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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흥사단독도수호본부 원문보기 글쓴이: 신일범
미우라 아야꼬는
한국에 대하여 일평생을 사과해도 모자라다고 했고...
무릎으로 기어서라도 일일이 한국사람들에게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사과를 하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길은 여기에-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
녹암 | 2010.09.26 20:53
길은 여기에-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
미우라 아야꼬의 책은 20대에 빙점을 읽었고
그 후 신앙서적 하나를 읽고 처음이다.
이 책은 우연히 인터넷 헌책방에서 품절된 신앙서적을 구하다
2만원 이상이면 송료가 면제된다기에 제시된 것 중 산 것인데
그 동안 2년 정도 버려두었다가 우연히 읽어본 것이다.
미리 읽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운 책이다.
76년에 나온 책이라 세로쓰기이고 활자도 흐리다.
"길은 여기에" 그의 자전적 소설로 기독교로 개종하는 과정을 잔잔하게 회상한 소설이다.
하느님을 알아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렸다. 12년 결핵 등 많은 병을 알으며
사경을 헤메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 등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주변에 좋은 기독교 신자와
교우하면서 신앙을 얻게 된다.
크라이막스가 없이 잔잔한 소설이지만 그러기에 그의 마음의 변화를 그리고
신앙(구도)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 작가의 글을 더 읽어 볼 작정이다.
아래는 158쪽에서 161쪽 이다.
대강 스토리(스크랩)
<길은 여기에>라는 책은 일본의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자전적 소설이다.
세계2차 대전 당시 일본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던 한 여선생이 있었다.
그녀는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일본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서 재직하고 있었다.
패전 후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학교를 나온다. 자신이 옳다고 가르쳤던 일들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녀는 가치관에 대한 혼란을 겪으며 삶의 의미조차 잃어버린다.
사랑에 대한 소중함도 모르고 여러 남자들을 생각 없이 만난다. 그러던 중 결핵에 걸려 12년을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목숨을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 속에서 다다시라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같은 결핵 환자이지만 진솔한 기독교인으로 삶과 사람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있는 사람이다.
여러 사람을 사귀는 와중에도 그와 편지와 엽서가 꾸준하게 주고 받으며 친한 친구로 지낸다.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두 사람은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육체적 사랑을 뛰어넘어 영적인 사랑으로 발전한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을 보호해주기 위해 늑골 여덟 개를 없애는 대수술을 시도한다. 하지만 수술 결과는 좋지 못했다. 결국 그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으로 이르고 말았다.
여자는 너무도 비통함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전과 달리 목숨을 끊고자 시도하지 않는다. 이제는 사랑했던 그 사람 때문에 또한 그 사람으로 인해 믿게 된 종교 때문에 살아야할 용기와 힘을 가지게 된다.
글도 집필하면서 주위의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아갈 수 있게 까지 된다. 결국 그를 오랫동안 아껴주었던 사람과 38살에야 비로소 결혼한다. 죽음으로 인해 헤어졌지만 젊은 두 연인의 사랑이 너무 애틋하다. 두 사람 모두 건강하지 못한 상태의 환자간의 만남에서 나는 사랑이라 더더욱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잔잔하고 진솔하고 차분하면서도 지적이며 인간미 넘치는 우리 삶의 이야기 같이 느껴진다. 책을 통해 고귀한 사랑을 배웠다.
주인공 아야짱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죽음을 선택하려했으나 결국 더 큰 삶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신에게 있어 살아야 될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1999년 10월 12일 오후에 다장기부전증으로 훗가이도 아사히가와 자택에서 향년 77세로 타계했다=====
미우리 아야꼬는 소설 "빙점"으로 유명작가가 되었습니다만..
알려진 이 책을 빼고도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의 책들을 몇권 탐독 한적이 있습니다.
그의 책 내용의 대부분의 정서적인 것들은(날씨와 환경 사람들..) 북해도...자신의 고향을 바탕으로 했답니다.
