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등 낙조
수능을 하루 앞둔 날이다. 관련 업무부서와 담임들은 고사장 정리로 분주했다. 아침나절 고3이 예비소집 학교로 떠날 때, 교직원들과 1·2학년들은 교정에 도열해 수험생 선배들을 응원 배웅했다. 오후엔 동료들이 각자 흩어졌다. 본부 요원은 근무지에 남고 다수는 인근 학교로 감독관 교육에 나가야 했다. 감독관에서 면제 받은 나는 오후 시간과 이튿날 온종일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학생들이 모두 교정을 빠져나간 후 나도 곧장 와실로 들었다. 떡국을 끓여 점심을 때우고 물색해둔 행선지로 길을 나섰다. 연사정류소로 나가 고현터미널로 갔다. 시내버스 출발지에서 가조도로 가는 버스를 골라 탔다. 내가 사는 생활권과 달라 자주 들리지 않은 데다. 그럼에도 그곳 옥녀봉에 오르고 해안선을 걸었던 적 있다. 건너편 진동만으로 낙조가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졌다.
터미널에 탄 승객은 내 혼자였는데 고현시장과 장평을 둘러가니 승객들이 다수 탔다. 버스는 섬을 일주하는 ∞ 형태 도로를 따라 두 시간 간격으로 다녔다. 사곡과 사등 면소재지 성포를 지나 가조도다리를 건너갔다. 가조도는 거제에 딸린 유인도 가운데 크기는 칠천도 다음이나 인구는 칠천도보다 많다고 들었다. 순수 농업보다 어로와 양식업으로 생계를 잇는 가구가 많은 듯했다.
신전에서 가조출장소를 지나 계도로 갔다. 계도 어촌체험마을은 진동만과 건너편 고성 동해와 합포 진동 일대가 빤히 보이는 연안이었다. 신교와 유교를 지나 실전에서 다시 가조출창소를 거쳐 군령포를 지난 가조다리에서 내렸다. 버스를 타고 가조도 투어를 한 셈이었다. 신전마을 들머리 수협 효시공원으로 올라갔다. 거긴 진동만과 견내량은 물론 고현만을 함께 조망할 수 있는 데다.
가조도는 삼일운동이 일어나기 십 년 전 지금의 수산업협동조합에 해당하는 어촌계 신용 조합이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생긴 곳이라고 했다. 수협 발상지의 역사 자료들을 모아 전시한 1층의 기념관을 둘러보고 4층 전망대로 올라갔다. 사방이 탁 트인 커피숍은 바다를 조망하기 좋은 데였다. 내보다 먼저 오른 이들이 커피를 들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카푸치노를 한 잔 들었다.
4층 커피숍보다 옥상 전망대가 바다를 조망하기 더 좋았다. 가조도다리와 고현만 삼성조선소도 훤히 바라보였다. 고성 당동과 통영 성동조선소도 보였다. 구름이 가린 해는 견내량에 해당하는 통영 광도면 산기슭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낙조가 되려면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 느긋했다. 옥상에서 내려와 가조도 연륙교를 걸어서 건너 성포로 갔다. 섬에서 섬을 이어 연도교라 할 수 있다.
철골이 아치형으로 휘어진 다리를 걸었더니 교각이 꽤 높았다. 다리 위에서 견내량과 진동만을 바라보니 해상 풍광이 아름다웠다. 구름 속에 낙조를 앞둔 햇살은 바다로 비쳐 윤슬로 빛났다. 다리를 건너 성포 포구로 내려섰다. 성포는 규모가 제법 큰 어항으로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은 어선이 여러 척 보였다. 수협 경매장은 늦은 오후인데도 어패류와 활어가 있어 손님을 맞고 있었다.
성포에서 연안을 돌아 면사무소 앞으로 갔다. 낙도를 바라보기 좋은 바닷가엔 산책 데크라 있었다. 구름이 낀 날이고 평일이라 그런지 낙조를 완상하려는 이는 드물었다. 성포 일대는 낙조를 감상하기 좋은 곳엔 찻집이나 펜션이 들어서 성업을 이룬다고 들었다. 바다 저편 통영으로 저무는 구름 속 낙조를 바라봤다. 넓게 퍼진 선홍색을 아닐지라도 저녁놀은 어디나 장엄한 광경이었다.
사족. 나는 저녁놀이 아름다운 명소를 몇 군데 알고 있다. 통영 미륵도 달아공원에서 다도해로 저무는 저녁놀이다. 마산합포구 구산면 욱곡 앞에서 진동만으로 사라지는 낙조도 황홀했다. 내륙에선 밀양 초동면 곡강 언덕에서 낙동강이 흘러오는 본포와 천마산으로 넘는 저녁놀도 봤다. 건너와 칠천도에 딸린 수야방도에서 진동만으로 저무는 낙조도 잊을 수 없다. 다대포도 있었구나. 19.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