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애트우드 저자(글) · 김진준 번역
문학동네 · 2024년 08월 16일
희곡, 소설, 노래, 시 등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 형식으로
잠들어 있던 신화를 생동감 있게 되살린 작품
『페넬로피아드』는 이야기의 화자를 바꾸어 독자의 편견을 깨뜨릴 뿐 아니라, 형식 면에서도 실험적 시도를 한 작품이다. 애트우드는 이 작품을 상연을 목적으로 썼다고 밝힌 바 있는데, 바로 극본으로 사용해도 손색없을 희곡을 비롯해 산문, 노래, 시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이야기를 전개한다. 『오디세우스』에서는 불가능했지만, 시공간과 장르를 가로지를 수 있는 현대문학에서는 가능한 시도다. 특히, 시녀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때는 코러스라인(노래와 시)을 활용하는데, 첫 시집 『서클 게임』으로 캐나다 총리 상을 수상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한 작가답게 시녀들의 고통을 재치 있으면서도 힘 있는 필치로 전달한다.
너무너무 억울했네
당신은 우리의 공포를 핥으며
즐거워하고
손을 들어올리며
떨어져내리는 우리를 구경하셨지
우리는 허공에서 춤추었네
당신이 저버린 여자들
당신이 죽여버린 여자들 (본문 20~21p)
코러스[탭댄스 구두를 신은 시녀들]
시녀들에게 덮어씌워!
저 음탕한 계집애들!
이유는 묻지 말고 높이 매달아─
시녀들에게 덮어씌워! (본문 169p)
판사: 그 뒤쪽에 무슨 소란입니까? 정숙하시오! 거기 아가씨들, 다들 꼬락서니가 그게 뭡니까? 옷매무시 좀 고쳐요! 목에 걸린 밧줄도 풀고! 착석하세요!
시녀들: 우리를 잊지 마세요, 판사님! 우리 사건은 어떻게 되는 거죠? 그를 풀어주면 안 돼요! 그는 우리를 잔혹하게 목매달았다고요! 우리 열두 명을! 열두 명의 젊은 여자를! 아무 이유도 없이! (본문 195~196p)
마거릿 애트우드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경계를 무너뜨려온 작가다. 남성 중심의 서사를 전복시키며 페미니즘 작가로 명성을 얻었으며, 외교·환경·인권·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며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았다. 이 작품에서도 애트우드는 남성 중심의 신화를 여성의 관점에서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성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가장 소외되었던 존재인 열두 시녀를 내세워 위계질서를 뒤집었다. 초판이 출간된 지 12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신화의 가능성을 확장한, 도발적이며 전위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