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 금요일에 해외출장가는길에 읽은 책입니다.
가뜩이나 술을 팔지 않는 브루나이에 갔더니만 더 절실히 느껴지더군요.
나의 양생법…대가를 지불하라
회고록의 끝부분에서 양생법을 쓰는 까닭은 그것이 기자생활의 결산이기도 하고 젊었을 때 술고래가 졌던 ‘육신의 빚’을 어떻게 갚았는지를 말하고자 함이다.
나는 젊었을 때 술을 많이 마셨다. 종국에 가서는 애음(愛飮)하던 사람들을 시한(時限)이 되기 전에 이승에서 무자비하게 하차시키던 그 독한 소주를 물 마시듯 마셨으니 내가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라 할 것인가? 그러나 알고 보면 그건 기적이 아니라 빚 갚음의 결단이 갖다 준 결과이다. 빚 갚음이란 육신에 해로운 것은 습관이 되어 끊기 어려운 것도 사정없이 끊고 육신에의 속죄를 줄기차게 이행한 노력을 말한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복(福)은 떼를 지어 오는 법이 없으나 화는 떼를 지어 몰려온다. 당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건 철칙이다. 사람 사는 일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대충 넘어가는 일은 결코 없다. 젊고 술 잘 마시는 신문기자들은 명심할 일이다.
그렇게 펄펄하던 나도 60세쯤 되니까 별의별 병이 무슨 잡귀(雜鬼)떼처럼 몰려들었다. 첫 번째 손님은 통풍(痛風)이다. 피 속에 요산(尿酸)이 불어나서 피가 끈끈해지고 종국에는 콩팥을 망가뜨리고 간장 장애를 일으키며 피 흐름이 나빠져서 고혈압이 되고 심장을 손들게 하는 수도 있다. 요산의 결정체가 엄지발가락 밑둥치에 붙어 급성골막염을 일으켜 바람만 불어도 펄쩍 뛸 만큼 아프다고 해서 아플 통(痛)자, 바람 풍(風)자, 통풍이다. 대단히 고약하다. 양 곱창 지글지글 구워서 소주를 장복한 결과이다. 요컨대 빚 갚으라는 것이다. 파산신고도 소용없다. 육식을 금하고 금주를 해도 통풍은 놓아주지 않는다. 그러면 좋다 너 마음대로 해라하고 배짱을 부리면 병발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 그 통풍이 온 것이다. 통풍은 간장의 단백질 대사(代謝) 장애에서 온다.
두 번째 손님은 고혈압이다. 당연히 오게 되어 있는 손님이다. 고혈압을 방치하면 뇌졸중이나 뇌경색을 불러오고 한번 쓰러지면 회생(回生)은 아주 어렵다. 치매도 고혈압이 원인이 된다.
세 번째 손님은 간장장애다. 술꾼치고 지방간 아닌 사람이 있을까마는 지방간이 도지면 간경화가 되고 종국에는 이승 하직하는 급행티켓을 무료로 받게 된다. 의사는 나를 진찰하더니 간경화 직전이라고 했다.
네 번째 불청객은 위궤양이다. 새벽에는 배가 쓰리고 돌멩이도 삭이던 소화력이 떨어져서 늘 더부룩하니 완전히 파장이 된 형국인 데다가 다섯 번째로 전립선 비대증이 왔으니 병마의 최종무기인 암을 제외한 모든 화력이 한 곳으로 몰린 셈인가?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전혀 낙담하지 않는 나의 기질이다. 반드시 나을 거라고 믿었던 좀 무신경한 나의 기질이 곧 나의 주치의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몸은 본디대로 돌아가려는 복원력을 지니고 있다. 이게 자연 치유력이다. 명의(名醫)란 별 게 아니라 환자가 갖고 있는 본디의 자연치유력을 아주 교묘하게 도와주는 간병인(看病人)이라고 한다면 의사들이 섭섭해 할 것인가? 암에 걸렸을 때 ‘아이구 나는 죽었구나’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죽고, 나는 낫는다고 철통같이 믿는 사람의 회생률은 상당히 높다는 설(設)이 있다.
