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6회 수필 공모 당선작
거미 엄마
김대흥
해마다 여름 장맛비가 내리면 엄마는 싸리나무 숲으로 들어가셨다. 우비가 귀하던 시절이었지만, 설령 우비가 있었다고 해도 엄마는 결코 그것을 걸치고 숲에 들어서지 않으셨을 것이다, 엄마는 비닐 비료 포대를 낫으로 길게 그어 만든 우비를 즐겨 입으셨다. 그 위로 쏟아지는 장맛비가 내는 둔탁한 소리가 좋다고 하셨지만, 어린 나에게 그 느낌은 늘 낯설기만 했다. 그 우비는 엄마의 어깨를 감싸고 허리를 덮은 채 엉덩이까지 내려왔다. 엄마의 키와 싸리나무들이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와 삼촌, 그리고 올망졸망한 우리 네 남매까지 감당하던 엄마에게 싸리나무 숲은 그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은밀한 피난처였을지 모른다
엄마의 여름은 늘 고단했고, 장맛비는 엄마에게 슬픔의 계절이었다. 내 위로 두 아이를 먼저 가슴에 묻었던 시기가 바로 이 장마철이었다. 잊어보려 애쓰며 숲으로 향하셨고. 숲에서 싸리나무를 베면서 홀로 눈물을 삼키는 공간으로 삼으신 것 같다. 엄마의 장맛비는 하늘에서만 내리지 않았다. 발아래 진창에서부터 몸뻬 바지 속으로, 어깨에서 가슴으로, 나뭇가지에서 엄마의 머리로 빗물이 흘러 내렸다. 흠뻑 젖은 싸리나무를 등에 지고 들어온 엄마의 뒷모습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어떤 운명 같은 아픔이 젖어 있었다.
싸리나무는 물속에서 사흘을 불린다. 그동안 엄마는 앓았다. 몸살이라기 보다 억눌린 슬픔의 저항 같은 앓음이었다. 병든 몸을 겨우 추스르고 난 뒤 엄마는 써리나무 껍질을 창칼로 벗기셨다. 흰 속살을 드러낸 싸리나무는 엄마 손에서 둥글고 단단한 바구니로 다시 태어났다. 굵은 가지는 바닥이 되었고 그틈을 채운 하얀 가지들은 엄마 손에서 차곡차곡 조여 올라갔다. 바닥만 보면 명석 같았던 싸리나무 틀은, 점차 안으로 말려 올라가며 커다란 항아리 모양을 이루었다.
나는 그 안에 갇힌 엄마가 영영 나오지 못할까 조바심을 내며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바구니에서는 숲의 냄새가 풍겼다. 그 향은 여름밤 달빛과 섞여 바구니를 달빛 쉼터로 바꾸었다.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우리 집 기둥마다 장난감처럼 작고 귀여운 바구니가 박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광에는 크기별로 쌓아 둔 광주리와 채반이 가득했다. 엄마는 우리 네 남매에게 밥그릇만 한 '달항아리 바구니' 를 따로 만들어 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마당에서 공처럼 차며 놀았다.
어느 여름밤, 나는 소변이 마려워 마루로 나왔다. 그때 마당 멍석 위에서 싸리나무 채반을 앞에 두고 쪼그려 앉은 엄마의 모습은, 밤그림자 속에서 마치 거대한 거미처럼 보였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손을 잡고 화장실을 다녀와서 놀란 나를 달래며 무릎 위에 눕혀 재우듯 '할머니 거미'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옛날 옛적에 할머니 거미가 살고 있었단다. 눈이 크고 팔다리가 길고 힘이 세어, 사람들이 금 줄 나오는 거미줄 이 필요하다고 찾아와 큰딸을 팔라고 했지. 할머니 거미는 얼씨구나 하고 큰딸을 팔아버렸는데, 웬걸! 큰딸에게서는 금줄이 나오지 않더란다." 황금알 낳는 거위도 아니고, 황금 거미줄을 낳는 거미 이야기는 금시초문 이었다.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이야기 속에서 잠이 들었고, 훗날 어른이 되어 깨달았다. 그 이야기는 엄마가 스스로 들려주던 위로였음을
엄마가 시집올 때, 친할아버지께서는 외갓집에 땅 열 마지기를 선물로 드렸다고 했다.어린 마음에 외할아버지가 엄마를 땅 열 마지기에 팔아버렸다고 생각하셨단다. 그 마음이 오죽 아렸을까? 대가족 큰살림을 맡아야 하는 엄마의 고단한 시집살이를 위로하기 위한 할아버지의 마음이 엄마를 아프게 했다. 엄마는 거미줄처럼 엮인 가족의 무게를 짊어진 채, 자신을 황금 거미라 믿으며 버티고 견뎠다. 연년생으로 두 아이를 잃고, 삼 년을 울다 나를 낳고,이어 남동생까지 낳은 엄마는 "내가 황금 거미 맞지" 라고 말하며 쓸쓸히 웃었다.
3년 전 여름. 엄마는 장맛비가 그칠 무렵 하늘로 가셨다. 지금 싸리나무 숲은 옛 기억 속 풍경이 되었고, 장맛비 쏟아지 는 숲길에 더 이상 엄마의 발자국은 남지 않는다. 그러나 장마철이면 마을 앞 싸리나무를 스치듯 어루만지게 된다. 그 결을 손끝으로 느끼며 나는 엄마를 만난다. 유품을 정리하다 광 속에 걸려 있던 싸리나무 채반과 광주리를 꺼내 닦아 베란다 처마에 걸었다. 싸리나무 향이 피지기도 전에 거미가 줄은 치기 시작했다. 늦가을까지 거미줄을 우리 집 거실을 향해 날아드는 해충은 막아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몰랐다. 엄마가 매일같이 겪어야 했던 수고와 희생을. 어머니는 거미줄처럼 연약해 보이면서도, 가족을 위해 튼튼하게 모든 것을 막아주는 황금 거미줄이었음을 그것을 어머니 나이가 되어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