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최도사를 만나다
2013년 8월15일.
광복절이라 태극기 달고 기뻐해야 할 날이다.
이 날 부산시청 과장으로 근무하는 손아래 동서(同壻)가 지리산에 방 잡아두었다고 느닷없이같이 가잔다.
준비고 뭐고 간에 무조건 가자는 바람에 옷가지 몇 개 베낭 속에 생각 없이 주섬주섬 집어넣고 돼지 갈비 재워
냉장고에 둔 것이랑 포도, 배 등 과일 조금씩 아이스박스에 넣어 출발했다.
10시 30분에 함안휴게소에서 조우하기로 약속하여 차에 올랐다. 에어컨 빵빵 틀고 신유 노래 들으면서 여행길에
오르니 어린아이마냥 신났다.
휴게소에서 냉커피 한 잔 하고 하동 IC를 통과하여 섬진강을 따라 기분 좋은 공기를 가르며 벚나무 터널을 통해
화개장터를 지났다.
쌍계사로 접어드는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될
정도로 이름나 있다. 울창한 수림과 계곡사이를 따라
오르니 신흥마을이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니
지리산에서 가장 높이 있다는 산세 깊은 의신마을이
나타난다.
'지리산 역사관'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짐을 내려
놓았다, '공비토벌루트'란 큰 안내판을 보고서야
이곳이 공비토벌 최후 격전지, 이현상아지트,
이현상최후격전지라는 우리민족 역사의 큰 아픔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대성골 계곡이 시원한 계곡수와 이름 모를 풀향기로 가득하여 머리를 맑게 해주니 젖은 땀이 바람에 씻기운다.
지리산의 여느 자락에 견줘봐도 태곳적 풍경을 비교적 온전하게 담아 둘 수 있었던 것은 높은 지역과 함양 마천으로
이어지는 고개를 그냥 둔 덕분으로 여겨진다.
소수의 전문 산꾼들만이 눈길을 주던 이곳, 해맑은 계류와 용소와 쿵쿵소 등 비경을 품고 있는 의신계곡은 웅장한
바위들과 계곡수가 어우러지며 만들어 낸 빼어난 아름다움이 내 나라 안 어디서고 쉽게 접할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지리산 화개깊은골’ 집에 여장을 풀자마자 땀을 씻기위해 계곡으로 내려가서 풍덩 뛰어들었다. 아릴 정도로 시원한
계곡의 물이 뼈까지 스며들어 시원함을 더 해 준다.
팜스테이 화개깊은골
‘지리산 화개깊은골’ 주인 내외는 정말 순박하면서도 묘하게 사람을 끄는 면이 있다.
정연대씨와 박숙희여사다. 부부는 얼핏 보아도 참 금슬이 참 좋아보인다.
정연대씨는 토박이로 6평짜리 집에 찌들게 가난으로 고생하다가 자수성가하여 지금은 하동군청에서 팜스테이
지정지로 선정해 줄 정도로 성공하였다. 특히 고로쇠 채취 수입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박숙희씨는 정연대씨의
부인으로 창녕에서 이곳으로 시집와서 처음 고생은 좀 했지만 지금은 차(茶) 사범자격증까지 따서 다실을 만들어
놓고 오가는 사람에게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만2천평 차밭을 운영하면서 녹차를 만드는 수제차 제조가로
활동하기도 한다.
고로쇠 막걸리, 산나물, 고사리, 각종 약재로 만든 효소, 꿀, 산양산삼 등으로 또 다를 소득을
올린단다. 지금의 생활이 엄청 행복하단다. 정말 표정에 그렇게 나타났다. 이들의 풋풋하고 순진하고 해맑은 삶의
모습을 보면서 까르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그들의 행복한 순간을 보면서 빙그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때론 절망하고 좌절하는 일이 생길지라도 지리산은 그들의 모든 것을 품어주는 어머니처럼 그들을 늘 품고
있기에 그들은 그들의 삶에 또 다른 행복을 더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기에
그들의 행복한 기운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파해줄 수 있는 행복전도사가 아닐까싶다.