세계적인 자연요법의 권위자인 미국 의사 앤드류 웨일(Andrew Weil)은 안수기도에 의해 앉은뱅이가 기적처럼 일어서는 것은 안수 기도자의 힘이 아니라 안수기도자가 머리에 손만 얹어주면 틀림없이 일어설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앉은뱅이의 자연치유력이 순간적으로 폭발적으로 증가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앤드류 웨일이 쓴 책 5권을 읽었고 미국의 세계적인 영양학자 진 카퍼(Jean Carper)의 ≪음식: 당신의 불가사의한 약≫(Food: Your Miracle Medicine)을 비롯한 4권을 통독했다. 미국의 식사요법으로 암을 고친 그 유명한 막스거슨(Max Gerson), 일본의 세계적인 자연요법의 대가 ‘니시’[西]의 ‘니시 건강법’, 일본의 99세 현역의사인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重明], 내시경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위장박사인 신야 히로미[新谷弘實]의 저서 등 내가 읽은 의학 건강서적은 일본의 대중적인 건강서적이 태반이지만 줄잡아 600권 정도 된다. 일본의대중적인 건강서적이 500권, 세계적인 권위자들이 쓴 의학서적이 50권, 중국의 ≪황제내경≫(皇帝內徑), ≪영추경≫(靈樞經), ≪천금방≫(千金方), ≪본초강목≫(本草鋼目), ≪식료본초≫(食療本草), ≪상한론≫(傷寒論), ≪금궤요략≫(金櫃要略), 최근에 간행된 ≪무병일신경≫(無病一身輕) 등 수십 권을 읽었으니 10년만 젊었으면 한의사가 되어 많은 앓는 사람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의학서적을 아무리 많이 읽더라도 철저한 자기관리가 선행되지 않고는 병을 고칠 수가 없다. 칼 같은 마음으로 유해한 습관은 끊어야 한다. 담배를 끊은 것은 30년 전이지만 술은 10여 년 전에 끊었다. 병이 몰려온 그 사태는 비상사태인데 절주(節酒)로 대처하는 것은 응석에 불과하다. 후배들이 찾아와서 회식하며 어쩌다가 마시는 반잔 맥주맛이 희한할 정도지만 나는 마시지 않는다. 옛날에 많이도 마셨잖아.
간장장애(병)의 치료는 의학서적으로 꽤 읽었다고 해도 의사를 제외할 수는 없다. 중국의 전설상의 의성(醫聖)으로 일컬어지는 편작(扁鵲)은 여섯 가지 고칠 수 없는 병, 곧 육불치(六不治)의 하나에 무당을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일을 들고 있다. 그러므로 의사를 믿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청맹과니처럼 아무것도 못 보고, 모르고 목숨을 의사에게만 맡기는 것도 현명한 일은 아니다.
간장병은 알코올에 의한 장애가 80%이므로 술을 끊는 일은 아니할 수 없는 필수조건이다. 술을 끊고 의사의 처방을 기다리되 스스로 간장의 재건사업에 기여하는 바도 큰 몫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간장병의 유력한 약은 ‘레가론’이다. ‘레가론’은 우리나라 들이나 산에 자생하는 엉겅퀴(Thistle)에서 추출한 실리마린(Silymarin)이 주성분이다. 간장병에는 가장 효과적인 약이다. 나도 ‘레가론’을 몇 년 복용했지만 지금은 맥주효모를 먹고 있다. 맥주효모를 소개한 일본 서적에는 ‘간장병의 원인이 약물이든 알코올이든 영웅적인 효능을 발휘한다’고 적고 있다. 지금 나의 간장수치는 20대 선의 정상치에 들어있다. 맥주효모는 ‘원기소’에 들어있는 그 성분이지만 간장병에는 만만찮은 원군(援軍)이 된다.
