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을 울린 노래
'릴리 마를렌(Lili Marlene, Marleen)'
노래는 총칼보다 강하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과 연합군 모두를 울린 노래가 있다.
그 노래는
Marlene Dietrich - Lili Marlene
(마를렌 디트리히 - 릴리 마를렌)
마를렌 디트리히
1939 Lale Andersen(랄레 안데르센)
Lili Marlen(릴리 마를렌)
(original German version)
랄레 안데르센
한스 라이프(Hans Leip) 작사
노르베르트 슐체(Norbert Schultze) 작곡
릴리 마를렌(Lili Marlene)
가사
Vor der Kaserne, vor dem grossen Tor,
Stand eine Laterne und
steht sie noch davor.
So wollen wir uns wiedersehn,
Bei der Laterne wolln wir stehn,
Wie einst Lilli Marleen,
wie einst Lilli Marleen.
병영 앞에, 커다란 정문 앞에,
가로등이 하나 밝혀져 있고
그녀는 여전히 그 앞에 서 있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나고자 하네,
가로등 옆에서 우리는 서 있고자 하네,
언젠가 릴리 마를렌이 그랬듯이,
언젠가 릴리 마를렌이 그랬듯이.
이하 생략
'Lili Marlene'이란
독일 노래다.
이 곡의 가사는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었던 한스 라이프
(Hans Leip, 1893~1983)가 썼다.
당시 보초를 서고 있던 한스는
고향에 두고 온 연인
릴리(Lili)를 그리워 하다가
지나가던 간호사 마를렌(Marlene)을
보게되었다.
마를렌을 통해 릴리를 본 그는
마를렌도 짝사랑하게 되고
그 둘의 이름을 합쳐서
하나의 시를 썼다.
즉 릴리 마를렌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다.
그는 그 시에다
'Das Lied eines jungen Soldaten
auf der Wach, 젊은 초병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였다.
얼마 후 동부 전선으로 배속된 그는
릴리도 마를렌도 다시 보지 못했으며
20여 년이 흐른 후
자신의 시집을 펴내면서
'젊은 초병의 노래'를
그 속에 포함시켰다.
그러던 중 1938년
라이프의 시집에서
젊은 초병의 노래를 본
작곡가 노르베르트 슐체
(Norbert Schultze)가
이 시에 곡을 붙여 만든 것이
바로 릴리 마를렌이란 제목의 노래다.
영어판 릴리 마를렌
존 맥더모트
그러나 이 곡은 발표 당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노래 음반이 제작된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고
당시 겨우 700장의 음반만
제작되었다고한다.
뭐 많은 노래들이 그렇게 사라지듯
평범한 노래로 잊혀졌을 뻔...
그러나 노래의 운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에 가수 남상규가
남상규 노래
영원한 내 사랑(Lili Marlene) 1976
1939 by Lale Andersen(랄레 안데르센)
as The Girl under the Lantern
(등불 아래 소녀)
'영원한 내 사랑'으로
번안하여 불렀고
1970년대에서는
가수 이연실이
이연실 - 릴리 마렌(희귀곡)
'릴리 마렌'이라 제목으로
발표했을 정도였으니...
내가 이 멜로디가 익숙했던 것도
바로 이 당시부터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어 노래지만
영어, 불어, 스페인어, 일본어
전 세계 40여개국 등으로 번안되어
전 세계에서 유행을 하였다.
평범한 단조로운 멜로디에
애잔한 사랑 가사가
왜 전장에서 싹 튼 노래가 되었을까?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말이다.
언제 죽을지도 모를 전쟁터에서
이 감상적인 사랑의 노래를 들으면서
고향에 두고온 애인이나 부모를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가장 심리적으로 심약한 상태에서
밤하늘에 이 느릿 느릿 울려 퍼진
노래를 상상해보라.
이해가 조금은 간다.
심지어 포로로 잡힌 미국병사가
갖고 있던 트럼펫으로
이 노래를 연주했더니
살아남았다는 기록도 있다.
(CNN news 참조)
1941년, 세르비아 벨그라드에 주둔한
독일군 방송국이 폭격을 받았다.
폭격에 살아남은 몇 장 안 되는 음반 중에
‘릴리 마를렌’이 있었다.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는 밤마다 방송됐다.
이내 이 슬픈 사랑의 노래는
전 유럽에 퍼졌고,
나치에 반대하던 독일의 영화배우
마를렌 디트리히가
새로 녹음한 버전 역시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영국군은 그때부터
유럽대륙에 나가는 모든 병사들에게
‘릴리 마를렌’을
독일어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심리전을 위해서였다.
이제 노래는
연합군도 독일군에게도
친숙한 음악이 되었다.
한때 괴벨스는
독일군 사기를 저하시킨다고
노래를 금지시키기도 하였고
원곡을 부른 랄레 안데르센이란
가수를 체포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 체포 소식은
영국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독일은 국제적인 비난 속에
그녀를 석방하게 된다.
석방된 그녀는 결국 미국으로 몰래
망명에 성공하고
(독일 입장에서는 배신자겠지만)
68세 죽을 때까지 이 노래를 불렀다고.
노래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준다.
아니 노래가 주는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총칼로 싸우는 서로의 적이
같이 아는 노래 하나로도
잠시나마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앞으로의 전쟁이
총칼로 하는 것은 아닐 텐데
BTS 음악이 그런 힘을 보여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