일본 정부에서 특별히 위의 저택을 하사하고 보존한다고 했는데 일본 역사상 개인에게 허락한 이러한 예는 없었답니다.
마지막 사진은 그의 남편이시고....
뒤 흑백 사진은 과거와 현재의 그의 모습입니다.
미우라 아야꼬는 한국에 대하여 일평생을 사과해도 모자라다고 했고...
무릎으로 기어서라도 일일이 한국사람들에게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사과를하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유산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고 신앙"이었습니다.
그를 추도하고....
그를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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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보람에 대하여/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
어느 심포지엄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그 때 주제(主題)는 노인의 사는 보람에 대해서였다.
여러 가지 좋은 의견들이 많았는데,
나는 여기서 다시 한번 사는 보람에 대한 나의 평소의 생각들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먼저 '노인의 사는 보람'과 '젊은이들의 사는 보람'은 과연 다른 것인지?
나는 이 문제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노인에게는 노인의 사는 보람이 있고,
젊은이에게는 젊은이의 사는 보람이 있어 마땅한 것이라고. 그런 것일까?
나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노인과 젊은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분명히 노인과 젊은이 사이에는 표면적인 차이는 있다.
노인은 체력(體力)이 떨어지면서 모든 일에서 손을 떼게 된다.
그러다가 노쇠해진 다음에는 노인병(老人病)과 죽음에의 불안이 엄습해 오게 마련이다.
이와는 달리 젊은이에게는 넘치는 활력과 여러 가지 가능성으로 가득 찬 미래가 있다.
일거리가 있고, 경제력은 늘어나기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인 차이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젊은이가 지니고 있는 체력과 경제력,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이라는 것은 언제 어느 때 잃게 될는지 모르는 불안정한 것이다.
나만 하더라도 아침저녁으로 40명 분의 식사를 준비하면서
낮에는 국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정도로 튼튼한 체력을 가져본 적이 있었다.
당시 내가 살던 곳에서 국민학교 선생이라는 직업은
여성으로서는 급료도 고급축에 끼는 직업이었다.
내게는 또한 약혼자가 있었고, 푸른 미래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나는 고열(高熱)로 쓰러졌다.
폐결핵으로 인한 발병이었다.
스토마이라든가 파스도 없는 시대여서 결핵요양소에서 요양 중이던 친구들은 마구 죽어갔다.
나는 경제력을 잃게 되면서 의료 보호를 받게 되었다.
40명 분의 식사 준비를 하면서
학교에 나갔던 체력은 간 곳도 없이, 화장실 출입을 할 기력마저 없어졌다.
몇 해를 이렇게 앓다가 이번에는 카리에스가 발병, 꼬박 7년을 기브스 베드에서 신음하는 몸이 되었다. 그리하여 변기(便器)를 써야만 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설 수조차 없었다.
결국은 12년 동안이나 요양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내가 그래도 몸이 나아진 것은 37세 때이다. 당시의 나의 요양 중의 몰골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체력도, 지력도 잃은 채 사회에서 뒤쳐진 몸으로 언제 회복될는지도 모르는,
이를테면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 틈에 끼어 있었던 것이다.
저들 많은 환자들이 안고 있는 문제와
노인들이 안고 있는 문제에서 도대체 무엇이 얼마나 다르다는 것일까?
만일 틀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이가 젊다는 것뿐이다.
젊었던 만큼 차례로 죽어가는 요우(療友)를 바라보며
다음은 내 차례가 될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오히려 더욱 강렬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젊은이와 노인이란 근본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인간은 늙은 후에야 비로서 체력과 기력이 뒤떨어짐을 느끼거나,
무력한 경제력을 한탄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나는 '노인의 사는 보람' 이라는 한정된 표현에 대해 찬성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젊은이의 사는 보람이 장년(壯年)이 되어서는 또다른 사는 보람으로 바뀌고,
또한 장년 시절의 사는 보람이 나이가 들어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으로 되는 것이라고 한 대서야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것이야말로 사는 보람이라고 믿었던 것을 버리고
다시 또 사는 보람을 찾아야만 되는 것이라면, 인간은 일생 동안
여러 차례 '사는 보람'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
만약 그처럼 연대(年代)가 바뀜에 따라 사는 보람을 바꾸어야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참된 사는 보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을 사는 보람으로 삼아온 것이 아닌가고 나는 생각한다.
