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전두환과 K-반도체
1983년 2월 8일, 삼성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산업에 진출한다는 ‘도쿄 구상’을 밝혔다.
모두 '무모하다'며 들고일어났다.
정부 반대도 격렬했다.
농수산부는 “반도체 한다고 곡창인 기흥의 논밭을 허물수 없다”라고 막아섰고,
상공부는 “대일 무역적자가 심각하다”며 일본산 반도체 장비 수입에 반발했다.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만 오명 과학기술 비서관을 통해 도쿄 구상의 중요성을 꿰뚫고 있었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에게 열심히 반도체 산업 필요성을 각인시켰다.
1983년 10월 9일, K-반도체 운명은 기로에 섰다.
북한의 아웅산 묘소 테러로 김 수석 등 수뇌부 17명이 폭사한 것이다.
하지만 전 대통령은 사태 수습 한 달 뒤인 11월, 첫 산업시찰로 삼성반도체 부천공장을 방문했다.
당시 안내를 맡은 이건희 부회장에게 “애로사항이 있으면 다 말하라”라고 했다.
전 대통령은 이후 반도체 산업의 최전선에 섰다.
'반도체는 국가 명운이
걸린 일'이라며 기흥 건설 현장까지 찾아갔다.
논밭 매입은 물론, 공장 부지로 형질 변경까지 직접 챙겼다.
각 부처에 전력과 용수 공급을 독려했다.
그해 일본에서 받아낸 40억 달러 ‘안보·경협차관’을 최우선 투자 순위도 반도체로 돌렸고, 당시 50%였던 일본산 반도체 장비 수입 관세는 0%로 내리도록 지시했다.
전무후무한 속도전 끝에 기흥 반도체 공장은 착공 6개월 만에 준공됐다.
전 대통령은 퇴임을 불과 며칠 앞둔 1988년 2월, 4MD램 개발 주역들을 모두 청와대로 불렀다.
노고를 치하하며 술잔을 돌리던 그는 “64MD램은 세계에서 제일 먼저 개발해 주시오”라고 부탁했다.
“그때는 대통령이 아니겠지만, 돈이 없으면 내 머리카락이라도 팔아서 한턱내겠소. 이제 몇 가닥 안 남아서 아주 비싸게 팔릴 거요” 라며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만찬장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삼성은 김재익 수석의 은덕을 잊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은 '부탁 하나는 꼭 들어드리고 싶다'며 유족을 챙겼다.
'박사과정 때 열심히 공부했던 미국 스탠퍼드대에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다'는 유족들의 희망에 따라 남 몰래 거액을 희사해 스탠퍼드대 경제학관에 ‘김재익 룸’이 생겨났다.
K-반도체 신화는 그렇게 이병철 회장의 뚝심과 전 대통령의 전략적 결단, 김재익의 통찰력이 맞물려 시작됐다.
글: 이 철호, 문화일보 논설고문
(물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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