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제 9대 임금인 성종임금은 손수 백성들의 형편을 살피러 다니는 일이 많았다.
어느 날, 평복으로 변장을 하고 동대문 밖 으슥한 길을 걸었다.
마침 대낮처럼 밝은 달을 쳐다보며, 길가 오막살이 외딴 집 근처에 왔을때였다.
성종은 지나쳐 가다가 무심코 발을 멈췄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하던 그 집 사립문이 갑자기 삐그덕하는 것이었다.
기척을 들은 성종은 반대쪽 길가 나무 그늘에 숨었다.
그리고 달빛을 스쳐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반쯤 열린 사립문으로 한 노파가 살금살금 밖으로 나왔다. 마치 누구에게라도 들킬까 겁내는 것 같았다.
성종은,
----'그 집 안주인임이 분명한데 왜 저럴까?' ---하고 수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수상한 일은 이 후부터 일어났다.
사립문 옆 큼직한 감나무 위에서 별안간,
----"까악!까악!" 하고 ---까치 우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그러자 곧 이어 나무 밑까지 온 노파가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피더니,
아무도 보는 이가 없는 줄 알았는지 역시,
----"까악! 까악!" ---하고 까치 울음을 내었다.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고
----"까악!' ---하면서 위에서도 그 소리가 내려왔다.
이러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를 하자,
성종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못참고,
----"에헴!" 하고 큰 기침을 하였다.
순간 노파가 기겁을 하면서 안으로 도망해 들어갔다.
곧 이어 나무 위에서 어떤 사람이 허겁지겁 내려오더니 노파의 뒤를 따라들어갔다.
성종은 막 닫히려는 사립문으로 달려가 문 안으로 들어섰다.
문 안에 들어서자, 처마 밑에 늙은 내외가 두려움에 떨며 서 있었다.
성종은,
----"놀라게 해서 미안하오. 그러나 댁에 무슨 곡절이 꼭 있어 보이기에...." ----라고 조용히 물었다.
늙은 내외는 머리를 푹 숙인 채 대답을 못했다.
그 태도로 보아 그들은 무엇보다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무슨 결심을 하였는지,
---- "뵙자 하니 여느 분 같지 않아서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누추하지만 우선 방으로 잠시 드십시오."----
하고 남편 되는 노인이 머리를 깊숙히 숙였다.
성종은 주인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깨어진 기름 잔에 심지불이 가물거리고 둘레에는 책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 '허, 이 사람은 늙은 몸으로 공부를 많이 하는구나!'
성종이 아니더라도 금방 이렇게 알 만한 공부방이었다.
방에서 서로 인사를 주고받은 후, 노인은 다름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원래 가난한 선비로서 어려서부터 과거에 뜻을 두고 열심히 공부해 왔습니다. 그러나 운이 없는지 나이 50이 넘도록 번번이 낙방만 거듭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해던가, 지나가던 스님이,
----'문 앞 나무에 까치 집이 생기면 틀 림없이 과거에 합격할 것이오.'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한낱 미신에 불과하지만
원체 초조한 때라서 그렇게라도 해 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감나무를 한 그루 심어 놓고
또 그것을 키워 가며 까치가 와 주기를 고대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나무를 심은 지 10년이 훨씬 지났어도 까치집은 커녕, 한 번 날아와 앉지도 않았습니다.
내일 모레면 또 큰 과거가 있는데, 기다리는 까치는 여전히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하여 늙은 내외가 이렇게 까치 흉내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그만 보여 드리게 되었으니 부끄러운 마음 측량키 어렵습니다.'----
늙은 선비는 눈물마저 글썽한 얼굴을 푹 숙였다.
상대가 성종인 것을 몰랐기에 망정이지, 만약 알았다면 아마도 말도 못했을 것이다.
성종은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늙은 선비의 애타는 심정이 측은했고, 더욱 일편단심, 한결 같은 정성이 갸륵했던 것이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던 성종은,
----"하 참, 딱한 사정이구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로 인하여 공연한 훼방을 당했으니, 내가 오히려 미안하오." ----하고 위로하였다.
그리고 늙은 선비가 몸둘 바를 몰라 하자 성종은 다시,
----"염려 마시오. 나는 지나가는 나그네지만,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으리다." ----하고 안심시켜 놓은 후 일어섰다.
그런 후 며칠이 지나 과거 시험이 열렸다. 글제는 다름 아닌 '까치'였다.
쉬운 듯하지만 실상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는 제목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일은 처음인 것이다. 선비들은 모두 어리둥절하였다.
그들이 여태까지노력을 다해 온 공부의 방향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에, 정말 어디서 부터 붓을 대야 옳을지 엄두가 안 났던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만은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감격하여,
----'아마도 엊그제 그 분이 성종 임금이신가 보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황공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고 잠시 동안 엎드린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하였던 것이다.
그날 밤, 까치 울음을 흉내내다가
성종에게 발견된 늙은 선비는 감격이 컸던 만큼 글이 저절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단숨에 글을 써 내려 간 늙은 선비는 제일 먼저 글을 바치게 되었다.
시험관으로부터 선비의 합격 보고를 받은 성종은,
----'그는 과연 까치의 영험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혼잣말을 하며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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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