진정한 뜻으로의 사는 보람이란 건강한 때도, 건강을 잃은 때도, 일할 것을 가지고 있을 때도, 잃었을 때도, 나이들었을 때도 불변(不變)한 것이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자기가 사는 보람은 무엇인가를 때때로 조용히 검토해 보아야 한다. 남편이 사는 보람이요,
아이들이 사는 보람이요, 일하는 것이 사는 보람이 되고 한다면,
그것을 잃었을 때 우리는 동시에 사는 보람을 잃게 된다
잃을 수 없는 사는 보람은 반드시 있다. 나는 그것을 이 자리에서 단언할 수가 있다.
나는 건강을 잃고, 직업을 잃고,
연인을 잃으며 병상(病床)에 누워 있으면서도 내가 믿은 사는 보람만은 잃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신의 사랑이며, 신앙이었다
<죽음보다 강한 것>
▶ 작품 해설
이 수필에는 굳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한 작가의 겸허와 외경(畏敬)이 담긴 진지성, 체질적인 낙관성과 진취성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설교식으로 끝나면서도 자연스러운 설득력을 지님으로써 수필로서의 격조를 잃지 않고 있다.
작가는 노인과 젊은이의 사는 보람을 비교하고
병상에 있었던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인생관을 담담하게 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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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아야꼬
`빙점' 작가 미우라 아야꼬
64년 7월10일.일본 아사히 신문은 `잡화점의 주부,깊은 밤 계속 글쓰기 1년'이란 큰 제목으로 한 평범한 주부의 혜성같은 등단을 전했다.창사 85주년 기념 1천만엔 현상 장편소설에 미우라 아야코(76)의 `빙점'이 당선된 것을 전한 것이다.당시 42세의 그녀는 당선 통보를 받고 기쁨과 흥분에 휩싸였지만 이내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미우라 아야코.빙점이 당선되기 전까지는 전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사람이었다.관청에 근무하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며 밤 10시가 되어서야 잡화점 문을 닫고 집필에 들어가는 아내에게 기도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남편 미우라 미쓰요(74)씨는 “아야코,하나님은 우리가 훌륭해서 써주시는 것이 아니야.성서에도 있듯이 흙으로 만들어진 질그릇조차도 하나님이 쓰시려고 하실 때는 반드시 사용하시지.자기 자신이 하나의 질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을 앞으로 결코 잊지 말아야 해”라고 말했다.
그녀는 빙점을 통해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지만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깨닫고 회개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며 어떤 비참한 경우라도 최후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강조했다.작가의 소나기같은 목소리는 절망의 늪에 빠진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 주었다.
작가의 서민적인 소박함과 절실한 신앙심의 기류는 일본문단에서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됐다.그는 인간의 참된 삶과 기독교 신앙을 담는 문학세계를 열었으며,모든 작품의 근저에 서려있는 어린아이에 대한 애정의 눈길은 미우라 아야코 문학의 원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 주제는 원죄.“인간의 비극은 실존의 오해에 기인한다”는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모두 자신은 억울하다고 믿지만 그와 같은 오인이 인간이 비참해지는 원인이란 것이다.그는 인간의 내부에 이런 빙점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미우라 아야코는 1922년 4월25일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가와에서 출생해 아사히가와시립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세계 제2차대전의 패전을 맞게 된 그는 가르치는 일에 자신감을 상실하고 절망에 빠진다.가치관의 상실로 인한 허무감으로 이중약혼,그런 그녀에게 마치 벌이라도 내리듯 당시에는 불치병이었던 폐결핵을 얻는다.