통풍은 한번 앓기 시작하면 낫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난치병이다. 그러나 나는 십여 년 복용하던 통풍약을 끊었다. 혈중 요산 수치가 5선이면 정상적인 것이다. 통풍은 술을 끊었다고 해서 낫는 병이 아니다. 75세 때 당뇨병이 귀찮은 나그네처럼 들렀다. 초기에 잡지 않으면 대단히 무서운 병이란 것을 나는 안다. 나와 막역하게 지내던 친구, <매일경제> 부사장을 지낸 정태성이 당뇨병으로 다리 절단수술을 받다가 간 일을 나는 늘 애석하게 생각하던 터라 작심하고 체중을 줄였다. 30년 이상을 헬스에 다니던 나는 72킬로그램의 단단한 몸집이었으나 표준체중인 59킬로그램을 향해 체중을 줄이기 시작했다. 운동만으로는 체중을 줄일 수가 없다. 먹성을 줄이지 않으면 체중조절은 불가능하다. 채식 위주로 섭취 칼로리를 반 정도로 줄이고 하루에 2만보씩 걸었더니 6개월에 17킬로그램이 줄어 피골이 상접한 웬 노인이 나타났다. 보는 사람마다 큰 병 걸린 사람 보듯이 한마디씩 하기에 대꾸하기가 귀찮아서 6킬로그램을 도로 늘려 지금은 61킬로그램. 딱 좋다. 168센티미터이던 키가 늙어서 165센티미터로 줄었으니 표준체중을 약간 넘는다.
당뇨병이 모진 사람에게 질겁해서 달아나고 통풍도 달아나고 혈압도 정상이 되었으니 이거야 일병식재(一病息災)다. 병 한 가지가 있으면 다른 재앙은 멎는다는 말이다. 나는 다병식재(多病息災)인가. 큰소리 칠 것 없이 욕심은 다 버리고 천천히 걸어갔으면 좋겠다.
전립선비대증은 남자만의 업병(業病)이다. 여자는 전립선이 없으니까. 전립선 질환은 60대 남자는 60%, 70대는 70%라 할 정도로 흔한 병이다. 동물성 지방의 섭취를 줄이고 술도 끊거나 줄이고 예방약으로는 톱니바퀴 야자수에서 추출한 소팔메토(Saw Palmetto)가 좋다. 호박씨도 좋고 토마토도 예방효과가 있다. 그래서 이제 전립선 보조식품엔 톱니바퀴 야자수 성분 외에도 호박씨(pumpkinseed)와 토마토의 붉은 색소인 라이코펜(Lycopene)이 들어있다. 앉을 때 가랑이를 벌리고 앉으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늘 가랑이를 벌리고 일하는 구두수선공은 전립선 질환이 덜 걸린다는 것이다.
중국 송 때 문장가인 호단(胡旦)의 <장경탐주부>(長鯨呑舟賦), 곧 큰 고래가 배(舟)를 들어 마셨다는 노래는 고래가 얼마나 큰가를 말해주는데(其狀鯨之大曰), 이르기를 “고래는 뱃속에 배가 들어 있는 줄 모르고 즐거워하며 사람은 뱃속에 배가 들어 있는 줄 모르고 즐거워한다”(魚不知舟在腹中, 其樂也融融, 人不知舟在腹內, 其樂也芮芮). 융융(融融)이나 예예(芮芮)는 즐거워하는 모양이다. ≪좌전≫(左傳)에 나오는 말이다.
기자들 가운데 술고래가 많다는 이야기를 썼지만 술고래의 뱃속에도 배, 큰 업(業)이 들어있다. 업은 뒤에 병인(病因)이 되어 술고래를 저승으로 데리고 간다. 어차피 갈 곳이긴 해도 멀쩡한 나이에 급한 볼일 있는 것처럼 갈 건 없지 않나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뱃속에 업이 드는 줄 모르고 즐거워만 하는 술고래들은 조심할 일이다.
제목에 있는 ‘대가를 지불하라’는 말은 사연이 있다. 어디서 왔는가? 10여 년 전에 동아일보사 동료기자이자 동갑인 이정석이 출판사를 차린 나에게 귀띔을 했다. 자기의 친구 중에 미국의 장수학자 ‘케네스 장’이 있는데 그 사람의 책을 내지 않겠느냐고 했다. 워낙 저명한 의사라서 그쪽에서 바라는 초판부수에 놀라 성사는 되지 않았지만 케네스 장(Kenneth Chang)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1953년 미국으로 건너가 템플대학 의학부 교수가 된 사람인데 장수학자로서는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케네스 장이 일본에서 ≪백세를 사는 힘: DEP 건강법과 인생의 퀄리티≫라는 책을 출간했기에 즉시 주문해서 읽었더니 식사(diet), 운동(exercise), 정신적 안정(peace)을 세 기둥으로 건강을 풀어나간 좋은 책이었다.
