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 설날 아침에
김 난 석
뻐꾹뻐꾹 뻑뻑꾹
뻐꾸기 울면
아카시 꽃 하얗게 흔들며
내 가슴 흔들어대더라니
설날 아침 차례 뒤
떡국 먹으려니
누런 이 하나 둘 흔들려
가슴이 덜컹 내려앉네
뻐꾹뻐꾹 떡떡국
사월로 정월로 세월은 흐르고
한 살 더 먹으려니
뻐꾹뻐꾹 뻐꾸기가 서러워.
어느 회원의 설 치례 글을 읽었다.
주부로서의 정성과 수고로움이 가득 보였다.
그걸 전통이라 하지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1990년대에 이문열은 소설 '선택'을 썼다.
어느 종가의 종부가 안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시가와 친가 모두 잘 번성하게 했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주인공의 '선택'에 의한 거라는 작가의 생각이 풍긴다.
당시 소위 페미니스트들로부터 호된 질타도 당했는데
그로부터 삼십 년 가까이 흐른 현재
차례, 제사, 시사 등의 가정의례가
많이 간소화해 나가는 추세이긴 하다.
허나, 아직도 전통과 실용의 양 끝에서 갈등을 겪거나
엉거주춤한 상태에 머무는 경우도 많은 것 같은데
앞으론 어떻게 변해갈지 추이가 궁금하기도 하다.
설날에 지내는 차례(茶禮)는 누굴 위한 것일까?
혹자는 망자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조상들의 음덕으로 잘 살고 있으니
조상님들을 잘 모셔야 또 음덕을 받게 된다고도 한다.
나는 조상님들은 내 마음속에 계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성을 다해 추모하되
이왕이면 마음뿐만 아니라 물질적 표도 내어 추모하고픈 심정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나 혼자의 힘만으론 할 수 없는 것이요
반드시 아내 및 가족들의 도움이 있어야 풍요롭게 치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나 외의 그들이 나와 톡 같은 마음일까...?
아니다.
그래서 화목을 위한 절충이 필요하게 된다.
화목하는 방법이야 각 가정마다 다를 테지만 말이다.
나는 지난해까지 우리 집에서 차례를 지냈다.
그러노라면 아우들이 먼 길 마다하고 이른 아침에 찾아온다.
그러면 또 미안해서 이런저런 선물을 준비해 뒀다가 나눠준다.
그러기로 여러 해 보낸 뒤에
지난해부턴 아우네 집에서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아우네 집에 들러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고 왔는데
이가 시원치 않아 차린 음식 제대로 맛도 못 보고
흘러간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더라만
조상님들은 흐뭇해 하셨을까...ㅎ
나는 소설 '선택' 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내가 할 일이라면 누가 시켜서 한다고 할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하는 일이라고 주문을 걸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무거운 짐도 다소 가벼워질 것이므로..
2025. 1. 30. 도반(道伴)
첫댓글 차례제사는 기제사와 좀 다르겠지요
기제사는 조금 더 진지한 면이 있고
차례제사는 축제분위기입니다
일년에 4번이면 여자들이 힘들겠지요
그래도 1년에 네 번 형제들이 모여
우의를 다지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싶습니다
저는 그래서 제사음식을 많이 줄였습니다
손 많이 가는 식혜, 수정과, 전 종류를 줄이니
한결 간소화 되는 거 같습니다
고기도 잘 안 먹는 거 빼고 소고기만 올립니다
저는 형제간의 우애만 좋다면
1년에 네 번 정도는 모이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식혜 수정과 까지 열거하시는걸 보면 저보다 정성을 더 많이 쏟으시네요.
그대신 제아내는 이런저런 한과를 준비하던데, 그러면 저는 산사람이 먹기 좋아하는걸로 하자고합니다.
결국 차려놓고 제를 올린 다음엔 식구들이 먹는거니까요.
@도반(道伴) 저는 한과는 사오면 되니 그냥 올립니다
약과랑 산자랑 그렇게 올립니다
맞습니다
결국 제사 참여한 자손들이 먹는거지요
그래서 많이 간소화 하였습니다
상이 넓어지니 진설하기도 좋드라구요 ^^*
@청솔 그렇군요.
