸쓸함이 뭐가 좋아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것다. '한국을 가지 않으면 미처 버릴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기 전에는 가능한 움직이지 않으련다. 어서 빨리 이곳에 정 붙이려면 그래야 하지 않겠니? 그리고 사람들과 사귀어 교제도 나누고, 새로운 음악도 접하고, 애들이 끌고가면 억지로 라도 볼링장도 가고, 먹기 싫은 월남국수 일망정 애들이 좋아하니 따라가 먹어주고, 가끔씩 낚시도 가주고 그래야지 사람이 옛것만 고집하고 있으니 고린내 나는 파파할머니가 되버린 느낌이로구나. 하긴 그 옛날은 무에 그리 좋았을 라고 다만 풋풋한 젊음이 있었을 뿐이지...... 먼 훗날에___. 오늘의 젊음을 그리워할지도 모르는데 이쯤에서 만족하려고 맘먹는다. 따져보면 언제는 내가 외롭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세상을 등지려 하지 말고 부딪히면서도 살아봐야지. 캘리포니아 여행후 마음에 바람이 조금 들어갔는지 어떨 결에 샤넬 No 5 를 갖고 말았단다. 언제부턴가 향기가 어떤지 맡아보고 맘에 들면 사리란 말만하고 망설이는 나를 견디다못한 유영 이가 대뜸 사버리고 말았단다. 난 아직 한번도 향수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만,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만, 아무튼 사치스런 마음으로 그걸 소유하고 말았지뭐냐. 그많고 많은 향수 종류 중에 새로 개발된 향도 무진장 많것만 굳이 샤넬 No 5를 선택함은 오랫동안 귀에 익은 게 좋아 보이는 나의 고집스러움을 피할 수 는 없더구나. 바닷가에서나, 또는 해안선을 끼고 도는 절경을 바라보면서라던가, 자연 앞에 서있으면 집시처럼 자유롭고, 소녀처럼 행복했던 내가 '베버리 힐즈'의 고급 패션 상가에선 어색해진 몸짓으로 고가 품의 상표들을 비위상하듯 쳐다보며 나와는 친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상대도 안하고 돌아온 사람이 쓰지도 않을 비싼 향수가 웬말인가? 지난 생일에 선물 받은 랑콤 립스틱도 그렇더구나 화장품 통에 널려있는 쓰다둔 립스틱을 먼저 처치해 버리려고 아까워서 포장도 떼지 않았는데 어찌나 애들이 성화이던지 한 번 두 번 바르다 보니 그 향기를 맡은 나는 귀부인이 되버린 느낌을 가졌단다. 그래! 좋은 것부터 쓰자! 허드레 립스틱 따위쯤 버리는 여유도 부리자. 아니야, 저건 한국 가서 샀고, 저건 색상이 맘에 들고....... 그러면 버리지 말고 일단 간직하기로 하고 저 랑콤을 제일먼저 발라 없애야지. 행복한 귀부인 행세를 하면서 말야 비록 한 달에 두세번 하는 화장일 망정........ 현령아! 혹시 이런 부탁 들어줄 수 있겠는가? 선영이가 어려서부터 태열 기가 있고 습진이 심했단다. 줄곧 병원신세를 졌었지, 고등학교땐 여드름이 심해서 한동안 치료를 받았는데 좀처럼 치유가 안되어 고생이 많았단다. 이유인즉 습진,태열기는 상관치 않고 여드름치료만 했기에 효과가 없었던 게야 원인을 알고 뒤늦게나마 습진,태열기를 동반한 여드름 치료를 해서 한동안 괜찮았거든. 얼굴이 깨끗하진 않아도 그런 데로 볼만했고 또 결혼도 했으니 좋아지려니 했는데 요즈음 선영 얼굴이 말이 아니로구나 이마엔 여드름 같은 게 많이 나고 제일 심한곳은 입 주위란다. 입 주변은 새까맣게 변색이 되어 각질이 생겨나고<껍질이 벗겨지고> 그 위에 계속해서 여드름 같은 게 나더구나. 화장을 안해야 될텐데 그걸 감추려하니 더욱 짙게 바르고 악순환의 연속이지, 애가 피부 땜에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어 그 또한 걱정이다. 이곳 병원은 응급환자 말고는 거의 다 예약제 이기에 두세 달은 기다려야하니 급한 마음에 너를 통해 묻노니 혹 어머님께서 좋은 처방 있으신 지 여쭤보거라. 제일먼저 어머님께 안부인사 올려야 하는 건데 지난 일본여행후 여독이 풀리셔서 건강 되찾으셨단 네 말만 믿고 건강하시리라 생각한다. 