좌로부터 정연대씨 부인 박숙희씨 아들,어머니,딸 아버지
최도사와 정연대 박숙희 부부
저녁밥을 갈비살, 삽겹살로 숯불구이를 해서 먹고 계곡으로 다시 내려가 씻고 올라오니 주인장 정연대씨랑 평상에 마주 앉아 막걸리를 나누는 사람이 있어 가까이 가 보았다. 긴 머리에 수염을 기르고 개량한복으로 갖춰 입은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내가 지리산 도사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주인장이 끄덕인다.
우연인지 필연일지 알수는 없지만 공지영 작가가 쓴 ‘지리산 행복학교’의 주인공 중의 한 사람인 최도사(본명 최현,서울출생)라는 사람이었다.
같이 앉아 술을 나누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쾌히 허락한다. 고로쇠 막걸리 맛이 참 좋아 여섯 병을 다 나누어 마셨다.
의신 깊은 산골에 어찌 알고들 찾아오는지 많은 사람들이 최도사를 만나러 온단다.
최도사는 모든 일을 일일이 알려하지도 말고 이곳저곳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간섭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고 그대로를 보여줘야 한다하여 사람들이 찾아오면 ‘내비도’를 이야기 한다. 최도사와 막걸리 한잔을 하면서 '삶'이란 어떠한 방법도, 논리도, 정형화된 구체적인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의 삶의 방향에 맞추어 나가는것 그러면서 다른 이의 삶도 존중 하는 것이란다.
최도사는 그림을 아무리 잘 그린들 자연의 색깔을 표현하겠는가, 글을 아무리 잘 쓴들 같은 깨우침의 글을 쓸 수 있겠는가, 이것 저것 다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한 순간이며 지금은 아무것도 안하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고 한다. 백수란다.
현판 팽가
최도사랑 한컥 찰칵
잠을 즐겨 잠자는 곳을 잠잠산방이라 함
폐가를 조금씩 다듬어 지금은 멋진(?)정원을 갖춘 전원주택으로 변모시킴
계곡에서 발견한 장수하늘소
바지 주름 칼 같이 세우고 지갑에 현금 두둑이 들어있지 않으면 집 밖을 나서지 않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이렇듯 삶의 방식이 바뀌기 까지가 때때로 큰 계기가 있는 사람도 있지만 손바닥 뒤집듯 한순간의 생각 차일 뿐이라는 것이다. 글쎄 그럴듯 하긴 하지만 속세의 때가 많이 묻은 내가 느끼기엔 좀 벅차다.
mbc 스페셜, <지리산에서 행복을 배우다> 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프로는 공지영 작가가 늘 입에 달고 사는 낙장불입시인이니, 버들치시인이니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놓은 프로란다 버들치시인, 낙장불입시인, 최도사, 고알피엠 여사 이야기다.
지리산에 산다는 이들은 하나같이 '나 행복해요' 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란다.
최도사는 지금 행복하면 되잖아요, 욕심만 버리면 되는건데. 하고 웃어 보이는 그들의 미소가 잔잔하게 마음에 남는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시간 같은 건 없지. 미래를 위해 감내해야할 고통 같은 건 더더욱 없는 것이고 지금 원하는 것을 하고, 그렇게 웃고 살아야겠다. 오지 않을 시간을 위해 인상쓰지 말고, 밥 굶지말고 기 죽지 말고 하고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지리산 깊은 꼴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세상 속에서 사회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끙끙대는 나와는 정반대로 세상과 어느 정도 차단된 지리산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조금은 공감가는 것이 최도사의 “내비도”였다. “내비둬”는 어쩌면 방관적이고 무책임한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철학을 담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간다. 그리고 내가 걱정하는 일도 다가온다. 그 걱정을 해결 방법을 못 찾을 바에는 차라리 내비두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걱정 중 대부분은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해결될 걱정들도 있다고 한다. 지금 내 상황이 걱정이 참 많은 것 같다.
