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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이재명 대통령 내외가 오전에 조계사 봉축법요식 참석에 이어 천태종 절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태고종의 봉축법요식에 참석했습니다. ‘현직 대통령 부부가 하루에 여러 불교 종단 봉축 행사에 연이어 참석하는 모습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 이 소식은 불교계 언론뿐 아니라 연합뉴스와 주요 일간지들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었습니다.
이 보도를 접하고 처음에는 “6월 3일 선거에 과도하게 신경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재명 정부가 종교를 대하는 자세와 정책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신호가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 지도자가 종교계 행사에 참석하는 일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습니다. 민주사회에서 정치와 종교는 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대화하고, 상생 관계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 머리에서는 이런 생각이 자꾸 일어나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국불교는 과연 권력 앞에서 얼마나 당당할 수 있었던가. 앞으로도 의연함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너무 흔들리게 될까봐 걱정되네. ……”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되고 1990년대에 지방자치제가 본격화된 뒤 한국 사회에서 ‘표’의 중요성은 예전보다 매우 커졌습니다. 정치권은 조직력을 가진 종교계를 조심스럽게 대하기 시작했고, 종교계 역시 그런 영향력을 점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종교와 권력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과 유착, 기대와 계산이 뒤섞인 관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번 부처님오신날 대통령 부부의 일정 역시 단순한 예방 차원을 넘어 여러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특정종단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신호일 수도 있고, ‘종단 사이의 균형을 활용’하려는 포석일 수도 있습니다.
정치란 원래 그런 것입니다. 권력은 언제나 관계를 조율하고, 영향력을 분산시키며, 때로는 경쟁 구도를 활용합니다. 정치권력이 종교계 내부의 균형과 긴장을 민감하게 바라보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한국 근현대 불교사 역시 이런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해방 이후 ‘비구-취처’ 갈등과 분쟁 과정에서도 정치권력은 때로는 중재자처럼, 때로는 이해관계의 조정자처럼 개입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교계 내부의 상처와 분열은 오랫동안 깊어졌습니다. 종교가 권력에 지나치게 기대거나, 반대로 권력이 종교 내부 문제를 활용하기 시작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는 우리는 이미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습니다.
문제는 정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에서 종교가, 범위를 좁혀서 불교계가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있습니다.
조계종에서는 이런 흐름 앞에서 지나치게 당황해, 권력에 선을 대어 대통령의 심기(心氣)를 파악하려 애쓰거나 초조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태고종에서도 혹시라도 대통령 부부의 참석 자체를 지나치게 특별한 은혜처럼 받아들이며 들뜨는 분위기가 나타난다면, 그것 역시 불교의 품격과는 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불교는 원래 권력 앞에 무릎 꿇는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왕과 귀족의 후원을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그들이 훌륭한 세속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바른 길로 이끌어주었습니다. 선사들 역시 황제를 만나도 지나친 아첨 대신 담담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막강 권력을 휘두르던 양(梁) 무제(武帝)가 “짐이 이토록 많은 불사를 하였으니 무슨 공덕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달마대사는 “무공덕(無功德)!”이라고 단칼에 잘라버렸습니다.
불교계가 정치권을 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조주 스님의 ‘끽다거(喫茶去)’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끽다거(喫茶去)’는 단순히 선사들 사이에서만 오가는 화두가 아닙니다.
찾아오는 이가 누구이든, 어떤 권력을 가졌든, 지나친 호들갑도 없고 위축됨도 없이 “차나 한 잔 하시지요”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어쩌면 수행자의 자유이며 종교의 품격일 것입니다.
권력과 등을 지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실 사회 속 종교는 정치와도 만나고 국가와도 협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관계 속에서도 스스로 중심을 잃지 않는 일이 중요합니다. 권력 가까이에 서 있는 것을 수행의 성취처럼 착각하는 순간, 종교는 이미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잃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흔들릴수록 더욱 필요한 것은 “바깥 세상의 변화에 놀라지 않고 바람을 참고 견디면 그 바람은 곧 잔잔해질 것이다”는 ‘처변무경 인풍자정(處變無驚 忍風自定)’의 의연한 마음일 것입니다. 바람이 세게 불면 촛불은 흔들립니다. 그러나 깊은 우물의 물은 오히려 고요합니다.
정치인은 오고 갑니다. 권력도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교 수행자들마저 권력의 흐름에 따라 들뜨고 흔들린다면, 결국 남는 것은 공허함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한국 불교가 권력자들에게 가장 먼저 건네야 할 말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어서 오십시오. 우선 차 한 잔 하시지요.”
객지유전명(客至唯煎茗)
심한불축풍(心閑不逐風)
손님 오면 다만 차를 달일 뿐
마음 한가로우니 세상 바람에 따라가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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