도반 선배님 설명절
잘 보내셨나요
이가 속썩여서 제대로 드시기나 하셨는지..
석촌호수 사진 이군요
그동안 많이 씹어댔으니
그럴만도 하지요.
떡국은 괜찮은데
고명으로 얹힌것들 중
씹는맛을 즐기는 건 패스하게 되지요.
안단테님이야 그게 무슨소린지 모르길 바라지만요.ㅎ
사진요?
와서 직접 확인해보세요.
맞나 안맞나는 제가 판정할테니까요.ㅎ
道伴님 글 잘 읽었습니다.
이문열 님의 '선택'은 못 읽어봤는데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옛날과 현대를 일부러 비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 어렸을 때는 명절에 올릴 고기도 귀해
몇 리 걸어서 한 곳 밖에 없는 푸줏간에 가서
고기 사왔지요.
생선도 오일장에 가서 사다가 비늘 거스리고
볕에 말려 준비하고요.
쌀가루는 방앗간에 가서 곱게 갈아
시루에서 쪄 냈지요.
고사리는 한라산 중턱에서 꺾어 오고요.
시아버님은 청묵을 적꼬치에 꿰어 은근한
화롯불에 참기름을 바르며 구워 내더군요
요즘은 마트에서 한꺼번에 사니 일도 아닙니다.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시집을 갔는데
조그만 섬에서도 풍습이 크게 다르더군요.
초하루, 보름 삭망을 하는데 상제 열댓 사람이
喪服을 입고 줄줄이 서서
아이고오~~~ 아이고오 ~~~
곡소리를 하는데 놀랬습니다.
고조할머니부터 차례로 돌아가시는데
4년을 삭망,삭제를 했지요.
시부모님의 정성을 보고 저도 시나브로
익혀지더군요.
시대의 변천에 따라 맞추며 살아야겠지요.
덕분에 몇 십년 전의 일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어봅니다.
댓글이 본글보다 더 풍성하네요.
저는 일곱살까지 서울에 살다가 한국전쟁을 만나 홍성으로 피란해 살았는데, 그때의 풍습을 떠올리게 해주네요.
삭망은 떠올린거고 삭제는 처음 듣습니다.
최명희가 혼불을 쓰고 타계했지만 소설에 귀한 어휘들이 있어서 혼불사전도 나왔는데 아우라님의 기억을 털어내면 민속사전이 될거같네요.ㅎ
척박한 섬에 살아서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미신도 많았고요.
그래도 그때가 행복했습니다. ㅎ
연배가 어떻게 되시는지 모르지만 50년대의 저의 고장 홍성 시골도 아우라님이 표현하신 그런모습이었습니다.
아직 칠순 잔치는 안 했습니다.ㅎ
ㅎㅎ
이문열님의 선택이란 소설을 읽던 시절을 생각나게 하네요.
역시 선배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맛이 참 좋습니다.
예전에는 만원권 지폐를 조카들에게 나눠주었는데
이제는 손주들에게 나눠주는 지폐는 오만원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억울한 생각이 듭니다.
나는 주기만 하고 받을 수가 없으니까요
뭉디 아들이 장가를 안 가니 말입니다 ㅎㅎㅎㅎㅎㅎ
선배님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그랬군요.
억울해도 그게 재미지요...ㅎ
올해엔 며느님 맞길 바랍니다.
제사나 명절 차례 문화도 이제 많이 변형되고
바뀌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현상 이겠지요.
저도 아내가 힘들어 해서 제사는 생략하고
성묘를 다녀왔습니다.명절 차례 음식도 산
사람들 먹는 음식에 조금추가하여 최대
간소하게 지냈습니다. 언제 읽어도 도반님
글에서 품격을 느낌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구우,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미풍양속이란 것도 있는데
너무 한꺼번에 없애버리면 서운할 것 같습니다만
아무래도 여성과 남성 사이의 생각 차이도 무시 못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