세상만사 다 귀찮고, 아무도 보기 싫어지고.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모든 걸 다 접고 산속으로 들어가 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은 몇 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저 문제가 터지고 하는 통에 만사가 짜증나기도 한다.
하나를 가지면 둘이 가지고 싶고, 둘을 가지면 셋을 가지고 싶고. 욕심은 정말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제일 큰 소원이 하나 있다면 돈 걱정 없이 살아 보는 것. 이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겉으로는 체면차린다고 돈에 쪼들려 사는 티를 안내서 그렇지. 책을 읽다가 고알피엠 여사의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가슴에 푹 박힌다. 돈이 있어야 걱정이 생기지. 맞다. 돈이 있어야 걱정이 생긴다. 돈도 없는데 돈 걱정을 해봐야 아무 쓸 데 없는 거다. 쿡 하고 웃음이 터지면서도 그래도 난 여전히 돈 걱정을 한다. 도시에 사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연봉 200만원이라며 스스로 부자라 하고, 행복해 하는 최도사. 연봉이 보통 사람 월급 정도(혹은 월급이하)의 돈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이 궁금했다. 그건 아마도 모든 욕심을 속세에 버리고 지리산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리라. 모든 것은 욕심이었다. 욕심 때문에 힘들고 불행하고 외롭다. 근데 그걸 버리기가 힘들다. 그래서 책으로나마 이렇게 위안을 받는다. 스스로는 뭘 할 깜냥도 되지 않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을 보면서 위안을 받는다. 비겁할지 몰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그것이다.
최도사 집은 도로에서 대성골 가는 길따라 마을길을 끝까지 오르면 마지막 원통암 가는길을 표시한 이정표가 최도사집 담벼락에 있다. 요즘은 보기 어려운 최도사 집이다.
어질러져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정겨움이 묻어난다.
쓸때 없는 말하지 말고 그냥 있는대로 내비도!
‘烹家’라는 현판이 있다. 烹-삶을 팽, ‘삶는 집’이라니 아이러니한데 그 뜻은 ‘차를 끓이는 집’이란다.
박노해 시인이 읊은 ‘제발 내비도’ 시를 종알거려본다.
박노해시인
도(道) 중의 최고 도는
기독교도 아니고 유불선도 아니고
좌도 우도 아니고 명상도 아니다
내비도다!
그냥 냅둬다
아이들이 맘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우정을 쌓고 스스로 해내게
제발 내비도!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을, 갯벌 바다를,
푸른 산맥을, 논과 밭과 농사마을을,
제발 내비도!
아프카니스탄을, 팔레스타인을, 티벳을,
지구마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더 이상 죽이지도 말고 도우려 하지도 말고
제발 내비도!
첫댓글 글을
조심스레 내려보면서
글을 쓰신지 오랜 능숙함과 진솔함에
조용히
살펴봅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호기심반 진심반으로
만나고 싶은 도사님..
기회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오르내리며
바라보았습니다..
별이 보이고
흙냄새가 나는 그런 움막집에서
하룻밤 묵고 싶음에
부럽게 바라보았습니다..
글을
참 잘쓰시네요
감사합니다. 과분한 칭찬입니다, 누구나 물빛 맑고 싱큼한 공기속에 살고 싶어합니다. 저도요
누군들
그런삶을 살아도 보고십어하지안은 사람있을까요
마음이 그런거지 몸이늘그러면 살수없는 ...
힘이빠지니 이젠 아예 그런마음도 엄두가 나질안아
그냥 있는자리에서
먹고십은것 바로먹을수있는 추위더위피하고
편안함에 젖어버린 익숙함을 더 선호하게됨을 ...
약해져가는 그마음과 그몸이
이제속세를 떠날수없다는것은
몸도 마음도 정화시킬만한 정신적인 여유가
없음이라
스마트 시대에 살지만 아직은 우리의 정서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어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