그 속에서 여러 번 되풀이해서 주장한 말이 ‘대가를 지불하라’다. 이 말은 양생법의 진수를 꿰뚫은 말이다. 요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마을버스도 거저 태워주지 않거늘 하물며 사람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건강에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공짜를 누리려고 한다면 그건 불가능하다. 대가란 꼭 병원에 가서 지불하는 의료비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을 위해 바치는 모든 노력이 대가인데 부지런하고 줄기찬 노력 없이 건강을 누릴 수 있겠는가?
건강을 지키는 일도 어렵지만 망가진 건강을 수복(修復)하는 일은 잃었던 강토를 되찾는 일만큼 어렵다. 아무리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더라도 지속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지속력이 가장 큰 힘이란 것을 나는 경험칙(經驗則)으로 알고 있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힘은 지속력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타고나기를 성질 급하고 구차스런 일은 당장 때려치우는 과단성이 지나친 성격이지만 지속력 하나는 스스로 놀랄 만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 하고 있는 건강수칙을 다 쓰면 책이 되고도 남겠지만 정보를 공유하는 면에서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고치(叩齒) 건강법이다. 고(叩)자는 두드린다는 듯이고, 치(齒)는 이빨이란 뜻이니 고치는 아래 위 이빨을 딱딱 마주치는 것을 말한다. 중국의 고대 의서인 천금방(千金方)에서 발견한 고치는 내가 10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더러는 하루에도 두서너 번씩 하는 비밀무기다. 별걸 다 한다 하고 웃을 사람이 있겠지만 ≪천금방≫에 이르기를 고치 서른여섯 번에 백맥(百脈)이 화통(和通)하고 백병이 사라지며 잇병은 영원히 없어진다(永無齒疾)고 했다. 치과에 갈 일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아침에 일어나 조용히 앉아서 눈을 감고 잡생각을 걷어낸 다음 아래 위 이빨을 딱딱 마주치기를 서른여섯 번, 입 속에 고이는 침은 마신다. 그건 영액(靈液)이라고 했다. 나는 고치법 시행 이래로 치과에 가본 일이 한 번밖에 없다. 그것도 고치법 이전에 빠져있던 어금니에 의치를 하기 위해서다. 고치법은 잇병도 잇병이지만 치매예방에 대단히 유효하다. 일본의 치매전문병원에서 환자의 남아있는 이빨을 검사한 결과 평균 다섯 개 미만이란 사실은 이빨과 치매의 관계를 단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나이 80세를 넘기면 치매가 바로 곁에 와있다. 치매는 암보다도 무서운 것이다. 자기가 누군지 모른다면 어찌되겠나. 70세를 넘긴 사람에겐 고치법이 바로 자선병원이다. 청나라 6대 황제로 89세까지 살아 제왕 중에선 최장수를 누린 건륭제(乾隆帝)의 양생법에도 들어있는 건강수칙이 고치법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고치법을 시행하고 난 다음 나는 구상(具常) 시인의 <말씀의 실상> 18행을 소리 내어 암송하고 이어 사뮤엘 울만의 <청춘>은 음독(音讀)한다. 치매 예방에 효과 있다. 늙어서의 나의 기억력의 원천은 이런 노력에 있을 것이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아담 위셔트(Adam Wishart)가 슨 ≪세 사람에 한 사람≫(One in Three)이란 책은 암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란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벌벌 떨고 신경쇠약이 될 건 없어도 대가는 지불해야 된다. 대가는 의료비가 아니라 노력이요 정성이다.
- 권도홍 편집기자 자전 <날씨 좋은 날에 불던 바람> 中에서 -
첫댓글 부르나이... 보루네오 섬 북서쪽에 있는 술탄왕국이군요. 백과사전으 찾아보니 독립이 1984년이라니까, 신생국이네요. 배경이 참 아름답습니다.
첫사진의 사원은 우리나라의 경남건설이 지었다고 하네요...