46년 6월1일 갑작스런 고열로 병상에 누운 그는 `무엇 때문에 인간이 사는가' `그것을 알지 못하는 인생에 무슨 확실한 기쁨이 있을까'라는 상념으로 빈 집처럼 스산하고 허무한 시간을 보내야했다.
머리부터 허리까지 고스란히 깁스에 들어가있는 깁스 베드에 누워 지내던 그녀는 손거울을 통해서만 창밖 풍경을 볼 수 있었다.목을 움직이면 척추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돌아눕지도 못했다.
깁스 베드에 묶인 채 대소변을 가리는 일조차 타인의 손을 빌리는 상황에서 13년이란 세월은 고통 그 자체였다.매일 천장을 바라보며 죽음의 공포와 싸웠다.
24세부터 결혼하기 전 37세까지 13년동안,여성에겐 청춘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시기를 꼼짝 못하고 침대 위에서 지낸 셈이었다.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그녀가 온갖 역경을 이기고 희망의 날을 살게 된 것은 기독교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52년 7월5일 병상에서 세례를 받았다.그녀를 위해 매일 편지를 보내고 추운 겨울밤에도 남몰래 병실 아래에서 그녀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해 주었던 마에카 다다시의 헌신적인 사랑과 전도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됐다.폐결핵에 걸려 요양중이었던 다다시는 수술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녀에겐 하나밖에 없는 친구이자 연인이었다.
미우라 아야코는 세례를 받은 후 성경을 읽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다.특히 하나님 앞에 노출된 인간의 죄에 주목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성경에 나타난 스캔들 또는 인간 속에 흐르고 있는 죄성을 적었다.인간의 죄 많은 모습을 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높고 맑은 사랑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었다.병상의 습작은 그녀가 등단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그녀는 세례 받는 날을 경계선으로 확실히 변했다.마음 속에 밝은 빛이 커져서 참을 수 없는 그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했다.“우리가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은 종일 우리들에게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그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자,하나님쪽을 보세요.당신은 이제 고민할 것도 눈물을 흘릴 일도 없답니다'라고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입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요양생활을 마치면서 기독교잡지 `무화과'를 통해 알게된 미우라 미쓰요와 59년에 결혼했다.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는 특별히 예쁘지도 않았고 병까지 있었는데 2살 연하의 남자에게 청혼을 받고 결혼해서 끝까지 사랑받고 살았다.
결핵 척추카리에스 대상포진 직장암 파킨슨병 등의 난치병을 이겨온 미우라 아야코는 “하나님의 은혜와 기도 덕택”이라며 “70년간 잘도 병마와 싸웠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병으로 잃게 된 것은 건강 뿐이라고 생각한다.신앙도 얻었고 다시 바꿀 수 없는 남편도 얻었고 소설을 쓴다는 즐거움도 얻었다고 말한다.
현재 파킨슨병으로 남편의 간호를 받으며 자택에서 요양중인 그녀의 집필은 중단된 상태다.이들이 출석하는 아사히가와 로쿠죠 교회에는 미우라씨 부부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지난 6월엔 빙점의 무대였던 일본 북해도 아사히가아시 가미라구 견본림 속에 지어진 `미우라 아야꼬 기념문학관'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됐다.갈색과 흰색을 바탕으로 하는 12각형의 2층 건물은 간소하고 차분하게 지어졌다.미우라 문학관의 전시실은 빛 사랑 생명이란 테마로 그녀가 걸어온 길을 나타내고 있다.
사람의 일생에는 어떤 악천후가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그러나 어떤 악천후가 오더라도 검은 구름 뒤에는 반드시 태양이 빛나고 있다.미우라 아야코는 우리들에게 구름은 지나가지만 태양은 떠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려준 작가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미우라 아야꼬
한 여인이 있었다.
남편이 가져다 주는 봉급이 적어 늘 쪼들렸다.
그래서 조그만 가게를 냈다.
얼마나 친절하고 성실하게 있는지
가게가 금방 성장했다.
하루는 남편이 집에들어와 이렇게 말했다.
