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보목동 1351번지
당의 유래① : 일제강점기 서귀포경찰서 바로 알녘 구석 주막에서 기생 면증을 가진 사람들이 술장사를 했다. 관청이 할망은 언변과 사람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 주재소 일본 순사들은 이 여인이 부탁하면 바로 풀어주곤 했다. 사람들은 순사가 잡아 가두면 이 여인에게 가서 부탁했고, 여인은 성심껏 최선을 다해서 잡혀간 사람들을 구해 주었다. 덕택으로 풀려난 사람들은 이 여인을 관청할망으로 부르기 시작했으며 그 후 할망당으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https://cafe.daum.net/yanghscs/ 문차일드 글)
당의 유래② : 보목동의 구두미 관청할망당은 원래 해녀들의 갯당(해신당)이었다. 그래서 구두미 갯당이라 불렀다. 그런데 지금은 관청과 연관된 일, 예를 들어 송사나 시험 때 다니는 곳이 되었다고 한안순 심방이 구술한다. 무척 의미 있는 변화고 그런 변화가 오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행정기관이 주도한 미신타파운동이 당굿 철폐의 결정적인 계기였듯이, 일상생활 속에 행정관청의 비중이 커지면서 갯당이 관청 연관 신당으로 바뀐 것이다.(한국학협동 카페 https://cafe.daum.net/korjeju/)
구두미포구 길 건너 동쪽에 차양막을 씌운 비닐하우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에 제단이 있고 향로와 촛대 등이 있다. 예전에 당집 밖에 보리장나무와 우묵사스레피, 소나무 등이 자라고 있었는데 지금은 25년 전에 보목동 심방 김씨(신자어멍)가 자구리의 관청할망당을 가지갈라 모셔왔다고 한다. 옛날 관청에 송사(訟事)가 생기면 이 할망이 송사를 대신하여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곤 하였다는 것이다. 송사, 입시, 운수, 출마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모시는 신위는 1위이지만 제물은 메 3그릇, 과일 3개, 생선 3마리, 지전 3장, 술 1병이다. 제일은 개날, 도새기날. 당에는 특별한 제단은 없으며 바다를 향한 서쪽에 향로와 촛대가 놓여 있고 바닥에는 카펫과 담요가 깔려 있다.
구두미 관청할망당에 대한 글(제주대학교 사회학과 한지혜 2011-05-27 제출)이 있어 소개한다.
“우리 엄마께서는 관청이라는 곳을 간다. 한밤중에 제사상에 올릴 이것저것을 챙기고서 어디론가 다녀오신다. 책에서 보니까 그곳이 ‘구두미 관청할망당’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은 없다. 엄마가 말씀하기로는 예전엔 새벽에 일찍 챙겨 가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지금은 너무 널널하다고 말씀하셨다. 점점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작성 2026.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