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가격은 수산물과 같이 경쟁 입찰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현장에서 즉시 이루어지지 못하고 가락동 까지 올라가서 이루어집니다.
그곳 가락동 시장에 모인 사람들은 상품(배추)을 사이에 두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습니다.
그 배추가 어떤 배추인지는 관심도 없습니다. 누가 생산한 것인지는 알 필요도 없습니다. 배추에 어떤 농약과 비료가 뿌려진지도 모릅니다. 농협 중매인과 상인과 화주 사이에는 공동체적 시스템이 전혀 형성되어지지 않습니다.
서로간에는 누가 얼마나 이익을 가져가는냐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상품 정보에 대한 서로간의 공유가 없는 상태는 서로를 믿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농산물 가격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권력은 중매인에게만 있다는 겁니다.
중매인의 가격 호가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배추의 생산량은 매년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평균 100프로를 기준으로 80에서 130프로 정도입니다. 그러면 가격도 그러해야 하는게 정답이 아닙니까? 그런데 80일 때는 배추 가격이 몇 배로 뛰고 130일 때는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물론, 수요와 공급의 그래프가 직선이 아닌 완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말도 안되는 겁니다.
자본주의 경제학의 가장 근본이 되는 수요 공급 이론이 여기서 부터 깨지는 겁니다.
자본주의 경제학은 그래서 처음부터 엉터리라는 겁니다. 희소성의 법칙에 의해 완벽하게 작동되어야 할 가격 형성이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오히려, 우연성에 의해 생산되는 수산물에는 가장 인간적인 가격 형성이 이루어집니다.
서로에 대해 정확히 알고 그래서 상대에 대해 온정을 가질 수도 있고 상품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어 그 상품이 함부로 취급되어지지 못합니다.
어민들이 잡아 온 그 수산물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잡아 온 줄을 알기에 서로간에 따스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연성을 통해 상품을 무지막지하게 잡아왔더라도 가격은 폭락을 하지 않는 겁니다. 수산물은 100프로를 기준으로 아마 거의 10프로 미만대에서 1000프로 이상까지도 생산이 될겁니다.
그러나, 가격은 전혀 거기에 따라가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따라가는 척 하다가, 서로간의 공유해야 할 정직한 선에서 머므릅니다.
여기서도 역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적용이 되지 못합니다. 희소성의 법칙이란 말도 무색합니다.
농산물과 수산물의 가격 형성의 딜레마에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농산물과 수산물 시장이 어느 지점에 있는가 입니다. 수산물은 현장에 있고 농산물을 현장에서 떨어져 있다는 겁니다.
수산물은 상품정보에 대해 정확하게 공유되어 있고 농산물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수산물 가격 형성에는 인적 네트워크가 작동을 하고 있지만 농산물은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좀더 쉽게 이야기 한다면, 수산물의 시장은 공동체 안에 내재되어 그들의 통제를 받는다는 겁니다.
농산물은 공동체를 벗어나 그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수산물 시장은 공동체를 도저히 위헙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공동체 각자가 마음대로 시장을 주무릅니다.
농산물 시장은 농민들을 마음대로 가지고 놉니다. 농민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상품에 의해 공격을 당합니다.
김장 배추 수확철이 다가오면, 자본과 유통 능력을 갖춘 상인들이 배추밭에 나타나서 농민과 계약을 합니다.
그들은 배추 생산량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의도대로 가격이 후려쳐집니다.
농민들은 정보가 전혀 없습니다. 어민들 처럼 우연성 같은 것은 전혀 기대를 할 수 없습니다.
유난히 날씨가 좋아 배추 수확량이 많아져서 생산량이 평년에 비해 130프로 정도 되면 그 해는 생산비도 못 건지는 겁니다. 그래서 열 받은 농민들은 배추 밭을 거름이나 하자고 그냥 갈아엎고 말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팔려나간 배추 조차도 가락동 시장 앞에서 며칠씩 기다립니다. 전국에서 올라온 배추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중매인들의 농간입니다. 농협의 농간입니다. 배추 밭을 통채로 사들인 상인들 조차도 공포심에 떱니다.
그래서 가락동 시장의 중매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거의 똥값으로 처분을 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