여보! 저 쪽 마을에 있는 가게가 장사가 않돼서 문을 닫았대.
이쪽 가게도 장사가 잘 안된다는군!
그 다음날에도 가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 물건은 옆 가게에 가면 있을 겁니다. 옆가게로 가세요'
그녀는 그런 마음씨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가게를 마치고 집에돌아오면 짬을 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어느날 빙점을 발표해서 일약 작가가 된
미우라 아야꼬이다.
나는 청춘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시기를 누워지내야 했습니다. 스믈네살부터 서른 일곱 살까지 13년 동안 폐결핵을 알았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폐결핵은 불치병이었지요. 머리부터 허리가지 고스란히 깁스를 해 놓고 침대에 누워지내며 타인의 손을 빌려 대소변을 가리는 일까지 맡겨야 했습니다. 매일 천장을 바라보면서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죠.
그러던 제가 소망을 갖게 된 것은 바로 내 안에 주님이 찾아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남편 미우라 미츠요씨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옴도 기적적으로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병은 끊임없이 내게 다가와 나를 괴롭게 했습니다. 심장병, 척추카리에스, 대상포진....대상포진은 정말 견딜 수 없는 끔찍한 질병이었습니다. 정말 괴로웠어요. 온몸에 물집 모양의 발진이 생겼죠. 나중에는 얼굴에까지 번졌고 의사는 내가 실명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병은 고통이 사라지지 않고 암세포를 동반하고 있어서 암으로 번지게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의사의 말과는 달리 더 이상 아픔은 없었습니다 눈도 실명되지 않았지요. 다만 직장에 암세포가 자랐을 뿐.
생각해 보니 병으로 잃게 된 것은 건강뿐이었습니다. 젊었을 때의 13년간 병치레로 인해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남편도 얻었으며,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싶어 소설도 쓰게 되었지요.
지금 고통 가운데서 괴로워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소망을 잃지 마십시오. 주님 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찾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능력의 소망을....
미우라 이야꼬 간증(소설가)<낮은 울타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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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미우라 아야꼬라는 일본 여작가의 글을 읽었습니다..
[다니엘 학습법]이라는 책을 봤는데
그 책에 나왔던 추천도서 제 1번이었습니다.
공부도 좋지만, 왜 공부해야는지를 잘 모르면 안돼자나여..
왜 공부해야하는지, 왜 삶을 성실히 살아야 하는지,
도덕적인, 교과서적인 답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주님 안에서 먼저 발견해야 자나여...
국민적 신념을 가지고 교직생활을 하던 한 일본인 여교사는
일본의 패전 이후 자기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먹을 갈게하고 교과서의 이곳저곳을 지우게 합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틀린것인가,
아니면 이렇게 틀렸다고 말하는 이방인들이 틀린것인가,
그는 심각한 고민을 시작합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고 믿을만한 것이 있는가,
나는 무엇때문에 죽지 않고 이렇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무얼 향해
살고 있는 것인가?
여교사는 믿었던 신념들이 꺾이고 나서부터는,
마음을 잃고 '되는대로'살기 시작합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하고
막연한 기대감과 두려움 가운데 살아갑니다.
이 모습은 불신앙인인 이 일본인 여교사에게만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저는 정말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을 둘 곳 찾지 못해 방황하며 유리하는 나......
오늘 나의 삶의 목표는 무엇이었는가?
여교사는 신념이 꺾이고, 결혼이 파기되고, 몸에 폐병이 들어
십여년이 넘는 장기치료에 들어가게됩니다.
부유하지 않은 가정에 식구들과 동료들에게 늘 신세만 지는
몸이 되고 말았지요... 그녀의 자포자기, 자기비하는 자신을 요부로까지
부르고 있습니다.그녀는 이성과의 교제에서
자신을 구원해줄만한 무엇인가가 있지 않을까하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해결책이 되어줄만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실망 가운데서도 뚜렷한 길을 발견치 못하고 방황은 계속됩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동창이자 크리스챤인 한 형제를 만납니다.
