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던 우리 아이가 책을 읽지 못한다고?


초등학교 2학년 윤모군의 어머니인 박선영(가명·38)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맞벌이를 하느라 크게 신경을 못썼는데도 어려서부터 말도 빠르고,
성격도 활발해 주변으로부터 영특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아들이
한글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이상해진 것이다.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책 내용은 줄줄 외우던 아이가 스스로 읽은 책은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반복학습도 시켜보고, 다그쳐도 봤지만 오히려 대충 얼버무리는 눈치다.
도대체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일까.
지능 정상이지만 글자 읽는데 어려움
박씨는 고민 끝에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여러 검사를 받도록 해봤다. 검사결과는 박씨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읽기능력이 떨어지는 ‘난독증’이었던 것. 담당의사와의 마음을 연 대화에서 아들은 “책을 읽을 때마다 문장이 물결치듯 보이고, 각 단어들이 걸어다니는 것처럼 보였다”며 “처음에는 누구나 그런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아예 읽기가 두려워졌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그동안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그치기만 한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다.
난독증이란 지능은 정상이지만 글자를 읽는 데는 어려움이 있는 증세로, 학습지진아로 오인되기 싶지만 오히려 시각적인 미술이나 음악, 연극 등 다른 분야에서는 매우 월등함을 보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영국 처칠 총리, 아인슈타인, 토마스 에디슨, 피카소, 톰 크루즈,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등 유력인사들이 난독증이었다는 사실을 봐도 알 수 있다.
난독증인 아이들은 ‘코끼리’를 ‘끼리코’, ‘cat’을 ‘⊃at’라고 하는 등 마음대로 읽는다. 사물의 이름을 혼동하거나 잊어버리기도 한다. 문장 하나, 행 하나를 통째로 빼먹기도 하고, 있는 단어를 빠뜨리거나 없는 단어를 추가하기도 한다. 특히 처음 보는 단어는 전혀 조합하지 못하는 경향도 보인다.
선천성 난독증은 주로 유전적인 것이 원인이며 출산 전후의 뇌손상 또는 미숙아에서 많이 나타난다. 심리적 혹은 시각적 문제가 원인으로 논의되고는 있지만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아이들의 학습 · 심리 행태는
난독증 아이들은 또래보다 어른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다보니 구두시험 능력은 우수하지만 읽기, 쓰기 등에서는 많이 뒤처져 필기시험에는 좋지 않은 성적을 낸다. 선생님으로부터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집중력이 나쁘다’ ‘학습에 의욕이 없다’는 등의 평가를 듣는다. 하지만 체험, 증명, 실험, 관찰 등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는 적극성을 보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연극, 음악, 운동, 기계기술, 디자인, 공학 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나타내는 경우도 많다.
난독증은 심리적으로도 다른 아이들과 차이점을 보인다. 스스로 우둔하다고 느끼며, 자신감이 부족하고, 쉽게 좌절하면서 감정을 잘 드러낸다. 자신의 증상을 숨기거나 얼렁뚱땅 넘기려는 경향이 강하다보니 스스로 위축되기도 한다. 또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자꾸 하라고 강요받기 때문에 방어기제가 강하게 작용하고 신경질적이며, 짜증스러워진다. 사춘기에 접어들수록 반항심리도 커진다.
난독증 아이가 제대로 된 지지나 교육을 받지 못하면 어려서부터 자신이 낙오자라고 확신해 버리기도 하고, 소외감이나 환멸 등을 느끼기도 하고, 스스로 학업을 포기하기도 한다.
증상 개선을 위해 자신감 회복이 중요
우리 아이가 읽기장애인 난독증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많은 부모들은 가슴이 철렁한다. 엄청난 뇌의 장애로 여기는 탓이다. “우리 아이가 그럼 바보가 되는 것인가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가요”라는 등의 질문과 함께 크게 절망한다.