그럼 이만 안녕을...... 99. 8.16 Denver에서 젊은 태양이. 제 18 信 99. 11. 10 현령아! 예전엔 몰랐었는데 지금 보니 넌 상당한 수다가 이로구나. 어쩜 내가 할말, 내가 쓸말 다 해버려 내 입을 막으려느냐! 내 필(筆)을 꺾으려느냐!! 네가 선수를 쳐서 한꺼번에 풀어놓았다면 난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조금씩 꺼내보며 우리 다시 볼날 그날까지 애껴가며 써먹을란다. 오자마자_. 아프기는냐?? 한국만 갔다오면 갓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펄떡펄떡 뛴다는 남편 표현 말고도 난 싱싱함 그 자체란다. 나를 만난 친구들을 모두 '넉 다운' 시켜놓고 말이다. 오늘도 여전히 서투른 솜씨로 그 동안의 네 편지 펼쳐놓고 Page수 매기면서 타이핑하는 나는 날마다가 바쁨의 연속이고 한 장 한 장마다 다시 답하고 싶은 마음이 돌머리 바닷가의 파도 되어 밀려 오는다만 선영 아빠가 나를 다그치는구나. 그 사람 편에 보내려고 말이다. 집안일 정리차 급히 한국엘 가야 하기에 부랴부랴 네 편지 정리에 정신없이 바쁘구나. 아직 아무에게도 소식 전하지 못했고 사실은 나 아직 한국방문 동안 가슴 가득히 쌓인 보따리를 차분하게 풀어보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란다. 이 작업 별로 급한 것도 없는데 왜 컴퓨터 앞에서만 매어있는지 못 말리는 영순 아줌마의 즐거움 병은 아무도 막지 못한단다. 이 또한 너네집 가서 배워온거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실행해 옮기는 모든 식구가 말 잘 듣는 사람들로만 뭉쳐있음을 기이하게 여겼던 난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심정이었단다. 시간 지나면 잊어버릴 수도 있고 시들해 질 수도 있으니 내친김에 모든 것 뒤로 미루고 오직 네게만 매달려 있는 격이니 우린 아직 이별하지 않은 거나 다름없고나. 마음 같아선 이것저것 챙겨보내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가난한 살림살이에 부부가 번갈아 한국 나들이를 하게되니 그냥 눈 딱감고 편지만 보낸다. 빈 가방으로 가는 게 아깝기는 하다만 한동안 후회와 아쉬움이 내마음을 짠하게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일... 현령아! 너와의 시간들은 정말 꿈같은 나날들이었다. 날마다 시간시간 꽉 짜여진 일정 속에 우리들의 알찬 나날들을 그 어떤 연출가나, 제아무리 훌륭한 작가 라 해도 감히 흉내낼 수 없음을 아무도 따라할 수 없음을... 또한 밤마다 이 옷 저 옷 곱게 차려 입으시고 나들이하는 새색시 모습으로 인동초 집에서 암뽕(?)으로 중국 집에서 설성으로 귀찮다, 마다 않으시고 시간 맞춰 나오셔서 함께 식사 해주신 어머님이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고나. 나라고 왜 아쉬움이 없겠느냐 어머님의 밑천 통을 몽땅 따오지 못한 게 분하고 그 옛날 어머님 얘기 들어보지 못하고 사진도 일일이 다 못보고 시간에 쫓기듯 떠나오고 말았음이 너무도 아쉽단다. 그리고 막내네 맛있는 커피 고마웠고 날마다 식탁에 앉아 감 깎던 그 모습 너무 이뻣고 희철씨가 운전해준 티코 는 여지껏 내가 타 본 차중 가장 마음 편안했고 귀빈대접 깍듯이 받았으니 그보다 더 안락한 차가 또 있을라구. 내가 다녀가 되려 고맙다는 막내의 차분한 목소리가 내 심장을 잠시 멈추게 했다 그리고 왠지 눈시울이 젖는다. 이 세상에 그 누구가 나를 막내처럼 따뜻한 가슴으로 (그게 진심이었 음을 알기에) 편안하게 대해 주었던가... 어머님 역시.. 난 그분께 사랑한다는 고백밖에 할 수 없구나. 현령아! 앞으로 몇 날은 더 작업에 매달려야 하니 이 바쁨 지나고 나면 조금씩 마음 풀어 정리하며 편지하마.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