그 형제도 몸에 폐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낭떠러지 끝에 서서 언제든지 떨어져 버리려고 벼르는
죽음을 사모하는 여자..
얼마남지 않은 자신의 생명과 시간을 다 쏟아 이 한 영혼을 구원하려는
예수의 마음을 가진 남자..
남자는 눈물을 흘립니다.
"당신은 좀더 삶을 성실하게 살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을 좀더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합니다!"
남자는 자신의 발을 돌로 찍습니다..
"난 당신을 구원하고 싶은데,
연약한 내 믿음으로는 당신을 구할 수 없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여자는 그 순간 빛을 발견합니다.
세상에서 보았던 사랑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여자의 영혼은 느낍니다.. 나와 같은 것도 사랑할 줄 아는 이 사람이
믿는 신을 나도 믿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남자는 여자에게 편지를 씁니다. 날마다..
남자는 방문합니다. 그의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은 잠깐 손을 잡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처럼 머리 맡에서 말씀을 읽어 주고, 기도해 주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남자는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여자를 지키고, 빛 가운데서 교제하기를
힘씁니다..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아름답고 순결하게 지키며
그 사람의 영혼을 조심스럽게 보살피고, 물을 주고, 사랑을 줍니다.
소설아닌가...? 실제입니다. 빙점을 쓴 미우라 아야꼬씨의 실화..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고도 싶었지만,
이런 사랑을 드릴 수 있다면,
하나님 분명히 기뻐하실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남자의 모습에서는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도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드려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여자는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소망이 자라나고, 기쁨이 무엇인지 알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기적이고, 헝클어지고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었던 생활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루를 멀다하고 왔던 편지가 일주일, 두서너달, 반년 간격으로 옵니다.
남자는 절대안정을 취해야만 합니다.
편지도 어머니가 종이를 붙들고 겨우 펜을 잡아 써서
그 단정하던 글씨가 삐뚤빠뚤해졌습니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꼭 읽으라며 책을 선물해 주었는데,
이번 크리스마스 때는 날짜를 훨씬 넘긴 몇 줄의 편지가 왔을 뿐입니다.
여자는 불안해합니다.
모든 것이 다시 허물어져버릴까봐, 모든 것처럼 의지하던 이 사람이
영영 떠나버릴까봐...
남자는 말합니다.
이제는 나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해야한다고..
그러던 어느날,
상복을 입은 언니가 들어옵니다.
여자는 남자가 죽기라도 한거냐고 날카로운 소리를 꽥 지릅니다.
그렇다고 합니다. 어제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던, 그 시간에
그 남자는 의식을 잃더니 깨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자는 온 몸에 기브스를 한 채 누워있는 자신이 미워,
사랑하는 사람 가는 길도 지켜봐주지 못한 자신이 싫어,
그 사람 죽은 그 시간에 기어이 소리내어 통곡하고 맙니다...
한 사람은 죽었지만 죽음이 가르지 못한
참 생명 가진 두 사람이 이제 함께 삽니다.
나를 주어 너를 살게하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방법입니다....
여자는 울었지만,
함께 죽어버릴까 유혹을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생명을 값없이 여기지 않았습니다.
병들어 있지만, 언제까지 살지 알 순 없지만,
생명을 주고간 그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합니다.
거동이 불편해도, 자기와 같은 이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쉬지 않고,
기도하며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나는 너무 큰 호강을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건강한데도 이기적이어서, 다른 이들을 돌아본다든가 격려하는 것을
잘 하지를 않습니다..
주님을 믿으면서도, 나를 버려 살린 영혼이 아직도 없습니다.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주께서 내게 대해 얼마나 오래 참고계실까요?!
많이 분주하지만..
혹 열매없는 나무는 아닌가..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진실함으로 아버지 앞에 마음을 찢으며 나아갈 때가 아닌가 합니다..
http://m.blog.daum.net/jjc4012/15970013 에서 복사해온 글
내가 죽고 예수가 살 때가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