하지만 난독증은 큰 글씨는 읽는데 작은 글씨는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식의 작은 문제에서부터 아예 글자를 조합하지 못하는 심각한 단계까지 그 증상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학습을 통해 완치는 아니더라도 스펙트럼을 상향 조정할 수 있다.
난독증은 치료기간도 일정하지 않고 개인차가 크지만 일단 치료를 시작하면 증상개선 효과가 뚜렷하고, 심하지 않은 난독증일 경우 획기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난독증 아이, 이렇게 지지해줘야
난독증 체크리스트(박스참조)를 통해 아이가 난독증인 것 같다면 전문의의 처방과 함께 다음과 같은 방법을 통해 가정에서 충분히 아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아이의 듣기 능력과 말하기 능력을 키워줄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이야기와 시를 아이에게 읽어주고,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준다. 반복적인 이야기를 통해 그 이야기의 뒷이야기를 미리 말해 볼 수 있도록 기억력을 훈련시킨다. 여러 놀이들도 도움이 된다. 도미노 놀이는 숫자와 함께 맞추기에 도움이 되는 좋은 게임이다. 공놀이, 깡충깡충 뛰기 등 운동을 수반하는 게임을 많이 하도록 해주면 운동능력도 향상되고, 자신감도 높아진다.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늘 이야기해주고, 칭찬을 많이 해주는 것이 좋다.
난독증의 근본 문제인 읽기장애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도움을 받아볼 수 있다.
즉 난독증은 읽기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시청각자료를 활용해 학습을 돕는 것이 필요하다.
난독증을 조기에 발견해 테이프, CD, 컴퓨터 등 다양한 시청각자료를 활용해 학습을 도우면 성인이 됐을 때 예후가 매우 좋다.
만약 아이에게 여러 색의 투명 필름지를 통해 책을 읽도록 했을 때, 도움이 된다고 한다면 색 렌즈로 된 안경을 찾도록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난독증 착색렌즈가 출시됐다. 이는 시각세포가 서로 전송속도를 맞춰 일치할 수 있도록 대세포의 시각정보 속도를 늦춰주는 방법이다.
몇 해 전 난독증을 앓고 있는 한 청년이 사랑하는 여성의 도움으로 난독증을 극복하고, 유명 배우로 성장하는 <별을 쏘다>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었다. 이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에게 난독증이라는 것에 대한 관심과 환기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또 난독증으로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있던 사람들은 난독증은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 문제라는 희망 또한 갖게 됐었다. 드라마 속 이야기지만 난독증은 현실 속에서도 충분히 극복이 가능한 문제다. 완치는 아직 어렵다고 해도, 다양한 훈련을 통해서 정상인과 유사한 수준까지 증상이 개선될 수도 있다.
이준규 의학칼럼니스트 보건학박사

▲ 취학 이전
- 상대적으로 주의력이 산만하다.
- 유아용 리듬과 압운 단어를 기억하기 힘들어한다.
- 단어 끝말잇기를 어려워한다.
- 이야기는 즐기는데 단어나 글자에는 관심이 없다.
- 방향성 단어를 헷갈린다.
- 말로 하는 전체 단어가 뒤죽박죽이다.
- 잡기, 던지기, 공차기, 점프하기, 균형 잡기 등의 운동을 어려워한다.
▲ 초등학교
- 지속적인 읽기와 쓰기를 어려워한다.- 읽기 전에 추측해 넘겨짚은 단어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
- 엇비슷한 글씨나 숫자를 자주 쓴다.
- 시간표나 알파벳, 요일명칭 등을 순서대로 옮기기 어려워한다.
- 오른쪽과 왼쪽을 혼동한다.
- 조심성이 없고 산만하다.
- 신발 끈을 묶거나 마무리하는 데 서툴다.
- 필기작업의 완벽성을 기하기 위해 시간을 많이 쓴다.
- 없는 단어를 쓰거나 다른 줄에 이러한 글씨를 써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